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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지상주의 안 된다
최기종 2008/02/10 22:05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 인수위가 발표한 ‘영어 공교육 완성프로젝트’ 때문에 온 나라가 시끄럽다. 학교 영어교육과 관련해 교원과 교육과정, 교육환경을 바꿔서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능수능란하게 영어 회화를 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물론 영어 구사 능력을 최대한 키워 주는 방향으로 정책적 대안를 세우는 것은 가능하다고 본다.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10년 동안이나 영어를 배웠어도 영어 회화가 서툴다는 판단이라면 당연히 영어 공교육의 틀을 바꿔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학교 교육과정이라는 틀 속에서 논의 되어야 할 것이지 전 국민을 영어 신드롬에 빠지게 하는 거대 담론으로 몰아 가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차기 정권에서 교육정책으로 영어 회화를 중시한다는데 거기에 토를 달 국민은 없다. 그런데 영어 몰입교육이니 영어능력 시험이니 영어 전용 교사니 국가경쟁력이니 세계화 시대니 하면서 영어를 국정 최대 과제로 내세우면서 전 국민으로 하여금 올인하게 하는 인수위의 영어 공교육 방향은 옳지 않다.

인수위는 이런 영어 공교육 강화 정책이 학부모들의 사교육비를 줄이고 기러기 아빠를 퇴출시키는 획기인 방안이라고 한다. 그러나 필자가 볼 때는 인수위의 방향대로 끌고 간다면 사교육비나 기러기 아빠는 더욱 늘어날 수 밖에 없다고 본다. 현재 우리나라 교육의 가장 큰 문제는 대학 입시다. 학부모들이 물의를 하면서까지 사교육비를 부담하는 것은 자기 자식을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해서지 영어 교육을 잘 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어 교육을 강화하면 할수록 학부모들은 더 많은 사교육비를 지출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자기 자식을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해서는 줄서기 경쟁에서 승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항생제의 내성이 쌓이는 것처럼 학부모들은 유아 때부터 영어 학원이나 과외, 어학연수 등의 사교육을 더 많이 시킬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인수위의 영어 공교육 정책의 문제점을 짚어보면 첫째, 학교 교육의 질이 저하될 모순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인수위에서는 영어 공교육을 강화하는 데 교육의 질이 나빠질 수 있느냐고 반론을 제기하겠지만 영어 올인 교육은 다른 과목의 학습에 영향을 줄 수 밖에 없다. 영어 수업시수를 늘리고 방과후 교육도 영어를 중심으로 배치한다면 상대적으로 그만큼 다른 과목이 소외될 것이다. 그리고 영어라는 도구 교과의 암기학습에만 매달리다 보면 종합적인 사고력이나 창의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나아가 철학적 깊이를 지닐 수 없게 되고 문학적 예술적 소양도 기르기가 어려워질 것이다.

둘째, 영어권 나라에 대한 무비판적 동경에 빠져서 국가 정체성이 훼손될 우려가 제기된다. 영어만 잘 하면 최고가 될 수 있다는 관념은 국어에 대한 무관심을 초래할 것이다. 어른이고 아이고 할 것 없이 영어만 중시하는 또 다른 사대주의에 빠지고 말 것이다. 사물에 대한 인식이나 가치관 정립은 어렸을 때 길러지는 것이다. 그런데 사고의 틀이 형성되는 전 단계에서부터 영어에 몰입하게 되면 어린 아이들은 국가관의 혼선을 초래할 위험도 안고 있는 것이다.

셋째로 갈수록 다변화, 다극화 되는 국제화 시대에도 역행하는 처사이다. 아직까지는 외교나 무역의 중심이 영미권이지만 중국이나 러시아 등의 브릭스나 제3 세계가 부상하고 있는 빅뱅의 시대다. 그리고 일본을 비롯한 프랑스, 독일 등의 기존 중심국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는 불확실성의 시대다. 이런 다변화, 다극화의 시대에 영어에만 몰입하는 것은 국제적 고립을 자초할 수도 있는 것이다. 유엔에서도 지구촌 다국어를 최대한 존중하고 있는 현실이다. 통역의 발달로 국제적 의사소통도 불편이 사라지고 있는 시대다. 첨단 전자문명의 발달로 동시 통역기가 활용되고 있으며 가까운 시일내에 언어나 문자 해독이 가능한 컴퓨터도 등장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영어 지상주의는 5년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근시안적 정책인 것이다.

네째로 실용주의를 내세우는 차기 이명박 정부에도 타당하지 않은 것이다. 인수위에서는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능수능란하게 영어를 구사할 수 있게 한다고 한다. 전 국민의 영어 회화 능력을 길러서 국가 경쟁력을 기른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모든 국민에게 영어 스트레스만 쌓이게 할 것이다. 국민 모두 영어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일반 국민들은 영어없이도 살아가는 데 아무 지장이 없다. 그저 상식적인 수준에서 외국어 구사능력만 갖추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세밀하게 외국어가 필요한 사람들은 대학에서 전공을 택한다든지 개인적으로 학습활동을 깊이 하면 되는 것이다. 영어는 해방후 60년 동안 최우선 과목으로 그 지위를 유지해 왔다. 그런데도 수업 시수를 더 늘이고 전용교사를 뽑는 등 막대한 예산을 쏟아붓는 것은 국민 혈세의 낭비요, 국가적 퇴보일 뿐이다.

인수위의 '오렌지' 해프닝이나 '굿모닝' 인사 행태를 보면서 국가 백년대계가 참으로 걱정이 된다. 또 다른 사대에 빠져서 시퍼렇게 살아 있는 나라말을 볼모로 삼는 것은 아닌지 심히 우려스럽다. 이런 영어 공용화 교육 비판에 대하여 인수위나 당선자는 반대를 위한 반대라고 토를 단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데 쭉정이만 무성한 것 같다.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는 나라말을 국제화시키지는 못할 망정 가비얍게 훼손시켜서는 안 된다. 모든 국민들이 영어를 잘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것은 국가적 낭비일 뿐이다. 그것은 국민들의 행복을 무너뜨리는 행위이다. 인수위는 지금이라도 국민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현실적이고 실현 가능한 방향에서 영어 공용화 교육을 재 논의해야 한다.

독자 의견 목록
1 . 자기나라 말을 묻어두고.. 들국화 2008-02-10 / 22:06
2 . 인수위 니들부터 영어로 회의해보셔 아침이슬 2008-02-11 / 08:49
3 . 철학부재의 소치 웅지 2008-02-12 /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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