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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진의 민족바로세우기


친일유물 감추기에 급급한 토호들
친일파의 알리바이를 위해 수난당하는 역사유물을 어떻게 할까
방학진 2008/10/16 16:55    

일본의 차기 수상으로 아소 다로가 당선됐다. 일본 정치의 병폐중 하나인 세습정치의 상징적인 인물이기도 한 그는 게다가 극우적이기까지 하니 향후 한일 관계는 더욱 꼬일 것이 분명하다. 특히 아소 다로의 증조부가 창업한 아소탄광은 일제강점기 징용으로 끌려온 조선인들에 대한 학대로 악명이 높았다. 불과 5,60전에 팔려와 험한 굴속에서 혹사당한 조선인 노동자들이 일본 도쿄 노동총동맹과 연합해 파업으로 항거했던 그들의 목소리는 당시 격문에 이렇게 남아 있다.

“타도! 폭력 착취의 거귀(巨鬼) 아소 재벌, 민족적 차별대우 절대 반대”

일제 당시 피해자들이 버젓이 살아 있는 데도 군 위안부의 존재마저 부정하는 아소 수상은 아마도 생존자들이 모두 사망하고 나면 얼마나 기고만장할지 사뭇 걱정이 앞선다. 그런데 그런 걱정에 앞서 요즘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친일과 독재에 대한 왜곡은 서서히 도를 넘어서고 있으니 이 일을 어찌할까. 한나라당과 조중동 그리고 뉴라이트 계열 인사들은 고등학교 근현대사 교과서 필자들을 친북좌파로 몰아세우는가 하면 심지어 ‘건국절’을 반대했다고 하여 건국회라는 듣기에도 생소한 우익단체는 광복회를 고발하는 지경에까지 왔다. 바야흐로 ‘한국판 후쇼샤 교과서 파동’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이럴 때일수록 역사의 기본이 되는 당시 사료와 유물들에 대한 남다른 관심과 관리가 필요하다. 특히 일제식민지의 시대상을 좀 더 자세히 보여주는 유물이라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현재 몇몇 지역에서 일제시대 세워진 친일파의 비석을 놓고 벌어지고 있는 광경을 보면 우울하다.

먼저 용인시 양지면 양지초등학교에 있는 ‘팔굉일우’비석의 경우다. 양지초등학교는 개교한지 100년이 넘는 학교다. 학교가 세워질 당시부터 오랫동안 이 지역은 매국노로 한말 양지현감을 지내기도 했던 송병준(1857-1925)과 그의 아들 송종헌(?-1949)이 위세를 떨치던 곳이다. 어린 시절 외갓집이 있던 양지에 얼마간 머물었던 독립운동가 고 조문기 선생의 증언에 의하면, 송종헌은 자신이 행차하는 데도 모른 척하며 빨래만 하던 어느 아낙을 장총으로 쏴 죽이고도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았다고 한다. 왜냐면 당시 작위를 받은 자는 천황의 일가로 간주하여 천황의 지시가 없으면 어떠한 처벌도 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금도 양지면 추계리에는 송씨 일가의 대저택 터(현재는 온누리교회 소유)가 남아있을 정도다. 송병준은 일제로부터 매국의 대가로 백작의 작위를 받았으며, 송종헌 역시 작위가 아들에게 자동 승계됨에 따라 백작의 작위를 누리며 부자가 동시에 친일인명사전 수록 예정자로 올라 있는 인물들이다. 특히 송병준의 후손들은 최근까지도 친일파인 자기 조상의 땅을 찾기 위해 소송까지 서슴지 않아 국민적 분노를 사고 있다.

