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19년 7월 26일 금요일
손님 즐거운 하루 되세요



[동영상] 목포 쭈꾸미낚시


 졸음운전, 음주운전보다 더 위험..
 여름철 물놀이 안전수칙
 여름철 건강관리 요령
 완강기 사용법
 비상구 등 피난.방화시설 관리방..
 기획공연 연극『난영』 공연
 일본역사테마기행
 삼학도 문화제전 사진모음
 해남군립예술단 성인합창단 신규..
 2007 삼학도문화제전 행사진행표
 법과 규제가 사람을 죽이[evil]..
 도둑은 수천이라도 잡아야 하며 ..
 함평군립 미술관 건립 추진을 충..
 "왜"함평군은 군민의 눈,귀,입를..
 [동참] 부패한 종교, 시민의 힘..
 실손처리하세요
 오늘의 날씨
 제네시스
 제네시스
 아파트 쇼핑
독자칼럼


오/일/팔 - 셋째 외삼촌을 그리며..
율전 2004/10/11 17:53    

오늘이 10월 11일, 이 시점에서 왠 오일팔이냐고 생뚱거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가 시간과 공간을 따로 정해 기억해야 할 것은 아니기에, 마침 '영화로 보는 세상' 코너에 정기적으로 글을 올리는 김영주님께서 쓴 '블러디 선데이'에 관한 글을 읽은 마당에, 이전에 다른 곳에 썼던 글을 이 곳에 올린다.

나에게 오일팔은 셋째 외삼촌에 대한 기억으로부터 다가 온다. 다만, 오늘에 이르러 잊고 사는게 너무 많다. 잊지 말아야 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


누군가 저에게 "세상에서 누굴 가장 존경하느냐?"고 물을 때, 이런 대답을 할 때가 있었습니다. "셋째 외삼촌이요"

저는 셋째 외삼촌을 통해 DJ를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아직 어렸을 때(아마 DJ가 박정희에 의해 가택연금을 당하고 있던 시절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삼촌은 가끔 카셋트 테잎을 가지고 와서 볼륨을 최대한 낮춘 다음 저의 아버지께 들려주곤 하셨는데,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바로 DJ였습니다.

아버지는 삼촌에게서 받은 테잎을 장롱 깊이 숨겨두고 가끔씩 꺼내 듣곤 하셨지요. 물론 볼륨을 최대한 낮춰놓고 말입니다. "아부지, 그 사람이 누구다요?" 하고 물으면 대답대신 아버지는 입에 손가락을 대시며 "쉬이~"하셨습니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DJ라는 사실은 나중에 그러니까 박통이 김재규의 총탄에 죽고 난 다음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그 때부터 아버지의 녹음기 볼륨이 커지기 시작했고 혼자 듣기보다는 여러 사람을 모아놓고 함께 듣곤 했는데 테잎이 끝나갈 무렵이면 다들 하시는 말씀이 "김대중이 인물은 인물이여~" 했으니까요.

80년 5월 5일 어린이날이 있던 그 주 일요일에 저는 아버지를 따라 광주댐에 낚시를 갔습니다. 아버지는 그 곳까지 녹음기와 테잎을 가지고 가서 모든 사람들에게 들어보라는 듯 DJ의 연설을 크게 틀어놓고 낚시에 열중하셨습니다. 지나가던 아저씨가 "아따 그 사람이 누군디 그렇게 연설을 잘 한다요?"하면 아버지는 "누구는 누구다요, 김대중 선생아니요" 그랬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월요일 아침, 학교에 가던 저는 깜짝 놀랬습니다. 밤사이 전쟁이 난 줄 알았습니다. 제가 다니던 학교가 조선대학교 부속중학교였는데 조선대학교 운동장에 온통 군용트럭이며 군용텐트가 쳐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수 미터를 간격으로 군인들이 늘어 서 있었습니다.

무섭다기 보다는 호기심이 일더군요. 그래서 요모조모로 둘러보고 교실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교실의 반쯤이 텅 비어있더군요. 9시가 지나도 담임선생님께서는 아침조회를 하러 오시지도 않고. 그러나 철없던 우리들은 시끌시끌 바글바글 떠들고, 장난치고, 놀았습니다.

10시쯤 되자 담임선생님께서 헐레벌떡 교실로 들어오시더군요. 첫 마디가 그랬습니다. "아야, 미친놈들아. 느그 부모들이 학교에 가라고 그러디야?" 그러더니 "내 말 잘 들어라 잉~ 지금 학교 파해줄텡께 얼릉 집으로 가고 집에 갈 때 절대 셋 이상 붙어 가지말고 군인들이 뭐라 그래도 그냥 모른채끼 가고....알았지 잉~" "..........?" "알았냐고, 새끼들아!" "네에~"

그리고 바로 종례를 했습니다. 선생님께서 교사 입구까지 따라 나오셔서 신신당부를 했습니다. "붙어 가지 마"라고, "군인들이 뭐라 그래도 모른채끼 그냥 가"라고. 돌아오는 길의 조선대학교 운동장엔 역시나 군용트럭들과 군용텐트들이 꽉 차 있었고 군인들은 수 미터를 간격으로 서 있었습니다. 막 떠 오른 아침햇살을 받아 에무십육 총 끝에 걸린 대검의 날이 말 할 수없이 퍼렇게 보였습니다. '칼날이 시퍼렇다'는 의미를 그 때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 날 이후 온갖 흉흉한 소문들이 사람들의 입을 타고 날아다녔습니다. 그런 소문을 들을 때마다 어머니는 늘 셋째 외삼촌 걱정을 하셨습니다. "뭔 일이 없어야 될텐디...."

