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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 독립유공자 서훈 취소, 이번엔 가능할까
백범 선생의 손자 김양 보훈처 장관의 결단을 기대하며
방학진 2010/10/20 02:23    

국가보훈처가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독립유공자 20명에 대한 서훈 취소 문제를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당연하지만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그 20명은 강영석(애족장 1990), 김성수(대통령장 1962), 김우현(애족장 1990), 김응순(애족장 1993), 김홍량(독립장 1977), 남천우(애족장 1990), 박성행(애국장 1990), 박영희(애족장 1990), 유재기(애족장 1995), 윤익선(독립장 1962), 윤치영(건국포장1982), 이동락(애국장 1990), 이종욱(독립장 1977), 이항발(애국장 1990), 임용길(애족장 1990), 장지연(독립장 1962), 차상명(애족장 1990), 최준모(애족장 1990), 최지화(애족장 1990), 허영호(애족장 1990) 등이다. 보훈처는 민주당 이성남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를 통해, 20명의 유족 가운데 소재가 확인된 19명의 유족에게 올 2월 8일부터 5월 10일까지 소명자료를 낼 것을 요구했고 이 중 16명의 유족으로부터 소명자료를 받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김성수, 최지화, 이항발, 윤익선 등 4명의 유족은 소명자료를 내지 않았다고 한다.

서춘
친일 행적이 밝혀진 독립운동가들의 서훈 취소 문제와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김영삼 정부 시절인 지난 1996년에는 ‘2.8 독립선언’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대통령 표창을 받은 서춘을 비롯해 김희선, 박연서, 장웅진, 정광조 등 5명의 서훈이 박탈된 전례도 있다. ‘역사바로세우기’라는 측면에서 서훈 취소는 많은 국민들의 지지를 받았지만 역시 하나회 숙청이라는 당시의 정치적 목적 때문에 일회성으로 그치고 후속 조치가 없어 역사문제를 정치에 이용했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역대 정부 중 친일․과거사청산 문제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참여정부 시절인 2005년에도 당시 보훈처는 “독립유공자 가운데 친일 반민족 행위를 한 전력이 드러날 경우 독립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에서 보장하는 모든 혜택을 중단한다.”고 발표했지만 말 뿐이었다. 그러나 만약 이번에 독립유공자가 서훈이 취소가 된다면 상훈법 제8조에 따라 그동안 받아오던 연금이 환수되며 서훈에 따른 예우 중 하나인 국립묘지 안장이 박탈된다. 즉 서춘의 사례에서 보듯 국립묘지에서 이장해야 하는 것이다. 문제가 되고 있는 20명 중 현재 국립묘지에 안장되어 있는 인물은 모두 10명이다. (강영석․김응순․박성행․박영희․유재기․이동락 이상 대전국립묘지, 김홍량․윤익선․이종욱․임용길 이상 서울국립묘지)

이번 보훈처 국정감사장에서 이성남 의원은 김양 보훈처 장관에서 친일행위가 드러난 독립유공자의 서훈 취소에 대해 “아마 외압도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흔들림 없이 원칙대로 처리해주실 것을 약속하실 수 있겠습니까?”라고 묻자 김양 장관은 “네, 이제까지 그래 왔고, 앞으로 그렇게 하겠습니다.”라고 답했다. 김양 장관은 백범 김구 선생의 친손자이다. 역대 보훈처 장관들이 중앙정보부나 전역한 군 장성들이 독차지하던 것을 참여정부 들어 민간인 출신에 독립운동가 후손을 임명하는 것으로 방향을 정한 이후 두 번째 보훈처 장관인 셈인데, 과연 현 정부에서 김양 장관이 거대한 외압을 견뎌낼지 주목된다. 특히 부통령까지 지낸 김성수의 서훈 박탈이 과연 가능할까 여부이다. 만약 김성수에 대한 서훈과 예우가 박탈된다면 ‘민족지’ 동아일보와 ‘민족’ 고대의 위신 문제를 떠나 친일․과거사청산운동에 있어서 일대 사건이 될 것이다.

