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엎어지면 코 닿을 그런 거리건만...
공무원노조 금강산통일기행에 다녀와서
양파사랑 2008/02/28 18:47    

새해 1월초 4일부터 6일까지 ‘새해맞이 공무원가족 통일기행’ 일환으로 북녘 땅을 밟고 왔다. 반세기를 넘어 오면서 금단의 영역으로 여겨왔던 곳이기에 감회는 분명 새로웠다. 또, 무엇보다 분단의 현실을 하루 빨리 극복하고, 남과 북이 하나가 되기 위한 일이라면 미력하나마 힘을 보태야겠다는 각오를 새롭게 해 보는 기회였다.


첫째 날 - 분단의 벽을 넘으며

휴대폰 알람을 새벽 4시로 맞춰 놓고 잠자리에 들었지만 잠이 오질 않았다. 집사람과 딸아이가 곤하게 자고 있는 새벽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조그만 등산용 배낭하나를 들춰 매고 집을 나섰다. 사실, 며칠 전 금강산 여행(?)을 다녀오겠다는 말에 반신반의하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던 가족들이었기에 깨운다는 것이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담배 한가치를 필터 바짝 아랫부분까지 다 빨고는 차에 올라 뒤쪽 빈자리에 앉았다. 동료들과 그 가족들이라고는 하지만, 다들 머쓱한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나보다. 또, 토요일과 일요일도 반납해 가며 타르 덩어리를 수거해야 하는 판국에 이번 일정이 맞춰진 것을 우려하는 눈빛을 보니 영락없는 공무원과 그 가족들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인원확인을 끝낸 버스는 새벽공기를 가르면서 마냥 북으로 달려 여산 휴게소에 들려 커피한잔으로 졸음을 달래고, 또 몇 시간을 달렸을까? 강원도 땅에 접어들었지만 약속시간 때문에 화진포해수욕장 어딘가에 있다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별장도 둘러보지 못하고 집결지로 향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현대 아산휴게소 인근 식당에는 먼저 도착한 타 지부 일행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들 틈에 끼어 아침 겸 점심을 해결하고 집결지로 옮겼다.

현대아산 휴게소. 그곳 관계자로부터 여권을 건네받고, 여행기간 중에 지켜야 할 것들에 대한 교육과 개인소지품 점검이 있었다. 여권에 볼펜 자국을 남긴다거나 구겨진 흔적이 있으면 벌금을 물어야 하고, 휴대전화와 밧데리, 확대용 카메라, 남측의 신문과 도서는 가져 갈수 없으며, 미국과 일본상표가 붙은 옷이나 모자도 착용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었다. 휴대폰을 차에 보관하기에 앞서 몇몇 지인(?)들께 문자 메시지를 날렸다.

‘ㅎㅎ~ 희망이 보일 것 같지 않아 북행(?)을 결심했다. ㅎㅎ ~’
‘미안하오! 더 큰 일을 하기 위해 나섰으니 ** 를 잘 부탁하오!’
‘와우 방북을 축하!! 내 몫까지 보고 오세요. 낙지에 쐬주 한잔 해야죠?’
‘재미나게 노시다 오세요. 울 나라는 독수리 5형제에 맡기시고....’

화진포(현대 아산휴게소)를 출발한 우리는 남측 출입사무소에 도착 출경수속을 마치고, 현대아산의 33인승 버스로 옮겨 탔다. 오늘부터 2박3일 동안 우리 조의 안내를 맡은 당차게 생긴 조장(이○○)이 조선족 운전기사를 소개하면서, 여행 중 주의사항을 얘기했다. ‘버스로 이동하는 동안에는 절대 사진촬영을 할 수 없다.’ 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남측 출입사무소를 출발한 버스가 GOP 철책선 통문이 열리고 비무장지대 안으로 접어들 때의 기분은 이상야릇하기만 했다. 5분쯤 달렸을까? 남북을 경계 짓는 분계선을 통과한다는 조장의 숨 가쁜 안내방송에 창밖을 보니, 조그만 콘크리트막대 하나가 덩그러니 비무장지대의 고요를 지키고 있었다.

