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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인명사전 발간은 친일청산의 끝이 아닌 시작
역사 대중화에도 박차를 가할 것
방학진 2009/12/02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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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우여곡절과 간난신고를 끝에 친일인명사전이 세상에 나왔다. 민족문제연구소가 출범한지 18년 9개월만이며,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가 구성돼 본격적으로 편찬 작업에 착수한지 꼭 7년 11개월 만이다. 역사를 더 거슬러 올라가면, 친일문제연구의 선구자로『친일문학론』의 저자인 임종국 선생이 돌아가신지 꼭 20년 만에 후학들이 이룬 성과다. 임종국 선생은 이른 바 ‘재야사학자’다. ‘강단 사학자’들이 애써 외면했던 친일문제연구라는 외로운 깃발을 들고 들판에 홀로 선 분이다.

대부분의 독립운동가들이 그러하듯 임종국 선생 역시 연구에 전념하느라 가족을 돌보는 일에는 소홀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자신의 아버지 임문호를『친일문학론』안에 친일파로 써넣어야만 했던 고뇌는 어떠했을까. 컴퓨터도 없던 시절, 싸구려 수첩에 빼곡히 적어 놓은 약 2만 여명의 친일인명카드는 20년 후 친일인명사전이 있게 한 밀알 바로 그 자체였다. 원로시인 이기형은 임종국 선생의 혈고인 친일인명카드가 팔만대장경처럼 여겨질 때 비로소 우리 역사가 바로 설 것이라고 역설했다.

친일청산 작업의 기초를 놓은 ‘재야사학자’ 임종국 선생

친일인명사전의 연혁을 좀 더 거슬러 올라가 보면 60년 전인 1949년 6월에 일어난 두 사건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1949년 6월 6일 백주대낮에 친일경찰들에 의해 무장해제를 당하고 무릎을 꿇어야 했던 ‘반민특위 습격사건’과 20일 후에 일어난 ‘백범 암살사건’ 말이다.

백범 암살을 정점으로 하여 이로써 이 땅에서 친일청산은 민족적 염원이 아니라 빨갱이의 농간이요 국론분열행위로 간주되어, 어김 없이 철퇴를 각오해야만 했다. 여전히 60년 전 친일청산 반대 논리는 토씨 하나 바뀌지 않은 채 반복되고 있지만 그래도 희망적인 것은 친일인명사전의 발간 과정에서 보여준 시민들의 참여였다.

친일의 원죄에서 자유롭지 못한 기득권자들의 방해로 여러 차례 사전 발간이 난관에 부디 칠 때마다 어김없이 시민들이 나서주었다. 대표적으로 2004년 1월 단 11일 만에 국민모금을 통해 5억원을 모아준 일과 이에 앞선 1999년 사전 편찬을 지지하는 전국 교수 1만인 서명이 그것이다. 이러한 자랑스런 기록은 대한민국이 2차 대전 종료와 함께 진행된 파시스트와 그 협력자 처벌이라는 시대정신을 따르지 못한 유일한 나라라는 오명을 벗기 위한 민간차원의 눈물겨운 노력의 결과다.

발간 직후 이뤄진 한국사회여론연구소의 여론조사에 의하면 사전발간에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부정적인 답변보다 2배나 많았다.(사전 발간 잘한 일 : 58.6%, 잘못한 일 : 31.8%, 잘 모르겠다 : 9.6%) 연령층으로는 20~30대 젊은 층에서 특히 긍정적인 평가가 많은 것은 고무적인 일이며 특히 한나라당과 친박연대 지지층에서조차 잘한 것, 잘못한 것이라는 양쪽의 평가가 팽팽하게 나타난 것은 사전이 갖는 의미에 대한 폭넓은 공감대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일인명사전의 앞날은 결코 순탄해 보이지 않는다. 조중동을 비롯해 사전 발간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 거의 이성을 잃은 모습 때문이다. 특히 이른 바 친박계 국회의원들도 노골적으로 반감을 드러내고 있다. 대표적인 친박계인 한선교 의원은 대정부 질문에서 정운찬 총리에게 “민족문제연구소의 성격을 규정해 달라”며 총리를 추궁했다. 그리고 친박연대 이규택 대표는 당 최고위원 회의에서 어김 없이 색깔론을 꺼내들었다. 다음은 친박연대 이규택 대표의 발언이다.

