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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남인의 진도이야기


시네마천국의 계단에 오르다
진도아리랑시네마 극장 40년 만에 개관
박남인 2017/08/11 10:31    

시네마천국의 계단을 오르다
진정 나를 자유롭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아리랑시네마에서 영화 ‘택시운전사’를 보고 나서

꼭 40년이다. 내 어린 시절의 꿈 상상제작소였던 진도의 유일한 옥천극장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지가 벌써 40년이 지났다. 작년부터 작은영화관이 진도에 유치된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나처럼 진도 군민들은 대부분 아련한 그 시절의 추억들을 낡은 사진첩처럼 오랜만에 펼쳐보기도 했을 것이다. 모지랍게 나는 어린 시절 만화방과 영화관을 자주 들락거렸다. 사실 진도에서는 군청 공보실에서 무료로 당시 7개 면 각 마을을 순회하며 보여주는 반공영화, 또는 ‘미워도 다시 한 번’ 시리즈 무성영화 등으로 변사의 전성시대가 한 때 있었다. 줄거리야 눈물 짜기 뻔한 스토리에도 콩닥콩닥 가슴을 졸이며 무수한 흰 표창이 화면에 난무하는 낡은 필름에 몰두하였던가.
이와 함께 당시의 옥천극장 영화관은 종합예술 공연장이었다. 전국순회 쇼단이 들어와 수줍은 동네 아가씨들 앞에서 서울식 풍자가 넘치는 엉덩이 오르가즘을 유도하는 사회자가 날리는 멘트. 잘 나가는 ‘방금 동남아 공연을 마치고 돌아온’ 톱가수들의 인기 척도 경연장이 되기도 했다. 오줌 지린내도 암모니아수로 달게 감내하며 등이 떠밀리는 입석 관람도 발돋움을 하며 우리는 눈을 떼지 못했다. 입구 기도는 지 멋에 눈에 자가발전을 일으키듯 표를 검색하는 데 몰두 했다.
학교에선 변사를 흉내 내는 동무들도 덩달아 인기를 모았다. 무협시리즈는 멀쩡한 몸이 외팔이가 되고 대나무 검객이 되기도 했다. 몇 년 뒤에 이소룡은 중학생 건달들의 최고 우상이었다. 그에 앞서 전남 고흥(거금도) 출신 김일 선수의 통쾌한 반전 박치기는 소년들에게 일본에 대한 애국 의혈심을 북돋아주기도 했다. 말 그대로 ‘시네마 천국’ 시절이었다.
해는 노루 꼬리만 하니 남아 기울어 아홉 고개 넘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하늘 높이 영웅과 어디서 분향이 풍겨올 것 같은 서울 선녀들이 오작교를 오가는, 뒷골목 필름누아르가 범접하지 못하는 은하수 미리내 길이었다.

진도에 영화관이, 작은 영화관이 들어섰다. 맨 먼저 보고 싶었다. 더운 날씨인데도 너무 많은 인파들이 개관식이고 뭐고 ‘빨리 빨리 잔 보자고’ 밀고 들어갔다. 진도에서 차를 타지 않고 초고속 KT의 시속을 벗어난 첨단 문화 유영의 비늘들이 햇살에 빠르게 반짝거렸다.
그리고 개관한지 보름이 지난 뒤 몇 번 매진 상황으로 발길을 돌렸다가 지난 8월 8일 오후 2시 25분 모처럼 다시 아리랑 시네마 극장을 찾았다. 제목은 홍보 팜플렛으로 알려진 ‘택시운전사’였다.

요즘 서울에서 직장 운전사들이 사업체 고용자들로부터 ‘운전수’로 취급 당하며 이런저런 갑질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다 그러것냐.’ 그러나 이 영화의 ‘택시운전사’는 2017년 시점 37년 전 서울에서 개인택시(대단하다)를 하는 ‘보통사람(?) 운전수’가 한 시대의 증인으로 알지도 모를 정치적 폭압과 침묵의 터널을 뚫고 5월의 광주 한 복판으로 흘러드는 과정을 밀도 있게 사실성을 바탕으로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다큐멘터리 형식의 영화라고 이미 알려져 있었다. 무려 2시간이 넘는 상영시간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택시운전사는 거리에서 언제나 ‘택시!’ 로 지칭된다. 서민들에겐 거리의 빠른 발 역할을 한다. 공영적 개념이 높지만 삼천만 자가용시대에서 택시는 송강호 배우의 “손님이 가자면 택시는 어디든지 가는 거지”라는 자기위안과 공공개념보다 여러 가지 위험 부담과 직업적 차별의식에 시달리기도 한다.

