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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 존엄? 개가 풀 뜯는 소리
대책 없이 잘도 짖어대는 종자들
율전 2006/06/16 15:00    

온 나라에 월드컵 열기가 뜨겁다. 주류 언론은 연일 축구라는 아궁이에 월드컵이라는 솥을 걸어놓고 애국심을 끓이느라 바쁘다. 그 열기가 너무도 강렬해 월드컵외의 것들은 몽땅 타서 재가 돼버린 것일까?

지난 5월 29일 이후, 서울 마포대교에서는 월드컵이라는 전 지구적 축제를 ‘기꺼이’ 즐기지 못하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연일 시위를 벌이고 있다. 서울 뿐 아니다. 인천에서도, 청주에서도, 춘천에서도, 대구에서도, 광주에서도, 멀리 목포에서도 이들은 시위는 계속되고 있다. 대구에서 시위도중 연행된 한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월드컵에 대한 관심의 10분의 1 정도만이라도 저희에게 기울여 주십시오.”

이들 가운데 몇 사람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벌써 세 사람 째다. 오뉴월 땡볕보다 더 뜨거운 분노를 표출하고 있는 이들은 이른바 ‘시각장애인’이라 불리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이렇게 목숨을 건 시위를 벌이는 이유는 지난 5월 25일에 있었던 헌법재판소의 판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는 이날, 자신들이 2003년에 내렸던 “시각장애인이 아닌 자에 대해 안마사 자격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정부 정책에 대한 시각장애인의 신뢰를 보호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위헌이라고 볼 수 없다.”는 판결을 스스로 뒤엎고 “특수학교나 중고등학교에 준하는 교육기관에서 안마에 관한 교육과정을 마친 시각장애인이나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정한 안마수련 기관에서 2년 이상 교육을 마친 시각장애인에 한해 안마사 자격증을 준다.”고 규정한 ‘안마사에 관한 규칙’ 제3조가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말하자면 이전에는 시각장애인에 한해 주던 안마사 자격을 이제는 일정한 과정을 이수한 누구에게나 줘야한다는 것이다.

△ 대한안마사협회 소속 맹인들이 비 속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우리힘닷컴

기계적 평등을 소중한 가치로 여길법한 고매한 어르신들에게는 이번 판결이 대단히 그럴듯한 것으로 보일지 모르겠으나 시각장애인들에게는 애초에 기계적 평등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망각한 헌재의 이번 판결은 대단히 잘못된 것이다. 시각장애인들의 대부분이 안마로 생계를 연명하고 있는 상황에서 ‘앞을 볼 수 없는 사람들’에게 ‘앞을 볼 수 있는 사람들’과 똑 같이 경쟁하라는 것은 이들더러 손 놓고 죽으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특히 빈곤층에 대한 사회적 보장이 바닥을 기는 우리나라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것은 우리 농민들에게 “농산물 시장을 전면 개방해서 미국 농민들과 경쟁하라”는 신자유주의자들의 논리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맞아 떨어진다. 그나마 농민들에게는 각종 당근이라도 제공하겠노라고 허언을 일삼고 있지만 이들에게는 그런 것도 없다. 그저 “헌재의 판결을 존중하며 법의 틀 안에서 대책을 마련 중”이라는 원론적 답변만 되풀이 할 뿐이다. 닥치고 잠잠히 있으면 알아서 해 주겠다는 것인데, 언제까지 어떤 대책을 내 놓겠다는 구체적 안은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이들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고 있는 곳은 한나라당이다. 한나라당은 지난 9일 주요 당직자 회의에서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존중하지만 시각장애인들의 생업을 위해 이르면 이달 임시국회에서 대체입법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진보와 개혁을 표방하는 정부가 ‘나 몰라라’하는 사이 사회적 약자에 대한 제도적 보장이 보수정당의 손에 맡겨진 꼴이라니. 요란한 수사로 허언을 일삼는 정부의 보잘것없는 맨 살이 또 한 번 드러나는 순간이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제도적 보장의 붕괴와 이를 시행해야 할 정부의 무능이 겹치면서 야기된 이번 일에 진보연하는 이들은 당연히 관심을 가져야 한다. 꼭 진보연하는 이들이 아니더라도 신자유주의라는 망령의 지배아래 언제라도 사회적 약자로 전락할 수 있는 입장에 있는 ‘우리’ 역시 이번 시각장애인들의 몸부림을 관심 있게 지켜보아야 한다. 경쟁에서 밀리면 바닥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 속에서, 이들의 몸부림은 곧 우리 자신의 몸부림에 다름 아니다. 월드컵 열풍 속에서 “대~한 민국”을 외치기 위해 거리로 나서는 ‘우리’와, 생계보전 수단을 잃게 된 데 대한 분노 속에서 거리로 나서는 ‘그들’이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일이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옛 말이 있다. 그러나 평생을 차별과 소외라는 고통 속에서 살아왔을 이들의 아픔은 가늠조차 힘들다. 그런 사람들을 법의 무게로 짓누르려고만 하는 국가기관의 종사자들은 법의 존엄을 입에 올리기 전에 인간의 존엄에 대해서부터 배우고 익힐 일이다. 인간의 존엄을 깔아뭉개는 법에게 존엄이라는 명칭이 가당키나 한 일인가.

독자 의견 목록
1 . 못 보는 것이 가장 큰 설움이다 e두래미 2006-06-16 / 21:01
2 . 타도 헌제 영선 2006-06-17 /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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