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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칼럼


광복70년을 맞아 돌아보는 불교의 자주성
광복70년을 맞아 돌아보는 불교의 자주성
강행원 2015/08/16 10:49    

광복70년을 맞아 돌아보는 불교의 자주성
강행원(화가/동양미학)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성장하고, 종교는 박해를 받을수록 확장된다고 한다. 이 말의 본질은 강제하게 되는 권력주의의 최후 심판은 결국 성장과 확장을 피해 갈 수 없는 절대수용에 이르게 된다는 뜻이다. 권력의 칼끝은 무자비한 것이어서 거기에 맞서게 되는 민초들은 비겁하여 참을 때 까지는 참지만 한 번 터지면 걷잡을 수 없는 것이 군중심이다. 그래서 권력은 그 진압을 위해 많은 피를 흘리게 하고 박해(迫害)를 가하는 악 순환을 부르고서야 멈추는 수습의 뻔한 결과에 공감이 간다. 광복 70년을 맞아 불교가 걸어왔던 역사적인 길을 돌아보며 그간의 박해와 자주성을 확인코자한다.

1.
그러면 불교는 박해를 받아 본적이 있는 가를 먼저 상고해 본다. 우리민족과 함께해온 문화사적인 역사적 사실은 삼국시대를 전후한 불교의 유입은 대략 1700여년의 장구한 긴 세월동안 우리민족과 동일체의 삶이 되어왔다. 이러한 맥락에서 박해를 찾는 다면, 신라불교는 이차돈의 사(死)로 인해 절정의 꽃을 피우게 된다. 반면에 고려불교는 신돈의 타락으로 인한 그 빌미로 망국의 조짐이 시작되어 새로운 나라 조선이 건국된다. 그 조선에서 정도전(鄭道傳)의 정치 이념에 따른 유숭억불(崇儒抑佛)이라는 국시의 박해로부터 600여년을 배불주의 정책에 갇혀 산속에 은둔하게 되었지만 호국불교(護國佛敎)라는 말은 늘 함께 했다.
이는 나라가 누란(累卵)에 직면해 있을 때는 종교의 엄정한 계율을 넘어서는 민족혼이 우선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그 종교의 정신적인 지도자의 행보에 따라 호국이라는 자주의지의 어구가 붙게 된 것이다. 그것은 조선건국사상 임진왜란은 선조임금의 소인배적 권력유지욕이 함께한 7년 전쟁의 패해 속에서 ‘서산대사(西山大師)와 사명대사(四溟大師)가’ 이끈 승병이 참전한 역사적 사명이 가져온 실체인 까닭이기도하다. 그러한 조선의 끝자락 구한말(舊韓末)은 또 다시 강대국들의 흑막에 우리의 비운(悲運)은 다시 시작된다.

세계 1차 대전 이후 소련이 중국과 연대한 공산주의 힘을 억제하기 위한 미국의 책략에서 비롯된다. 이는 미국이 동아시아에 내린 교두보의 전략으로 일본에 한국을 묶어 소련방어에 힘을 실어주기로 한 음모라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문제는 일본으로 하여금 사실상 한국의 강점을 용인한 것이다. 이것이 20세기 초 미국이 동아시아 지역에 취했던 외교정책의 일환이다. 증거는 “1905년 미, 일간에 체결된 ‘카쓰라태프트’ 밀약으로 미국의 필리핀 지배와 일본의 조선 지배를 양국이 인정했다는 것이다.” <미국의 동아시아 개입의 역사적 원형, 김기정 저 인용>

이로 인해 우리가 겪게 된 최대의 비극은 35년간의 처참한 일본의 식민압제로부터 독립해방을 위해 싸워야 했다. 선열들의 그 고단한 역사는 아직도 잠들지 못하고 있다. 일제에 빌붙어 잘 살던 자들의 친일행각에 비춰진 그림자 역시 제대로 지우지 못한 두 얼굴이 오늘 우리의 자화상이다. 이점은 호국을 표방해 왔던 불교역시 자유로울 수가 없다. 하지만 강점되던 “1910년 민족불교의 관점에서 한용운, 김법린, 최범술, 백초월, 만당, 조선독립의 서, 법정사 항일투쟁 등은 곧 불교계의 독립운동을 뜻하는 것이었다.” <불교평론, 김광식 글 인용>

또한 이는 임제종 설립의 총본산 건설운동의 일환이기도 했다. 이 운동이 결사적인 조직이 되지 못했던 이유는 대처와 비구의 이합(離合)과 박해로 다져진 조선불교의 전통을 이어오지 못한데 있다. 여기에서 일어난 민족불교운동은 한편으로는 일제에 대한 저항의 역사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일제에 대한 협력의 역사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양면에서 활약했던 지도자들 중 33인의 독립선언에 깊숙이 참여했던 한용운(韓龍雲)스님과 백용성(白龍城)스님이 지닌 항일에 대한 호국사상은 조금도 변질은 없다. 그러함에도 불교 내부의 교단운영 방침은 크게 달랐다.