다시 이 영화로 가 보자. 요즘 시대의 영화가 아무리 ‘아바타’ 식으로 상상을 초월한다 해도 제대로 된 영화는 설령 ‘대통령이나 문화부장관이 부러 관람하지 않아도’ 분명히 현실을 바탕으로 인간의식을 모욕적이기까지 집요하게 추적하고 울림이 있는 소리를 갖춘 작품은 금세 천만 관객들을 사로잡는다. 물론 상업성이 적나라하고 관객모독, 일회용 쾌락에 졸속제작 영화들은 외면당하기 마련이다. 배급문제는 우리가 해결할 또 다른 문제다.
서울택시운전사 김만섭(송강호 분)은 80년 5월, 장거리 요금 10만원이라는 거금에 혹하여 자신이 제대로 알지 못하고 선택한 고난의 길을 겪게 된다. 이 이야기는 어둠의 자식들처럼 또는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잠시 빛이 사라진 ‘광주’를 좀 아는 사람들에겐 익히 알려진 사연이기도 하다. 문태준 시인의 서술 문구를 빌린다면 ‘죽음이 늘 삶과 동행하고 있음을 알게 되는’(오래된 기도) 자각의 여정이 시작된다.

진도문화원 강 과장이 “화장실을 미리 다녀오라”고 주문을 했었다. 오전 이사회를 마치고 점심 때 조오환 부원장, 곽홛준 전 진도문협지부장, 이희춘 진도북놀이 인간문화재 분들과 오랜 만에 주거니 받거니 막걸리 두 병을 비워버렸다. 아리랑 시네마 극장 앞에 가니 조금은 불안했다. 한 참 기다리다 들어가자 딱 한 석이 남아 있었다. 만원을 이룬 객석은 그러나 매우 시원했다. 모처럼 해상국립공원 조도에서 오신 분들도 젊은이처럼 팝콘을 구해 옆자리에 앉았다. 나도 좀 얻어먹었다. 이게 진도의 정이다.

이 영화의 기본 설정은 당시 일본에 주재했던 독일 기자 피터(토마스 크래취만 분)가 광주사태(당시 정부와 서울 언론인에게 인식된 용어)를 취재하기 위하여 서울택시 운전사 김만섭과 동행하는 과정과 광주 현장에서 직접 신군부세력들의 처절한 폭력사태를 목격하고 목숨을 건 촬영과 그들을 돕는 광주의 택시운전사 대학생, 주먹밥을 지어 나르는 광주의 어머니들과 광주로 가는 모든 길을 가로막은 계엄군들과의 아슬아슬한 추격전을 뿌리치고 마침내 독일로 출국 광주의 진실을 전 세계에 알리게 되었다는 줄거리다.

37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들의 뇌리에서 쉬이 지워지지 않는 현재진행형의 광주! 20세기가 다 저물어 갈 때까지 누구도 광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박영상 진도군의원은 바로 그날들을 직접 광주에서 경험하고 치를 떨었다고 한다. 나는 그 해 4월 19일 ‘김지하· 김남주 구출 문학 행사’에서 ‘겨울공화국’을 낭송하고 다음 날 함평에 가 머물다 목포를 거쳐 진도에 와 있었다. 거의 10일 동안 쌍계사 앞길에는 몇 대의 광주고속 버스가 주차하고 있었다.
이미 광주로 가는 교통은 막혀있었다. 광주 시민군들이 들어오지 못하는 섬 중의 하나였다. 권력을 지향하는 일부 군부세력들의 리비도를 절절한 메타포와 고막과 심장을 때리는 현장감 넘치는 총소리와 무자비한 군화 발과 철심 몽둥이. 사복군인의 거친 욕지거리와 집요한 추적의 골목신은 90년대까지 계속 이어져 왔다.

