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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말산책 - 부부성(夫婦星)
부부의 날을 맞아하여
최기종 2010/05/20 15:04    

내가 먼저 그러자고 했다.

아내가 따라서 그러자고 했다.

아내가 먼저 그러자고 했다.

내가 따라서 그러자고 했다.


내가 낮은 음(音)으로 그러자고 했다.

아내가 따라서 낮은 음(音)으로 그러자고 했다.

아내가 낮은 음(音)으로 그러자고 했다.

내가 따라서 낮은 음(音)으로 그러자고했다.


내가 다 버리고 그러자고 했다.

아내가 따라서 다 버리고 그러자고 했다.

아내가 다 버리고 그러자고 했다.

내가 따라서 다 버리고 그러자고 했다.


내가 욕심나서 그러자고 했다.

아내가 따라서 욕심나서 그러자고 했다.

아내가 욕심나서 그러자고 했다.

내가 따라서 욕심나서 그러자고 했다.


내가 그러자고 해서 아내가 되었다.

아내가 그러자고 해서 내가 되었다.

내가 아내가 되어서 그러자고 했다.

아내가 내가 되어서 그러자고 했다.


먼저 그러자고 하다가

따라서 그러자고 하다가

그렇게 엎치락뒤치락 하다가

하루같이 스무 해를 살았다.


최기종 시집 <<나무 위의 여자>> 중에서



군말


하늘에 부부 별자리가 있다. 북쪽 하늘, 카시오페아와 케페우스 별이 다정하게 마주 보고 빛나고 있다.

5월 21일, 부부의 날을 맞아하여 바람직한 부부 관계를 '부부성(夫婦星)'이란 시로 표현해 보았다. 부부는 무촌이라고 한다. 서로 한 방울의 피도 섞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가장 가까운 '일심동체(一心同體)'로 살아가는 게 부부이다.

남녀 상관에서 현대 감각에 뒤떨어진 말을 꼽으라면 '여필종부(女必從夫)'이다. '아내는 반드시 남편을 따라야 한다.'는 이 말은 남성 우월주의 최 정점이다. 물론 '칠거지악(七去之惡)'이니, '부부유별(夫婦有別)'이니 하는 것도 남성 중심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방편으로 악용되어 왔다. 하지만 '여필종부'라는 말은 여성의 타율성을 확대 재생산하면서 노예적 삶을 강요하는 해악적인 대표적 잔재라고 아니 할 수 없다.

지금은 시대가 변해서 '여필종부'라는 말로 여성을 핍박하지는 않는다. 대신에 부부간의 화합을 뜻하는 '부창부수(夫唱婦隨)'란 말이 뒤를 이었다. 그런데 이 '부창부수'란 말도 원래 뜻은 '남편이 주장하면 아내가 따른다.'는 뜻으로 '여필종부'나 다를 바가 별로 없다. 지금에 와서는 해석이 바뀌어서 '부창부수'를 풀이할 때 주체와 객체를 누구라고 규정하는 것은 편협한 사고라고 하면서 '부부간의 화합과 정리'를 뜻한다고 두리 뭉실하게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주체는 남편이고 객체는 아내인 것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여성을 수동적인 존재로 보았다는 점에서 '여필종부'나 다름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주객전도(主客顚倒)'라는 말이 우리에게 희망을 주기도 한다. 사실 주체와 객체가 바뀐다는 것은 혁명적인 상황인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남편과 아내의 입장을 바꾸어서 보는 '역지사지(易地思之)'를 생각하면서 '주객전도'의 길을 만들기도 한다.

세상의 모든 사물은 주고받는 상부상조의 관계이다. 부부 사이도 그렇다. 남편이 그러자고 하면 아내가 따르고 아내가 그러자고 하면 남편이 따르는 것이다. 남편이 욕심 부리면 아내도 욕심 부리는 것이다. 아내가 다 버리자고 하면 남편도 다 버리자고 하는 것이다. 이렇게 선후 관계를 떠나서 주객이 '일심동체(一心同體)'가 되었을 때 부부 사이는 최고의 행복을 주고받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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