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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남인의 진도이야기


길을 떠나는 그대에게
박남인 2005/01/14 15:14    

여행은 말 그대로 떠나는 것이다.

너무 오래 안주한 곳으로부터 내가 아직 모르는 곳에 대한 설레임으로 떠나는 것 그것이 여행이다.

여행은 그래서 자기 성찰의 과정이다. 더 나은 세상을 그리워하기 때문에 오늘의 여기 조건을 과감히 벗어나 더 불확실한 세상으로 발길을 돌리는 것이다.

"한 곳에 머물러 제 삶에 취한 이들에 대한 향수를 불러 일으켜주기 위해" 늘 머물러 있는 이들을 찾아 떠나는 '보헤미안'의 이야기를 헤르만헤세에게 들었던 기억도 상기하면서.

진도는 그런 측면에서 많은 매력을 갖고 있는 여행지이다. 너무 좁다고 아우성치는 이 땅에서, 너무 획일화된 사회와 문화속에서 자기 정체성을 잃고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진도는 분명히 한번 찾아가 볼 만한 곳이다.

조금 멀어서 오히려 떠남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곳. 가장 서구적으로 가장 효율성으로 가장 신속함으로 무장된 당신이 발끝에서부터 넌덜머리나는 시간창고의 머릿속까지 무장해제를 즐겁게 당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진도다.

진도는 모든 게 낯설지만 또 모든 게 낯설지가 않다.

시대와 한참 뒤떨어진 길들. 구불구불한 2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이리저리 방향감각을 잃은 채 깜박하면 속아 넘어가는 도로표지판을 주섬주섬 챙기면서 가끔 오른쪽으로 내다보이는 청회색 겨울바다를 동행객으로 하면서 찾아가다 보면 진도는 겨울을 벗어나는 비밀한 문처럼 바다 가운데 홀연히 떠오른다.

처음인 듯 하면서도 내가 오래 그리워했던 바로 그것이 아니던가 문득문득 깨닫게 되는 진도사람들의 생활과 문화는 사실 여러 경로를 타고 널리 알려져 왔다.

△ 진도읍장에 나와 앉아 손님을 기다리는 할머니

편리함을 위해 너무 쉽게 내던져버린 생활습관들, 섬과 섬처럼 멀어진 인간관계를 따스한 욕말로 복원을 시도하는 곳.

20여년 전만 해도 배를 타지않고서는 갈 수 없었던 곳. 전라남도 서남단 한국에서 세 번째로 큰 섬 진도.

겨울이 들어서서면 진도를 찾는 이들이 조금씩 늘어나는 것 같다. 오래 연락이 끊겼던 지인들로부터도 전화연락이 와 약속날짜를 정하거나 벌써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고 목포 어디쯤을 지나고 있다며 마중을 재촉하는 이들도 더러 있다.

고향마을 사천리에 있다보면 길을 묻는 이들이 적지않다. 어머니가 운영하는 막걸리집은 목 좋은 삼거리에 있기 때문이다. 바로 뒷산 자락엔 첨찰산 쌍계사가 한겹 장삼을 두른 듯 물러앉아 좌선삼매의 풍경에 들고 그 바로 옆에는 한국 남종화의 종조로 일컬어지는 소치 허련선생이 만년에 기거하던 운림산방이 화맥종가의 고택처럼 그윽한 격조를 품고 있다.

그러나 이런 풍광과 역사는 뭍의 여러 산자락 아래, 도회의 이곳저곳에 더 잘 다듬어져 위엄을 뽐내고 있어 그리 큰 자랑거리가 못된다.

불과 해발 485,4미터인 첨찰산이 백두대간의 곧올찬 내달림의 마무리라고 하기엔 남쪽 바다 위로 하얀 피라미드처럼 떠 오르는 한라봉이 너무 감탄스럽기만 하다. 이도 또한 진도의 한 맛이 될 수도 있다.

두시간 반가량 천천히 걸어서 다녀올 수 있는 첨찰산은 일반 산행객들에겐 더없이 좋은 등산코스가 된다. 더구나 이 산자락은 후박, 동백, 참가시 등의 상록수림으로 뒤덮여 이미 60년대에 천연기념물 107호로 지정되어 있어 오가는 이들의 폐활량을 높여준다.

동백숲은 한반도에서 가장 많은 수목이 자라고 있는 최대자생지이다. 다시 길을 떠나온 그대에게 내 주절거림을 멈추고 오직 그대의 발길을 정겹게 해 주어야 한다. 누가 뭐래도 진도는 민속의 고장이다.

마르지 않는 민속의 못자리라는 이야기는 전설이 되다시피 했다. 꼭 국가에서, 지방자치단체에서 지정한 민속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우리 곁에서 살아숨쉬며 이어져오는, 눈에 쉽게 뜨이지 않는 여러 민속문화를 살펴보는 것도 여행의 큰 기쁨이요 보람이 된다고 생각한다.

요즘의 여행객들은 그저 스치는 대로 제 눈의 초점을 못미더워하며 성능좋은 카메라에 피사체를 담기 바쁠 뿐이다.

묻는 것도 그저 지름길이요 공손함도 없이 “어디가면 좋다요?”겨우 차창만 내린 채 묻기가 일쑤다. 그래도 나는 막걸리잔을 잠시 내려놓고 묻는 길을 알려준다. 가능하면 더 자세히 둘러보시라는 말도 차마 못 건낸 채.

진도에서 회를 먹지 않아도 좋고 여관에서 잠들지 않아도 좋다. 진도를 찾아오기 전에 진도 부근과 진도의 역사도 조금 훑어보고 자치단체가 제공하는 여행정보도 좀 챙겨서 출발하시길 부탁한다.

조금 알면 더 궁금해지는 부분이 생기고 정이 샘솟기 마련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스스로 조급해하는 일정을 만들지 말아달라. 본인에게도 무미하고 무익한 여행이 될뿐더러 현지사람들에게도 환영을 받기 힘들다.

그저 승용차로 한바퀴 휭 돌고나서 적당한 곳에서 밥 한끼 시켜놓고 ‘내가 왜 여기에 왔지’하는 어리석은 질문으로 젓가락질을 하지 마시길.

진도는 지금 더욱 푸르러지고 있다. 들판엔 겨울대파가 봄을 재촉하듯 어깨에 힘을 주고 남녘바다를 향하고 있다.

바로 옆에는 월동배추가 연초록의 빛깔을 풍성히 하며 산등성이 아래엔 파릇파릇한 봄동이 산노루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바다에서 나는 메생이와 청각 파래도 우리들의 입맛을 돋운다. 진도에 오는 당신이 바로 봄의 전령사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또 진도는 짙푸른 멍이 들려하고 있다. 농산물가격 폭락으로 농민들은 한숨을 쉬며 정부대책에 목을 빼고 있다.

당신의 허망한 교만을 지우고 헤일처럼 큰 사랑의 교감만 커지는 곳

당신이 진도를 찾는다면 닷새에 한 번 열리는 2,7일 진도읍장에 바구리 하나 놓고 꼬부려 앉은 시골 할머니의 그 애잔한 기다림을 다독여달라.

당신의 젊음을 확인하듯 진도홍주 한잔을 걸치고 노을처럼 붉어진 그대 가슴을 안고 다시 진도대교를 넘어가면 당신의 뒤를 따라 진도개처럼 영민하게 당신의 삶에 어느 듯 봄이 와 있을 것이다.


독자 의견 목록
1 . 진도! 참 좋은 곳이란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다라 2005-01-16 /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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