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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백범의 도피 여정 자전거 순례 ③] 오산에서 김제까지
삼남행에 나선 청년 백범
이규봉 2010/08/07 21:42    

오산에서 약간의 노잣돈을 얻어 청년 백범은 강경에 있는 감옥 친구였던 공종열의 집을 찾아갔다. 이곳에서 며칠을 유숙하던 어느 날 밤 집안에 소동이 벌어진다. 수절 과부였던 그의 누이가 하인과 간통하여 해산을 하다가 죽었는데, 그 하인을 불러다 주리를 트는 것이었다. 공종열의 청으로 이 일에 관여하게 된 백범은 그 하인을 크게 꾸짖어 멀리 떠나게 하였다.

공종열의 소개장을 받아 그의 매부가 있는 한적하고 깊숙한 무주로 찾아 갔으나 오래 머물러 있는 것에 우울해져 무전여행을 나선다. 후일 다시 무주를 찾은 청년 백범 김창수는 이곳에서 김구(金龜)로 개명한다.

삼남(서울 남쪽에 있는 3개 지방.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를 말함)행에 나선 청년 백범은 남원에 가서 청나라에 함께 갔던 김형진을 찾아 갔다. 동네 사람들로부터 그가 동학에 가담했다가 집안이 몰락하여 식솔들을 데리고 도망가서 소식이 두절되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전주로 올라가 계속 김형진을 수소문한 끝에 우연히 외모가 닮은 그의 동생을 만나게 된다. 그가 살고 있는 금구로 가서 며칠 전에 그가 작고하였음을 알게 된다.

김형진은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 받은 독립운동가로 1895년 5월 김구와 의기투합하여 구국의 방안은 무력으로 일제를 격퇴하는 길 뿐임을 결의하였다. 그는 김구와 함께 1895년 중국 동삼성의 김이언 의병부대에 가담하여 강계성을 공격했으나 실패하고 전북 금구로 귀향하였다. 1898년 동학의 접주로 금구 일대에서 활동하다 체포되어 사망하였다.

백범은 아산 현충사 인근에 있는 동네로 들어가 충무공 이순신의 기념비를 우러러 구경하였고, 공주에서는 승려 영규대사의 비를 보고 많은 느낌을 받았다. 금산에서는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이었던 중봉 조헌의 칠백의총을 보았다.


빙수에 튀밥을 함께 주다


오산에서 1번 국도를 타고 평택까지 내려갔다. 평택에서 45번으로 갈아타고 계속 내려가자 아산 입구에 현충사 이정표가 보여 쉽게 찾았다. ≪백범일지≫에 나오는 백범이 보았다는 이 충무공의 기념비는 현충사 내에서 전혀 찾을 수 없었다. 물어보니 묘소에 신도비가 있다고 하였다, 묘소까지는 현충사에서 9km 정도 떨어진 곳으로 내려올 때 이정표를 보았으나 들리지 않았다. 왜 거기를 들리지 않았지 후회하면서 택시를 불렀다. 묘소 입구에 신도비가 서 있었고 묘소는 아주 잘 꾸며져 있었다. 이 충무공을 참배하려면 현충사의 영정보다는 이곳 묘소가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 이 충무공 묘소 입구에 있는 신도비

아산에서 천안을 거쳐 공주로 갔다. 그 사이에는 큰 고개가 두 개나 있었다. 곡두재에 오르니 한참 더위에 목이 말라서인지 ‘빙수’라는 글자와 그림이 너무도 뚜렷이 보였다. 저절로 그리로 향하였다. 먹음직스런 빙수를 내주면서 튀밥을 함께 준다. ‘튀밥은 뭐예요?’하는 나의 질문에 주인은 ‘빙수가 너무 차가우니 빙수 한 숟갈 먹고 튀밥을 한 숟갈 드세요.’한다. 의심쩍은 표정으로 빙수를 한 숟갈 먹고 튀밥을 먹으니 정말이지 얼얼한 입 속이 따뜻해져 빙수 먹기가 너무 수월했다.

공주를 지나 계룡면사무소에 가니 앞마당에 비각과 비가 보였다. 백범 선생이 본 그 비는 비각에 들어가 있지 않고 나와 있었는데 큰 화분이 그 앞을 가로 막고 있었다. 영규대사는 임진왜란 때 왜군과 맞서 싸운 3분의 대표적 승장 중 한 분으로 금산전투에서 왜군과 맞서 싸우다 부상을 입고 전사한 비운의 인물이다.

