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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혁명 50주년에 기억해야 할 인물들
4.19 당시 국무위원들의 친일경력
방학진 2010/04/20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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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의 하늘을 욕되게 한 김정렬




4월혁명 50주년을 맞는 달이다. 하지만 대학가에서 4월에 일어났던 ‘혁명’을 잊은 지 오래다. 이제는 서울 수유리 묘지까지 달리기하는 대학도 거의 없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나 청년들이 꿈을 꾸지 않는 사회는 오래 지속되기 힘들다. ‘사랑’과 더불어 ‘혁명’이란 단어만큼 청년들에게 매력적인 단어가 또 있을까. ‘혁명’이란 단어 안에는 ‘자유’ ‘정의’ ‘해방’ 그 밖에 인류가 현실을 박차고 도약하고픈 모든 욕망들이 응축돼있지 않은가. 특히나 올 4월은 천안함 침몰 사건으로 민심이 어수선한 가운데 더더욱 초라하게 지나고 있다. 그나마 다행한 소식을 찾는다면 마산 MBC가 제작비 7억 원을 들여 2년 동안 기획한 끝에 4월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던 마산 3·15의거를 소재로 한 역사 드라마 <누나의 3월>이 방영된 것을 들 수 있다.

손현주가 연기한 박종표는 실존 인물로서 일제강점기에는 일제부역자로, 이승만 정권기에는 대한민국의 경찰로 영화를 이어가다 끝내는 419혁명의 도화선이 된 김주열 열사를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하는 만행을 저지른다. 419후 법정에 선 박종표(붉은색 원)

제작비 면에서는 비교가 안되지만 작품성은 5·18을 다룬 영화 <화려한 휴가> 못지않다는 평이 자자하다. <누나의 3월>에서 특히 주목을 끄는 인물은 배우 손현주가 연기한 박종표다. 극중 박종표는 일제시대 부산에서 독립운동가를 때려잡던 친일 형사이자, 3·15 당시 발포를 명령한 악질 형사로 당시 직함은 마산경찰서 경비주임. 박종표는 김주열의 시신을 바다에 유기한 혐의로 사형선고를 받지만 곧 무기로 감형된 후 종적을 감추는 것으로 드라마는 끝이 난다. <누나의 3월>은 당시의 시대상을 잘 보여주는 역사극이다. 예컨대 4월혁명 당시 민중을 억압하던 경찰들이 친일경찰이라는 것, 4월혁명 후 재판을 통해 처벌을 받는 듯 했지만 곧바로 5·16 쿠데타로 인해 흐지부지되는 사연 등. 드라마는 4월혁명의 본질과 한계를 잘 드러내고 있다.

이승만 정권에 의해 반민특위가 해체된 후 전 열린우리당 당의장 신기남의 아버지 신상묵과 함께 무수한 독립운동가들을 투옥, 잔인하게 고문을 일삼았던 박종표는 무죄를 선고받고 풀려났다. 박종표의 무죄 선고를 알리는 당시의 신문기사

이승만이 집권 초부터 친일세력을 등에 업고 권력기반을 확보해 갔고 특히 6·25전쟁 이후 그러한 경향이 더욱 강해졌다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래서 흔히 대한민국 역대 장관들의 일제시대 친일전력이 자주 회자되곤 한다. 그러면 4·19 당시 이승만정권 내각을 이뤘던 장관들 중에서 친일인명사전에 실린 몇몇 인물들을 통해 그 시대를 살아간 박종표류의 인간형들이 누구인지 살펴보자.

김정렬 제3대 공군참모총장. 독립군 노백린 장군과 자주 비견되는 황군의 전투비행사 출신이다. 후에 국방장관을 거쳐 노태우 정부시절 국무총리를 지냈다. 친일부역자들은 일그러진 대한민국 사회에서 자손만대에 걸쳐 부귀영화를 누린다는 정설을 대표적으로 보여준 인물이다.
당시 국방부 장관이었던 김정렬(1917~1992)은 1940년 일본 육사 54기로 졸업했는데 그의 아버지 역시 일본 육사 26기로 일본군 보병 대위를 지낸 김준원이다. 김정렬은 1941년 육군항공사관학교 전투기과를 마치고 일본군 항공 소위로 임관한다. 미국이 역사상 가장 치욕적인 패배로 생각하는 1941년 12월 8일 하와이 진주만 공격 당시 김정렬은 그날 오전 5시 미군 공군력을 거의 궤멸시킨 필리핀 공격작전에 참가한다. 이 때문에 김정렬은 최명하, 노태순과 더불어 태평양전쟁 개전 당일 참전한 3명의 조선인 장교의 한사람으로 분류된다. 그 후 김정렬은 일본 본토 오즈키 기지로 돌아와 본토 방위를 담당하다가 최신예 전투기 ‘하야부사’(송골매라는 뜻)로 무장한 248전대 신설 책임자를 맡았다. 또한 일본 육사 54기생 중 단 4명만이 선발된 아케노비행학교의 갑종학생에 선발되어 1943년 3월 수료했는데, 이 학교는 최고급의 비행술을 교육하는 곳이었다. 1943년 7월 동기생 중 최초로 전투기 중대장에 발탁된 김정렬은 인도네시아로 이동했다. 이후 뉴기니아, 자바, 수마트라, 코코스 섬 등에서 미군, 영국군 등과 치열한 공중전을 벌인다. 이런 김정렬의 이야기는 당시 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 1943년 9월 20일자에 “아버지 따라 군인으로-남방 최전선에 선 향천정웅(김정렬의 창씨명-글쓴이 주) 중위”라는 기사로 소개되기도 한다. 8·15 후 겨우 국내로 돌아 온 그는 대한민국 공군 창설의 주역으로 등장해 공군참모총장을 지내며 군의 여러 요직을 거친다. 4·19가 주로 경찰의 책임으로 집중되면서 당시 국방장관이던 김정렬은 아무런 문책도 받지 않았다. 이후 김정렬은 박정희, 전두환 여러 정권 아래서 공화당 초대의장, 국회의원, 삼성물산 사장, 국무총리 등을 지냈다.

