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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을 고착화 시키는 영어교육
아찌 2007/11/12 11:50    

조기 영어교육의 열풍이 온 사회를 휩쓸고 지나가더니 이제는 교육부까지 나서서 공교육체계로 끌어들여 정착시키려 하고 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시작하던 영어교육을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앞당겨 실시하겠다는 안인데, 설상가상으로 교육부는 이를 당연한 것처럼 기정사실화해 가고 있다.

이렇게 되자 초등학생들에게도 영어는 가장 중요한 과목으로 인식될 가능성이 더욱 커졌고 그간의 사교육 시장을 능가하고도 남는 또 하나의 매머드 급 사교육 시장이 새롭게 형성되어 가는 중에 있다. 영어로 인한 사교육 시장은 연령대가 대폭 낮아진 가운데 모든 사람들을 평생을 영어에 매달려야 하는 처지로 몰아가고 있는 것이다.

초등학교에서의 영어 과목 신설은 그나마 농촌에 남아 고향을 지키려던 2세대 농부들을 주저 없이 떠나게 만들었다. 영어 교육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갈수록 농촌을 떠나려는 사람들은 늘어날 것이 뻔하다. 농촌에 남아있는 한은 자녀교육 중에서도 특히 영어에서 나타나는 불을 보듯 뻔한 격차를 영영 메울 수 없다는 체념을 갖게 한다.

결국 국가가 앞장서서 농촌의 황폐화를 부채질하는 꼴이 되어 버렸지만 농촌의 중요성을 무시하는 정부는 이런 문제를 보지 못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어려운 경제 현실을 무릅쓰고 뜻이 있어 농촌에 남으려는 사람들도 영어가 주는 압박으로 농촌을 떠나고 있는 것이다.

외국어에 약한 우리나라 사람들이 영어를 제대로 배우려면 입시 위주의 학교 교육만으로는 해결이 어렵고 부족한 것이 많게 마련이다. 이런 실정에서 원어민 급의 회화 능력을 요구하는 것은 요구하는 것 자체가 무리다. 그래서 사교육에 더 치중하게 되고 이것도 부족해서 어학연수니 조기유학이 필수 코스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자기 자식이 잘 되는 것만 생각하고 사교육비를 아낌없이 쓰는 돈 많은 부유층들의 행태 때문에 이 나라의 교육은 돈이 모든 걸 결정하는 제로섬 게임이 돼버렸다. 입시 학원에 보내는 것까지는 무리가 되더라도 할 수 있는 한 부유층이 하는 대로 흉내라도 내면서 따라 갈 수 있었다.

그러나 영어는 아무리 넘으려 해도 돈의 한계로 넘을 수 없는 명확한 경계를 만들고 아무리 몸부림쳐 보지만 처절한 싸움의 영원한 승자와 패자는 결국 돈의 유무로 결정지어진다. 돈이 뒤받침 되지 않는 사람이 부유층이 하는 만큼 따라가려면 자신의 전 인생을 영어에 저당 잡혀야 한다.

내 주위의 한 여성은 지방대 출신이기에 제약이 많다며 졸업 후에도 당당하게 자신의 실력을 인정받겠다는 각오로 자신의 전공인 영어 실력을 쌓는데 전력을 다하고 있다. 몇 년 동안 열심히 일해서 모은 돈으로 대학원을 수료하고 또 몇 년을 모아서는 1년간의 해외 연수를 다녀왔다. 결혼도 뒤로 미룬 채 30을 훨씬 넘긴 나이임에도 영어 공부에만 매달려 씨름하고 있는 것이다. 영어를 전공한 전공자마저도 이렇게 어려움을 겪는데 전공자가 아닌 사람들은 오죽하겠는가!

우리 사회는 갈수록 고비용 사회로 나아가고 있다. 그 결과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이 느끼는 박탈감이 커져간다는 것도 문제지만 이 때문에 교육을 통한 공평한 기회마저 주어지지 않는 방향으로 간다는 것은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사회의 모든 사람들에게 영어를 강요해서는 안 된다. 세계화가 대세라 하더라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영어와 무관한 일을 하며 영어와 무관하게 살아간다. 모든 국민이 영어를 다 할 수 있어야 국제 경쟁력이 높아지는 것도 아닐 것이다.

정말로 영어를 잘 하는 인력을 양성하겠다면 외국어 고등학교를 설립 취지에 맞추어 잘 운영하면 될 것이고, 대학에 가서 영어를 배우겠다는 사람은 대학에 갈 때 전공으로 선택해 배우게 하면 되는 게 아닐까?

대기업에서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외국어에 약점이 있고 영어와 업무 추진 능력과는 상관관계가 크지 않으므로 꼭 영어가 필요한 부서 이외에는 영어의 비중을 높여 채용하는 관행을 재고해야 한다.

영어는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신분의 세습과 고착화에 기여하는 가장 강력한 주범으로 작용하고 있다. 왜 모든 국민들을 사교육 시장을 방황하며 결과가 너무도 뻔한 불합리한 경쟁의 희생자로 만들어 가는지 이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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