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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칼럼


하마비가 있었던 마을
무안읍 성남6리 하마동 마을
백창석 2011/06/21 09:08    

하마동 마을 전경 - 공무원 주택과 승달타워가 중심이다.

   城南里는 무안읍소재지에 자리하고 있으며 조선시대 무안읍성의 남쪽에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본래 외읍면의 지역으로 1910년 목포부에 편입되었다. 1914년에는 월천리 학교리 성저리 만창리 충양리 후청리 대동리 일부를 합하여 무안읍에 편입되었다. 얼마 전까지는 시장통 남문밖 만창 큰골의 4개 마을로 이루어졌으나 현재는 인구 증가로 일신동 후청동 만창 대곡 산성 하마동 와동 서라동 등 8개 마을로 이루어졌다. 미륵사와 남악사 그리고 남산공원 입구의 碑群과 석장승 두기가 있다. 초당대학교와 백제고등학교 전화국 경찰서 산림조합 5일시장 등 각종 기관과 시장이 자리하고 있다.

하마거리 - 삼거리에 하마비가 서있었던 자리다.

   하마거리에서 비롯된 마을

   하마동은 1994년 성남3리 만창에서 분리된 마을로 하마비가 있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下馬碑는 그 앞을 지날 때에는 신분의 高下를 막론하고 누구나 타고 가던 말에서 내리라는 뜻을 새긴 석비이다. 이 하마비가 있었던 예전 옥천식당 삼거리가 하마거리였다. 주민들은 삼거리에 하마비가 있었는데 도로가 나고 주변이 개발되면서 없어졌다고 한다. 무안에는 향교가 있는 교촌리와 하마거리인 하마동 두 군데에 하마비가 있었다.
   하마동에 하마비가 선 이유는 두 가지로 살필 수 있다. 하나는 고을 원님이 있는 읍성에 들어가기 위해 내렸던 곳이다. 하지만 이 마을에서 읍성과의 거리는 상당히 된다. 특히 장승거리를 지나야 읍성이 나오는데 장승거리에서 떨어진 곳에 하마비를 세운다는 것이 조금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두번째는 서원과 향교를 보고 말을 내렸다는 곳이다. 무안읍에는 사액서원인 송림서원이 현재의 한국전력 무안지사 앞 마을인 서운동에 있었다. 사액서원은 임금이 이름을 지어서 새긴 편액을 내린 서원을 말하며 흔히 서적, 토지, 노비 등도 동시에 하사되었다. 서원은 향교와 더불어 유교이념에 입각한 지방교육을 담당해 왔던 교육기관이다. 향교가 국립 교육기관이었던 데에 비해 서원은 私學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해 왔다고 할 수 있다.
   이 서원은 조선조 말 사원철폐령에 의해서 없어진 뒤 지금까지 복원이 안 되고 있다. 향교는 교촌리 무안북중 뒤에 지금도 있다. 하마거리라 불려지는 이 삼거리에서 학문을 했던 두 기관이 잘 보여 文을 숭상했던 조선시대에 예절 차원에서 이곳에 하마비를 세우지 않았는가 여겨진다.
   장승거리는 현재 월두회집과 디지털 삼성전자 가게가 있는 자리에 석장승 4개, 목장승 2개 그리고 5-6개의 선정비가 길 가에 세워져 있어서 불려졌던 이름이다. 장승백이에 세워져 있던 두 쌍의 석장승(동방대장군, 서방대장군으로 음각되어 있음) 중 한 쌍은 무안군청 앞에 버려져 있다가 현재는 체육공원의 충혼탑 앞으로 옮겨 우리 지역에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영혼들을 지키고 있다.

예전에 국도 1호선이다

   한국전쟁 때 인민군 검문소가 있었다

   나머지 한 쌍에 대해서는 존재 여부에 대하여 의견이 엇갈린다. 마을 주민들의 이야기는 원래 석장승이 한 쌍밖에 없었다고 하나 1986년 목포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간한 ‘무안의 문화유적’이란 책에는 이곳에 있던 두 쌍의 석장승 중 한 쌍이 서울 정동에 있는 미국대사관저에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목장승은 대추나무와 괴목으로 만들었는데 대추나무 장승은 쪼개지고 훼손되어 없어졌지만 괴목의 장승은 남아 있다가 도로개설 때 땅에 묻히고 말았다.
   황량했던 이곳에 마을이 형성된 것은 무안군이 1969년 신안군과 分郡이 되면서 목포에 있었던 무안군청이 현재의 자리인 성동리에 들어서면서다. 정부에서는 그때 무안에 근무하는 공무원들의 주거 안정을 위해서 성남리에 주택을 짓게 되었다. 이른바 공무원주택인데 1970년도부터 이곳 하마동에 40호의 가옥을 짓게 되었다.
   그 당시에는 하마거리의 주택 두 가구를 제외하고는 주변이 전부 논과 밭 뿐이었다. 공무원 주택에 이어 1990년대에는 승달타워 아파트가 들어서고 이후 전화국이 들어서면서 점차 마을의 규모를 갖추게 되었다.
   이 마을의 입향조는 현풍곽씨 곽우석으로 주민들은 추정하고 있다. 현재는 외지에서 이주한 여러 성씨들이 함께 어울려 살고 있다. 하마동에는 승달타워 아파트 전화국 공무원주택 무안두부공장 등이 들어서 있다. 마을간 경계는 남산의 범바위에서 흘러내린 개천을 따라 만창과 분리되었다.
   하마거리는 국도 1호선이 지나갈 정도의 요지여서 한국전쟁 때 인민군 검문소가 있었던 곳이다. 뿐만 아니라 예전 산림조합과 현재 농수산물 검사소 사이에는 자주 인민재판이 열렸던 곳이 있다. 인민재판이 열리는 날에는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갔다. 주변에는 내무과장 사택이 지금도 남아 있다.
   마을 앞으로는 예전의 국도 1호선이 지나갔다. 승달타워 아파트가 들어선 자리에는 안양환씨가 운영한 사료공장이 있었으며 양조장도 있었다. 승달타워 아파트 뒤에는 군에서 운영했던 냉장고가 있는데 개인에게 불하된 뒤에도 그 부근은 개발이 되지 않아 지금까지도 페허처럼 남아있다.

하마동 마을 주민들 - 엄청 바쁜 시기인데도 마을의 역사 정리는 정확해야 한다며 참석해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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