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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하게, 겸손하게, 똑똑한 발음으로, 무슨 죄인지 명확히’
천주교 평신도 김유철님이 쓴 <깨물지 못한 혀>를 읽고
방학진 2008/09/23 17:01    

광우병 의심 미국산 쇠고기 파동에 이어 ‘종교편향’ 문제로 성난 불교신자들을 달래기 위해 대통령이 또 다시 유감을 표했다. 우리나라가 정교가 분리되어 있고 특정 종교를 숭상하는 종교국가도 아닌 것은 분명하지만 종교의 힘 특히 신∙구교를 포함한 기독교는 한국 사회에서 무시할 수 없는 존재다. 흔히 하는 말로 해병대 전우회, 고대 교우회, 호남향우회를 결속력이 강한 3대 단체로 꼽는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의 모습을 보면 여기에 기독교를 포함해야 할 것 같다. 반공, 반북, 친미 집회를 위해 서울시청광장을 가득 메울 수 있는 강력한 동원력을 갖춘 조직은 현재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즉 한기총이라 불리는 보수 기독교단이 유일하다.

이렇듯 종교국가도 아닌 우리나라에서 종교문제가 연일 화제가 되고 있는 이러한 후진성의 원인은 무엇일까. 혹자는 그 원인을 서구 제국주의자들의 영토 확장주의와 기독교의 공격적인 전도주의의 결합에서 찾기도 한다. 실제로 조선에 건너온 초기 선교사들이 제국주의 침략의 첨병 역할을 일정 부분 수행했음을 부인하기 힘들다. 이러한 상황에서 조선의 초기 기독교인들은 위기에 처한 민족의 처지를 어떻게 개선하는가하는 현실적인 시대 인식보다는 정교분리라는 이름으로 식민지 현실을 도피하고 내세를 기약하는 기복신앙에 몰입하게 된다.

물론 그러한 상황에서도 식민지의 현실을 온몸으로 저항한 기독교인들이 적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그들은 재야에 내몰린 광야의 지도자일 뿐이었다. 따라서 일제 시기 대부분의 조선인 기독교 지도자들은 정교분리라는 이름 아래 결국 식민지배 체제를 인정하고 결국 천황이라는 새로운 우상마저 숭배하는 씻기 힘든 죄를 범하고 만다. 그래서 한국 기독교는 신사참배라는 원죄에서 지금도 자유롭지 못하다.

그렇다면 친일과 심지어 신사참배라는 배교행위까지 저지른 친일 종교인들은 어떻게 고스란히 해방 후에도 그 지위와 더불어 막대한 교회 재산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승만이 단행한 기형적인 토지개혁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헌법에 의거하여 농지를 농민에게 적절히 분배함으로써 농가경제의 자립과 농업생산력의 증진으로 인한 농민생활의 향상 내지 국민경제의 균형과 발전을 기함을 목적’으로 1949년 6월 21일 제정된 농지개혁법은 그러나 그 속을 들여다보면 거의 일제시대 조선인 지주들에게 안전하게 토지 소유를 인정해 주는 면죄부라는 비판을 면키 힘들다.

1949년 6월 법이 제정은 되었으나 실제 시행은 1년이 지난 1950년 4월에 와서야 이뤄진다. 1945년 해방과 더불어 즉각 이뤄졌어야할 토지개혁이 이처럼 5년을 지체하는 동안 지주들이 소작지를 여러 가지 방법으로 숨겨 둘 수 있는 시간을 준 것은 물론 소작농들이 피땀 흘려 개간해놓은 간척지며 교육기관, 학술연구기관, 후생기관, 종교단체, 기업체 등 단체들의 소작지는 토지개혁에서 예외로 한 결과 지주들은 토지를 합법적으로 보존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종교단체들은 이처럼 토지개혁의 무풍지대가 되면서 친일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종교지도자들은 여전히 막대한 교회재산을 운영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된다. 물적 토대를 거머쥔 그들에게 과거의 친일행위는 굳이 반성하고 고백하고 사죄할 일이 아니었다. 여기에서부터 한국교회의 세속화는 본격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친일 종교인들은 다시 반공과 친독재로 말을 갈아타면서 사회와 교단의 혜택은 최대한 누리면서도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책임은 회피하기 급급했다. 올 1월 MBC 시사프로그램 ‘뉴스후’에서는 ‘세금 안 내도 되는(?) 사람들’이라는 제목의 특집을 방영하면서 목사ㆍ신부ㆍ승려 등 일부 종교인들이 호화로운 생활을 하고 있다고 고발하며 성직자들에게 소득세 등 세금을 부과하지 않는 현행 소득세법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또한 방송 당시 중앙일보 설문조사에서는 종교인들도 “세금을 내야 한다”는 응답이 88.6%로 압도적이었다. 급기야 종교법인법을 제정하여 종교단체도 일정한 투명성을 갖춰야 한다고 운동이 전개되고 있는 실정이다.www.rnlaw.co.kr 그러나 서울시를 하나님께 봉헌하겠다는 개신교 장교가 대통령인 우리나라에서 그 법이 제정될 수 있을지 심히 회의적이다.