셋째 외삼촌은 지병을 앓고 계셨습니다. '천식'이라는. 그것도 아주 중증이었지요. 한 번 발작을 일으키면 며칠간 꼬무락딸싹도 못하고 그저 숨을 쉬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는 그런 모습을 그 전에도 저는 몇 번 본적이 있었습니다. 그럴 때면 "저러다 죽는 거 아니여?"하는 생각을 하곤 했었습니다.

처음에는 어머니께서 외삼촌의 천식을 걱정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어머니께 누군가가 전해 온 이야기는 외삼촌이 쫒기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외삼촌은 목포대에서 소위 학생운동을 하고 있었는데 그만 계엄군의 검거대상이 되고 말았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어머니께서는 거의 식음을 전폐하고 외삼촌 걱정만 하셨습니다.

그런데, 광주 문화방송국과 세무서가 불타던 밤, 거짓말처럼 외삼촌이 나타나셨습니다. 보랏빛 남방에 베이지색 바지를 입고 숨을 쌕쌕거리면서 대문을 들어 오셨습니다. 어머니는 못내 우셨고 아버지는 "인자 살았는갑다"만 연발하셨습니다. 저도 덩달아 울었습니다.

그 며칠 사이 천식이 발작한 외삼촌은 숨을 할딱할딱 거리며 아는 사람 집에서 숨어 지내다가 광주에서 들려오는 소문에 도저히 그대로 있기 힘들었다더군요. 뭐가 어떻게 되어 돌아가는지 궁금해서 미칠 것 같았답니다. 마침 손이 닿는 편이 있어 그 편으로 광주로 들어 왔다고 숨을 쌕쌕거리며 외삼촌은 말을 이었습니다.

그리고 며칠동안 집에서 시내를 왔다갔다했는데, 광주시를 빠져나간 계엄군이 언제 다시 밀고 들어올지 모른다는 말들이 나돌 즈음 아버지는 외삼촌을 불러 놓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그 있다가는 뭔 꼴을 당할지 모릉께 군인들 다시 들어오기 전에 너도 피해야 안 쓰것냐" 어머니도 그랬지요. "기X아, 너부터 살아야 안 되것냐?"

그리고 외삼촌은 어머니가 싸 준 주먹밥 몇 덩이와 돈 몇 푼 그리고 옷 한 벌을 쥐고 집을 나섰더랬습니다.

계엄군이 다시 들어오고 광주는 평온을 되찾는 듯 하였지요.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저는 외삼촌 소식을 눈이 빠지게 기다렸습니다. 하루 이틀, 십일, 보름이 지나도 기다리는 기별은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이내 포기하셨습니다. 그리고는 후회하셨지요. "차라리 보내지 말 걸 그랬는갑다. 뭔 일이 있어도 내 옆에서 있는 것이 나을 걸 그랬는갑다" 하셨습니다.

그렇게 외삼촌의 생사를 몰라 애타한지 한달 보름만에 기별이 왔습니다. "누님, 걱정하지 마씨요, 숨어서 잘 지내고 있당께라~" 기별을 전하러 온 사람을 붙들고 어머니는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염병할 놈이 기별을 보낼라면 빨리 보내제, 사람 애간장을 다 녹게 만들었다"시면서.

나중에 들어 본 즉 숨쉬기도 힘든 마당에 걸어서 재를 아홉 개나 넘었다고 하더군요. 마침내 화순 읍내에 도착해서 무작정 아무 집으로 들어갔답니다. 그리고 그랬다더군요. "나, 광주에서 넘어왔소, 숨게 주씨요" 마침, 그 집이 같은 宋씨 성을 가진 집이었답니다. 그 집 벽장에서 숨어서 많은 날을 똥, 오줌 받아내며 그 날 동안 지냈다더군요.

그렇게 살아 난 외삼촌은 그러나 사는 내내 마음의 빚을 지고 살아야 했습니다. 광주에 남아 함께 죽지 못했던 것에 대해 내내 죄스러워 했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망월동으로 소주를 사들고 달려가곤 했습니다. 그리고는 얼큰하게 취한 상태에서 저를 만날라 치면 그랬습니다. "차라리 그 때 함께 죽을 걸 그랬다"고. "살아 남은 게 이렇게 짐이 될 줄 몰랐다"고.

