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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말산책 13
방문(訪問)
최기종 2010/06/17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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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말산책 - 부부성(夫婦星)



방문(訪問)
 
그미가 먼저 백기를 들고
들어올 기척이 없다.
여느 때처럼 시치미 떼고
들어올 줄로 알았는데
그미는 온종일 캄캄 무소식이다.
 
냉전시대에
치열한 내부 투쟁을 통해서
내가 얻은 결론은
그미에게 투항하는 것이었다.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하고
그미에게 수신호를 보냈다.
 
자존의 창과 방패를 치우고
불빛 가리개를 걷어내고
성스런 의자를 준비했다.
성문 밖에서 대기하던 그미가
비루스처럼 들창을 넘어왔다.
그림자처럼 발밑으로 들어온다.
 
 
최기종 시집 <<나무 위의 여자>> 중에서
 
 
군말
 
  가정의 구성원들은 모두 분자운동을 한다. 여러가지 기대나 욕구들을 내보낸다는 것이다. 이런 분자들은 가정이라는 좁은 공간을 돌아다니면서 서로 섞이고 부딪치기도 한다. 어떤 분자들은 포용적이고 부드러워서 가정의 화합을 이끌어 낸다. 또 다른 분자들은 이기적이고 모가 나서 소리나 열을 내면서 풍파를 짖는다.
  부부 사이도 이와 같다. 물론 기본은 잉꼬부부다. 그런데 살다 보면 직면을 하는 경우도 생긴다. 불편이라는 분자들이 한꺼번에 공격을 하고 그것에 대항하는 활동이 벌어지는데 도를 넘어서면 부부싸움이 되는 것이다.
  어떤 때는 분자 운동이 그리 심하지 않아서 무난히 타협하기도 한다. 하지만 쌓이고 쌓인 분자들이 어떤 때는 과격하게 폭발하기도 한다. 미움과 원망이 총알이 되고 대포가 되어서 서로를 공격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만의 싸움이 끝났다고 해서 승자나 패자가 곧바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지진 다음에는 여진이 있듯이 부부싸움 다음에는 냉전이 도사리고 있다. 그런데 이 냉전 상태는 장시간 서로를 피말리게 한다.
  부부싸움 뒤에 남는 것은 자존심 밖에 없다. '니가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내가 해 준 것이 얼마나 많은데.' 이런 종류의 편견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싸움은 서로 닮아 가려는 과정으로 봐도 된다. 하지만 중년이 넘어서면 달라진다. 신혼 때와는 달리 마음이 철벽처럼 닫혀 있어서 상대를 이해의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냉전 상태가 장기전 형식을 띠는 것이다.
  아무 것도 아닌 것이 쌓이고 쌓이다 보면 보가 되고 성벽이 되는 것이다. 서로 내탓 니탓만 하다보면 골만 깊어 지는 것이다. 누군가 자존의 창과 방패를 치우면 갑자기 평지가 되는데 말이다. 가정의 평화와 행복을 위해서는 '내탓이요'가 최고의 무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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