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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남인의 진도이야기


그날
세월호2주기 추모공연장에서
박남인 2016/05/06 11:59    

그날, 노래가 있었다
풍등처럼 공연장을 떠도는 아픔을 딛고 다시 일어서는 사람들
함께 기억하고 함께 부르며 하나되는 세상 기원하며

문득 환영(幻影)을 보았다. 깊고 강렬한 현현에 나는 전율하고 슬프고 반갑고 안타깝다 못해 이 무망한 시간에 풍등처럼 떠내려가는 한 여인의 황홀한 환영에 사로잡혔다. 무대에는 가수 한영애가 있었다. 밤이었다. 먼 산의 진달래 꽃 내음도 다가서지 않는 그런 밤이었다. 그러나 떠나간 자들에 대한 안타까운 사랑 그리움 그리고 여기 살아 기억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향기가 은은히 피어올랐다.

세월호 참사 2주기를 맞이하며 자원봉사자들과 진도군민과 함께하는 가요 희망콘서트가 4월 14일, 오만과 아집의 집권세력에 대한 온 국민의 준엄한 선택과 심판 그리고 새로운 세상을 갈망하는 위대한 흐름을 밤새 확인하였던 그날 오후 7시 진도향토문화회관 대공연장에서 열렸다. 조금은 쌀쌀한 날씨였다. 바닷가는 더 추울 것이다. 어제의 투표장과는 또 다른 긴장이 흐른다.

아무도 예감하지 못한 채(그러나 필연적으로) 세월호 사건이 진도 먼 앞바다에서 일어났을 때 누구보다도 먼저 달려가 팽목항에서 봉사활동에 나서 눈물을 쏟던 여인이 있었다. 한 소설가가 있었다. 곽의진 작가다. 나는 이날 밤 한영애씨의 독특한 음률에서, 언뜻 언뜻 제 격정에 겨워 돌아서는 그 찰나와 조명등 불빛 아래서 곽의진이라는 작가선배 그 여인을 떠올리고 있었다.
730여 년 전 장열하고 참혹했던 삼별초 진도고려 항쟁 속에서 피었다 진 한 진도처녀, ‘또 하나의 고려 진도에 있었네.’에서 순정한 처녀 동백이를 열정적으로 그려 되살렸던 곽의진 작가. 그녀가 세상을 벗어난 지도 벌써 두 해가 다 지나간다. 임회면 탑립 오봉산 자락 자운토방이 잠시 어른거렸다. 무대 정면에 걸린 노란 리본, 온통 칠흑의 벽 휘장 속에 날개를 접은 새들, 애국가가 불러지기 시작하면 새들도 세상을 떠난다는(황지우) 장면이 빠르게 스쳐가기도 했다. 어차피 그 여인도 더 큰 날개짓을 꿈꾸며 구자도 매섬을 바라보았을 것이다. 바다라는 수평의 활주로를 품고 그렇게 서울 광주 목포로 비상을 반복해 왔으리라.
청와대가 2년 전에 이미 국민안전을 위한 컨트롤 타워의 소임을 포기한 뒤부터 사실상 대한민국의 안전한 미래, 평등한 세상을 위한 컨트롤타워는, 관제탑은 결코 물러서지 않는 민중의 연대 희망버스에 있음을 우리는 새삼 확인하고 지키고 밀양에서 팽목항과 강정마을 바다까지 외연을 넓히는 데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날 진도향토문화회관에서는 팽목항 건너 수많은 어린 넋들에 대한 추모와 이를 극복하고자 ‘독선과 오만’을 심판한 위대한 국민들의 새로운 세월을 기대하는 설레임이 함께하고 있었다. 진도는 늘 노래와 함께 역사를 흘러왔다. 노래가 없는, 소리가 없는 진도는 상상할 수가 없다. 옥주골 산야에 널려있는 청동기시대 유물인 고인돌 마다 땅을 파고 두드리던 옛 진도인 들의 풍습에서부터 곡조 있는 소리가 담겨있다. 울돌목 명량의 회오리를 상징하는 진도의 강강술래 숨 가쁜 뜀박질에도 손에 손에 소리를 건네고 받는다. 가슴과 가슴으로 묶는 신호음이 달무리를 이룬다.
더 낮은 곳으로 낮은 곳으로 흘렀던 그 많은 물결들, 저 푸른 남쪽 대양에서 은빛 몸결로 장죽수로를 건너고 소포 지나 해창 하구에서 진도읍 남천교까지 어화(漁火)처럼 넘실대던 해조음이 또 그러하였다. 태평도 유구하지 못한 오늘의 태평양 유구열도 강황 향을 싣고 만재도 병풍도 맹골수도를 지나 팽목항에 닿는 모든 물결들이거나 봄 시샘을 하듯 찾아오는 영등할머니의 영험이 서린 영등살 파도가 바람과 함께 온 몸을 다 드러내는 신비의 바닷길은 단연 진도만이 갖는 소리의 길이다. 이 고통스러운 시대의 아픔을 질풍노도처럼 밀어올리는 힘을, 그 신명을 가인 한영애는 한껏 발산한다. 그녀가 손짓하는 그곳으로 그녀의 가슴골에서 노란 종이배가 하나씩 돋아 떠오른다. 또 환영이다. 환영 속에서 빠져나오면 “‘너는 나다’ 우리다!”라는 또 다른 울림이 나를 지배한다. 이건 거역할 수 없는 공유다. 감축이다.
씻김은 해원이다. 굿은 구스림이라고 해석해본다. 씻김굿은 망자에 대한 기억의 방식을 담고 있다. 처음처럼 되살림을 축원한다.

