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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남인의 진도이야기


석가정표 수박이 그립다
박남인 2005/03/02 13:17    

더욱 고결한 성정의 시인이 필요한 이유

땅의 경전을 일구는 석가정시인을 찾아서


언어의 조탁이 탁월한 글을 ‘시’라고 한다. 언어를 꿰는 그 천의무봉의 작업을 하는 이들을 시인이라고 한다. 석가정(65)은 그래서 천성 시인이다.

그는 말을 꿰기 전에 먼저 새벽이슬을 모아 한모금 정화수같은 작품을 쓰는 시인이다. 가장 맑은 이슬을 털어모으기 위해 그는 이른 새벽 동외리 동쪽 들길을 부지런히 걷는다.


그렇다. 이 지상에서, 이 진도에서 산다는 것은 과연 무엇을 뜻하는가?

남녘땅 뱃노래소리도 끊어진 진도읍 동외리에서 산지도 20년 가까이 되어가는 모양이다. 그 이전에는 저수지를 막던 인부들이 모여살던 수리봉자락 길게 내린 성죽굴이라는 골짜기동네 가장 허름한 토방에서 늦은 신혼의 보금자리를 꾸리고 밤이면 시어를 다듬고 아침이면 밭두렁에서 수박모종을 다듬었다.

“수줍음이 매운 살/ 비집고 들어와// 봄꿩 스스로 울고,/ 춘정은 돛폭을 달고// 산 여울/ 사춘기에 갈린 목소리/ 외골짝을 바자”니는 「춘치자명」의 세월도 ‘모음만의 수런거림’으로 다스리며 ‘성깃한 터울 틈새’ ‘자유’를 이미 예감했던 사람.

석가정표 수박맛을 못본 이들은 그의 시의 진경 또한 알지 못한다. 땅 한평 없이 농사를 지으며 그는 잘도 버텨내며 아이들을 키웠다. 마을 회관 한쪽을 빌려 살림살이를 하던 그는 이제 어엿한 집도 장만했으며 동네이장일도 수년을 넘게 하며 제법 세상이치를 터득해 주민들의 신망도 얻었다.

그의 아름다운 시적 상상력은 하늘에서 훔친 게 아니라 땅에서 억척스레 일궈온 노동의 결과물이다. 왜 그의 시에서 대지의 향기가 나는지 얼핏 눈물이 스쳐간 듯 혹은 맑은 핏물 고인듯한 시구들은 허튼 관념을 거부한다.

그의 이상향은 아침저녁까지 땀이 잘 배인 농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의 글은 수식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살아가는 삶의 방식 그것이 바로 시가 되는 사람.

진도에서 ‘시인’을 꼽으라고 하면 누구나 석가정을 맨 먼저 떠올리게 된다. 진도에도 이런저런 시인은 많다. 진도문인협회와 진도타래시 동인들도 수십 명에 달한다. 그러나 우리시대를 진정으로 가장 절실하게 살아 이끈 시인들은 많지 않다. 천병태(진도읍 염장리)전남시인협회장, 시조시인 박재곤, 왕성한 식욕을 자랑하는 김영승, 이무영, 박채훈 김춘화 오성수 등등 각기 일가를 쫒는 시인들이 포진해 있지만 석가정을 부르지 않고서는 너무 허전하다.

. 첫 작품집을 낸 지도 벌써 10년이 훌쩍 넘었다. 나이 50대에 들어서야 어렵사리 시조집(이 지상에 산다는 것)을 내게 된 사연도 시와 같은 향기를 품었다. 늘 말이 없는 아내와 지역유지로서 수필가로서 의사로서 활발한 감수성을 자랑하던 조영남씨의 후원이 큰 뒷받침이 되었다.

그렇게 좋아하던 술(황폐한 세상을 보듬고 인간과의 교감을 위한 촉매제로 활용했을 것이다)도 이제는 건강(당뇨)이 뒤따르지 못해 억지로 절주를 한 상태이다.
그가 다시 새 시집을 내놓기로 기약한지도 벌써 5년이 넘었다. 스스로에게 다짐한 약속이었지만 경제력의 뒷받침이 부족해 아직도 다 탈고를 못한 상태다.

청춘시절 한 때 꿈을 퍼 나르듯이 택한 우편국 공무원생활을 잠시 제외하곤 줄곧 과일채소밭에서만 살아온 시인 석가정. 30대 중반에 뒤늦게 천사표 아내를 얻은 그는 누구보다도 행복한 사람이었다.
잠시 소풍을 다녀갔던 천상병이 ‘천상’시인이라 불렸듯이 석가정 또한 떡주무르듯 화강암을 조각하던 옛 장인들처럼 시어를 조탁해내는, 바람이 돌에 무늬를 새기듯 그 견고한 성정의 작품들이 우리 곁으로 다가오길 나는 오늘도 기다린다.