이 영화에는 당시 광주의 항쟁 주역들은 전혀 나오지 않는다. 윤상원, 박관현, rfl고 “광주를 지켜달라”던 새벽 방송을 외치던 여성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서울식 택시운전사’의 시류 적 운전 방식에 엉겁결에 합승한 듯했다. 사실 진도는 그날의 광주처럼 유배지로서 700년 넘게 고립된 역사를 갖고 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지금 21세기에 들어서 지난 10년의, 우리가 자처한 불만족의 결과물인 보수우익세력의 집권에 이충무공이 부릅뜬 광화문이 촛불문화행진으로 마감시키는 명예혁명을 이룬 뒤 다시 끊임없이 재해석되는 ‘광주’와 만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옆 관에서는 일제강점기 대동아전쟁(일본 측의 일방적 해석 용어)때 대한국인들이 강제로 끌려가 수많은 목숨이 희생되었던 ‘군함도’가 영화화되어 상영되고 있었다.
지금은 여름방학 중이라 나름대로 성수기를 이루고 있었다. 이런 정도라면 적절한 수익도 올리는 극장 운영이 가능해 보인다. 문화생활의 영유는 섬사람이라고 결코 터부시되어서는 안 된다. 구더기 무서워 장을 담그지 않으면 그 집안 살림은 어떻게 할 수 있는가. 최근 진도군은 삼별초공원 내에 물놀이장을 열었다. 오토캠핑장과 호흡이 잘 맞는다.

한국의 ‘택시운전사’와 달리 미국의 ‘택시 드라이버’(79년)라는 영화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로버트 드니로와 거리의 소녀 창기(‘양들의 침묵’의 조디 포스터)와의 우울한 관계가 그려진다. 드 니로는 이에 앞서 ‘사슴사냥’(디어 헌터)에서 베트남으로 간 친구 세 명 미군의 비극적 운명을 열연했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할렘가도 마다하지 않는 주인공은 한국 택시운전사 송강호와 마찬가지다. 그는 아직 중학생인 어린 딸이 생의 전부나 마찬가지다. 광주에서의 죽음을 불사하면서도 그의 머릿속엔 늘 얹혀사는 사글세집의 딸이 오롯하게 다가온다.
‘디어 헌터’에서 첫 장면은 사슴사냥에 나서 라이플 장총으로 사슴 표적에 정조준이다. 절호의 기회다. 그냥 방아쇠를 당기면 된다, 그러나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가장 초롱한 사슴의 눈이었다. 그가 마침내 총을 내린 것과 달리 5.18 항쟁 그날의 전두환 군부의 지시를 받아 ‘화려한 휴가’를 받아온 계엄군들은 순정한 청년 시민들에게 정조준 사격을 감행한다.
시인 김준태는 강제 진압으로 ‘피의 휴가’가 끝난 뒤 6월 2일 전남매일 신문 첫면에 ‘아아 광주여 대한민국의 십자가여’를 실어 결국 전두환군부에 의해 폐간되고 말았다.

아아, 광주여 무등산이여
죽음과 죽음 사이에
피눈물을 흘리는
우리들의 영원한 청춘의 도시여.

우리들의 아버지는 어디로 갔나.
우리들의 어머니는 어디서 쓰러졌나.
우리들의 아들은
어디에서 죽어 어디에 파묻혔나.
우리들의 귀여운 딸은
또 어디에서 입을 벌린 채 누워있나.

