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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나무 당산이 있는 인의산 들머리 마을
일로읍 의산2리 산두 마을
백창석 2011/06/28 12:51    

산두마을 전경 - 밖에서 보면 썰렁해 보이나 안으로 들어서면 아늑한 느낌을 준다

   義山里는 일로읍 소재지에서 영산강 쪽으로 펼쳐진 평야지대에 우뚝 솟은 仁義山 (125미터) 주변에 모여 있는 마을이다. 일제강점기 때 조성된 영화농장으로 인하여 주변에 넓은 농지를 소유하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노촌면의 지역이었으나 1910년에 목포부에 편입되었다. 이후 1914년에는 덕치동 산후정 내동 구월동 죽산동 무용동의 각 일부를 합하여 무안군 일로면에 속하게 되었다. 어질고 의로운 사람이 사는 곳이라 하여 의산리라 이름 하였던 이곳은 품바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현재는 인의산 산두 돈도리 무룡동 내동 소지 등 6개 마을로 구성되어 있으며 소지 마을엔 품바 발상지 표지석이 있다.

매화정 - 예전에 매화나무가 많이 피어있어 꽃재 꽃쟁이라 불렀다.

   인의산 들머리에 해당되는 마을

   山頭는 의산2리에 속하는 마을로 인의산 들머리에 마을이 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원래의 이름은 山後였다. 인의산을 중심으로 해서 제일 먼저 형성된 마을이 의산1리인 인의산 마을이었다. 산두는 인의산 마을 뒤쪽에 있다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보이며 실지로 이 마을의 입향조도 마을유래지의 기록에 따르면 인의산 마을에서 이주한 청주한씨라 하였다. 또한 1789년의 자료인 호구총수와 1912년 그리고 1917년의 자료에도 山後로 나왔다.
   하지만 주민들이 ‘山後’라는 지명의 어감이 좋지 않다 하여 ‘뒤’가 아닌 ‘들머리’의 의미인 산두로 고쳐 부르게 된 것이다. 주민들은 어려서부터 산두라 불렀다 하나 공식적인 자료에 산두라 나온 것은 1987년부터이다.
   원래 소지 마을과 함께 의산2리에 속했으나 1987년 분리하여 소지는 의산6리가 되었다. 이 마을은 꽃쟁이 능선을 사이로 두수동과 산두로 이루어졌으며 꽃재 또는 꽃쟁이라고 부르는 능선을 중심으로 자리를 잡았다. 해지안 들을 건너 인의산이 자리 잡고 있으며 마을 앞에는 동산이 놓여 있다.
   이 마을의 입향조는 딱히 어느 성씨라고 말할 수 없다. 마을유래지에는 청주한씨가 처음 들어왔다고 하나 확인할 수 없었다. 이후 김해김씨가 들어왔다 하여 김해김씨 대동보를 통한 확인을 시도했으나 찾지 못했다. 해서 주민들의 말처럼 청주한씨 김해김씨 전주이씨 등이 함께 어울려 마을을 형성한 것으로 보인다.
   마을이 배 형국으로 밖에서는 느끼지 못하지만 안에 들어서면 아늑하고 따뜻한 기운을 느끼게 해준다. 이러한 기운 때문에 이 마을의 농산물이나 축산물이 주변 마을에 비해 훨씬 튼실하고 성장도 빠르다고 한다. 특히 주변 마을과 똑같이 소를 기르면 10개월 후에는 50킬로의 무게 차이가 난다고 했다.

매화정 앞의 수문석 - 간척지의 수문에 있었던 돌인데 주민이 옮겨와 의자용도로 쓰이고 있다.