지난 4월 29일 민족문제연구소와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는 친일인명사전 수록 예정자 4,776명을 발표했다. 이중 종교분야는 202명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202명의 이해관계인(유족, 기념사업회 관계자, 해당 종단 지도자)중 어느 누구도 그들 선대의 친일행위에 대해 공식 사죄하고 반성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천주교 서울대교구(교구장 정진석 추기경)는 명단 발표 다음 날 대변인 허영엽 신부 명의로 성명을 발표했다. “민족문제연구소와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가 발표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인물’ 명단에 전 서울대교구장 노기남 대주교 등 가톨릭 인사 7명이 포함된 것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면서 “일본은 전쟁 마지막 시기에 국민총동원 취지로 종교, 문화 등 각 단체마다 총동원단체를 일방적으로 만들었고, 천주교에서는 노기남 대주교가 대표가 되고, 신자들 중에서는 장면 박사가 대표로 된 것”이라며 “겉으로 드러나는 단편적인 면만을 보고, 실제로 그분들이 일제 치하에서 어떤 희생과 노력을 기울였는지에 대한 깊은 성찰과 판단, 올바른 조사가 결여된 것 같아 심히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천주교회가 새천년을 맞이하는 2000년 ‘쇄신과 화해’라는 글을 발표한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들이라면 아무렇지도 않고 일구이언을 저지르는 한국천주교회 지도자들의 모습에 절망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교회는 열강의 침략과 일제의 식민 통치로 민족이 고통을 당하던 시기에 교회의 안녕을 보장받고자 정교분리를 이유로 민족 독립에 앞장서는 신자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때로는 제재하기도 하였습니다.” (2000년 12월 3일 대림 첫 주일 한국천주교주교회의가 발표한 천주교 과거 반성 문건―‘쇄신과 화해’ 중에서)


그래도 절망이 깊으면 희망이 커 보이는 것일까. ‘한국천주교회의 원죄 그리고 교회 언론’이라는 부제로 천주교 평신도인 김유철님이 최근 <깨물지 못한 혀>라는 책을 냈다. 교회 지도자들의 잘못과 그들이 그렇게도 보호하고 싶은 노기남 대주교의 친일행적을 ‘아픈 마음으로 아프게 썼다’고 한다. 그러면서 지은이는 한국천주교회 지도자들을 향해 참회를 호소하고 있다.

자신-남이 아닌 자신-이 범한 죄에 대하여 ‘솔직하게’, ‘겸손하게’, ‘똑똑한 발음으로’, ‘무슨 죄인지 명확히’해야 한다. … 그 당시 왜 그렇게 했는지는 참회의 눈물을 흘릴 때 말하지 않아도 ‘형언할 수 없는 그 분’께서 함께 아파할 것이다.


※ <깨물지 못한 혀>는 우리신학연구소 후원회 카페(cafe.daum.net/wtisarang)에 신청하면 무료로 받아 볼 수 있습니다만 많은 분들이 책을 신청해 재정적으로 다소 어려움이 있다고 합니다. 자발적 유료화를 권유합니다.



< 필자인 방학진님은 민족문제연구소 사무국장으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
민족문제연구소 홈페이지 가기




독자 의견 목록
1 . 좋은 내용의 글입니다. 한바다 2008-10-02 / 11:45
2 . 기대하지 마시와요 서대전 2008-10-03 / 21:37
3 . 좋은 내용과 책 소개 감사드립니다 박남인 2008-10-15 /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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