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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바우골의 연가
운림산방 초가마당에서 올린 회혼식
박남인 2005/03/31 14:11    

“오메! 납부닥에 냉갈펴도 오늘 하루 신혼시절이제”

운림산방 초가마당에서 올린 회혼식

비가 문제였다. 봄이 성큼 다가와 쌍계사 앞을 흐르는 물소리가 싱그러워지는데 비가 또 내린단다. 이미 날짜를 잡아놓고서 친지 이웃들에게 초청장도 발송한 상태다. 방송국(kBS) 관계자들도 “열흘 전까지만 해도 비가 안올거라고 했는데…”하며 곤혹스러워 했다.
3월 17일 오후로 부모님 회혼례를 갖기로 한 것인데 사흘 전 진도기상대는 그날 비가 올 확률이 95%가 넘는다고 하는 것이다.
△ 아버지 박경석옹(81)과 어머니 이남심(78)의 회혼식

가마도 준비하고 함에다 예복까지 다 마쳐 60년 전 그 까마득한 기억속으로 돌아가는 날을 잡은 우리 자식들은 당사자들보다도 더 들뜬 가슴으로 잠을 이루지 못할 지경이었다. 백년가약을 맺는 고향마을 사천리 당산골에는 번듯한 민속전수관이 서둘러 지어지고 있는 중이었다. 여기에 이미 한 해를 넘긴 것이지만 올해 81세가 되신 내 아버지 박경석옹과 어머니 이남심(78)씨가 유서깊은 운림산방에서 회혼례를 갖기로 해 동네는 날마다 잔치판이 되다시피 했다.
이장과 새마을지도자가 매일 매일 준비물 점검을 하고 광주와 목포사는 형들도 하루에도 여러차례 전화문의를 해와 나도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다. 방송국은 방송국대로 재차 확인 다짐을 하며 사전 촬영도 해왔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날 비가 많이 내릴 거라니.
날짜를 연기하자는 이도 있었다. 경사일이 애꿎은 날로 변하면 누가 책임질 것인가 질책도 나왔다.
고민고민 끝에 우리는 회혼례를 예정날짜에 하기로 했다. 당일날 마당에는 차일을 치고 초례청을 둘러놓으면 그런대로 분위기가 잡히지 않겠는가 서로 위안을 하며 ‘제발 일기예보가 틀려주기만’을 고대했다.
하루 전 밤이 되기도 전에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어이쿠 이제 어쩌란 말이냐” 여기저기서 전화가 계속해 오고 방송국 관계자들도 초조한지 확인전화를 또 한다.
아예 나는 전화기를 멀리 놓고 받지 않기로 했다. 잠이 라도 제대로 자야 내일 일을 할 것 아닌가?
“무슨 일을 그따위로 하느냐”는 아내의 질책을 오히려 자장가삼아 다른 때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일기예보가 틀리기만 바라며

연분홍 진달래가 가득 피었다. 덕신산 등허리에서 우리집으로 흘러내리는 둔덕에 누군가 막 물감을 풀어놓은 듯 산진달래가 흠뻑 피어났다. 그 아래 낯익은 얼굴이 나물바구니를 허리에 차고 들길을 걸어간다. 이름이 잘 생각나지 않는다. 분명 낯익은 얼굴이건만.
봄햇살처럼 방싯 웃는 얼굴에 작은 보조개가 파인다. 날 처다보는 눈빛이 너무 다정하다.
아! 당신은 바로 나의 어머니였다. 오래된 사진속에서 어떤 설레임으로 단정히 앉아계시던 어머니 젊은날의 초상이 산들바람에 일어나 수부장 들길을 걷고 계셨습니다.

그렇게 짧은 꿈속을 뒤척이다 문득 눈이 뜨였다. 이른 아침이었다. 다섯시 쯤이었다. 잠옷바람에 곧바로 창가로 가 문을 열었다. 지금쯤이면 더욱 빗줄기가 굵어졌을 것이다. 최소 20mm는 온다고 기상대직원이 장담하지 않았는가? 아직 다 물러가지 않은 희미한 어둠 사이로 마당을 바라본다. 이상하다. 빗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지난 밤에 얼마나 많이 내렸던가?
화단에는 이제 막 잎순이 돋아오르는 수국 가지가 선명하다. 비는 진작 그쳤는지 고요하다. 아! 기상대도 하늘의 오묘한 변화를 다 읽을 수는 없으리라. 멀리 접도리 섬의 뿔치가 환히 바라보인다. 이제 됐다. 오전은 아직 여유가 있다. 오후 3시 30에 정확히 촬영에 들어가기로 했다. 정신이 좀 나라고 찬물로 머리를 감고 곧장 읍장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동네마을에 미리 200만원을 주면서 음식장만에 쓰라고 했지만 따로 찾아오는 손님들을 위해 음식이 필요하다.

10시경 광주와 목포에서 형들이 찾아왔다. 서울에서는 6촌형님이 8폭의 묵화를 그려 대짜 병풍으로 보내왔다. 회혼 초례청에 쓰기 위함이다. 사실 어머니는 작년에 “하기 싫다”고 외면을 해 왔지만 끈질긴 설득에 마음이 돌아선 지가 불과 한달 전이다.
재작년 아버지가 한때 위독해지셨을 때 자식들인 우리는 초긴장을 하고 부모님의 생에 못푸신 소망이 없는가 뒤돌아보게 되었다. 아버지도 팔순잔치는 안해도 생전에 회혼례는 가져야겠다고 자주 말씀하셨다.