   회화나무 당산이 있어

   풍수적인 이유로 예전에는 샘을 팔 수 없어 두수동에서 물을 갖다 먹었다. 이후 풍수적 지형에 대한 의식이 약해지면서 지하수 개발이 본격화 되어 일로에서 가장 물이 많은 지역이 되었다. 두수동은 뱃머리라 했고 두수머리라고 부르기도 했으며 이곳에는 널리 알려진 샘이 있었다.
   무안에는 4대 명당이 있다. 승달산의 호승예불, 몽탄 봉명리의 비봉귀소, 일로 인의산의 매화낙지, 청계 월선리의 운중수월 명당으로 이곳 인의산은 매화낙지의 혈처가 숨어 있다고 알려졌다. 인의산의 정상에는 매화꽃을 상징하는 돌들이 여기저기 있기도 하다. 예전에는 인의산 주변을 지사들이 많이 찾아다녔다고 하며 정상인 무재봉에서는 기우제를 지내기도 하였다. 일로 자체를 매화낙지 형국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이 산은 새 형국이어서 무덤에 비석이 없다고 한다. 지금도 주민들이 석물하는 것을 꺼려한다고 한다. 왜냐하면 ‘예전에 김씨들이 이 산에 무덤을 쓰고 석물을 했다가 연이어 좋지 않은 일이 발생하자 무덤의 비석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났다고 보고 석물을 치우자 그 이후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마을은 예전부터 꽃재 꽃쟁이라고 불렀다. 주민들 말로는 마을이 있는 능선 주변에 매화가 많이 피었었다고 한다. 해서 지명도 꽃쟁이라 하였으며 주민들의 쉼터인 정자도 매화정이라 이름을 붙였다.
   마을 앞에 회화나무 당산이 있다. 회화나무 당산은 우리 지역에서는 일로 청금성 마을과 이 마을에만 있다. 둘레가 2미터 80정도 되는데 주민들에겐 각별한 의미를 주고 있다. 추석 때는 이 나무에 그네를 매달아 놓고 누가 멀리까지 올라 가는가 내기를 하기도 했다. 원래는 세 아름드리가 넘는 팽나무와 소나무 들도 있었으나 지금은 회화나무 당산만 남아있다.
   지금도 정월 보름이면 이 나무 아래에서 당산제를 지내고 있다. 풍물을 치고 샘굿 거리굿 등을 지내며 마을의 안녕과 한해 농사의 풍년을 기원했다. 나무 옆에 동각이 있으며 동각 자리에서는 패총이 발견되기도 했다.
   회화나무는 우리 선조들이 최고의 吉祥木으로 손꼽아 온 나무다. 이 나무를 집안에 심으면 가문이 번창하고 큰 학자나 큰 인물이 날 뿐 아니라 잡귀신이 감히 범접을 못하고 좋은 기운이 모여든다고 하였다. 그런 까닭에 우리 선조들은 이 나무를 매우 귀하고 신성하게 여겨 함부로 아무 곳에나 심지 못하게 했다.
   일제강점기 때 마을에 기와공장이 있었으며 이웃인 무룡동 마을에는 일본인 신사 터가 있기도 하였다. 주민들은 교육열이 높았을 뿐 아니라 인의산 주변의 농장들이 대부분 산두 사람들 소유였던 때도 있었다.
   예전에는 마을 앞까지 물이 들어왔다. 마을에서는 뒤에 장지안(장짓등 안) 들과 앞에 해지안(바다와 육지가 만나는 선이란 의미)들의 농지가 있어 비교적 여유롭게 살았다. 특히 주변에서 장지안의 쌀은 밥맛이 좋기로 유명했다. 이후 1925년에 일본인에 의해서 마을 앞에 대규모 간척지가 조성되었다.
   마을에 매화정 두수정 수문정 등 세 개의 정자와 한 개의 동각이 있다. 마을 길이 마치 도시계획에 의해서 조성된 것처럼 대단히 넓고 편리하게 갖춰져 있다. 주부들이 근면하고 검소하여 마을 주변의 쓰레기를 모아 팔아서 마을기금으로 사용하기도 하고 경로잔치나 주민들의 복지에 기여하기도 한다. 해지안 들의 원둑에 있는 수문석은 매화정 앞에 놓여 있다.

회화나무 당산 - 우리 지역에서 청금성 마을과 함께 두 마을이 최촤나무를 당산으로 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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