그는 이제 몸이 많이 쇠약해졌다. 농부에게야 특별한 ‘정년’이 있을 리 만무하지만 요사이는 농사도 65세가 정년이라고 한다. 나라에서도 권장하며 퇴직금까지 지급하는 현실이다.

그의 시작내용 주류를 이루는 것은 농사일의 과정이다. 땀으로 영글어진 수확물들에 대한 삼라만상 우주의 법칙을 투영시킨 혼신의 역작들은 어디 하나 군더더기가 없다.

삶이야 때로 진창길을 내달리며 이런저런 때와 이끼가 끼기 마련이지만 그의 글 농사 작업에는 빈틈이 없다. 그러면서도 아리아리한 정감과 웅혼한 분노가 수묵담채로 스며들었다.

왜 이 시대에 아직도 시조작업을 고수하느냐고 물었던 적이 있다. 그는 애써 구명하기 보다는 담백한 선비정신을 살짝 내비칠 뿐이었다.

선비시인들의 글은 대나무처럼 곧고 청정하다. 추국춘란의 자향을 머금은 채 2월 매화의 눈부신 터트림을 아낀다.

석가정시인은 지금 몸이 아프다. 육신은 그 고결한 시정신을 담아놓기에 조금 무리가 있었나보다. 시인이 제대로 살아남기엔 우리시대가 너무 속진하며 협량하다.

시가 제대로 읽혀지는 세상을 염원하며 그의 새벽이슬 같은 신작을 고대한다.

나 또한 더 취하지 못한 밤에 차오르지 못한 절정을 아쉬워하며 글을 매만지는 습성으로부터 결코 자유스럽지 못하기에.

누구나 꿈이 있고 시인의 감성을 소유한 적이 있다. 그러나 세월의 버거운 벽을 수없이 무너뜨리며 유지해내는 사람들은 드물다.

그가 있음으로 진도다운 진도가 있는 것이다. 수많은 예인들이 진도 땅을 그 탁월한 재능을 바람처럼 수놓아 지나갔던 그 길을 다시 걷는 석가정을 따라 나도 오늘은 배롱나무처럼 붉게 휘청거리며 걸어가리라.


석가정의 본명은 한승배이다. 내 고향동네 사천리에도 그의 친형이 산중에 움막 같은 집을 짓고 살았다. 그는 견고한 가난 속에서 청춘을 살았던 모양이다. 그의 시작품을 읽고 찾아온 도시의 어느 독자아가씨가 그의 너무 빈한한 집안 살림을 보고 눈물을 마구 내쏟고서 쌀 몇되를 사주고 갔다는 일화가 그것을 잘 알려준다.

그런 그이지만 후배동료들과 어울리는 어느 술집에서도 돈내기를 아까워하지 않았다. 술에 취하면 그만 일곱 살 아이가 되는 석가정. 후배들은 시든 상추잎같은 그를 챙겨 기꺼이 집으로 모셔다드리는 일이 관행이 되었다.

석가정의 시는 민족시나 저항시와는 거리가 멀다. 가장 험난했던 89년대를 옥주고을이란 변방에서 묵묵히 농사를 지으며 그 땀방울 식기 전에 글을 다듬던 시인에게 군부독재정권의 행로는 관심 밖일 수밖에 없었다. 그라고 왜 시대의식이 없겠는가? 잡지도 지역신문 하나 없는 고을 진도에서 유일하게 지면을 할애 받을 수 있는 곳은 진도문인협회 연간집이다. 거기에 가끔 진도문화원에서 발간하는 “예향 진도”에 시 한편이 소개될 뿐이었다.

지금이야 지역신문이 몇 개나 되고 지방언론에다 인터넷신문이 범람할 지경이다. 과거 군청 반상회보에 양념으로 서정시 한편이 실리던 때와는 격세지감을 갖는다.

요즘은 또 자기홍보시대요 마음만 먹으면 그 질과 역량을 탓하지 않고 출판이 가능한 시대다. 그래서 문인들이 대거 양산된다는 비난도 없지 않다.


나 또한 시로 등단한 지가 10년 가까이 되었지만 간추려 작품집을 엮어낼 능력이 전혀 되질 않는다. 부끄러운 일이다. 다작도 경계해야 하지만 삶의 결이 올곧게 짜여진 작품들이 태부족하고 스스로도 못미더워질 지경이라면 ‘시인’이라는 과분한 명함을 폐기해야 마땅할 것인데 아직도 주저하기만 하는 내가 한심스럽다.