일곱 시가 조금 넘은 시간 공연장에 도착했었다. 함께 간 조갑련씨가 예불의식을 뛰어넘자고 했었다. 벌써 무대에는 현수막에 적혀있었던 분의 순서대로 금강스님이 추모시를 낭송하고 있었다. 왼쪽 무대 피아노 반주가 시낭송 소리를 부드럽게 얼싸 안고 허공과 상념의 심연을 유영한다. 스님의 긴 추모시 두루마기는 마치 씻김굿 길 닦음 때 흰 당목 질 베를 연상시켰다. 가장 큰 슬픔 앞에서 가장 큰 공동체를 이루었던 진도사람들의, 대한민국의 의로운 봉사자들이 만들어냈던 뜨겁고 숭고한 공동체의식을 떠올리고 있었다.

이번 추모 콘서트는 진도불교사암연합회에서 주최를 하였다. 여러 사정으로 뒤늦게 좀 서둘러 행사를 추진하다보니 제대로 홍보안내가 덜 되었다고 한다.
법일 진도사암연합회장인 향적사 주지스님이 봉사 위로 활동 과정을 떠올리며 인사말을 하였다. 257일간이라는 세계 최장의 자원봉사활동을 펼쳤던 스님과 불자들의 이타심이 피아노 건반 위 향촉으로 은은히 풍겨 나오고 있었다. 늦은 저녁이었지만 객석에는 많은 관객들이 찾아와 노래라는 소리공양을 올리는 가인들에게 고마움과 성원으로 하나 되어 박수가 연이어졌다.

첫 번째 초대가수를 피아노 연주자이자 사회자가 “봄눈이 녹아 흐르는 계곡물처럼 맑고 시원한 목소리”를 가진 박강수 라고 소개했다. 의외로 여성이었다, 나는 이렇듯 포크 라이브 가요계에 너무 무지했다. 생소했지만 더 정겨웠다.
정말 청량한 목소리가 무대 천정을 오르내리며 기타 음률 사이사이에 이슬방울을 털어내듯 우리를 정화시키고 있었다. 하모니카와 기타 그리고 몸이라는 관악기의 삼중주는 매우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 노래 제목은 잊었지만 박강수라는 가수.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남아 있어’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에도 가로등 그늘의 밤을 나는 잊지 못하겠네. (‘세월이 가면’중에서). 두 번째로 ‘팽목항에서’라는 노래를 불렀다. 긴 머리의 그녀는 “노래는 내게 삶의 기록입니다”라는 응답을 갖고 있다고 조심스러워 하면서도 진도 사람들과 진정어린 소통을 원했다.

나는 가장 가까운 첫줄 객석에 앉아 이 공연을 보았다. 박강수는 청바지가 잘 어울리는 가수였다. 자원봉사자로 오래 일했던 장길환씨와 세월호 유가족이 바로 옆에 자리하고 있었다. 또 바로 뒤에는 진도군청에서 세월호 지원 팀장을 맡고 있는 허은무씨도 공연관람에 열중하고 있었다. 누구나 다 제 몫에 충실했던 사람들은 침묵과 경청에 익숙해진다. 나는 부실하다. 흔들려야 다시 겨우 중심을 잡으려 하는 목각인형에도 못 미친다.

두 번째로 무대에 오른 이는 가인 한영애씨였다. 이렇게 가까이 처음으로 나는 그녀를 바라볼 수 있었다. 생각보다 섹시해 보이기도 했다. 오른 손에 찬 노란 팔찌가 눈에 띈다. 세월호를 기억하는 뜻을 감은 듯하다.
“너무 슬프면 노래를 불러라”고 한영애 가수는 우리에게 주문한다. 그녀의 부드럽고 강한 눈빛, 거침없는 무대 동선, 풍부한 경험과 통유가 자유자재한 몸놀림에서 때로는 밀교의식을 행하는 한 무희를 보는 듯 했다. 아 나는 거기서 왜 곽의진 소설가를 떠올렸을까. 그 의상에서 이었을까.
곽의진씨는 글쓰기 작업과 병행하는 삶 그 자체가 한영애씨처럼 열정적이었다. 오지랖도 넓어 서울과 진도를 수시로 오가곤 했다. 주체하지 못하여 탈을 내기도 하면서 잘도 주변사람들을 끌어 모으던 그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그 손끝에서 허 소치선생이 꿈같은 화연으로 되살아나고 배중손이 배신의 무덤을 갈라 침묵을 베허 부활하고 초의의 동다송이 다시 울렸지 않은가.

