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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칼럼


대밭 속에 큰 절이 있었던 마을
일로읍 지장1리 대절(죽사동) 마을
백창석 2011/05/17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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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나무 당산이 있는 특이한 이름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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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절 마을 모습이다. 마을이 대밭으로 둘러싸여 있다

  支壯里는 일로읍 소재지에서 청계면 방면으로 1㎞ 떨어진 곳에 있다. 일로 청계간 815번 지방도로가 지나고 있으며 몽탄면 봉명리와 접하고 있다. 본래는 무안군 이로면 지역으로서 지장골 또는 지장동이라 하였는데 1910년 목포부에 편입되었다. 1914년 서암동 삼호리 덕정 인곡리 연화촌 청금성 남창 일부를 합하여 지장리라 해서 다시 무안군에 편입되었다. 현재는 대절 송태(덕정) 청금성 등 3개의 마을로 이루어졌다. 덕정 마을 앞으로 남창천이 흐르고 있으며 조선시대 후기 시장과 군량미 저장 창고인 남창이 있었다. 또한 서해안고속도로 일로 나들목이 있다. 청금성 마을에는 회화나무 당산목과 고인돌이 4기가 있으며 대절 마을에는 중구할머니 전설과 전주최씨 제각인 죽천재 그리고 21기의 고인돌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죽림 속에 큰 절이 있어

  대절은 지장1리에 속하며 삼호 개양골(조양동) 대절 등 세 개의 마을로 이루어졌다. 매봉산을 주산으로 하고 있으며 마을 앞은 예전에 한양으로 올라가는 길목이었으나 지금은 서해안 고속도로와 고속전철이 지나고 있다.
  대절이란 마을 이름의 유래를 보면 마을 유래지에는 ‘죽림 속에 절이 있다 하여 죽사라 하였다가 후에 큰 스님이 도를 닦았다 하여 큰절이라는 뜻에서 대절이라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글자의 조합이나 의미의 전달에 있어서 大寺가 맞는 표기이나 마을 본래의 의미를 살리려면 竹寺洞이라 해야 옳다.
  문헌으로 이 마을과 관련된 지명의 변화를 보면 1789년의 호구총수에는 무안현 이로촌면 三古之里와 三湖里가 나온다. 1912년의 자료에는 무안군 이로면 三湖里, 1917년의 자료에는 무안군 일로면 삼호리가 나온다. 1987년에 가서야 비로소 현재의 마을 이름인 일로읍 지장리 대절이 나온다. 삼고지리는 주민들이 삼꼬지라고 부르는 지명이며 삼호와 함께 모두 대절에 속하는 마을로 임진왜란 무렵에 형성되었다. 대절은 200여 년 전에 또 다른 순흥안씨에 의해서 형성된 마을이다. 다른 자료에는 일로면 竹節里로 기록하기도 한다.
  마을 입향조로 알려진 순흥 안씨 안억국(자-방언, 호-충지)은 무안세적지에 ‘임란 때 수문장으로 이충무공과 함께 싸워 여러 차례 전공을 세우고 당포싸움에서 전사했는데 충무공이 눈물을 흘리며 그의 죽음을 아쉬워했다고 한다. 이때 그의 부인이 공의 시신을 거두어 무안군 일로면 망해동에 장사를 지냈으며 후손들의 전거지로는 일로면 지장리이다.’ 라고만 기록되어 있어 마을에 대한 정확한 판단이 어렵다.
  마을은 대밭으로 둘러싸여 있다. 주민들의 말에 따르면 ‘예전에는 마을 전체가 대밭에 묻혀 있었는데 청계면의 한 사람이 금부처를 찾는다고 대밭을 파헤쳐 지금처럼 군데군데에 집을 지을 수가 있었다’며 마을과 대밭을 분리해서 생각할 수가 없다고 했다. 마을 중앙에 있는 전주 최씨 묘의 비문에 “郡治地竹寺洞”이라는 표기가 있어 이 마을 이름이 죽사동이라고도 불려졌음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여지도서나 광여도 같은 문헌에 일로촌면에 ‘竹寺’라는 사찰이 있었다고 나온다.
  주민들도 죽림에 둘러싸인 큰 절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곳곳에서 기와조각이 발견되고 기와를 구웠던 가마터도 확인할 수가 있었다고 한다. 또한 마을 앞산에 절이 있었다는 미륵골이 있다. 뿐만 아니라 마을에서 북으로 1㎞ 쯤 떨어진 곳에 작은 중산골(‘중산골’이란 명칭은 예전에 불가에서 다비식을 할 때 사용했던 명칭이기도 하고 중이 살았던 곳을 지칭하기도 한다.)과 큰 중산골이라는 골짜기가 남아 있다.
  고속도로가 나기 전 마을에는 400마지기의 논을 경작할 정도로 넓은 농토를 가지고 있었으나 도로가 나면서 답답하고 좁은 느낌을 주고 있다. 특히 마을 뒤에는 성터로 여겨지는 담벽이 100여 미터에 걸쳐서 있으며 돌무더기들이 많이 있다. 21기의 지석묘가 성터 주변 비닐하우스, 주민의 집 마당, 들판 등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데 마을 앞 제일 큰 지석묘 앞에는 주민들 몰래 썼다는 담양 전씨의 묘가 자리하고 있었다. 또 마을의 한 청년이 그 지석묘 밑을 파보다 청동기로 된 수저를 발견하기도 했다.

