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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병학의 함평천지


청명수 2014/09/06 07:50    



천병학

전두엽의 비밀번호를 찾아 헤매는 한 사내가 있다

스무 살 터울 큰형님과 동갑인 종수 아제
헝클어진 실타래를 따라 간다
암호를 해독하는 문장은 돌연변이 세포의 줄기에 칭칭 감겨 있다
언어의 매듭을 풀지 못한 따돌림이
터지기 직전의 혈맥을 움켜쥔다
새벽부터 종일 쭈그리고 앉아 맹세의 과녁을 뚫고 있다

곤재 선생의 제자 거리 주막은
오월이 잰 발걸음을 멈춘 곳
윗마을 아랫마을 사람들 거방진 술자리였다
쌉싸름한 술 냄새에 이끌려 기웃대던 종수 아제에게
서너 살 연배인 한 사내가 소리를 질렀다

인마 네놈이 낄 자리가 아니야 저리 꺼져,

텅 빈 목덜미를 간질이는 싸한 아쉬움
돌아서는 검정 고무신 콧날에
얼핏, 파도의 칼날을 닮은 물빛이 반짝인다

아침마다 숫돌 위에서 배꼽춤을 추던
자음의 첫 노랫말은 들리지 않고
모음의 끝자락을 닮은 서슬 퍼런 칼날을
바이올린 켜듯 쓱싹쓱싹 온종일 갈고 있다
 
계절 따라 등허리를 짓누르던 솔가지 둥치도
어깻죽지에 줄기차게 매달리던 꼴망태도
모두 다 팽개쳤다

언제나 이맘때면
볼우물에 아카시아 꽃을 피우던
백치 천사 앙다문 입술 위로 오뉴월 서리꽃이
바늘 끝을 벼리고 있다

옹이 박힌 가슴
어둠의 땅거미가 짓밟는다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문이 열리고
진도 앞바다 맹골수도에선
왜가(倭歌)의 절창에 홀린 창극(唱劇)이
미처 피지 못한 꽃들의 피 울음을 삼키고 있다

또다시 갑오년 고부의 심장이 풀무질하고 있다
장마당마다 구석을 지키던 대장장이가
사그라지는 불씨를 지피며
포로의 세월을 벼리고 있다.


독자 의견 목록
1 . 훌륭한 시네요 ~~ 정일석 2017-11-17 /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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