우리를 태운 차량은 어느새 DMZ 북방한계선에 다가와 북측 인민군 초소를 통과해서 북쪽 땅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손을 흔들어 보이지만 목각인형처럼 무표정함 그대로인 채 반응이 없었다. 2~3분을 더 달려 북쪽 출입사무소에 도착했다.

한꺼번에 많은 여행객이 입북수속을 받는 그곳 출입사무소는 초라한 건물만큼이나 도떼기시장을 방불케 했다. ‘몇 조 이쪽으로 서시오.’ ‘카메라 꺼내 가방위에 올리세요. ‘여권을 바로 펴서 드세요.’ 안내조장이 일러준 대로 여권을 내밀자 북측 세관원(군관)의 날카로운 눈빛이 스치는가 싶더니, 다시 내게 건네준다. 심사를 통과한 셈이다. 검색 대를 빠져나온 배낭을 들춰 메고 건물 밖까지 나오는데 걸린 시간은 30여분 남짓. 정신없이 보내면서도 나는 많은 생각을 해봤다.

화진포에서 금강산까지 15분이면 올 수 있는 거리건만 3시간 이상을 기다리고 검사하고, 또 기다리고 검사하고, 사상이 뭐고 이념이 뭐 길래! 금강산 그곳도 우리의 영토이고, 같은 동포가 사는 곳이건만 이런 복잡한 절차로 왕래를 해야만 하는 현실이 서글프기만 했다. 분명 보이지 않는 벽을 실감해야 했고, 이 벽을 허물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해 봤다.

溫井里 마을에 땅거미가 내리기 시작할 즈음 우리일행은 금강산 관광특구에 도착했다. ‘아! 꿈에도 그리던 금강산! 그곳에 내가 발을 들여 놓았구나!’ 눈앞에 펼쳐진 일만 이천 봉우리의 장엄함과 신비스러움에 감탄사를 내 뱉으며, 내가 지금 서 있는 이곳이 남쪽이 아닌 북쪽 땅이라는 사실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집 떠나면 고생이라고! 계획된 일정보다 1시간 이상이나 지체되었던 탓에 다들 피곤해 하고 배도 고픈 모양이다. 저녁식사가 준비된 금강산호텔 2층 연회장에 들어서니, 북쪽 접대원처녀․ 총각들이 인사를 하며 반갑게 우리 일행을 맞았다. 어쩌면, 이들은 우리가 처음 만나게 되는 이곳(북쪽)사람들인 셈이다. 돼지고기와 두부 등 15가지 재료로 북측 요리사가 직접 요리한 10달러(?)짜리 한식뷔페로 저녁을 해결했다. 조미료가 가미되지 않은 탓인지 음식들이 깔끔하고 뒤끝이 게운했다.(**지부 동지가 배낭에 주머니에 넣고 와서 슬그머니 건네주는 팩 소주 한잔을 반주삼아)

식사를 마치고 문화회관으로 자리를 옮겨 북측이 자랑하는 평양 모란봉교예단의 공연을 관람했다. 사람이 하는 것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은 고도의 기술을 발휘하는 배우들에게 박수를 치면서도 저런 묘기를 펼치고 특급 인민배우(?) 칭호를 얻기까지의 과정은 어떠했을까? 공연시간 1시간30분 내내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연기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통일문화제’ 를 끝으로 첫날 일정을 마치고, 숙소(외금강호텔)에 들어서니 북쪽처녀 같기도 하고 조선족 같기도 한 아리따운 아가씨들이 우리를 맞았다. 배정받은 객실의 열쇠를 받아들고 6층으로 올라와 객실 문을 여니 두개의 침대가 나란히 놓여 있고 침구들이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다. 배낭을 벗어놓고 담배를 태울 요량으로 창문을 열어젖히니, 관광특구내의 시설들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고 저 멀리 溫井里 마을의 희미한 불빛들이 아른거린다. 이곳이 북녘 땅이라는 사실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둘째 날 - 상팔담에 만난 북쪽의 통일일꾼