그랬던 그 분은 어느 날 출근길에 천식 발작이 일어나 나이 마흔을 채 못 넘기고 저세상으로 갔습니다. 근무하고 있는 데 아버지께서 전화로 그러시더군요. "승X야, 느그 삼춘이 죽어부렀다. 죽어부렀써야"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자식새끼 둘과 이쁜 숙모님을 두고 저의 셋째 외삼촌은 그렇게 저세상으로 갔습니다. 살아 생전에 못 내 죄스러워하던 양반들을 하루라도 빨리 만나고 싶어 그렇게 서둘러 간 것일까요? 자신만 살아 남았다는 죄책감이 그렇게 힘들었을까요.

그렇게 제 어린 날의 영웅 셋째 외삼촌은 아까운 마흔의 나이에, 저와 말을 나누기엔 너무 먼 곳으로 떠나버렸습니다. 그 얼마 전의 "승X야, 후회 없는 삶을 살아라, 알았지야, 잉~?"하는 말을 남긴 채.

지금 그 분은 망월동 구 묘역과 신 묘역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곳에 잠들어 계십니다. 광주에 가면 외삼촌을 보기 위해서라도 망월동을 찾곤 합니다. 그리곤 한참 전에 외삼촌과 함께 그곳에 들렀을 때, 외삼촌이 오/일/팔 묘역에 잠들어 있는 분들 한 분 한 분에 대한 설명을 제게 해 주던 때를 추억합니다. 특히 박관현 열사의 묘 앞에서 그 분은 참 많이 울었습니다. 그 눈물이 무엇 때문인지는 끝내 말씀 해 주시지 않았습니다.

내일, 아니 오늘이 스물 네 해째 오/일/팔 이로군요. 외삼촌이 돌아 가신지도 벌써 7년이 다 되어 갑니다. 토요일이 어서 왔으면 합니다. 그 날이 외삼촌을 만나러 가는 날이거든요.




독자 의견 목록
1 . 율전님? 청명수 2004-10-11 / 23:12
2 . 오/일/팔 꼭 기억 송이 2004-10-11 / 23:35
3 . 아픔을 함께 와등 2004-10-12 / 23:57



의견글 쓰기
글은 인터넷에서 자신의 인격을 비추는 거울입니다
글쓴이 비밀번호
제 목
내 용



  [율전] 약 복용, 고혈압ㆍ당뇨병 관리의 시작입니다.[5] 2015. 12. 09
  [율전] 의약품 약국외 판매, 본질을 봐야 할 때[1] 2011. 07. 05
  [율전] ‘아바타’가 주는 선물, ‘판도라(?)’ 2010. 01. 22
  [율전] ‘땡전 뉘우스’ 혹은 ‘촛불’[3] 2009. 09. 27
  [율전] 아놔~ 올림픽! 2008. 08. 25
  [율전] 올림픽은 무엇으로 사는가?[4] 2008. 08. 08
  [율전] 박지원 전 실장의 출마 선언을 듣고[2] 2008. 03. 20
  [율전] 한미FTA의 본질은 밥그릇 싸움[9] 2007. 04. 01
  [율전] 법의 존엄? 개가 풀 뜯는 소리[2] 2006. 06. 16
  [율전] 결전의 날이 다가왔군요..[2] 2005. 04. 29
  [율전] 독일이 아니라 프랑스다..[2] 2005. 03. 20
  [율전] 2004년을 빛낸 인물, 조지 W 부시 2005. 01. 12
  [율전] 모든 자유주의자들께.. 2004. 12. 22
  [율전] 노무현 Vs 고이즈미, 동아시아의 미래를 논하라![1] 2004. 12. 16
  [율전] 북한의 핵 보유 그리고 장영달 의원의 발언.. 2004. 10. 17
  [율전] → 오/일/팔 - 셋째 외삼촌을 그리며..[3] 2004. 10. 11
  [율전] 미국의 꿍꿍이...[6] 2004. 09. 18
  [율전] 약 구입에 들어가는 돈을 줄이는 방법, 한가지[7] 2004. 09. 08
  [율전] 경계인의 사색 - 송두율과 강준만을 그리며..[3] 2004. 03. 17
  [율전] 당신은 대체 누구입니까?[2] 2004. 02. 29
  [율전] 김철홍, 부메랑이 된 '영구기관' 2004. 01. 12
  [율전] 사람을 안다는 것[2] 2004. 01. 01
  [율전] 과격시위(?)에 대한 단상[1] 2003. 11. 21
  [율전] 노 대통령은 맞짱을 뜰 때 아름다운 사람이다.[3] 2003. 10. 11
  [율전] 송두율 교수의 '말바꾸기'를 생각한다.[4] 2003. 10. 01

1 2
우리힘소개 | 개인정보보호정책 | 광고문의 | 기사제보 | 제휴문의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 거부
Copyright © 2003 인터넷신문우리힘닷컴주식회사 All rights reserved Tel : (061) 277-5210 / Fax : (061) 277-5290
신문 등록번호 : 전남 아 1 등록일 : 2005.08.11 발행인 : 김은정 / 편집인 : 오승우 34.204.193.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