‘용운’은 일본식불교의 대처를 주장하여 한국불교를 세속화하려는데 있었으며, ‘용성’은 철저한 비구를 주장하여 계행중심의 청정승가를 주장했던 점이다. 이점에서 ‘용운’의 입장은 국교가 불교였던 일본의 입장을 따르는 일면이 있다. 이는 식민자와 피식민지의 종교가 서로 다를 경우와 같을 경우에 빚어지는 생각의 차이이기도 하다. 문제는 피식민지의 종교가 다를 경우는 당연한 저항과 새로운 담론의 구심점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우리의 경우는 식민자인 일본의 종교가 불교였다는 점이 반감을 줄이게 된 것이라고 여겨진다.

또한 그 연장선에서 조선불교는 억불숭유에서 해방을 맞는 승려들이 일본불교에 동화되었던 점도 없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용운’이 주장한 것처럼 대처를 하게 된 승려의 수가 비구의 수를 훨씬 능가했다. 반면에 ‘용성’의 입장은 승가를 위한 개혁운동으로 대처와 육식을 반대하는 선농(禪農)불교를 주창한다. 이러한 대는 일본불교의 영향으로 전통적인 조선불교의 면모가 퇴색되어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겨우 4 천명도 채 되지 못한 승단에서 3천여 명이 대처가 되고 고작 9백여 명이 비구로 남았다.

하지만 이 두 지도자는 이와 같이 각기 다른 입장에서 당시 승려들을 호국으로 이끈 정신적인 기둥이었다. 승려의 몸으로 열사나 의사는 내지 못했지만 사찰을 독립운동의 은밀한 은신처로 제공하는 등 해방을 기원하는 조석의 구국기도가 불교의 보이지 않는 독립운동이었던 것이다. 더욱이 일제의 치안들도 비교적 사찰(寺刹)검문은 느슨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일제강점이 조선불교의 승단에는 박해로부터의 해방을 맞는 일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나라를 빼앗긴 참담함이었다. 여기서 대처들에 대한 동화의 잔류를 전면 부정할 수는 없지만 결국 불교도들은 호국의 전통을 잊는 자주의식으로 무장할 수밖에 없었다.

2.
광복70년을 맞는 불교를 바라보는 대중은 항일선봉장을 문학사에 글을 남긴 만해 한용운만을 기억한다. 필자의 생각은 성찰이 더 요구되며, 문제는 미국과 일본은 우리에게 무엇인가에 대한 전체 승단의 자주성이 더 큰 관심사이다. 한국이 해방을 맞기까지의 비통한 점철을 밟는 동안 힘이 커진 일본의 야욕은 대동아전쟁(세계 제2차 대전인 태평양전쟁)을 일으켜 미국과 맞서보고자 했을 때 한국인은 그 전쟁의 처참한 총알받이 신세를 면치 못했다. 그러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던져진 미국의 원폭 투하로 한국은 해방을 맞는다. 미국은 우리에게 슬픔도 주고 기쁨도 준 셈이다.

그 기쁨은 우리에게 일제의 억압보다 진화된 자유이지만 또 다른 미국의 속국 행을 벗어날 수 없었다. 미국은 한국이 자생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라는 그들 핑계 속에서 다시 분단으로 이어지는 책략에 놀아나야 했다. 물론 여기엔 당시 소련이 북녘에 힘을 가하고 있었던 역사적 진실공방이 없진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1948년 5,10선거와 7월 17일 제헌을 착실히 준비한 남쪽의 이승만 정부가 8월 광복일에 먼저 출범한다. 그리고 북녘에는 9월에 김일성의 공산정부가 들어서므로 써 우리민족은 미, 소 양진영의 꼭두각시가 되어 지금까지 고착되어야 했다.

갈라진 조국은 누구의 책임인가? 이 한스러움이 외세 때문이고 우리자신들에게는 책임이 없단 말인가? 문제는 우리국민 스스로의 자주의지가 그들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했던 이데올로기의 탓이 큰 동력이기도 했다. 지금까지도 보수와 진보로 편이 갈린 진정한 가치이념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1950년 동족상잔이 가져온 비극으로 점철된 우리의 삶터, 70년이 되었어도 이산의 아픈 상처는 아물지 않고 있다. 폐허의 그 위에 아무리 부를 쌓아올렸어도 재생불가의 세계유산이기도 한 불교문화재들이 일제의 침탈과 더불어 송두리 채 사라져 버린 것은 불교만의 아픔이 아니다. 돌아보면 광복의 정통성을 세우는 일마저 그르친 이승만 정부의 엉뚱한 ‘불교정화유시’는 보이지 않는 또 다른 불교의 박해였다.