며칠 전 인천 강화도에서 후배여성(인천노동자문학회)이 첫 시집 한권을 보내왔다. ‘검지에 핀 꽃(도서출판 삶이보이는 창)’이란 제목이다. 제9회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한 조혜영씨는 지금 강화 교동도에서 조리사로 근무하고 있지만 노동현장의 경력이 만만치 않은 투사의 전형을 갖추고 있다.

여기저기서 봄꽃 터지듯 시집과 문집이 발간되고 있지만 석가정은 우담바라처럼 아득하고 나 또한 아내에게 ‘시집’이라는 선물을 10년 넘게 주지 못하고 있다. 서로 선의의 경쟁이라도 부추겨야 할까?

종이서적에서 인터넷활자로 그 주류가 전환된 까닭인지 글들이 여기저기서 난무한다. 시, 소설, 수필, 평론, 전기, 사설 감상문에서 성명서까지 다양한 글들이 우후죽순격으로 선을 보인다. 각별한 조명을 받지 못하면 그렇고 그런 책무더기에 파묻혀버리는 게 오늘의 현실이다. 그래 작품집 발간에 더욱 신중해지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잠수함속의 토끼 혹은 전설의 동물 일각수와 같이 가장 순결한 영혼(처녀)앞에서 무릎을 꿇는 유니콘의 성정이 바로 시의 원천이 될 것이다. 멸종한 그 동물의 DNA가 시인의 영혼에 각인되어 있음을 믿어야 한다.

그의 시밭은 수박, 참외 딸기밭이다. 진도읍 동외리 성죽굴은 원래 방죽을 만들때 일했던 인부들이 그대로 눌러앉아 마을을 이룬 곳이다. 나도 이 동네가 있던 길을 초등학교 중학교 9년 간이나 지나며 눈에 익혀둔 곳이다. 그런 때야 길 가운데 돌부리 하나도 다 선연히 기억해두고 논밭의 지형들도 지도처럼 다 그릴 수가 있었다.

이 길은 이제 가끔 낚시를 하는 사람들이나 산밑 농사를 짓는 사람들 외에는 전혀 이용하지 않는 길이 되어버렸다. 질경이와 잡풀이 우거지고 그 아래 진도개시험연구소 사육장이 새로 들어서 있을 뿐이다.

석가정은 지금까지 흔한 자전거 하나 없이 리어카 하나로 농사를 지어온 사람이다. 그 우묵한 눈빛은 늘 낙천적으로 빛나면서 정겨운 주름살을 늘려오던 석가정.

분명 그에게 땅은 제 자신의 발이 애무를 하듯 이랑사이를 거닐 때 그것은 경배의 대상이었다.
그의 시는 이 흙(땅)에 대한 숭고한 사랑의 경전임을 나는 확신한다. 그가 특별히 다른 종교를 거론하거나 귀의하지 않은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을 것이다. 일만년 오랜 농경의 역사를 이어온 민족의 신앙은 다양한 곡식의 씨알에 새겨져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는 그 신앙의 성실한 사제로서 복무해 온 것이다.


이제 그는 자주 다니던 동네술집도 문협모임에도 나오지 않는다. 문인들 모임때면 십년도 넘어보이는 양복을 걸쳐입고 이미 초벌 단청을 마친 얼굴을 선보이곤 했다. 젊은 날의 미완성의 시 한 복판을 걸어가는 듯 음유시인의 두근거림을 안고 낙으로 삼던 모임에도 나설 수 없는 건강상태가 안타깝기만 하다.

시대의 아픔을 지역의 아픔을 먼저 껴안아 속죄를 대신하듯 아픈 모양이다. 그의 신앙을 흔들리게 하는, 그리하여 그토록 견고하게 앞길을 밝히던 등불에 불어오는 바람의 정체는 무엇일까? 귀의의 시간은 아직 이르다.

그에게 더 절실한 것은 더 강열한 믿음을 새긴 경전(시집)의 발간이다.

삼일절 기미독립선어니념일을 맞아 일부러 아내와 함께 목포의 병실을 찾았다. 미이라처럼 마른 골격에 더 맑고 깊어진 눈빛이 오히려 시심을 자극한다. 대지가 소리없이 깨어나 이 지상에 가득한 봄내음을 흩뿌려주듯 그도 우리앞에 부활의 봄처럼 다가올 것을 믿는다.

모나리자의 한국형 버전 미소를 담은 그 아내와 함께 우리들의 고향땅을 계속 일궈야하지 않겠는가?(박남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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