△ 화분 옆에 있는 비가 영규대사 비이다

영규대사는 공주 계룡면에서 태어난 공주의 인물로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스스로 승병장이 되어, 승병 1천명을 모집하고 왜군과 맞서 싸웠다. 이후 영규대사는 의병장 중봉 조헌이 이끄는 의병과 함께 청주성을 수복한다. 영규대사의 승병과 조헌선생의 의병은 금산전투에 임하고 왜군을 협공하기에 이르나, 수적인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조헌선생을 포함한 승병과 의병 700명 모두가 전사한다. 영규대사는 부상한 몸을 이끌고 그의 고향인 현재의 묘소부근까지 와서 숨을 거두었다 한다. 청주성 전투에서 만나 금산전투에서의 최후를 맞이하기까지 생사고락을 같이 했던 승병장 영규대사는 계룡면에 그 묘소가 있고, 의병장 조헌과 의병들은 칠백의총에 함께 묻혔다. 두 분이 한 자리에 묻히지 못했지만, 그 넋이나마 한자리에 모시고 달래고자 승군과 의병을 훈련시켰던 가산사에 영정각을 짓고 위패를 한데 모셔 매년 제를 지내고 있다고 한다.


항일유적을 말살한 일본인


하루 일정을 계룡에서 끝내고 다음 날 강경으로 향하였다. 장대처럼 쏟아지는 비에 출발시간이 지연되었다. 황산대교가 있는 곳에서 강경포를 바라보며 백범이 머물었던 공종렬의 집안에서 일어난 일을 생각하며 회심에 젖었다. 논산 가야곡을 거쳐 고개를 넘어 금산 칠백의총으로 갔다. 길가 밭에는 하얀색과 보라색으로 활짝 핀 도라지꽃이 마치 나를 반겨주는 것 같았다.

칠백의총에는 1603년(선조 36년)에 ‘중봉조헌선생일군순의비’가 세워졌고, 1647년(인조 25년)에 사당이 세워졌으며, 1663년(현종 4년)에 종용사라는 사액과 토지를 내렸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종용사를 헐고 순의비를 폭파하고 칠백의총의 토지를 강제로 팔아 항일유적을 말살하려 하였다. 인근 주민들이 이 비의 파편들을 뒷산에 묻어 두었다가, 광복 후 꺼내어 보관하였다. 1971년 시멘트 등으로 붙여 복원하였으나, 2009년 석재로 재차 복원하고 비각도 새롭게 건립하였다.

△ 현재의 모습으로 다시 복원된「중봉조헌선생일군순의비」

비는 계속 내리고 37번 국도를 따라 무주 가까이 가니 민족문제연구소 전북지부 회원이 마중 나와 있었다. 그와 함께 무주읍내로 들어가 회원들을 만나고 유숙하였다. 다음 날 다시 전 날 도착하였던 그 장소로 가서 남원을 향하였다.

무주읍에서 안성면에 들어설 때 안성재라는 510m 높이의 매우 긴 고개를 넘어야 했다. 다시 장계면으로 가기 위해선 또 다시 집재라는 510m 높이의 고개를 넘어야 했고 장수읍으로 들어 서기 전엔 539m의 수분재를 넘어야 했다. 장수읍을 지나자 또 다시 길지만 완만한 고개가 나왔다. 이 고개마루에서부터 남원까지는 거의 내리막이었다.


죽음을 모면한 백범


남원에서 묵고 다음 날 전주로 향하였다. 춘향로를 따라 가니 서남대학교가 보인다. 춘향터널은 입구를 기와를 얻은 한옥으로 만든 것이 이채롭다. 중간의 임실을 지나면서 완만한 경사를 가진 슬치재를 올랐다. 이곳 슬치재는 청년 백범이 자칫 잘못했으면 그 생을 마감했을 뻔한 사연이 있다.

백범이 전주를 가기 위하여 이 고개를 넘을 때 나귀를 몰고 가던 풍채 좋은 임실읍내 사람과 고개 밑에서 만나 자연 동행이 되어 이야기를 나누며 고개 위에 도착하였다. 마침 그 날이 전주 장날이라 고개 위 주막에는 여러 보부상들이 쉬고 있었다. 반갑게 그를 맞이하는 주막집 주인이 쉬어가기를 청하였다. 그가 백범에게 술이나 한 잔 하며 쉬어 가자고 청하였으나 백범은 사양하고 고개를 넘었다. 고개 아래에 있는 주막으로 저녁에 급보가 날아왔다. 강도들이 고개 위 주막에 나타나 행상들의 재물을 약탈하고 동행했던 그 읍내 사람도 도끼에 맞아 죽었다는 것이다.

슬치재 고개 위에는 예전의 주막은 없고 주유소와 식당이 있다. 갈증을 해소하며 당시 백범이 고개 위에서 쉬다 죽었다면 우리나라의 운명은 어찌 되었을까 하는 상념에 한참 빠져있었다.

올라오는 길과 달리 내려가는 길은 경사가 심했다. 전주 시내까지 아주 쉽게 내려올 수 있었다. 시청에 도착하니 민족문제연구소 전북지부회원들이 마중 나왔다. 이곳에서 김형진의 손자 김영식 옹이 한때 전북지부와 활동을 함께 했고 아직 생존해 계신다는 말을 들었다. 김형진이 살았다는 금구를 지나 오늘의 종착지인 만경평야가 넓게 펼쳐진 김제에 이르렀다.

△ 김제에 도착하여 여정의 삼분의 일을 마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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