아침 일찍 일어나 호텔에서 준비한 한식으로 먹는 둥 마는 둥 식사를 마치고, 구룡연(구룡폭포계곡)관광길에 올랐다. 안내조장은 산행 중에 침을 뱉거나 휴지를 버리거나 아무데나 용변을 보게 되면 벌금을 물고 하산조치를 당한다는 등의 얘기를 해준다. 또, 바위나 비석에 새겨진 김일성주석을 찬양하는 각종구호나 선전물에 손을 대거나 손가락질을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만약 어기면 붙잡혀서 정신교육을 받거나 하산조치를 당한다는 거였다.

일행을 태운 구룡연 탐방버스가 신계사 계곡 길을 달려 구룡 계곡의 주차장까지 가는 길 좌우측으로는 기묘하게 생긴 매 바위와 관음봉 줄기가 우리 일행을 반겼고, 수백 년도 더될 것 같은 금강송(미인송, 금송)이 눈독을 돌리게 했다. 금방이라도 하늘을 찌를 듯이 쭉쭉 뻗 은 나무들을 보니 욕심이 생긴다. 돌이켜 보면 숭례문 복원을 하는데, 기둥감(?)으로 제격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ㅎㅎ~.

1시간 정도를 걸으며 오르는 구룡계곡에는 이곳을 지나야 금강산 비경을 볼 수 있다는 금강문이며, 옥구슬처럼 맑은 물이 흐르는 옥류동계곡, 선녀들이 내려와서 춤추며 놀았던 무대바위, 연초록구슬 두개를 꿰어 놓은 연주담. 계곡의 좌우에는 기암괴석이 어우러져서 구룡연의 신비로움을 더해 주고, 그 가장 위쪽에 구룡폭포가 자리하고 앉아 아래를 내려다보며 수천 년을 살아온 세월들을 설법하는 것만 같았다.

구룡연을 한 눈에 감상할 수 있는 관폭정에 올랐다. 아홉 마리 용이 살았다는 구룡폭포는 꽁꽁 얼어붙어 사진에서 봤던 그런 물줄기는 구경할 수 없었지만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훗날 기회가 주어져 다시 이곳에 오게 된다면 겨울철을 피해서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룡폭포를 뒤로하고 하산하다가 왼쪽 방향으로 발길을 돌려 30여분 가량 가파른 철 계단과 돌길을 오르니, 나무꾼과 선녀의 전설이 깃들어 있는 여덟 개의 담(潭)을 숨어서 내려다 볼 수 있는 전망대가 나타났다. 여덟 개의 비취를 꿰어서 저 아래 계곡을 따라 걸어 둔 목걸이는 선녀들이 목욕을 한 후에 잊어버리고 간 것이 틀림없는 듯 했다.

상팔담의 비경들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산 정상에 올랐다. 내 막내 누이 또래의 아리따운 처녀와 그를 지도(?)하는 시커먼 사내가 관광객을 맞는다. 두 볼이 상기된 채 손이 시린지 양옆구리에 끼고 말없이 앉아 있은 모습이 왠지 애처롭게 느껴졌다. 그도 그럴 것이다. 엄동설한 한곳에서 몇 시간씩 서있는 것도 힘들 텐데, 같은 얘기를 반복해야 하는 일이 어련할까!

‘수고 하십니다.’ 라면서 지도원동무(?)에게 말을 붙여봤다. ‘아! 어데서 오셨습니까?’ ‘저는 전라도 ○○에서 왔고, 이곳에 온 일행들은 전국에서 온 공무원과 그 가족들입니다.’ ‘아! 그렇습니까? 어서 오시라요!’ 대화가 끊기지 않을 것 같아서 ‘이곳에는 매일 올라오느냐! 힘들지 않느냐!’ 라는 등 호감을 보이자 눈이 내려 빙판길 미끄러운 것만 빼면 괜찮다는 말을 해준다.