“민족문제연구소가 4389명의 친일인명명단을 공개한 것은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이는 객관성과 형평성을 무시한 채 마치 특정인들을 겨냥한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으며 앞으로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독일이 히틀러의 암울한 시대를 거쳤지만 아직 나치범 명단이 없다. 김일성이 공산정권을 잡을 때의 수법이란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결국 국론분열을 더욱 조장할 이번 친일인명명단을 무더기로 공개한 것은 매우 적절치 못한 일이다.”
친일인명사전이 박근혜 의원을 겨냥했다는 것이다.

일제 강점기 때 일제에 부역했던 4389명의 명단과 그들의 활동상을 기록한 친일인명사전. 민족문제연구소가 지난 8년 간 각고의 노력 끝에 11월 8일 발간했다.
그러나 민족문제연구소가 처음으로 박정희의 친일에 대해 이야기 한 것은 1994년 <청산하지 못한 역사>라는 단행본을 발행하면서 부터다. 박근혜 의원은 1998년 4월 치러진 대구 달성군 보궐 선거에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되어 정계에 입문했으니 ‘박근혜 의원 겨냥’ 운운은 이치에 맞지 않음을 단박에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대세력들은 친일인명사전을 학술영역이 아닌 정치영역으로 끌어들여 흔한 수법인 색깔론과 음모론으로 끈질기게 발목을 잡을 것이다. 그들은 사전의 내용에 대해 어떠한 허점도 잡아낼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거니와 그러한 수법이 지난 60년 동안 잘 통했던 탓이기도 하다. 때문에 어쩌면 우리들은 지난 18년 간 사전을 만드는 일에 혼신의 힘을 기울인 것처럼 앞으로는 사전을 지키는 데도 같은 노력을 해야 마땅하다.

우선은 전국의 모든 도서관 특히 초중고 도서관에서 학생들이 이 사전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어렵게 나온 사전이 널리 보급되지 못하고 읽히지도 않는다면 그것은 사전이 발간되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사전 발간 작업이 본격화된 지난 8년간 민족문제연구소는 근무일 중 단 하루도 야근이 없었던 날이 없었다. 당초 2005년이 발간 목표였으나, 안팎의 사정으로 4년이나 늦어졌다. 내부적으로는 편찬작업에 참고할 만한 선행작업이 없다보니 시행착오의 연속이었고 외부에서는 소송과 이의제기의 쇄도로 그렇지 않아도 부족한 시간과 비용 그리고 인력의 누수현상이 계속되었다.

게다가 이 사전이 갖는 무게감 때문에 연구자들은 살얼음판을 걷듯 작업 하나하나에 심혈을 기울이다 보니 작업 속도는 늦어졌다. 심지어 오탈자가 하나라도 나오면 반대자들이 공격할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여기에 정권의 압력 때문에 발간이 늦어지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표하는 일부 네티즌의 글에 가슴앓이도 있었다.

이제 사전 발간이라는 큰 산을 넘은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연구소는 발간 일주일이 지나도록 상근자들이 모두 모여 자축 회식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곧바로 수록대상에서 일단 보류된 300여명에 대한 조사 작업에 착수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대부분이 만주국에 소속된 군인들로 최종적으로 이들의 친일행위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현지 조사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전적으로 회비로만 운영되는 재정 구조상 쉽게 출장을 떠나기도 쉽지가 않다.

앞으로 민족문제연구소는 친일인명사전에 이어 2015년까지 일제협력단체사전(국내 중앙편·지방편·해외편), 식민지통치기구사전, 자료집, 도록 등 총 20 여권의 친일문제연구총서를 완간할 계획이고 나아가 전시·교육을 전담할 역사관 건립과 전문분야별 인물별 연구서 발간, 일반교양 서적 보급도 추진해 심도 있는 친일문제 연구와 함께 역사 대중화에도 박차를 가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원대한 계획 역시 결국 시민들의 성원에 성패가 달려있음은 두말이 필요하지 않다. 끝으로 친일인명사전 발간에 성원을 보내준 우리힘닷컴 가족들께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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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인 방학진님은 민족문제연구소 사무국장으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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