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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기념관’이 대한민국 역사의 랜드마크가 될지도 모른다
대법원, 끝내 박정희기념사업회 측 손 들어줘
방학진 2009/05/11 17:55    

지금은 서울월드컵 경기장으로 유명한 상암동은 과거에는 난지도 쓰레기 매립장으로 더 유명했다. 1978년부터 1992년까지 서울시와 인근 도시에서 배출되는 온갖 쓰레기를 무차별 쏟아 부어 악취가 진동하던 곳이었다. 1980년대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던 노동자, 학생 그리고 민주화운동 과정 중 자식을 감옥에 보낸 어머니, 아버지들 치고 시위 중 경찰차에 실려이곳 난지도 매립장에 버려지지 않은 분이 별로 없을 것이다. 당시만 해도 이곳을 왕래하는 버스도 거의 없는 터라 한 여름에 난지도에 버려진 경우에는 악취와 설움 분노를 곱씹으며 마포쪽으로 한참을 걸어 나와야 했다. 이런 일에 이력이 붙은 분들 중에는 경찰에게 “오늘은 시위에 더 이상 참가하지 않을 테니 이왕이면 난지도 말고 지하철역 입구에 내려달라”고 부탁 아닌 부탁을 하곤 했다.

그러나 상전벽해라 했던가. 옛부터 난꽃과 영지의 자생지로 유명해 난지도로 불렸다던 이곳이 쓰레기 매립장 신세를 면하고 하늘공원과 노을공원이라는 대규모 공원으로 탈바꿈하더니 이제는 한국에서 제일 높을 뿐 아니라 세계에서도 2번째로 높은 640m의 133층 초고층 빌딩이 2015년 완공된다고 한다. 일명 ‘서울 DMC(디지털미디어시티) 랜드마크 빌딩 프로젝트’. 날이 좋으면 개성까지 보일 것이라는 이 빌딩에 대해 오세훈 서울시장은 “서울의 매력을 한층 높이는 동시에 서울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관광자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초고층 빌딩 바로 옆에 들어설 건물이 하나가 더 있다. 이름 하여 ‘박정희 대통령 기념․도서관’(이하 박정희기념관)이다.

지난 4월 23일 대법원1부(주심 차한성)는 박정희기념관 건립 지원을 위한 국고보조금 지급을 취소한 행정안전부(취소 당시 행정자치부)와 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회(회장 김정렴 : 박정희 시절 대통령 비서실장)의 소송에서 행전안전부의 상고를 기각하고 원고 승소를 확정했다. 이로써 4년을 넘게 끌어온 박정희기념관에 대한 법정 다툼은 막을 내리게 되었다. 여기에서 박정희기념관 사업에 대한 경과를 잠시 살펴보자.

1997년 이른바 ‘DJP연합’을 통해 집권을 꾀하던 당시 김대중 대통령 후보는 영남 유권자들의 한 표가 아쉬운 상황에서 선거 막바지인 1997년 12월 5일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기념사업 지원을 공약했다. 이후 1999년 5월 13일 대통령으로서 경상북도 도청을 초도순시한 자리에서 박정희 대통령 기념관 건립 건의 등을 받고 정부지원을 약속하였다. 이에 앞서 김대중은 당선 직후 대구를 방문해 ‘TK 마피아의 대부’로 불리는 신현확 전 국무총리를 만나 박정희기념관 건립을 약속하며 대구 경북지역의 정치적 지지를 호소하기도 했다. 당시 신현확은 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회 회장을 맡고 있었다. 그러니까 박정희기념관은 TK 인사들에게 주는 일종의 정치적 선물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을 보좌 중인 신현확 씨. '박정희 기념관'은 정치적 산물이었다.