그러면서 남쪽의 대선관련 얘기를 꺼낸다. ‘남쪽 사람들이 경제가 힘들어서 이○○ 후보에게 힘을 실어줬다고 하던데! 사실입니까?’ ‘남쪽 사정을 많이 아시네요?’ 라면서 ‘남쪽 경제가 좋아져야 금강산관광도 활성화 되고, 북쪽도 좋아질게 아니냐?‘ 라는 얘기를 해 주면서 잘못알고 있는 것은 바로 얘기를 해줬다. ’공무원노조 파업‘ ’남북 경협사업‘ 등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눈 것 같다. 북조선 노동자들의 생활상 등 평소 궁금했던 것들도 물어봤다. 꾸밈없이 솔직하게 얘기해 주는 모습이 참 순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은 했느냐!’ 는 물음에 아직 미혼이고, 나이는 서른 전, 스물아홉이라고 했다. 내 나이를 물어 오길래 목에 걸고 있는 ‘관광증’ 을 보여 줬더니, ‘10년은 젊어 보입네다. 헹님!’ 유모와 재치도 있어 보였다. 초등학교 4학년짜리 딸이 하나 있다고 했더니, 같이 오지 그랬냐며 서운함을 표시한다. 본관(本貫)을 물으니 ‘전주’ 라고 했다. 내년에 다시 오고 싶다는 얘기를 꺼내자 그때는 꼭 딸이랑 같이 오라는 것이었다. 이곳에서 기다리겠다면서 자신의 이름 석자를 기억해 달라는 거였다.

장갑을 벗어 악수를 청하고 배낭을 뒤졌다. 숙소를 나서면서 넣어 둔 캔 맥주가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아뿔사! 깡통이 터졌는지! 오후에 온천욕을 마치고 갈아입으려던 옷가지까지 흥건히 젖어 있었다. 맘이 통하는 누군가를 만났을 때 무엇인가를 나누고 싶고, 주고 싶지만 줄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런 상황을 경험해 보지 않은 이는 모를 것이다. 허탈하기만 했고 한 없이 내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아쉬운 작별을 뒤로하고, 상팔담을 내려오다 노동방송국 박○○기자를 만났다. 동행취재차 이번 일정에 같이했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이곳에서 만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기에 현장에서 만나는 동지들처럼 반갑기만 했다. 밤에 만나서 (평양)소주나 한잔하자는 인사로 마무리를 하고 세 시간을 참아왔던 담배생각(?)에 서둘러 하산을 했다.

점심식사가 준비된 ‘목류관’ 앞까지 단숨에 내려오니, 우리네 관광지들처럼 간단한 음식을 팔고 있다. 출출하던 차에 막걸이와 녹두전을 시키고 계산을 하려는데, 달러(?)가 아니면 안 된다고 해서 닫아 두었던 입을 열었다. ‘미국 놈들 몰아내고 우리끼리 통일을 하자는 사람들이 달러는 받으면서, 왜 우리 돈은 받지 않느냐?’ 한마디 했더니, 외모만큼이나 심성도 곱게 생긴 접대원처녀의 얼굴이 붉어지는가 싶더니 돈을 받는 것이다.

셋째 날 - 나는 통일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해금강 해맞이 행사와 삼일포 관광을 위해 새벽부터 부산을 떨어야 했다. 분명 새벽별을 보자는 것은 아닐 텐데! 아침을 해결하고 버스에 올랐다. 물안개 때문인지 날씨는 흐리지만 충분히 해맞이가 가능할 거라는 조장의 얘기가 빗나가지는 않았다.

해금강을 뒤로 하고 신라시대 어느 왕이 관동팔경을 구경하면서 하루씩 머물렀는데, 유독 이곳에서만 삼일을 머물렀다고 해서 이름이 붙여졌다는 삼일포로 방향을 돌렸다. 36개의 봉우리가 호수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어 웅장함과 아늑함을 느끼기에는 더없이 좋은 곳이다.

