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16년 9월 12일 월요일
손님 사랑합니다.



갈치낚시, 가을에 접하는 별미


 졸음운전, 음주운전보다 더 위험..
 여름철 물놀이 안전수칙
 여름철 건강관리 요령
 완강기 사용법
 비상구 등 피난.방화시설 관리방..
 기획공연 연극『난영』 공연
 일본역사테마기행
 삼학도 문화제전 사진모음
 해남군립예술단 성인합창단 신규..
 2007 삼학도문화제전 행사진행표
 법과 규제가 사람을 죽이[evil]..
 도둑은 수천이라도 잡아야 하며 ..
 함평군립 미술관 건립 추진을 충..
 "왜"함평군은 군민의 눈,귀,입를..
 [동참] 부패한 종교, 시민의 힘..
 뉴스 없는 뉴스를 전하는 최일구..
 현재의 공중파가 조중동 방송이..
 mbc가 있어서 방송이 산다.
 용산이 사라졌다
 문화방송은 변하지 않았다
방학진의 민족바로세우기


친일인명사전 발간 1년을 되돌아보며
시민 호응에도 불구, 수구세력 반격도 여전
방학진 2010/11/16 13:19    

┗━ 관련 기사목록
친일인명사전 발간은 친일청산의 끝이 ..



지난 11월 8일은 효창원 백범선생 묘소에서 열린 ‘국민보고대회’를 통해 친일인명사전이 발간된 지 꼭 1년이 되는 날이었다.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가 친일경찰의 습격으로 와해된 지 60년 만에 그리고 친일문제연구의 선구자인 임종국 선생이 타계한지 20년 만에 비로소 친일파들의 행적과 경력을 전면적이고 체계적으로 집대성한 첫 성과물을 낸 것이다.

많은 분들이 친일인명사전이 얼마나 보급되었는지 궁금해 한다. 11월 현재, 기증본 200질을 포함해 모두 3850질이 나갔다. 출판계가 불황인 점, 전문서적인 점, 30만원으로 가격이 높다는 점, 상업 광고를 거의 하지 않은 점 등을 감안하면 친일인명사전은 보급 면에서도 큰 호응을 받고 있다. 아마도 그 이유는 이 사전이 다른 출판물과는 달리 발간 과정 자체가 하나의 운동적 성격을 지녔기 때문일 것이다. 즉 친일인명사전의 발간을 위해 성금을 냈던 행위는 단순히 불우이웃돕기와 같은 시혜적․동정적 차원을 넘어, 자신 스스로가 역사의 주인으로 등장하는 주체적 행위였던 것이다.

한 예로 시 쓰는 의사로 유명한 서홍관 씨는 2004년 아버지 서정복 선생께서 돌아가시자 “아버님의 뜻도 그러하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조의금 중 3백만원을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회에 기탁했다. 1922년 전북 완주에서 태어난 서정복 선생은 고창고보 재학 중 태평양전쟁에 강제동원되어 규슈에서 징병살이를 하다가 해방을 맞아 귀국해 군산 금융조합에서 근무하였고, 퇴직 후 비누장사 등을 하였으나 실패하였다. 이후 전북일보사 중역이사, 전북일보사 회장 등을 역임하였고, 82세가 되던 2004년에 노환으로 별세하였다. 즉 일제강점기라는 암울한 시대를 살다 가신 아버님을 위해 서홍관 씨는 그 시대를 극복하고 해명하는 작업에 스스로 참여함으로써 아버지를 대신해 그 시대를 극복하려 했던 것이다.

친일인명사전 ©우리힘닷컴

이 처럼 사전 발간에 동참한 분들은 현재 사전의 보급에도 가장 큰 동력이 되고 있다. 인터넷 포털 다음에서 ‘세계아고라정의포럼’이라는 카페에서 활동하는 회원들은 올 초 모금운동을 벌였다. 적게는 3만원부터 많게는 240만원을 낸 사람도 있었다. 회원들은 이 돈으로 친일인명사전을 구입해 노들장애인야학, 지리산고등학교, 설천재가노인복지센터 등 국내 10곳과 한국학연구소가 있는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미국 컬럼비아대학 등 7개 외국 대학교에 기증했다.

