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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치의 흔적으로 가득한 서울 남산을 거닐다
강제병합조약 100년을 맞이하면서
방학진 2010/08/26 16:02    

1910년 8월 22일. 그날은 월요일이었고 대한제국의 정례 각료회의 날이기도 했다. 아침 일찍부터 총리대신 이완용을 비롯한 각부 대신들이 모여들었다. 오전 10시 왕실업무를 총괄하는 궁내부 대신 민병석은 순종 황제의 비서실장 격인 시종원경 윤덕영과 함께 데라우치 마사다케 통감을 방문하고 돌아왔다.

오후 1시 각료회의를 마친 각 대신들은 순종 황제가 있는 창덕궁 대조전 흥복헌에서 열린 어전회의에 참석하여 ‘한일병합조약’에 대한 내용을 순종 황제에게 설명한다. 설명을 다 듣고 난 순종 황제는 황족 대표 이재면과 중추원 의장 김윤식에게 이번 조약 체결에 대해 의견을 묻는다. 이에 대해 이재면은 조약 체결은 “부득이”하다고 말했으며 김윤식은 이재면의 의견에 찬성했다.

이어 순종 황제는 이완용을 전권위원으로 임명하였고 이완용은 농상공부대신으로 일본어에 능통한 조중응과 함께 창덕궁을 나와 청계천을 거쳐 남산에 있는 데라우치 통감관저에서 마침내 ‘한일병합조약’을 체결한다. 이때가 오후 4시로 조약은 일주일 뒤 발효되어 8월 29일 대한제국 즉 조용한 아침의 나라 조선은 역사에서 영원히 사라지고 만다. 8월 29일이 되자 마지막 통감이자 첫 조선총독이 된 데라우치는 첫 포고문을 발표한다.

데라우치
대일본국 천황 폐하는 조선의 안녕을 확실하게 보장하고 동양의 평화를 영원히 유지하는 것을 간절하게 생각하여 전 한국 원수의 희망에 응하여 그 통치권의 양여를 수락한 바이다. 지금부터 전 한국의 황제 폐하(순종)는 창덕궁 이왕 전하라 칭하며 … 태황제 폐하(고종)는 덕수궁 이태왕 전하라 칭하여 … 조선 민중은 모두 제국의 신민이 되어 천황 폐하가 어루만져 기르는 교화를 입고 길이 깊고 두터운 인덕의 혜택을 받을 것이다. … 본관이 이번에 성지(천황의 명령)를 받들어 이 땅에 부임한 것은 한결같이 치하의 생민의 안녕과 행복을 증진코자 하려는 것 외에 다른 생각이 없다. … 함부로 망상을 다하여 정무를 시행하는 것을 방해하는 자가 있으면 결단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조선이 식민지로 전락하면서 대한제국 초대 황제인 고종은 덕수궁 이태왕으로 순종 황제는 창덕궁 이왕으로 역시 격하되어 총독의 보살핌을 받는 처지가 되고 만다. 이후 남산은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등을 발아래로 내려다보면서 조선 전역을 다스리는 권력의 심장부로 등장한다. 오늘날 우리민족에게는 치욕의 현장들이 밀집해 있는 남산의 몇몇 곳을 살펴보면서 강제병합 100년을 다시금 되새겨 보면 어떨까.

   조선헌병대사령부 (남산골 한옥마을)

일본은 명성황후 살해사건으로 시작된 을미의병으로부터 서울-부산간 군용 전선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1896년 대구에서 처음 헌병부대를 주둔시킨다. 그 다음에는 전국적으로 확대된 의병활동을 진압하고 대한제국 황실 보호를 내세우며 결국 서울 중심부인 남산에 터를 잡기에 이른다. 해방 후인 1962년 오늘날의 수도방위사령부의 전신인 수도경비사령부가 들어섰고 1989년 수도방위사령부가 남태령으로 이전하면서 남산골 한옥마을로 조성되었다.