어려서부터 가난의 짐을 벗기위해 몸을 혹사해 새우처럼 등이 휘어진 아버지. 열네살에 목포에서 밀항선을 타고 일본 오오사카로 가 구두닦이를 하다 제화사에 취업해 야간학교를 다녔던 청년 박경석!
해방이 되자 전대를 차고 돌아와 논 다섯마지기를 사고 먹바우 산밭을 석수쟁이 할아버지와 함께 일궈 자식들을 키워온 아버지는 진도사람답게 스스로 장구장단을 맞춰 구음소리를 기막히게 하셨다.
둘째 며느리인데도 시부모를 모시고 살아온 어머니와 아버지는 60대가 넘을 때까지 한번 다투는 적이 없었다. 넷째인 나를 빼고는 속을 썩힌 자식들이 전혀 없다.

먹물이 배인 갑오징어와 갓김치를 들고 부모님집에 찾아가니 벌써 형제간들이 모여 막걸리를 나누고 계신다. 날은 갈수록 화창해지고 하객들이 몇시간 전인데도 집으로 들이닥친다.
두시쯤에 운림산방으로 옮겼다. 모두들 생활한복으로 갈아입는다. 동네사람들은 가마꾼으로 분장하고 대병솥에는 벌써 참숯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동동주가 막 흘러다닌다.
이번 회혼례에는 김정호(69) 진도문화원장이 맡았다. 어머니는 초가집 안방에서 연지곤지를 찍고 며느리들에 둘러싸여 기다린다. 이윽고 가마꾼들이 아버지를 태우고 나타난다. 연초값으로 한참 실랑이를 벌인 후 마당안으로 들어선다. 카메라가 바쁘게 돌아가고 절차에 따라 전안례를 한 후 신랑신부가 초례청 동서로 나눠 맞절을 한다. 누군가의 시 한구절이 절로 떠 오르지 않는가? ‘모든 쇠붙이는 가라’고 외치던 바로 신동엽시인.
오늘은 내가 축시를 써서 여자조카들에게 낭송을 부탁했다. 제목을 ‘먹바우골의 연가’로 했다. 또 회혼례를 축하해주기 위해 무형문화제 강강술래 예능보유자 박종숙씨와 박동매씨가 목을 다듬고 기다린다. 여기에 진도출신 가수 박진도씨도 나타나 진도아리랑을 흥겹게 불러댄다. ‘경사났다’며 여기저기서 박수가 터진다. 이번 회혼례는 3월 28일 오후 6시 백년가약에서 방영되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여전히 건강하시다. 막걸리 주량도 그대로다. 비끼내민속전수관도 멋들어진 자태가 드러나 사천리의 또 하나 자랑거리가 되고 있다. 사하촌이라 그저 동백꽃이나 피고지고 물빠짐이 심한 박토답에서 어렵게 살아가던 사천리주민들은 예전에 비해 수익이 많이 높아졌다. 표고버섯 재배에다 이제는 참숯도 판다. 서울 향우회에서도 거금 500만원을 마을에 쾌척했다. 동네이장 김종필(41)씨는 전수관운영과 수익사업 확대에 골몰하고 있다.
‘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참살이를 실천하는 내고향마을로 봄맞이 여행을 해 보지 않겠습니까? 막걸리 두병은 제가 장담하지요!


먹바우골의 연가

봄이었드라
저 멀리 귀생골짜기 달디 단 칡순뿌리 적시며
처녀들 소근거리듯 산물이 풀려나는
비끼내의 봄이었드라

하늘 높이 솟아오르는 새떼들이 춤을 추는
꼭 오늘같은 봄이었드라

어머니 품안같은 고을
이 산 저 산에 꽃이 피고
신명에 젖은 땅 옥주고을에 태어나
비끼내의 봄동산에서 함께 살았드라

동백꽃처럼 붉은 마음
휘었다 솟구쳐오르는 중머리장단으로
연지곤지 찍고 족두리를 올리고
산다래처럼 싱그런 사랑으로 세월을 엮었드라

때로 시샘이야 벙그러지는 산 철쭉의 내음
허허 허어 황소 웃음으로 마음밭을 갈아
띠섬에서 와 소리잘하던 노씨 할머니
화강암 바른 돌에다 정을 쪼아
옛 마음 새기던 석수쟁이 할아버지
초가집 마당에 둘러앉아 보리밥 나누어먹으며
또 한 시절을 단단히 조였더라

물어보면 한 줌 눈물로 가슴을 씻어
오래토록 머물던 겨울의 침묵도
봄 동백의 붉은 마음을 피우려는 뜻임을
갈라진 손바닥 어루만지는 햇살이여

돌아보면 아득한 길
다시 돌아가도 또 그 길 걷고 싶은데
자식들은 멍나무열매처럼 실하게 자라
분꽃퍼지듯 화사한 손주들을 낳아
어여쁜 절을 바치는 오늘

첫 마음 첫 사랑
그 설레임으로 함께 앉아
따사로운 햇살에 주름을 펴고
우리 오늘같이 살아가자
쌍계사 봄 냇물처럼 흘러 살자더라

80 평생 땀으로 일군 저 비끼내 들녘 다독이며
더욱 푸르러지는 청년의 바다로
더 넓은 가슴으로
더 따스한 눈빛으로
손에 손을 잡고 그렇게 살아가드라.

독자 의견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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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나도 정을 확인하러 갑니다 구 석교 2005-04-05 / 09:18
3 . 성질급한 사람의 자작 서비스 청산 2005-04-05 / 21:05
4 . 좋은시 잘 읽었습니다. 황무지 2005-06-29 / 15:30
5 . 제 졸시입니다. 황무지 2005-06-29 / 15:34
6 . 삼성바이오로직스대박 sslayer혈림 2019-01-09 / 13:59
7 . 셀트리온3형제 삼성바이오로직스 셀트리온3형제 2019-04-04 /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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