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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의 의로운 정신, 삼별초 통해 보여 주고파
[인터뷰] (사)삼별초역사문화연구회 곽의진 이사장
우리힘닷컴 2011/03/01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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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의 항몽유적지를 가다



우리힘닷컴은 (사)삼별초역사문화연구회 곽의진 이사장을 인터뷰 하였습니다. 애초에 우리힘닷컴은 지역에서 활동 중인 단체를 소개한다는 단순한 목적으로 곽의진 이사장께 접근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진도에서 뼈를 묻을 생각으로 진도의 발전을 위해 행정기관과 부딪히며 일을 진행하고 있는 분과 그 소속 단체에 대해 단지 기능적인 인터뷰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삼별초역사문화연구회’와 곽의진 이사장께서 품은 높은 이상의 편린들만 독자들께 전하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염려가 떠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원래 인터뷰란 게 대상의 모든 것을 모두 전달하기는 쉽지 않으리라는 자기 위안과 더불어 우리힘닷컴의 곽의진 이사장 인터뷰가 비록 부분적인 것에 불과 하더라도 그 작은 부분이나마 독자들께 전달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사명감으로 염려를 억누르고 두 번에 걸친 곽의진 이사장과의 인터뷰를 싣습니다. 곽 이사장과 삼별초역사문화연구회의 특장점을 제대로 살려 전달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오로지 우리힘닷컴의 불성실이고 또한 책임임을 밝힙니다.


우리힘닷컴(이하 ‘우리힘’) : ‘삼별초역사문화연구회’가 진도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연구회 활동을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요?

(사)삼별초역사문화연구회 곽의진 이사장(이하 ‘곽의진’) : 1996년 문화일보에 장편 역사소설을 연재하게 된 것이 계기가 됐어요. 진도 남종문인화의 거두인 소치 선생의 이야기를 쓰고 있었기 때문에 그 분의 예술성과 삶에 대해 천착을 했어요.

그런데 막상 연재 청탁을 받고 나니 겁이 나고 두려웠어요. 그래서 마침 문화일보에 역사소설 연재를 끝낸 박경리 선생님을 찾아뵙고 이야기를 드렸는데 박경리 선생님께서 “중도에서 하차하려면 아예 처음부터 잡지를 말아라. 여류라는 게, 여성작가가 갖고 있는 취약점이 뒷심이 없다는 것이다. 초반에 잘 쓰다가 뒤에서 쉽게 물러나곤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을 자신이 없다면 하지 마라. 정말로 자신이 있을 때 하겠다고 하라.”고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제가 그 때까지는 장편소설 한두 권 만들어서 출판을 했지, 일 년 연재를 하려면 매일 원고지 10매씩을 써야 하는데 겁 없이 쓰겠다고 해 놓고 선생님 이야기를 듣고 나서 깜짝 놀랐어요. 그 때부터 두려워지는데, 그 두려움과 함께 떠오르는 게 고향이었어요.

진도에서 태어나 7살 때 목포로 가서 유달초등학교, 목포여중을 나와 서울로 가서 서울여상 졸업하고 내리 서울에서 살았는데 그 때 고향이 딱 떠오르면서 “7살 때 떠난 내 고향에 가서 쓰면 잘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삼별초역사문화연구회 곽의진 이사장 ©우리힘닷컴

처음에는 단순히 진도의 소치 이야기를 도시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했어요. 남도 쪽 사람들에 대한 안 좋은 편견이 너무 심했기 때문에, “그런 것을 불식시키자. 남도의 선비정신 특히 소치가 갖고 있던 선비적인 사상과 또 소치가 스승으로 모셨던 추사나 초의선사의 사상을 접목시켜서 연재를 하면 중앙에서 남도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특히 남도의 음식문화 같은 것이나 정서, 산천초목 이런 것을 쓰기위해 고향에 내려오고 싶었고 내려와야만 될 것 같았어요. 그래서 40여 년 살던 서울생활을 버리고 진도에 내려와 살면서 6개월 연재를 했는데 문화일보에서 “반응이 좋다. 2년 연장해서 연재해 줄 수 있느냐?”고 해요. 그렇게 해서 2년 연장을 했어요. 진도에 와서 집필을 했기 때문에 할 수 있다는 자신이 생겼어요. 서울에 있었으면 아마 6개월 하다가 끝냈을 거예요.

우리힘 : 낙향해서 소치 선생님과 관련한 글을 쓰시던 분께서 삼별초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습니까?