그러나 사전 보급이 현재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 아래는 일선 학교 현장에서 사전 보급 자체가 차단되고 있는 사실을 폭로한 오마이뉴스 김행수 시민기자의 기사 일부를 정리한 것이다.

- 서울 강서구 ㄷ고 ㅈ교사는 한일병탄 100년을 맞아 학생들이 올바른 역사의식을 지니는데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으로 지난 4월 민족문제연구소가 편찬한 친일인명사전 구입을 신청하였다. 얼마 뒤 도서관에 들렀다가 깜짝 놀랐다. 아무리 찾아봐도 친일인명사전을 찾을 수가 없어 확인해 보니 교장선생님이 친일인명사전의 내용을 문제 삼아 도서관에 배치할 수 없다고 했다는 것. 교장 선생님에게 어떻게 된 것인지 따져 물으니 “(친일파에 대한) 오해의 소지가 있고, 역사적 판단이 서로 달라 아직 분란의 소지가 있어서 학생들이 그런 책을 보게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 서울 서대문구 ㅅ고에서 역사를 가르치고 있는 ㅇ교사도 올해 4월 한국근현대사 수업에 참고하기 위해 친일인명사전을 신청하였다. 얼마 뒤 수업을 위해 도서관에 들른 ㅅ교사. 그러나 그는 이 책을 찾을 수가 없었다. 사서 교사에게 물어보니 친일파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없다는 이유로 교장 선생님이 구매목록에서 제외했다는 답이 돌아왔다.

- 사립학교인 종로구 ㅅ고 역사 교사인 ㄱ씨는 작년 11월 수업 참고용으로 친일인명사전을 신청했는데 5개월이 지난 올해 4월까지도 아무 소식이 없었다. 사서교사에게 이유를 물었더니 ‘도서선정위원회의 구입 결의가 없어 살 수가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 이 학교들 외에도 많은 학교들, 특히 사립학교들에서 ‘우리 학교 설립자와 관련이 있다’, ‘친일파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없다’, ‘학생들이 혼란스러워 할 수 있다’ 등의 이유로 친일인명사전의 학교 도서관 배치를 거부하고 있다.

- 올해 4월 서울교육청(당시 이성희 교육감 권한대행)은 서울 소재 모든 학교에 친일인명사전의 도서관 배치 여부를 보고하라는 공문을 보냈다. 대표적인 반 전교조 보수인사로 알려진 당시 교육위원 이상진씨가 이를 문제 삼으며 현황 파악에 나선 것이다. 각 학교에서는 이 공문을 ‘친일사전을 학교 도서관에 배치하지 말라’는 뜻으로 받아들여 이 책의 구입을 주저하였다. 실제로 ㄷ고의 사서 교사는 친일인명사전 구입 여부를 묻는 교사에게 “교육청에서 공문이 왔다”며 “학교가 부담스러워한다”고 일러주기도 했다. 결국 이 학교 도서관에는 지금도 친일인명사전이 없다.