다시 노래를 듣는다. 그녀의 달콤한듯 주문을 거는 듯한 한 마디 한 마디가 마법처럼 나의 심연을 흔들며 일깨운다. 너는 왜 솔직하지 못하는가. ‘네 말을 해봐’ 속삭이며 어느새 나를 기꺼이 감염시킨다.
“잠자는 하느님. 일어나 그 옛날 하늘빛처럼 조율 한번 해주세요” 반복해서 울릴 때마다 관객들의 합창이 더욱 커졌다. 그렇다. 국민들은 이번 선거에서 준엄한 조율을 보여주었다. 이제 하느님이 만 백성의 뜻을 받아 진실의 힘을 바탕으로 세월호를 바다 속에서 건져 올리고 진실을 인양하는 조율이 더 질실해지는 2주년이 되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고대하던 노래. ‘봄날은 간다’를 마침내 부른다. 허공에 쓴다. 관객들의 가슴가슴에다 쓴다. 살아있었으면 열아홉이 되었을 아이들. 1년 전 4월 16일자 한겨레신문에 1주기를 되돌아보는 지면에 ‘동백꽃처럼’이라는 시를 게재한 적이 있었다. 시 구절 하나도 떠오르지 않는다.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아 그 많은 소녀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나비가 되었는가. 별이 되었는가. 풍등이 되어 망망대해를 떠 다니고 있는 것일까. 왜 여기 한영애인가. 라이브 무대란 이런 것이란 것을 절절하게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삼절까지 부르고 또 따라 불렀다. 그녀와 두 번씩이나 눈빛이 마주 쳤다. 나도 전율했다. 어쩌면 그이는 내가 유가족으로 보였는지도 모른다. 초췌한 모습으로 혼자 남겨진 조바심을 녹여주고자 한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아니다. 누구나 한 순간 순간마다 그녀와 다 눈빛을 마주쳤다고 본다.
부러 두 번이나 전화를 했던 사천리 여동생도, 아내도 제대로 응답하지 않아 나만 외톨이가 되어 온 것이 너무 아쉬웠다. 그래도 특별한 홍보도 없었을 텐데 이렇게 많은 군민과 노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찾아와 자리를 채운데 대해 안도와 고마움이 밀려왔다. 나중에 잠시 공연장 뒤로 갔을 때 조찬진 전 선진농협조합장(첨찰산 쌍계사 처사회장), 조권준 전 진도농협장 부부, 조성문 전 진도농민회장, 오판주 전 읍장 등도 보였다.

자리를 옮겨 고재성 국악고 선생과 나란히 성원을 보냈다. 그도 한 소리 하는 인간이다. 우리는 ‘한 곡 더’를 기꺼이 애소하였다.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몽혼하면서 오기 전 마셨던 막걸리 한 병의 취기가 어느새 발화되어 사라져버렸다.
시간은 8시 40분을 지나고 있었다. 마지막 출연자로 안치환이 나왔다. 90년대 ‘노찾사’와 함께 민중가요시대를 열었던 가수. 그도 기타를 들고 나왔다. 사회자는 시종일관 차분한 목소리로 멘트를 풀어 관중과의 교감을 이끌어냈다. 진실함과 나눔이 있는 희생정신을 발휘했던 수많은 자원봉사자들. 그들은 분명 ‘꽃보다 더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안치환의 꽃보다 사람이 더 아름다워라 는 가사가 더욱 공감을 주는 무대였다. 민주화를 갈망하던 시절의 향수가, 그 힘찬 동력을 새삼 떠올리게 하는 노래였다. 이어 ‘바람의 영혼’을 열창하였다.
이들은 서울까지 다시 돌아가야 하는 일정 때문에 앙코르를 다 소화하지 못하고 그들은 ‘진도에서는 2박3일간 공연이 당연하지만’이라는 말로 위로를 보냈다. 7시간을 달려와 다시 되돌아가야 하는 발길을 더 잡을 수는 없었다.

밖으로 나오자 불교여성신도회 자원봉사자 분들이 쑥떡과 음료수를 나눠주고 있었다.
내일 팽목항에서는 진도의 학생들이 세월호 희생자들에게 보내는 추모 글이 낭송된다고 한다. 벌써 이틀 전 조도 중고생들은 나래마을 바닷가에서 시를 낭송하고 바다에 헌화를 했다고 한다. 희생자의 넋을 추모하고 조속한 귀환을 바라는 마음에서 전교생 모두가 해역 인근 언덕에서 채취한 노란 유채꽃 다발을 바다에 헌화하는 순으로 행해졌다. 특히 미수습자 9명의 조속한 귀환을 바라는 마음으로 박슬아(고2) 양은 9송이 꽃이 든 바구니를 안고 세월호를 향해 기원하는 퍼포먼스를 벌여 주위를 숙연하게 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지만 “누군가의 일상의 단절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고정순)은 무엇이었는지 다시 되새기며 돌아오지 않는 그들을 이 봄에도 기억하고자 한다. 주말에는 날이 맑았으면 한다.(박남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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