곽의진 : 그 무렵까지는 삼별초에 대해, 사실은 진도 역사를 보면서 이런 게 있다는 정도만 알았지 깊이 안 들어갔었어요. 그러다 연재가 끝나갈 무렵에 원고를 쓰고 나면 오후에는 차를 타고 진도를 둘러봤어요. 그러면서 진도의 역사유적을 돌게 됐어요. 맨 처음에는 남도석성을 갔고 그 다음에 용장산성에 갔는데 거기서 깜짝 놀랐어요.

작가들한테 오는 게 있어요. 신열 같은……. 갑자기 온 몸에서 열이 나는 거예요. 그러면서 삼별초가 크게 떠올라요. 용장산성을 탐방하면서 신열을 겪고 난 후 언덕의 초라한 작업실에서 소치를 마감하며 내 머릿속에서는 “서울에 안 올라간다. 이 연재만 끝나면 일상적인 서울생활을 하려고 했는데 삼별초를 만나야 되기 때문에 나 이제 서울 안가고 진도에다 조그만 오두막 짓고 살란다. 정말 태 묻은 땅에 뼈를 묻고 살란다.”는 생각만 드는 겁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그렇게 통화했어요.

나는 그 때 삼별초에 접신을 했다는 느낌까지 들었어요. 삼별초 장군과 나와의 접신. 그래서 당시에 신열이 났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 이제 서울 안 간다.” 하고서는 그 때부터 삼별초 자료를 모으기 시작하는데 삼별초가 진도의 어떤 큰 힘으로 느껴지더라고요. 그러니까, “삼별초의 힘이 진도의 또 다른 힘이 될 수 있다. 약 800년 전에 묻혔던 것을 다시 꺼내자. 발굴하자. 우리 진도 사람들이 너무나 모르고 있다.” 사실, 거의 모르고 있는 상태였어요.

왕온의 묘 앞에 선 곽의진 이사장 ©우리힘닷컴

그 때 내가 연재했던 소설 ‘꿈이로다 화연일세’를 한길사와 해냄에서 출판하자는 제의가 들어와서 윤후명 선생께 두 군데서 출판계약을 하자고 하는 데 어느 쪽이 좋겠느냐고 물었어요. 그러자 윤후명 선생이 즉석에서 “곽선생, 지금 돈 필요하잖아. 한길은 좋은 책을 만들지만 많이 팔아주는 데는 해냄이다.” 그래요. 그래서 해냄에다 원고를 주었는데 다섯 권으로 참 잘 만들었어요. 그런데 마침 그 무렵에 IMF가 터지면서 책이 잘 안 읽히는 추세로 돌아가 버려요. 다섯 권짜리 책이 너무 버거운 거예요. 그래서 많이 팔리지가 않았어요. 그래도 그 책을 팔아서 지금 사는 탑리마을에 '자운토방'을 지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책을 읽는 독자들이 많지 않은 상태에서 삼별초를 책으로 내놓는 것 보다 연극이나 영화 쪽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한편으로 드는 거예요. 그래서 극본을 쓰기 시작했거든요. 그런데 그 때 마침 문화원 사무국장이 아리랑 극본을 하나 써 달라고 한 거예요. 그래서 “내가 준비하고 있는 것이 삼별초다. 삼별초를 통해 우리 진도의 의로운 정신을 널리 알리자. 진도가 시ㆍ서ㆍ화ㆍ창(詩書話唱)의 예향으로서의 명분은 표출되어 있지만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이나 삼별초 항쟁의 의로운 정신은 밖으로 안 나와 있다. 진도에는 소리나 있고 무당이나 당골래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하지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힘써 희생했던 정신은 밖으로 안 나와 있다. 이참에 진도의 의로운 삼별초 정신을 극으로 만들겠다.”고 했더니 흔쾌히 동의하더라고요.

우리힘 : 삼별초 항쟁이 진도의 고유문화와 연결되는 지점에 삼별초역사문화연구회의 역할이 큰 것 같습니다.

곽의진 : 진도가 가진 밑거름이라는 게 ‘소리’잖아요. 소리를 접목시켜서 진도의 이야기를 만들면 좋겠다고 해서 그 이야기를 통해 삼별초를 알리고 싶은 생각이었어요. 그렇게 만든 삼별초 연극이 호평을 받아 중앙까지 올라가서 공연도 참 잘 했어요. 그런데 안타까운 게 중앙까지 올라가서 그렇게 했으면 예산이 뒷받침 돼서 1년에 한 번이라도 돌려줘야 해요. 그런데 지자체가 워낙 열악하니까 그 후부터 예산이 끊겨서 못해요. 연극을 한 번 올리려면 3~4천이 들어가는데 그게 없어서 못해요.

