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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칼럼


<청산이 부르거든>
다시 진도에서 쓰는 편지
박남인(시인) 2018/01/20 21:39    

벌써 9년 전의 일이었다. 인천에서 용산으로 갔었지. 학이 너는 그 용산역에서 근무를 하고 있었지. 건너편엔 며칠 전 불타버린 건물이 시커멓게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거대한 지옥의 입구를 연상시키는 1층 옆에 소복을 입은 여인들의 천막이 차가운 바람 앞에 흔들리고 있었지. 너와 함께 그곳을 들려 간단한 조문을 하고 어느 포장마차로 간 기억이 떠오른다.

기억들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우리들의 몸속에 저장되어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에겐 뒤틀린 욕망의 저편에서 진실이 오래 가려지기도 한다. 대한민국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일본 위안부 문제도 그렇다. 이면계약이 없다고 버젓이 주장하던 박근혜와 그 주축들은 아무런 사죄도 책임도지지 않는다. 개성공단 폐쇄와 금강산 여행 금지도 MB 정부와 박근혜 전 대통령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민족의 이름으로’ 단 한번도 밝힌 적이 없다. 적폐는 지금도 곳곳에 쌓여있다.

9년 전의 그날처럼 바람은 차고 팽목항은 썰물처럼 빠져나간 인파, 그 수많은 봉사자들의 눈빛들이 시린 바다 물결 속에 아직도 살아 흐른다. 세월호는 지난 해 꼭 3년 만에 인양되어 목포신항으로 옮겨갔다. 그리고 새해가 왔다. 그리고 사람들은 기억의 적폐와 은근히 손을 잡는다. 뭘 그리 기억에 매달리느냐고. 그러는 동안 국립해양안전관 시설과 팽목 서망항까지 4차선 계획도 현안과 약속으로부터 멀리 떠밀려 가고 있다.

진도사람들이 자처해 상주 노릇을 하며 3년상을 치르는 동안 진도의 사회 경제는 극도로 피폐되었다. 진도산 미역도 생선도 농작물까지 기피하는 동안 진도는 ‘신비의 바닷길’ 국제적인 축제도 취소하여야 했고 운림산방과 세방낙조를 찾는 여행객의 발길도 대폭 줄어들었다. 하루 벌어 하루를 연명하는 소상인들에겐 치명적인 세월이었다. 인양 당시 기름 유출로 인한 피해보상도 정부는 모르쇠로 평창으로만 달려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마지막으로 팽목항을 찾아가 마음 깊이 어떤 각오와 결심을 가졌을 것이다. 수많은 유력 정치인들이 수시로 드나들던 팽목항에 나부끼는 것은 낡은 노란 리본들 뿐이다. 마치 진도와 조도의 주민들이 그렇게 내팽개치며 안간 힘을 다해 매달려 있는 모습을 연상하게 된다.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오는 6월에는 전국동시 지방자치선거가 실시된다. 지방시대를 열자고, 지방분권을 외치지만 한반도 남쪽 끝자락의 진도는 팔리지 않는 대파처럼 시퍼런 상처만 보듬어 안고 무관심의 망망대해로 떠나려가고 있는 중이다. 대한민국 전국 지역 균형발전이라는 허울좋은 문구도 행정부처나 국회에서 계속 표류하는 동안 지역 주민들의 생활고는 더욱 깊어지고 있다.

참사를 참사로 덮어놓는 이 못된 관행과 망각의 강을 제대로 건너가기 위해서는 이 세찬 겨울 바람 앞에서 고통스럽지만 우리가 붙잡아 밝혀야 하는 기억의 진실을 찾아 가야 한다. 북한과의 소통과 화합도 좋고 겨울올림픽도 좋다.

그러나 봄을 기다리는 사람이라면 일어나 남쪽 바다로 찾아가기를 바란다. 세월호가 진도에 없다고 해서 그 처참한 기억들이 다 지워진 것은 아니다. 주먹밥과 짜장면과 온몸을 두른 모포 하나로 밤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던 가족들의 얼굴들이 그리 쉽게 잊혀질 리가 없다.
진도실내체육관에서 수많은 가족들 앞에서 수학여행 인솔교사처럼 들뜬 목소리로 허튼 약속을 남발하던 박근혜를 어찌 지울 수가 있는가.

바람을 따라 이 겨울 팽목항을 찾아가보라. 텅빈 숙소 콘테이너와 빈 주차장 앞 을씬거리는 낡은 추모관을 가슴에 다시 품어보라. 우리가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할 것인지 그 뜨거운 길을 기어코 찾아야 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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