최근 바로 이 학교 놀이터에서 송종헌이 직접 쓴 ‘팔굉일우(八紘一宇)’라는 글자가 새겨진 비석이 발견됐다. ‘팔굉일우’란 ‘온 세계가 천황의 품안에서 한 가족’이란 뜻으로, 일제가 침략 전쟁을 합리화하기 위해 내건 구호의 하나였다. 길이 120㎝의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이 비석은 1941년 이 학교 동창회가 개교 30년을 기념해 송종헌의 글을 받아 세운 것이다. 팔굉일우비 외에도 최근에는 학교 앞 도로공사로 학교 놀이터를 옮기는 과정에서 ‘현감 송병준 선정비’와 송종헌의 ‘영세기념비’로 추정되는 비석 등 2점이 추가로 발견됐다. 문제는 이 다음부터다. 민족문제연구소는 비석 발견 직후부터 꾸준히 이 학교 교장과 상급기관인 용인교육청에 ‘비석을 학교에 방치하기보다 일제의 식민정책을 고발하는 역사교육자료로 활용될 수 있도록 우리 연구소에 기증해 달라’는 의견을 여러 차례 전달했다. 만약 연구소에 기증하기 어렵다면 자세한 안내문과 함께 학교 안에 다시 세워 학생들과 주민들을 위한 역사 교육 자료로 활용하도록 요구했다. 그러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학교와 동문회는 비석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는 것을 극도로 꺼렸다.

또 하나의 사례는 춘천시 동면 가산초등학교에 있던 민형식․대식․규식 삼형제의 공덕비다. 이 비석 역시 일제로부터 자작 작위를 받은 친일파 민영휘(휘문고 설립자이며 현재 그 후손들은 남이섬의 주인이기도 하다)의 세 아들 형식·대식·규식이 이 지역의 발전에 기여하고 학교 설립에 도움을 준 것을 찬양하여 1937년 당시 주민들이 성금을 모아 건립한 것이라 한다. 올 초 이 학교 졸업생의 제보 후, 몇 차례 학교장을 설득한 끝에 어렵게 기증을 받아 왔지만 뒤늦게 이 소식을 접한 지역 유지들이 난데없이 비석의 반환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자신을 이 지역 어느 단체의 회장이라고 밝힌 어떤 노인은 민씨 형제들이 친일을 했건 안했건 자신은 알바 아니며 면의 재산이니 무조건 반환하라는 것이다. 만약 반환받으면 민씨 형제들의 친일행위를 적은 안내문과 함께 교육 자료로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대답은 없다. 며칠 후 지역의 여러 단체들은 연명으로 공문을 보내 다시 한번 비석 반환을 요구했다. 여기에는 이 지역 출신 시의원도 포함돼 있다.

왜 하필 지역 유지들은 이처럼 자신들과 전혀 상관이 없어 보이는 일제 찬양 조형물에 그토록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일까. 겉으로는 “잘못된 역사도 역사인 만큼 이들 비석을 지역 밖으로 유출할 수 없다.”는 입장이지만 속내는 아마도 다른 곳에 있을 것이다. 일제시대 조선인들에 의해 수도 없이 세워졌던 일제 찬양 조형물들은 해방 직후 그 조형물 건립에 관여했던 자신들의 치부를 가리고 싶은 사람들에 의해 의도적으로 파괴, 훼손, 방치됐다. 그러한 조형물들은 파괴되어 어딘가에 버려지기도 하고, 땅 속에 묻히기도 하고, 기존의 내용을 지우고 전혀 다른 용도의 비석으로 다시 제작되기도 했다. 즉 친일파들에 의한 알리바이 조작이 전국적으로 벌어졌던 것이다.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경기 광주군 퇴촌면 나눔의 집)에는 당시 일본군들이 사용한 콘돔(사쿠 : 자루를 뜻하는 영어 sack의 일본식 발음)이 전시되어 있다. 나는 위안부 역사관에서 그 사쿠만큼 강렬한 인상을 주는 전시물이 없다고 본다. 이미 본래의 용도가 폐기된 '그것'은 ‘그곳’에서 새롭게 자기 용도가 발현되고 있는 것이다. 즉 ‘누가’ ‘어떤 의도’로 ‘무엇’을 ‘어디’에 ‘어떻게’ 전시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이 기억하고 이해하는 역사는 전연 다를 것이다. 기억을 둘러싼 투쟁은 그래서 중요하다.

※ 용인과 춘천의 경우 외에도 연구소는 몇 군데 지역에서 위와 비슷한 투쟁을 지금도 벌이고 있다.


< 필자인 방학진님은 민족문제연구소 사무국장으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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