그것은 불교가 해방정국 이후 자신들의 두 얼굴에 대한 반성으로 왜색불교의 탈을 벗기 위한 내부수습 중에 정부는 해결책도 없는 ‘통치유시’로 방관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분쟁을 빨리 종식시키려는 것이 아니고 대처 비구의 내분을 오히려 치열한 싸움을 부추긴 것이다. 한 치도 양보할 수 없는 양진영의 치열한 분쟁은 엄밀히 따지면 교세를 탕진하는 16년간이나 되는 긴 세월이었다. 이와 같이 장기간동안 휘말렸던 분쟁의 틈새에서 개신교의 교세확장은 날개를 달고 번창해갔다. 당시 미국에서 보내온 선교미끼의 구호물자들은 불교인들에게도 부러움의 대상이었으니 말이다. 이승만 장로의 종교편향에 따른 기독교를 위한 은밀한 치적이 아닐 수 없다. 만신창이가 된 불교의 분쟁은 비로소 박정희의 군사정부가 들어서서야 대법원에서 비구의 손을 들어주어 종식된다.

불교는 이러한 박해를 받고도 “정화라는 목적에 매달려 광복 70년을 맞는 오늘에 이르도록 폭력의 세습은 사찰에 남아 불교를 그르쳐왔다. 다시 말하면 폭력을 사주한 종단의 허물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폭력배들이 정화의 대가성을 출가(出家)를 직업으로 선택하여 법의(法衣)를 두르고도 정작 자신의 심성은 정화되지 않고 있다. 게다가 이들은 법납(法臘)이 늘수록 자신들이 큰스님이 되어 속화된 오욕에 얽혀 이권 전면에 아수라 역을 맞고 있다. 해서 종권이 틈만 보이면 무지한 분규로 주검을 부른 타락은 참아 입에 담을 수조차 없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1980년 10월 27일 전국의 사찰이 일시에 전두환의 계엄군에 의해 유린된 사건이 있었다. 이를 불교는 법난(法難)이라고 규정하며 박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는 박해가 아니라 자업자득이다.

사회정화 차원에서 스님들과 신도들이 분규를 해결해달라는 진정서를 냈기 때문이다. 결국 법난을 비롯한 정화운동 등에 모든 명분의 분규는 그 뿌리 내면에 변하지 않는 문중이기주의에 의한 잿밥싸움으로 정의 된다. 이는 불교 대표종단의 역대 총무원장선거에서 드러난 치부만으로도 이러한 현상의 정의는 대변 되고도 남는다. 문제는 승가의 모든 일에 평화적인 추대의 부처님 법을 따르지 않고 이분법으로 갈라서야 하는 세간 법을 따르는데 있다. 승단의 종헌 종법이 부처님법의 중도를 우선할 수는 없다면 불법(佛法)은 영원히 불법(不法)일 수밖에 없는 모순을 등불로 삼는 격이다.

부끄럽기 짝이 없는 것은 나랏일도 다름 아니다. 광복 70년은 우리만의 다짐이 아니라 일본역시 종전 70년을 기념하며 다시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부상하고 있다. 최근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을 지지하고 있는 미국은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직시해야 한다. “미국은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체결과정에서 1~5차까지 독도를 한국에 반환하는 문서 목록에 포함시켰다가 최종 문건에서 이를 누락시켰다고 한다.” <위키백과 인용> 일본이 우리 실효지배의 독도를 놓고 떠드는 이유이다. 수 세기를 통해서 우리를 침략했던 일본인들, 최근 그들의 총리 ‘고희지미’의 불손한 야욕을 보더라도 마땅히 경계해야 함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러함에도 박대통령의 동생 근영 씨는 일본의 한 언론매체에 “한국이 일본에 사과를 요구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며, 야스쿠니 신사참배에 반대하는 것은 내정간섭이라”는 상식 밖의 망언을 쏟아냈다. 이는 역사를 뒤엎는 반역행위이다. 또한 집권당대표 김무성 의원도 미국방문 시 “김구 보다는 이승만을, 중국보다는 미국이라”는 상대 개념의 망발을 서슴지 않았다. 그는 스스로 이 나라 보수의 좌장이 되겠다고 했다. 진정한 보수가 지녀할 역사관을 알기나 하는지? 문제는 국익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국가의 자존심도 저버린 사대외교라는 점에서 정말 정상인의 사고인지 의심케 했다.

우리는 지금도 미, 일의 외교 계략에 놀아나고 있다. 미국은 곤란한 문제가 발생하면 자신의 대외정책의 합법성을 부여하거나 책임전가용으로 유엔을 이용해 왔다. 종교의 힘은 세계를 움직이는 역량이 있다. 불교는 광복70년을 문중을 넘어서지 못하고 종권에 매여 허송했다. 이제부터라도 문중을 넘어 세계로 미래로의 진정한 자주의지의 큰 힘을 발휘하기를 간절히 합장 기원한다.

2015년 8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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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특정 종교를 편파적으로 옹호하는 것은 노동자들에게는 분열입니다. 머슴둘레 2016-01-18 /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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