그래서 2007년도에 (사)삼별초역사문화연구회를 만들어서 삼별초에 대한 세미나도 열고 글도 넣고 한ㆍ일 관계 세미나도 했어요. 그런데 2008년 시월 어느 일요일 밤에 일면식도 없는 도지사로부터 느닷없이 전화가 왔어요. 전남일보에 삼별초에 관한 연재를 하고 있는 걸 봤나 봐요. 전화해서 “박준영입니다.” 그래요. “연재 잘 보고 있다, 너무 좋다, 나는 남도가 의로운 땅이라는 것을 널리 알리고 싶은 사람이다. 명량대첩과 삼별초가 대단한 가치를 갖고 있는데 아무도 안 하고 있으니까 민간인인 당신들이 해줘야 한다.”고 얘기 하더라고요. 그 한 마디가 얼마나 큰 힘이 되던지. 그 때부터 어려워도 막 끌고 나갔지요. 힘들어도 하자, 하자!

전남일보에 연재할 때 원고료 받으면 다 연극하는데 나갔어요. 그리고 나서 전남일보 마지막 편 문화면에 의도적으로, 진도에는 삼별초 항몽비 하나 없다고 전면 칼라판으로 내보냈어요. 그걸 보셨는지 도에서 먼저 항몽비를 세우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삼별초가 일본과도 관계가 있는 것은, 오키나와의 유구문화에서 나온 유물(기와)이 용장산성에서 나온 기와와 똑 같다는 거예요. 그걸 계기로 오키나와 쪽 교수들도 삼별초와 오키나와와의 관계를 연구하고 있고 그걸 겨냥해서 2008년 3월에 일본 쪽 두 명과 국내 교수 여러명을 초빙해서 한ㆍ일 역사 세미나를 열었어요. 그것으로 작년에는 일본에도 다녀왔고 약8억 예산의 항몽비도 세웠습니다.

연극하고 항몽비 때문에 중앙 매스컴도 많이 타서 서울에 연극을 다시 올리려 했는데 문화관련 예산의 삭감으로 마찬가지로 힘듭니다. 그래서 서울까지 못 가면 또 다른 작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해요. 나와 몇 사람이 함께 하는 이 움직임이 나중에 삼별초 역사 문화의 복원 사업, 용장산성이나 왕궁터를 복원할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에 저는 참 행복합니다.

2010년 12월에 제막된 고려항몽 충혼탑 ©우리힘닷컴

우리힘 : 삼별초 항쟁의 무엇이 진도 혹은 남도를 의로운 땅으로 알릴 수 있는 역사적 계기가 될 수 있을까요?

곽의진 : 우리 진도에 삼별초의 역사적인 유적으로 용장산성 터가 있는데요, 제주도에도 삼별초 항쟁 유적지인 항파두리가 있어요. 그 항파두리에 10년 전에 진도 벽파에서 배를 타고 갔는데 참 멋스럽게 삼별초 유적지를 갖추어 놨더라고요.

그런데 ‘고려사’에는 “김통정이 금갑진포에서 항파두리로 도망을 갔다”는 한 줄 밖에 없어요.(賊將金通精 率餘衆 竄入耽羅/적장김통정 솔여중 찬입탐라, 고려사 열전) 항파두리가 김통정 장군의 삼별초 항쟁 전적지였다는 것은 제주에서 만들어진 전설이나 민담 등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그 한 줄을 가지고 1977년에 박정희 대통령이 역사교과서에 ‘삼별초의 난’으로 나와 있던 것을 ‘삼별초 항쟁’이라고 바꾸었어요. 자기가 일으킨 군사 쿠데타를 삼별초 항쟁과 같은 맥락으로 봤더라고요. 나는 “그것이 아니다.”고 언론에 몇 번이나 썼어요. “절대 그것이 아니다. 삼별초의 반란은 외세에 대한 반항이었지 정권을 찬탈하기 위한 같은 민족끼리의 반란이 아니었다. 박정희는 나라 안에서 군사를 이용하여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다. 어떻게 삼별초 항쟁과 5ㆍ16 군사 쿠데타를 같은 맥락으로 보느냐.”

박정희는 같은 맥락으로 보았기 때문에 삼별초를 굉장히 높이 샀어요. 그래서 제주도 항파두리에다 거한 것을 했는데, 그 사람이 진도가 삼별초의 본거지라는 것을 모를 리가 없죠. 그렇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과 정적관계였기 때문에 진도에 세우지 않았던 거지요.