사전 보급을 두려워하고 방해하는 세력들이 엄연히 존재하고 이에 맞서 사전 보급에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외형적인 보급 규모보다 더 중요한 것은 친일인명사전 발간으로 우리 사회가 친일문제 나아가 역사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얼마나 성숙했느냐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사전 발간 직후인 작년 말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는 상당히 고무적이다. 즉 친일인명사전 발간에 대해, 지나간 역사를 바로잡아 교훈을 얻기 위한 것으로 잘한 일이라는 응답이 58.6%, 역사를 무리하게 들춰내 갈등을 야기하는 것으로 잘못한 일이라는 응답이 31.8%로 나와 긍정적 평가가 두 배 가까이 이른다. 상대적으로 역사문제에 무관심하다고 평가받는 20~30대 젊은 층에서 특히 긍정적인 평가가 많았고 친일청산에 부정적인 한나라당과 친박연대 지지층에서조차 잘한 것, 잘못한 것이라는 양쪽의 평가가 팽팽하게 나타난 것은 친일문제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수준이 상당히 성숙한 단계에 이르렀음을 뜻한다. 이는 지난 2005년 친일인명사전 수록 대상자 명단을 발표했을 당시 부정적인 여론이 45.6%였던 것에 비춰보면, 사전 발간이 시민들의 역사 인식 변화에 확실히 기여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시대의 변화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후안무치한 세력들이 있음을 최근의 황당한 판결을 통해 확인하게 된다. 즉 지난 10월 19일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 김종필 부장판사는 일제강점기에 7차례나 항일독립운동가들에게 실형을 선고해 친일인명사전은 물론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조사보고서에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수록된 유영 판사(1892~1950)의 행위가 친일이 아니라는 판결을 내렸다. 유영 판사는 7차례에 걸쳐 이수택, 이창하, 조규선, 곽재필, 박종협, 김정수, 이기동, 조점환, 황동윤, 김홍배, 이기홍, 오문현, 김인학, 박이기, 손영섭, 박인욱 등 수십 명의 독립운동가들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이러한 행위가 친일이 아니라면 과연 무엇이 친일일까. 판결을 가장한 역사 기만이다. 그래서 친일인명사전 보급운동은 온전히 역사 왜곡 세력과의 타협 없는 투쟁이다.


친일인명사전 구매하러 가기(↓↓)


< 필자인 방학진님은 민족문제연구소 사무국장으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
민족문제연구소 홈페이지 가기


독자 의견 목록



의견글 쓰기
글은 인터넷에서 자신의 인격을 비추는 거울입니다
글쓴이 비밀번호
제 목
내 용



  → 친일인명사전 발간 1년을 되돌아보며 2010.11.16
  ‘친일’ 독립유공자 서훈 취소, 이번엔 가능할까 2010.10.20
  한 사람의 생명은 우주보다 무겁다 2010.09.15
  국치의 흔적으로 가득한 서울 남산을 거닐다 2010.08.26
  신흥무관학교! 아주 신중한 이름이 아닌가![2] 2010.07.06
  5공에 부역한 친일파들 2010.05.12
  4월혁명 50주년에 기억해야 할 인물들 2010.04.20
  명품에는 짝퉁이 있게 마련[2] 2010.03.19
  국치100년 우리는 무얼 하고 있나[1] 2010.02.24
  ‘친일보고서’에 발끈한 6개 사립대학 총장님들 2010.01.21
  친일인명사전 발간은 친일청산의 끝이 아닌 시작 2009.12.02
  동상은 세워지고 진실은 가려지고[1] 2009.10.22
  “독가스실 만큼이나 살인적인 말들이 있다” 2009.09.10
  역사교과서에 부활한 ‘보도지침’ 2009.08.24
  확연히 비교되는 전현직 대통령의 역사인식[5] 2009.07.03
  ‘박정희기념관’이 대한민국 역사의 랜드마크가 될지도 모른다[1] 2009.05.11
  항일부대 토벌하던 간도특설대 출신을 명예원수로 추대하려는 국방부 2009.04.17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넘어 ‘저팬 프렌들리’로 2009.03.06
  제자들을 전쟁터로 내몬 일제시대 조선인 교장들 2009.02.13
  백범의 길을 따른 사람들[1] 2009.01.22
  '황국신민서사'를 만들어 낸 친일파 이각종의 사생아들[3] 2008.11.27
  친일유물 감추기에 급급한 토호들 2008.10.16
  ‘솔직하게, 겸손하게, 똑똑한 발음으로, 무슨 죄인지 명확히’[3] 2008.09.23
  친일 청산 주장하는 자들을 빨갱이라고 욕해도 된다? 2008.08.07
  ‘양심을 망각하고 비열한 방법으로’ 조선일보를 경영했던 방응모 2008.07.06

1 2 3
우리힘소개 | 개인정보보호정책 | 광고문의 | 기사제보 | 제휴문의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 거부
Copyright © 2003 인터넷신문우리힘닷컴주식회사 All rights reserved Tel : (061) 277-5210 / Fax : (061) 277-5290
신문 등록번호 : 전남 아 1 등록일 : 2005.08.11 발행인 : 김은정 / 편집인 : 오승우 54.198.55.1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