마산사건 관련 기자회견을 하는 홍진기 법무부 장관. 이승만 정권의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군중을 향해 발포 한 후 "총은 쏘라고 만든 것이다" 라는 유명한 일화를 남겼다. 홍진기의 큰 딸은 이건희의 부인인 홍라희. 큰 아들이 노 전 대통령 때 주미대사를 지냈던 중앙일보 회장 홍석현이다.

당시 내무부 장관이던 홍진기(1917~1986)는 경성제대 졸업 후, 일본 고등문관시험 사법과에 합격한 후 사법관시보와 예비판사를 거쳐 1944년 전주지법 판사에 임용된다. 해방 후 줄곧 법무부 등에서 일했던 홍진기는 1960년 3월 내무장관에 임명되었다. 내무장관은 경찰을 지휘할 뿐만 아니라 선거업무를 담당하는 부서였으므로 관권선거를 자행해 온 이승만은 항상 자신의 심복을 그 자리에 임명했다. 이승만의 충복으로 유명한 이기붕 역시 부통령이 되기 직전 내무장관을 지냈다. 홍진기는 1960년 5월 3·15 부정선거사건으로 체포되어 박정희의 혁명재판소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으나, 1963년 8월 광복절 특사로 석방된 후 1964년 라디오서울방송 사장을 시작으로 언론계에 진출해 1965년 사돈인 이병철이 창간한 중앙일보와 동양방송의 회장을 지냈다. 홍진기는 1970년에 국민훈장 모란장을 1986년에는 금관문화훈장을 추서받았다. 현재 그의 아들 홍석현이 중앙일보를 경영하고 있다.

당시 농림부 장관이던 이근직(1903~?, 본명 이계록, 1950년대 개명)은 1928년 일본 고료대학 졸업 후, 강원도 원주를 시작으로 강원지역에서 총독부 관리로 일했다. 1932년 조선쇼와 5년 국세조사기념장을 받았다. ‘조선국세조사’란 당시 인구 조사를 말하는데 일제시대에는 1930년, 1935년, 1940년, 1944년 등 총 4차례 실시됐다. 국세조사 결과는 당시 일제의 식민정책을 수립하는 데 기본적이면서 중요한 자료로 활용되었다. 이근직은 1942년 7월 강원도 평창군수로 승진한 직후 해방을 맞는다. 이승만 정권 아래서도 경북지사, 내무장관 등을 두루 지낸 그는 홍진기와 마찬가지로 3·15 부정선거에 개입한 혐의로 1961년 12월 혁명재판소 상고심에서 7년형을 선고받았지만 이듬해인 1962년 7월 신병을 이유로 형집행정지 처분을 받고 출옥한 후 종적을 감추었다.

김일환 당시 교통부 장관. 만주의 간도특설대 출신으로 대한민국 3성 장군이자 이승만 정권에서 상공부, 교통부 장관 등 요직을 거쳤던 정치 군인이었다.
당시 교통부 장관이던 김일환(1914~2001)은 일제가 세운 꼭두각시 나라인 만주국의 중앙육군훈련처(일명 봉천군관학교) 5기로 졸업해 1937년 만주국군 소위로 임관한다. 해방 당시 만주국 보급부대의 상위(오늘날의 대위)였으나 곧 소련 해군의 포로가 되어 중국대륙 동북단인 자무쓰로 끌려가던 중 탈출하여 1945년 12월 평양에 도착, 1946년 3월 가족과 함께 월남한다. 그 후 이승만 정권 아래서 국방차관, 상공부 장관, 내무부 장관 등 요직을 두루 거친다. 김일환 역시 3·15 부정선거에 개입한 혐의로 1961년 12월 2년6월을 선고받았다. 그 후 김일환은 재향군인회장을 5차례나 연임하였고, 한국전력 사장, 한진관광 사장, 관광협회장, 한국외국어능력평가원 이사장, 어린이재단 대표, 이화학당(이화여대 재단) 이사 등들 지냈다. 김일환을 소개하는 어느 인물정보란에는 그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여전히 이승만을 꼽고 있는 것이 눈에 띈다.

이외에도 이승만정권 전 기간에 걸쳐 상당수의 친일경력자들이 요직에 등용된 사실은 이미 상식처럼 되어 있다. 하지만 그들의 이름을 오늘날 우리들이 망각에 커튼 뒤에 익명인체로 남겨 놓는 한 극중 박종표는 또 다른 이름으로 우리 앞에 등장을 준비할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이다. 50년 전 제자들의 희생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면서 거리로 나선 교수들이 내건 구호는 그대로 오늘날도 유효하다. “학생들의 피에 보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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