△ 마당에 있는 고인돌이다. 이처럼 대절 마을의 고인돌은 담장이나 마당 대밭 등에 널려 있다

  중구할머니 전설

  마을 앞에는 ‘중구할머니’ 묘가 있다. 9월 9일에 제사를 모신다 해서 ‘중구할머니 묘’라 부르는데 마을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중구할머니 이야기는 이제 전설이 되어 주민들 사이에 회자되고 있다. 중구할머니가 언제 어떻게 살았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렇지만 음력으로 9월 9일 아침이 되면 어김없이 할머니 묘 앞에는 떡과 나물 등 제수가 차려져 있는 것이다.
  후손이 없었던 중구 할머니는 죽으면서 유언으로 자기 묘에 제사를 지내줄 것을 당부하였는데 그 대가로 마을에 집터로 네 군데를 남겨 놓았다고 한다. 해서 그 터에 사는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해년마다 제사를 모시는데 특이한 것은 점심 때 시제를 모시지 않고 아침에 모신다는 것이다. 아침에 제사 시작을 알리는 징을 치면 주민들이 나와서 제사를 지내고 끝난 후에는 음복을 하며 서로의 복과 마을의 안녕을 기원했다고 한다.
  마을 입구에는 한때 郡木으로 지정 받았던 커다란 소나무(마을에서는 정자할머니라 부름)가 있었는데 10여 년 전에 말라 죽어 주민들은 못내 아쉬워하고 있었다. 장정 세 사람이 둘러싸도 공간이 남을 만큼 컸던 소나무는 길이만도 20여 미터가 훨씬 넘는 큰 나무로 마을의 당산목이 되어 정월 보름에 당제를 모시기도 하였다. 마을유래지의 기록에는 당제를 모시지 않은 해에는 집안에 불개미가 많이 나타나 주민들이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고 한다.
  그 소나무는 주민들의 정신적인 지주가 되어 마을의 젊은이가 군대에 갈 때나 제대할 때에도 당목에 먼저 치성을 드리고 갔으며, 마을에서 궂은일이나 좋은 일이 있을 때면 제일 먼저 찾는 곳이 당목이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전염병이 주변 마을을 휩쓸고 지나가도 이 마을이 무사한 이유가 이 당목이 지켜주기 때문이라고 믿을 정도로 주민들의 절대적인 믿음을 가졌던 나무였다.
  또한 소나무 아래에는 무게가 180근이 넘는 들독이 있었는데 보기에는 가볍게 보여 주민들이 지나가는 행인들과 술내기를 하여 술을 뺏어 먹는 원인을 제공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현재 그 둘독은 마을 앞 도로를 확장하면서 경로당 앞에 묻어 버려 뜻있는 주민들이 다시 꺼내기를 바라고 있다.

  성안이라는 지명이 남아 있어

  한 가지 주목할 점은 마을 위쪽을 주민들이 ‘성안’이라고 부르기도 한다는 것이다. 실지로 마을 뒤 100여 미터에 걸쳐 돌로 성을 쌓은 흔적이 있기도 한데 역사적으로나 지리상으로 성이 있었다고는 보기 어려운 점이 많다. 하지만 옆 마을인 청금성의 지명에서 城이 들어가 있고 덕정 마을에 창고가 있었다는 것과(南倉) 남창천이 흐르고 있는 것을 볼 때, 또 전주 최씨 묘의 비문에 “郡治地竹寺洞”이라는 표기가 있어 군의 치소가 있었던 곳이 아니냐는 추측도 할 수 있어 앞으로 밝혀야 할 과제로 보인다.
  천주교 공소가 있었기도 했으며 마을 곳곳에 있는 대[竹]를 이용해 머리비나 바구니를 만들어 시장에 팔아 주민들이 넉넉한 살림을 유지하기도 했다. 또한 마을 주변에는 큰 소나무들이 많아 목포의 절이나 큰 집을 짓는데 이용되기도 했다. 주민들 간 서로 얼굴을 붉힌 적이 없으며 협조와 대화로 저마다의 꿈을 이루며 살고 있는 전형적인 산골 마을이다.
  그 외 2010년에 문을 연 납골당이 있으며 담터재 초당 변닭골 감랑골(감나무골, 시목동)이라는 지명이 전해온다.

△ 고인돌이 20여기가 발견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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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문화유적자원으로 보존해야..... 민들레홀씨 2011-05-21 /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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