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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인의 사색 - 송두율과 강준만을 그리며..
율전 2004/03/17 19:34    

나를 아는 한 사람이 어느 날 나에게 그랬다. "친노도 아닌 것이 반노도 아닌 것이 열린우리당도 아닌 것이 민주당도 아닌 것이 꼭 경계인 같다"고.

지금은 영어의 몸이 되신 송두율 교수님은 그의 저서 [경계인의 사색]에서 경계인을 일컬어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경계의 이쪽에도, 경계의 저쪽에도 속하지 못하고 경계선 위에 서 있는 탓에 경계인은 매우 불안정한 상태에 있다. 마치 좁은 수평대 위에 서 있는 체조선수처럼 말이다. (경계인이) 안정을 찾기 위해서는 넓은 수평대가 있어야 한다."

엊그제, 이후 당분간 글쓰기를 중단하겠다는 강준만 교수님의 글을 읽고 가슴이 몹시 아팠다. 그가 당분간 글쓰기를 중단하겠다는 이유는 '노무현 대통령님께'라고 제목을 단 글의 다음과 같은 대목에 잘 나타나 있다.

"바로 엊그제까지도 저를 존경한다던 분들이 제가 열린우리당을 비판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제게 돌을 던지는데 그들과 싸우는 게 너무 싫었기 때문입니다. 또 어떤 분들은 제가 대통령님에 대한 기대와 애정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저를 호되게 비난하더군요. 두 손들었습니다.

대통령님. 지금 문제가 매우 심각합니다. 대화 불능의 상태입니다. 도무지 저같은 중간파가 설 땅이 없습니다. 지난 대선에서 대통령님을 지지했던 사람들마저 양극으로 갈려 이 모양인데 대통령님을 지지하지 않았던 사람들은 어떠할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현재와 같이 지지자들이 양극으로 갈려 서로에게 증오와 원한을 내 품는 상황에서 스스로 '중간파'를 자처하는 강 교수님의 마음고생이 얼마나 심했을지 익히 짐작이 가는 것은, 나 역시 강 교수님처럼 스스로를 '중간파'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사실, 중간파는 고달프다. 정치가 아닌 다른 경우에도 마찬가지겠지만, 사람들의 관심이 크지 않는 사안일 경우에는 그러한 입지가 별 문제가 되지 않다가도 사안이 심각한 상황에 이르면 그 입지는 극히 좁아지기 때문이다.

흔히 중간파를 가리켜 '양비론자'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특정 소속에 적을 두지 않은 상황에서는 얼마든지 개별 사안의 잘잘못을 제대로 가려 지적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라는 정치구도 하에서 생활하는 개인의 올바른 역할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강 교수님의 말씀처럼, 친노ㆍ반노의 양극으로 나뉘어 서로에게 증오와 원한을 내 품는 현재의 정국구도가 몹시도 답답하다. 다수가 바랬던 이번 총선구도는 친노ㆍ반노구도가 아니라 개혁ㆍ반개혁의 구도였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의 총선구도는 말 그대로 친노ㆍ반노의 양극단에 정치인들뿐 아니라 지지자들마저 올-인해서 서로에게 극한의 상처주기를 자행하고 있다. 그 가운데 그나마 중간의 입장을 취하려 노력하던 사람들마저 하나 둘 양쪽으로 포섭되어 가거나 아니면 붓을 꺾고 있으니 총선이 어떻게 마무리되던 간에 '분열과 중간파의 입지선정 실패'로 말미암은 후유증은 극히 클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잠시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대선 때 한나라당을 지지했던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지금의 친노나 반노 그리고 비노(중간파)할 것 없이 바로 일 년 전만 하더라도 이들은 하나였다. 그랬던 게 불과 일 년여 전이다. 그리 오래되지도 않았다. 그 때의 그 수많은 사람들이 과연 오늘과 같은 양극의 상황을 바라고 하나의 깃발아래 모여들었던 것일까?

개인적으로 나는 호남지역에서 민주당이 그간 저질러왔던 많은 과오들에 대해 감싸고 싶은 마음이 추호도 없다. 또한 지난 대선에서 당시 민주당의 구주류 몇몇이 저질렀던 '절차적 민주주의에 대한 위배' 역시 전혀 용납해 주고 싶지 않다. 더불어 민주당이 분당의 아픔을 단지 '배신자를 단죄함'으로써만 치유 받고자 하는 것에 대해서도 옳은 방법이 아니라고 말해 왔다.

그러나 나는 또한 노 대통령이 권좌에 오른 후 그간 보여 준 여러 가지 잘못된 말이나 행위들에 대해서도 역시 전혀 용납해 주고 싶지 않다. 대상에 따라 달라지는 잣대 역시 이해하기 어렵다. 과정이야 어쨌든 결과만 좋으면 다 좋다는 식으로 정치를 파국으로 몰고 간 인식 또한 공감하기 어렵다.

무릇 정치란 상대가 있어야 한다. 민주주의란 사고의 다양함을 보장하는 정치체계다. 흑과 백만 존재하는 이분법이 판을 치는 사회에서 승자는 전리품을 싹쓸이하고 패자는 흔적 없이 사라지는 그런 사회는 민주주의 사회가 아니다.

자본주의 경제사회의 안정성이 폭 넓은 중산층에 기반 하듯 민주주의 정치사회의 안정 역시 폭 넓은 중간파가 있어야 이루어지는 법이다. 흑백의 논리만이 기승을 부리는 사회가 아닌 형형색색의 사고와 논리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경계인을, 중간파를 좁은 수평대로 밀어 넣지 못해 안달하는 사회는 민주주의 사회가 아닌 야만의 사회에 다름아니다.

송두율 교수님의 건강과 강준만 교수님의 건필을 빈다.




독자 의견 목록
1 . 대부분 동감, 부분적으로 다르다. 김영주 2004-03-18 / 11:50
2 . 하하하 버버다리 2004-03-27 / 07:54
3 . 오독이 아님을 확인하고 물러갑니다. 박종록 2004-04-15 /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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