“거울 속에 피어 있는 연꽃송이 서른여섯
하늘가에 솟아오른 봉우리는 일만 이천
그 중간에 놓여 있는 한 조각 바윗돌은
바다 찾은 길손이 잠깐 쉬기 알맞구나“

단풍관을 배경삼아 기념사진 한 장을 촬영하고, 오른쪽 호수 길을 돌아서 호수 전체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봉래대에 올랐다. 유독 수줍음이 많아 보이는 새침떼기(?) 관광해설사 처녀가 낭송해 주는 ‘봉래 양사언’ 선생의 시를 감상하고, 소나무 숲 내리막길을 내려오는데 5~6년 전 결혼하고 처음 관람한 영화 ‘실미도’에서 접한 ‘적기가’의 가사를 붉은색 글씨로 새겨 놓은 바위를 발견하고 시선을 돌려본다.

“민중의 기 붉은 기는.... (중략).... 우리들은 붉은 기를 지키리라“

일행 중 누군가가 한마디 한다. ‘훗날 통일이 되었을 때, 저런 흔적을 없애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겠다.’ 라고. 저걸 지워 없애기는 왜 지워 없애! 이념이 다르고 사상이 다른 채로 살아온 세월이 얼마인데, 통일이 되더라도 후손들의 교육을 위해 남겨 두고, 우리는 이런 것들도 뛰어 넘어서 통일을 일궈냈다는 얘기를 해야지!‘ 라는 말을 해 주고 싶었다.

옥류관의 평양냉면을 끝으로 이곳에서의 마지막 식사를 마치고, 다시 비무장지대를 지나오면서 그간의 과정을 정리해 본다. 비록 2박3일 이라는 짧은 일정이었지만, 이번 여행을 다녀오면서 그동안 생각해 왔던 남북관계며 금강산관광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했고 알게 되었다. 분명히 북한은 변화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아니 이십여 년 전, ‘늦봄 문익환’ 목사의 방북이후 통일은 이미 시작되었는지 모른다는 얘기가 사실처럼 굳혀졌다.

상팔담 정상에서 손을 굳게 잡으며 통일을 위해 우리 젊은 사람들이 힘을 합치자던 이○○동지. 또, 외금강호텔 로비에서 ‘선생님은 통일을 위해 지금까지 한 것이 무엇입니까?’ 라고 묻던 평양처녀. 연봉 1,900만원의 비정규직(계약직)노동자이면서도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통일을 염원하는 국민들한테 희망이 되고 있음을 자랑스럽게 얘기하는 현대아산의 이○○ 안내조장. 이들에 비하면 나는 자본의 세계화를 노리는 미국을 미워한 것 말고는 통일을 위해서 하고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 한없이 부끄러웠다.

타르 수거작업으로 전 공직자가 나서고, 자원봉사자들의 손길이 전국에서 모여 드는 상황에서 공무원이, 공무원이라는 사람들이 부부동반으로 금강산 유람을 다녀왔다며 보수꼴통들은 뼈있는 소리를 내뱉었다. 하지만, 나는 우리 처신이 적절치 못한 게 아니라! 그들의 생각과 주장이 잘못된 것이라고 확신한다. 금강산여행은 단순히 관광이 아닌 민족의 화해를 여는 장으로서 마음의 빗장을 풀어 가는 기회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서두르지도 않고 지나치게 들뜨지도 말고 차분히 서로가 이해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노력과 인내심이 필요한 게 통일이 아닌가! ‘현대아산 공화국(?)과 북조선 인민공화국을 거치지 않고 동포애 차원에서 직접 이곳 인민(?)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은 없느냐!’ 는 질문에 난감해 하며 머뭇거리던 북쪽청년의 대답을 듣지 못한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소중한 기회였다.

별 볼일도 없는 사람에게 이런 소중한 기회를 배려해 준 공무원노조 (지부) 관계자와 늦었지만, 후원을 아끼지 않으셨던 분들께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또 이번 일정에 같이했던 동료직원과 그 가족들에게도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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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좋은 구경 다녀오셨네요 아침이슬 2008-03-01 /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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