   일본공사관, 통감·총독관저 터 (남산 서울유스호스텔 입구 공원)

일본 공사관
일본공사관, 한국통감 관저, 조선총독 관저로 용도를 달리하지만 가장 먼저 터 잡은 것은 갑신정변 이후 들어선 일본공사관이다. 1905년 외교권이 일본에 넘어가면서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담당하는 통감부가 생기면서 이곳은 통감 관저로 사용된다. 바로 이곳에서 이완용-데라이치 간의 ‘한일합병조약’이 체결된다. 조약 체결이후 한국통감부는 조선총독부로 바뀌면서 이곳 역시 통감 관저에서 총독 관저로 위상이 변화된다. 1939년 경복궁 후원에 새로운 총독 관저인 경무대(오늘의 청와대)가 만들어지자 이 건물은 병합조약을 기념하고 역대 통감과 총독의 유물들을 전시하는 시정기념관으로 용도가 바뀐다. 해방 이후 이 건물은 민족기념관으로 잠시 쓰이다가 국립박물관 남산분관 → 국립박물관 → 연합참모본부(오늘날 합동참보본부) 등으로 5.16 이후 악명 높은 중앙정보부가 이곳 일대에 설치되면서 이 건물이 언제 어떤 경위로 철거되었는지 현재 알 수 없다.


   경성신사 (숭의여대)

경성신사는 1898년 남산 왜성대 공원 근처에 모여 살던 일본인들이 이세신궁에서 이른 바 신체 일부를 가져와 건립하였다. 동대문 밖 채석장에서 돌을 가져와 도리이(사찰의 일주문처럼 신사 입구의 커다란 관문)를 만들었으며, 현재는 숭의여대 뒤 산자락에 신사의 흔적이 남아있다.


   한국통감부, 조선총독부 (서울애니메이션센터)

한국통감부
1905년 을사늑약으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장악한 일제는 광화문에 있던 대한제국 외부청사에 한국통감부를 임시로 개살했다가 1907년 이곳에 통감부 건물을 완공한다. 1910년 10월 1일 한국통감부는 조선총독부가 된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돔 모양의 조선총독부가1926년 경복궁 안에 새로 지어질 때 까지 남산에 약 16년 동안 조선총독부가 존속하게 된다, 해방 후 서울예대가 이곳에 교정을 세웠고 1999년 서울예대의 일부가 안산으로 이전하면서 현재는 서울애니메이션센터가 들어서 있다.


   노기신사 (사회복지법인 남산원)

1912년 메이지천황이 죽자 러일전쟁의 영웅으로 일본인들의 존경을 받고 있던 노기 마레스케(대만총독 역임)는 천황의 장례식날에 부인과 함께 자결하면서 군신으로 추앙받는다. 1934년 경성신사 경내에 노기신사가 완공되었고 현재는 사회복지법인 남산원 마당에 석물들이 남아 있다.


   조선신궁 (옛 남산식물원)

조선의 태조 이성계가 한양에 도읍을 정하고 한양의 수호를 위해 북악산과 더불어 이곳 남산에 세운 국사당 터를 짓누르고 세워진 조선신궁은 1920년부터 5년에 걸친 공사 끝에 완공됐다. 정식명칭은 ‘관폐대사 조선신궁’이다. 관폐대사란 일본의 역대 천황ㆍ황족을 기리는 신사를 지칭하는 말로 부여신궁가 더불어 가장 격기 높은 조선의 2대 신궁이다. 조선신궁 참배로는 숭례문에서 시작되어 하광장 - 중광장(현재 남산 백범 광장) 등으로 이어지면서 웅장을 규모로 지어진다. 현재 안중근기념관과 옛 남산식물원이 들어선 곳까지 가기위해 만나는 높은 계단들은 모두 조선신궁의 흔적들로 남산 훼손의 결정판이기도 하다. 한편 교회와 미션스쿨을 중심으로 전개된 신사참배 반대운동으로 20여 개의 교회가 폐쇄되고 2000여 명의 기독교 신도들이 투옥되었으며 주기철 목사 등 50여 명이 순교했다.

최근 한반도 주변에서 대규모 한미 군사훈련이 이어지고 여기에 북한과 중국 일본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100년 우리 땅에서 남의 나라 군인들이 각축을 벌리던 때가 연상된다. 다시는 이 땅에 남산이 안고 있는 치욕의 상흔을 남겨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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