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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병학의 함평천지


花樣年華
청명수 2015/08/16 00:23    



화양연화(花樣年華)

如如 천병학



바람의 등쌀에 구름이 가듯 세월도 간다

분패 치던 겨울날 꽁꽁 언 손 호호 불며 몰래 대나무밭을 기던

허리께를 넘던 눈밭을 기어 아궁이 불을 쬐다가 기어이 얼음판을 지치던

너른 마당이면 빼놓지 않고 사금파리로 금을 긋던

그 금위에서 온갖 생과 사가 엇갈리던

죽었다가 살아나고 살다가 죽던

떼를 지어 손을 잡고 손을 놓치면 죽음이 기다리던

서로 나이를 더 먹으려고 남의 나이를 빼앗아 먹던

이른 봄이면 둑 방에서 삐 비 찾아 숨바꼭질하던

넘실대는 보리밭에 앉아 버들피리 불어대던

시렁 보리밥에 샘물 말아 고추 된장이면 주린 배가 너끈하던

컴퓨터는 태어나지도 않고 동네 텔레비전 한 대 옆에 동전 통을 놓아두던

가설극장이라도 올라치면 땡전 한 푼 없어도 포장 가를 맴돌던

나팔바지에 챙 모자 삐뚜름히 휘파람 불어 대며 건들건들 손가락을 까딱거리던

대가리가 터지고 피범벅이 되어도 학교폭력 왕따라는 단어가 없던

손풍금에 발장구로 뭇 여인네를 꼬드기는 동동구르무 장수

엿장수 가위 소리에 쫄랑대며 따라다니는 조무래기들

애들은 가라 장날이면 약장수가 뱀 정력을 팔던 시절

그 시절 기억의 편린들이 하인 다리 건너 철 다리 KTX처럼 지나간다.



푹신한 소파에 콧대를 벌름거리고

진한 커피 향에 눈깔을 내리깔고

외국산 양주에 고급와인이 목을 적셔도

서로 죽고 죽이는 궁리만 머릿속을 맴돌 뿐

정을 모르고 정으로 살던 그때로 되돌아가고 싶은.

독자 의견 목록
1 . 시가 너무 좋습니다. 고막원 2015-10-11 / 01:22
2 . 너무 좋네요 김반석 2017-11-17 /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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