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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을 망각하고 비열한 방법으로’ 조선일보를 경영했던 방응모
다시 살펴 보는 방응모의 친일행적
방학진 2008/07/06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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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운동의 사생아 조선일보
지난달에 이어 이번 달에는 조선일보 방응모의 친일행적을 살펴보자. 일제가 중일전쟁을 일으킨 1937년 이듬해인 1938년부터 1945년까지를 이른바 '전시총동원체제기'라고 한다. 이 시기는 사실 항일독립운동에 가담했던 많은 인사들이 일본의 강력한 군사력을 실감하며 변절을 하게 되면서 가히 친일파가 양산되는 때이기도 하다.

△ 방응모
그런데 방응모의 경우 조선일보 인수 직후인 1934년 이미 고사포를 기증했다는 기록이 있으니, 그의 친일활동은 자발적인 동시에 사업 확장의 필수적인 도구였음이 분명하다. 즉, 그는 사업 확장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는지 수많은 친일단체에 적극적으로 가입한다.

1937년 5월 우가키 총독의 지시로 친일 가요와 시, 가곡 등의 보급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조선문예회 회원을 시작으로, 1937년 8월 금비녀라도 뽑아 국방헌금을 내자는 친일 귀족 부인들이 주축이 된 애국금차회 발기인이 되었다. 또 중일전쟁 발발 직후인 1937년 9월 미나미 총독의 지시로 시국의 중요성과 동아시아에서의 일본의 지도적 지위를 대중들에게 선전할 목적으로 구성된 전선 순회 시국 강연반에 2차로 참석했으며, 중일전쟁 1주년을 맞아 그 동안 경쟁적으로 진행되어 오던 각종 단체들의 친일활동을 일사불란하게 조직화할 필요를 느낀 총독부에 의해서 1938년 7월 7일 59개 단체 및 개인 56명이 참가해 결성된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발기인이 되었다.

1939년 중국 천진에서 일본이 영국과 무력 충돌하자 6개 신문사가 모여 결성한 조선춘추회 주최의 ‘배영(영국을 배척하자-필자 주) 국민대회’에서 동아일보 사장 백관수는 “천황폐하 만세”를 부르고, 방응모는 “황군 만세”를 선창했다. 이어 방응모는 1940년 전쟁의 장기화로 후방에 대한 더욱 강력한 전시체제를 이룩하기 위해 한층 강화된 국민총력조선연맹의 참사, 1941년 친일파들에 의해서 자발적으로 만들어진 임전대책협의회 위원으로 종로 화신백화점 앞에서 김동환, 이광수, 모윤숙, 윤치호, 이숙종(성신여대 설립자) 등과 함께 전쟁채권을 사도록 독려하는 채권가두 유격대 활동을 벌였다.

방응모의 친일 활동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윤치호를 중심으로 한 흥아보국단과 김동환을 중심으로 한 임전대책협의회를 통합하여 1941년에 결성된 조선임전보국단 이사가 되었으며, <조광>이 참여한 조선문인보국회가 주최한 ‘출전 학도 격려대회’에 참여하는 등 그는 이미 일제의 침략전쟁을 선동하는 데 최선두급에 서 있었다.

중일전쟁이 발발한 지 막 반년이 넘었던 1938년 2월 방응모는 일본인 천황주의자 도쿠도미 소호에게 정중한 연하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편지 내용은 아래와 같다.(일본어 편지를 번역한 것임)

신년 인사


천리나 떨어졌지만 같은 바람 속에 있습니다. 우선 집안 여러분들이 더욱 건승하시고, 나이를 더 잡수셨으니 더욱 몸을 보중할 수 있기를 빕니다. / 저도 이제 무사히 신년을 잘 보냈습니다. 그 사이에 뜻밖의 보살핌을 내려주셔서 위로가 됩니다. / 위의 보내주신 말씀 곁에 새해를 축하하는 글을 써 두었습니다. / 나머지는 후일을 기약하겠습니다. / 총총 이만 줄이고, 편지의 형식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습니다. / 2월 초에 방응모가 / 소호 선생께 / 삼가 경성부 조선일보사 방응모가 드림


조선일보는 1980년에 간행된 <계초 방응모> 서문에서 그를 “암흑기의 민족에게 언론의 횃불을 밝혀 민족의 길을 비추었던 선구자”로 평가하면서 가끔 기사를 통해 독립운동가들과의 교유 관계를 슬쩍 흘리기도 한다. 그렇다면 왜 조선일보는 방응모를 국가보훈처에 독립운동가로 서훈을 추진하지 않고 있는지 물어야 한다.