결국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이 법률은 1969년 1월에 만들어졌으니, 박정희는 자신이 만든 법률에 의해 자기 자신이 첫 수혜자가 된 셈이다)을 근거로 국무회의를 통과하면서 박정희기념관 건립 사업은 총사업비는 709억원(국고보조금 208억원, 기부금 500억원)의 규모로 정해졌고 서울 마포구 상암동 산 26 상암 제4근린공원 내 약 3,500평 부지에 지상 3층, 연면적 1,591평 규모로 들어설 계획이 마련되었다. 그러나 이런 계획이 발표된 직후 민주화운동 진영은 일대 요동치기 시작했다. 야당 정치인 김대중과 함께 오랜 기간 민주화운동에 헌신한 재야인사들은 독재자 박정희기념관을, 그것도 다름 아닌 민주화 동지인 김대중 대통령이 앞장서 건립한다는 사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곧이어 전국 247개 단체들이 모여 ‘박정희기념관반대국민연대’를 결성하였는데 당시에는 가장 많은 단체들이 모인 연대기구였다.

박정희기념관 건립 사업을 추진하면서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내세운 명분은 ‘역사와의 화해’였지만 그 밑바닥에 깔린 정치적 목적은 이른 바 ‘동진정책’이었다. 그러나 ‘동진정책’이라는 것은 실상 결과를 놓고 보면 5, 6공에 가담한 영남인사들에 대한 면죄부에 지나지 않았다. 게다가 명분으로 내세운 ‘역사와의 화해’란 것도 결코 순수하지 않은 동기로 시작했다는 것은 아래의 1심 판결문에서도 엿볼 수 있다.

“특정한 역사적 인물의 기념사업에 대한 국가의 보조는 그 인물에 대한 다양한 견해를 공론의 과정을 거쳐 여과한 후 성숙된 시민의식과 여론에 기초하여 이루어질 때 진정한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이 사건 보조사업(박정희기념관 건립-필자 주)은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결정되고 추진된 사업으로서 이로 인하여 그 태생부터 문제를 제기하는 견해가 있음은 주지하는 바와 같다. 그러나 행정에 있어서의 신뢰보호의 원칙과 비례의 원칙은 모든 행정객체에 대하여 동등하게 적용되어야 하는 것이고, 이는 행정의 상대방인 국민에게 법적 안정성을 가져다주는 것으로서 이 원칙에 위배되는 행정행위는 위법을 면할 수 없다”

결국 박정희기념관 건립은 문제가 많지만, 정부 스스로 행한 행정행위가 법적으로 문제가 없으므로 기념관 지원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회 측이 처음 계획한 자료를 보면 기념관 건립 기간은 약 2년 6개월 정도이다. 대법원 판결로 인해 당장이라도 건립이 가능한 상황이니 만큼 현 정부 임기 안에 기념관 완공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그동안 줄기차게 이승만과 박정희 우상화에 열을 올리며 ‘건국’이니 ‘현대사박물관’이니 하며 무리수를 두던 뉴라이트 세력들의 숙제가 한순간에 해결되게 생겼다.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이라는 보물을 발견했으니 말이다. 이 법률에 의한다면 이승만기념관도 건립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박정희기념관 국고 지원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있은 지 이틀 후인 4월 25일 서울 명동 향린교회에서 봄비가 내리는 가운데 ‘진실과미래, 국치100년사업공동추진위원회’ 창립대회가 열렸다. 취재진을 포함해 약 200여 명 남짓한 사람들이 모였다. 참가자 중에는 나름대로 각계각층 지도급 인사들도 많았지만 근현대 우리 민족 최대의 비극인 1910년 한일병탄 100년을 앞두고 결성한 단체의 창립대회치고는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더불어 박정희기념관은 100년 전 식민시절에 대한 반성의 준비조차 되어 있지 않은 대한민국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런 마당에 역시 내년으로 다가온 ‘4․19혁명’ 50년과 동족상잔의 ‘6․25’ 60년을 어떻게 맞이할지 걱정이다. 박정희기념관이 대한민국 역사의 랜드마크가 되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지 않은가.


< 필자인 방학진님은 민족문제연구소 사무국장으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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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김대중 전 대통령. 율전 2009-05-19 /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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