우리힘 : 이사장님께서는 문학인으로서 문화, 예술, 민속, 역사적 관점에서 지난 15년간 진도를 살펴왔습니다. 이것 외에 진도의 특ㆍ장점이 있다면 무엇이겠습니까?

곽의진 : 지금 우리 진도는 시ㆍ서ㆍ화ㆍ창까지 삼(三) 절이 아니고 사(四) 절 이예요. 진도는 이렇게 예향의 본고장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거기에 곁들여서 진도의 의로운 희생정신이 있는 거예요.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무엇인가를 하려고 하는 진도인들의 의식성, 군민성을 보여주고 싶어요. 그리고 이것을 가지고 관광문화상품을 만들자는 게 나의 취지예요.

용장산성에 용장왕궁을 지어서 관광객을 오게 만들고 영화 촬영장 같은 문화상품으로 만듦으로써 전라도 사람의 정신이 위로 보여질 수도 있는 거고 시ㆍ서ㆍ화ㆍ창과 곁들여서 진도의 관광이 활성화되고 군민의 의식과 경제적 생활이 나아지면 좋겠어요. 또 용장궁의 복원과 더불어 ‘삼별초 전사의 길’을 만들어서 제주 올레길이나 지리산 둘레길처럼 풍광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역사성까지 추가되면 진도의 의미가 도드라지지 않겠어요?

용장 산성 ©우리힘닷컴

우리힘 : 이사장님은 여기 진도, 탯 자리에 뼈를 묻겠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진도 사랑이 굉장합니다. 앞으로 진도에서 더 하실 일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곽의진 : 지금 삼별초역사문화연구회에서 준비하고 있는 것이 있는데 바구니 섬인 진도를 한 바퀴 도는 길을 만들자는 거예요. 녹진에서부터 벽파까지 해변가 긴 길은 이순신 장군의 ‘호국의 길’, 벽파에서 남도석성까지는 ‘삼별초 전사의 길’, 진도읍에서 꼬부랑꼬부랑 첨철산을 끼고 운림산방, 쌍계사까지 돌아보는 ‘진도 아리랑 길’ 또는 ‘진도 꼬부랑 길’을 만들고 남도석성에서 서망을 돌아 셋방낙조로 해서 다시 녹진으로 가는 길은 ‘낙조따라 가는 길’. 이렇게 네 코스를 만드는 것을 우리 삼별초역사문화연구회에서 점차적으로 하고 있어요.

예산 달라고 안 해요. 우리가 말뚝을 박고 다닐 겁니다. “우리가 낫 들고 예초기로 길을 만들다보면 군에서 온다, 틀림없이 온다.” 그렇게 생각하고 금년부터 시작합니다.

십 몇 년 전에 삼별초 연극이 그랬거든요. 처음에 시작할 때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것들, 문화재청에서 복원에 관해 문의하고 제주도 항파두리에 항몽순우비가 큰 게 있고 강화도 외포리에 진도로 떠난 항몽유허비가 있는 것처럼 30~40년 동안 비(碑) 하나 없던 진도에 항몽비가 섰어요. 그것을 계기로 진도에 용장궁이 꼭 만들어져야 하고 그것과 곁들여서 진도 삼별초 전사의 길을 겨냥하는 ‘바구니 섬 한 바퀴 도는 길’을 만드는 거예요. 역사성을 곁들인 진도의 길을 만들고 싶어요.

한 가지만 예를 들게요.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은 13척의 배로 왜선 300척을 격파시킨, 세계 해전사에 전무후무한 것이라고 얘기하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 안 해요. “300 대 300이었다, 우리 배도 300척이었다.” 왜냐?

이런 기록이 있어요. 진도의 어민들이 깨진 배까지 고쳐서 다 내왔어요. 한 집안의 삼(三) 부자가 함께 나서서 싸움터에서 죽은 경우도 있어요. 어부에게 배가 없으면 자기들도 없는 거예요. 가족의 목숨을 다 준 겁니다. 그 배로 이순신 장군의 전술에 함께 참여를 한 거예요.

그런데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도 그들 중심으로 씌어 있고 민초들의 이야기는 몇 줄입니다. 이쪽의 그런 이야기, 남도인의 ‘참 의로운 정신’이 담긴 진도의 바구니 길을, 그래서 만들고 싶습니다.


곽의진 이사장 영상 인터뷰
시작단추(▶)를 누르면 만날 수 있습니다.









독자 의견 목록
1 . 우리힘 닷컴, 화이팅!! 곽의진 2011-04-12 / 17:17
2 . 전사의길은?? 돌배기 2011-04-13 /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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