조선일보는 방응모의 친일행위를 일제의 강요에 의한 부득이한 것이었다고 변명하고 싶겠지만 민족문제연구소가 밝혀낸 아래의 두 사건들을 보면 그러한 주장은 곧 설득력을 잃게 된다. 먼저 일제의 검열기구인 조선총독부 경무국 도서과가 펴낸 ‘조선출판경찰월보’ 제102호에서는 방응모의 친일 발언과 관련된 <중앙시보> 79호 1937년 2월 16일치의 검열 전 기사를 요약한 자료를 보자.

조선출판경찰월보를 번역한 자료를 보면, 일제의 검열을 거치기 전의 <중앙시보> 이날치 기사개요에 ‘자칭 신문왕 대조선일보 발전 자축회 참화극’이라고 이 사건을 소개하고 있다. 이 기사는 방응모가 원산에서 연 순회강연에서 “우리 조선일보는 다른 어떤 신문도 따라오지 못하는 확고한 신념에서 비국민적 행위를 단연 배격하여 종국까지 조선일보사가 이미 정해놓은 방침에 한뜻으로 매진한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이어 “방 전 사장의 이 발언에 격분한 한 시민이 탁자를 두드리고, 일부 시민은 마침내 완력을 써서 호소했다”고 기록했다.

방응모가 언급한 ‘비국민적 행위’는 ‘반일 행위’를 뜻하며 당시 시대상황으로 봐서 일장기 말소사건 등을 뜻하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조선출판경찰월보에 실린 이 기사 개요를 보면, 당시 <조선일보>의 행태를 “조선일보사는 동아와 조선중앙일보의 민간 양대 신문이 정간과 휴간의 동정해야 할 불운한 경우에 봉착함을 절호의 기회로 하여 그의 사회적 임무와 양심을 망각하고 도리어 이들을 비방하고 무릇 극히 비열한 수단과 방법으로써 상략적(상업적 전략-필자 주) 발전책으로 삼았”다고 비판하고 있다.

또 이 기사는 “방씨는 이를 아주 노골적으로 방약무인처럼 행동을 취하여 조선일보 발전을 자축하는 전선지국 시찰을 표방하고, 진남포로 진출하여 원산, 함흥, 청진 등을 차례로 전전하면서 강연회 등을 개최하고자 하였다”며 “그가 도착지에서 예기치 못한 반대에 부딪혔는데 방씨의 언동을 비난하고 그의 추행을 매도하는 등의 희비극이 전개되었다”고 소개했다.

이 같은 사실을 보도한 중앙시보의 기사는 조선총독부 경무국 도서과의 검열을 거쳐 일부분 삭제된 뒤 기사화가 허가돼 방응모의 당시 발언과 봉변을 당한 사건은 신문에 실리지 않았으며, 검열에서 삭제된 기사를 모아 둔 조선출판경찰월보에 기사개요가 실린 것이다.

그보다 앞선 1933년 4월 15일치 일본 육군성 정무차관실 문서로, 조선과 중국에 거주하던 은행장과 기업가, 현역 장성 등이 ‘3년식 기관총’ 21개와 고사포 등을 일제에 헌납한 사실이 기록돼 있는 일본 옛 육군성에 보관됐던 ‘국방헌납 병기 수령에 관한 건’이라는 제목의 문서를 보면 기관총과 고사포 등을 헌납한 20여명의 명단 가운데 방응모도 포함돼 있음을 확인하기도 했다.


※ 조선일보와 방응모의 친일행적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한 시간 후면 세상이 달라 보인다>(조선일보반대시민연대, 2004, 인물과 사상사)를 추천합니다.


< 필자인 방학진님은 민족문제연구소 사무국장으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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