하느님도 새떼들도 떠나버린 광주의 그날.
새로운 세상은 새로운 창이 요구된다. 창은 거울이자 고정관념의 벽을 뚫는 또 다른 시야가 된다.
작은영화관(아리랑 시네마) 극장이 진도에 들어오는 것 자체가 무리라고 하는 일부 주민들의 인식이 없는 것도 아니다. 우려다. 시련과 실패를 너무 두려워하지 말라 하였다. 하지 않는 것, 즉 도전이 없는 삶은 무의미하다. 진도 군립민속예술단 운영이 20년 째 이어지고 있다. 주말마다 만원을 이룬다. 기우는 기우일 뿐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진도를 주제, 또는 소재로 하여 더 많은 영화가 제작되기를 바란다. 영화 ‘명량’은 역사적 배경만 진도해역이지만 촬영지는 진도가 아니었다. 진도를 소재로 진도에서 찍은 영화도 여럿 있다. 운림산방의 수련 연지를 배경에 담은 조선시대 여염집 춘풍 일화와 ‘그 섬에 가고 싶다’, ‘천국의 계단’(진도읍 성내리), ‘불의 딸’(한승원 작. 세방마을, 남도석성 등에서 촬영) 이외도 많다. 앞으로 삼별초 진도정부와 관련된 역사 드라마나 영화가 꼭 제작되었으면 한다. 우리에게 깊이 새겨진 ‘세월호’도 분명히 어떤 시기에 오면 영화로 우리와 다시 아프고 뜨겁게 만나게 될 것이다.

진도군의 앞바다 역사를 되새겨보자. 의주로 도망갔다 돌아온 선조대왕은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에게 육전을 명령하였지만 여해(汝諧), 如海와 같은 순신은 그 유명한 어록 “아직도 신이 죽지 않았고 열 두 척의 배가 있습니다.”는 장계를 올리고 필생즉사요 필사즉생이라며 절체절명의 조선을 바로 이 바다 군내면 녹진과 벽파 명량해로에서 일자진으로 파고들어 천추에 길이 남을 대첩을 진도군민들과 함께 이뤄내지 않았던가.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전국 최초 민속문화예술특구 지정에 걸맞게 당당하게 우리들의 소중한 꿈과 희망, 전국동시 개봉관 아리랑시네마 극장을 아름답게 고수하여야 할 뜨거운 책임감이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다. 물론 진도군과의 입찰관계에서 약간의 오해와 군의 군 의회에 대한 경시와 적극적인 사업설명 및 지원 부탁에 소홀한 점은 인정하고 대승적으로 풀어가야 할 부분이라고 본다. 진도군의회라고 단순히 대립각을 세워 기 싸움으로 발목잡기를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의회의 본 역할에 대한 의무와 군민들의 소명에 따른 책임성의 발현에서 나타난 상황으로 파악된다.
그러나 이런 불편한 관계가 계속 언론과 매스컴에 오르다 보면 정작 진도의 보배로움에 대한 외부의 불편한 시선이 높아져 우리 자신에게 상해(傷害)가 되는 경우까지 가서는 안 될 것이다.

진도군에서는 앞으로도 계속 시네마 영사기가 돌아가야 한다. 민선 5기 6기에 이르도록 여러 가지 토목건설사업, 국악민속과 체육시설 확장 등에 특히 집중하는 듯 한 행정에 균형이 바로 서야 할 것은 분명하다. 이번 아리랑시네마 위탁 운영은 일부 호사가들이 분명한 근거가 확실하지 않은 채 특정 개인 또는 문화단체의 이권이나 사리사욕을 채우는 영업과는 분명하게 숨은 관계나 의도가 추호도 없다는 것을 박정석 문화원장은 물론 20여 명의 이사회에서도 분명하게 밝혔다고 한다. 군민과 진도를 찾는 향우 관광가족들에게 또 다른 향유의 기회를 주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영화가 영화(榮華)를 주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때로는 그 작품에 따라 고통스럽게 자기성찰을 요구하거나 국가를 뛰어넘는 시대 공감을 통해 보편적인 인류애와 작게는 지역 공동체 구성원들 간의 정신적 소통의 윤활유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진도에 새로운 시네마니아를 부르는 초요기는 이미 올려졌다. 명량을 헤치는 판옥선처럼, 거북선처럼 진도 아리랑 시네마 극장이 예향의 본영답게 큰 화합으로 쾌속 항진하길 기원한다.

독자 의견 목록
1 . 1111 김반석 2017-12-03 / 05:58
2 . ^^ 민경 2017-12-19 /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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