윤치영. 전 대통령 윤보선이 그의 조카
보훈처의 결단을 기대하며 <친일인명사전>에 오른 독립유공자 20명 중 대표적인 인사들을 살펴보자. 우선 1929년 대한민국임시정부 구미위원부 위원으로 활동하는 등 미주방면 독립운동에 참여한 공로로 건국포장을 받은 윤치영(1898~1996)은 1938년 5월 흥업구락부 사건으로 체포되자 곧바로 9월 신흥우․갈홍기 등과 함께 ‘전향성명서’를 발표하고 석방된다. 이후 그는 ‘황군의 무운장구를 축도함’ ‘싱가폴 함락에 부쳐’를 비롯한 여러 친일 논설을 발표하고 친일 좌담회 등에 참석할 뿐만 아니라 전시 채권을 판매하는 가두판매대에 참여하였고, 친일단체인 조선임정보국단 평의원과 국민동원총진회 중앙지도위원 등을 지냈다. 해방 후에는 이승만 비서실장, 초대 내무장관, 국회 부의장, 서울시장, 공화당 의장 등 역임하는 등 이승만부터 박정희 시절까지 권력의 핵심부를 떠나지 않았다.

1911년 1월 황해도 지역에서 독립자금을 모금했던 ‘안악사건(안명근 사건)’으로 체포되어 15년형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른 공로로 독립장을 추서 받은 김홍량(1885~1950)은 1915년 가석방으로 풀려나 친일로 돌아섰다. 1941년 11월 황해도 지주보국회 회장으로서 30만원을 모금해 일본 육해군에 지주호 2기 헌납을 결정했고, 1942년 1월에는 황해도 양곡조합대표로서 전투기 헌납기금 10만원을 냈다. 해방 후인 1945년 12월 그는 삼일동지회 영수를 맡기도 했다.

1919년 3.1운동 당시 <조선독립신문> 발간 공로로 독립장을 추서 받은 윤익선(1872~?)은 1920년 <조선독립신문> 발간 혐의로 체포되어 1년 6월형을 선고 받지만 이후 감형되어 석방된 후 친일활동에 적극 나선다. 특히 1940년 4월 대동일진회의 산하기관인 동학원의 교장에 취임했다. 대동일진회는 일본의 우익단체 흑룡회의 후원으로 1938년 ‘내선일체와 충량한 황국신민화’를 기치로 내걸고 조직된 친일단체다.

이종욱
1919년 대동단장이며 일제의 작위 수여를 거부한 김가진의 상해 망명을 도왔고, 이어 의친왕 이강의 망령도 도모했으며 임시정부 수립 초기인 1920년 임시의정원(오늘날의 국회) 강원도 대표로도 활동한 공로로 독립장을 추서 받은 월정사 주지 이종욱(1884~1969)은 1941년 4월부터 해방 때까지 조계종 종무총장으로 있으면서 사찰의 범종․촛대․불기까지 거두어 국방자재로 헌납하는데 앞장선다. 해방 후인 1945년 9월 열린 전국승려대회에서 부일혐의자로 지목되어 승권 정지 3년의 징계를 받는다. 하지만 3년이 지나기도 전에 복귀해 1950년 2대 국회의원에 당선되고 이후 1951년 동국대 이사장, 같은 해 11월 조계종 총무원장에 선출된다. 1978년 사리의 일부를 옮기는 형식으로 국립묘지에 안장되었다.

위에서 간략히 살펴본 대로 현재 문제가 된 20명의 친일행적은 명백하다. 따라서 공은 이제 정부에게 넘어갔다. 남은 절차는 보훈처가 서훈 취소 대상자를 확정해 행안부로 통보하면 행안부는 국무회의에 안건을 상정하고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대통령이 재가를 해야 한다. 이명박 정부의 한 축인 고려대 김성수가 포함된 상황에서 서훈 취소에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이럴 경우 할아버지의 ‘음덕’으로 보훈처 장관까지 오른 김양 장관이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가 관심사다. 이전의 보훈처 장관들처럼 슬그머니 꼬리를 내린다면 본인은 물론 우리나라 독립운동의 상징인 백범 김구 선생께 크나 큰 누가 될 것이다. 이 점을 명심해 독립운동가 후손다운 용기와 결단을 기대해 본다. 1949년 6월 26일 백범 선생이 누구의 의해, 무엇 때문에 비명에 가셨는지 김양 장관 자신이 누구보다도 잘 알 것이기에 일말의 기대를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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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인 방학진님은 민족문제연구소 사무국장으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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