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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남인의 진도이야기


옥주골의 신명을 되살리자!
진도신비의바닷길 축제 페러다임에 변화구를 던져라
박남인 2012/03/21 16:58    

진도는 지정학상 태생적으로 섬의 운명을 가졌다. 이웃 해남 우수영과 불과 484m(실제 간격은 300m가 안 된다)의 사장교가 걸려 있다. 한강보다도 그 너비가 좁은 해협이지만 이 사이를 흐르는 조류는 초속 6m의 급류가 흘러간다.

당연히 진도 땅의 풍토와 기는 특별할 수밖에 없다. 진도는 이 빠른 물살에 둘러싸여 갇힌 듯 하지만 오롯한 독자성을 가진 문화와 무형의 기질을 간직할 수 있었다. 더러는 ‘섬것’들로 치부하거나 폐쇄성과 하류문화를 지적하기도 한다. 이는 매우 잘못된 선입관에 기인한다. 비록 진도사람들은 ‘섬사람’이라는 부당한 굴레에 갇혀 중앙 관계에 진출할 수 없는 제도의 피해를 수백 년 동안 받아오면서 왜구들의 노략질까지 당하는 아픔이 있어왔다.

다른 사람들이라면 섬을 버리고 다 떠났을 것이지만 오히려 진도군민들은 정부의 강제 공도화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되돌아가고자 하는 열망을 결코 접지 않았다.

전국노래자랑

우리 민족의 대 명운이 갈라졌던 한민족 최대 일대사라고 할 수 있는 13세기 중후반 동아시아 해상세력과 반도세력간의 대혈전이 이뤄졌던 진도삼별초왕국의 투쟁역사에서 결국 패퇴하여 진도군민들은 수만리 이역 초원지역으로 잡혀갔던 기억도 있다.

하지만 우리 옥주고을 사람들은 결코 상처만을 덧내는 삶을 선택하지 않았다. 뼈 속 깊이 각인된 슬픔을 단지 슬픔으로 간직하지 않고 적극 해소하고 상생과 신명의 길을 찾았다. 그래서 우리 진도사람들은 내상(內傷)이라는 트라우마에 지배당하지 않는 독특한 기질을 얻은 것이다. 죽음까지도 해학으로 넘기며 불사조와 같은 부활의 날갯짓으로 다시래기 춤사위와 씻김의 해원을 통해 현실의 상처를 지워냈던 것이다.

섬사람이라고 홀대를 했지만 정작 국가가 위난에 처했을 때 가장 먼저 일신의 위안을 팽개치고 기꺼이 목숨을 바쳐 나라를 지켜 호국신령이 되었던 분들이 우리 진도조상님들이었다. 정유년 벽파진 울돌목의 장엄한 역사는 그렇게 쓰여져 오늘도 녹진대교를 사나이의 거친 숨결로 흐르고 있지 않는가? 노산 이은상 시인은 소전(素筌)의 손을 빌려 “피 흘린 의사혼백 어느 적에 사라지리. 이 바다 지나는 이들 이마 숙이옵소서.” 라며 의로운 진도 민중열사들의 정신을 고군면 벽파리 동산 이충무공전첩비에 천년이 지나도 풍화되지 않도록 결연히 새겨놓았다.

진도는 고래로부터 해상왕국이었다. 사회문화적으로 분명 독립된 나라였다. ‘진도’와 ‘진도 아닌 것’과의 지독한 구분성은 외지인들의 고개를 절레절레하게 만드는 집착도 한 ‘나라’라는 자부심에 연유한다.

후삼국시절 진도인들이 견훤(甄萱)의 세력과 손잡지 않고 왕건을 선택한 것도 그가 해상무역(벽란도)을 주도하는 세력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강강술래

진도는 옥주(沃州)라는 별호처럼 예로부터 농사를 지어 하늘에 감사하는 춤(夭)을 출 정도의 기름진 땅이었다. 하여 아무리 중앙정부가 배척하고 국영목장지로 유지하려 했으나 진도인들은 이 땅을 떠날 수가 없었다. 봉건왕조의 법망과 감시망을 뚫고 진도에 속항 여러 섬으로 해안으로 숨어들어 그들만의 해상왕국 아니 해상 민중주체 자치공화국을 일궈내고자 했다. 단군(단골)이라는 정신적 지주가 근현대까지 유지되었던 것도 바로 서민민중의 중심 자치 행정 지향에 있었다. 남에게 빌리지 않는 자가발전의 흥과 멋이 담긴 문화가 들판에서 뱃머리에서 밭두럭에서 시골장판에서 언제 어디서도 흐드러지는 진도야말로 우리가 지향하는 ‘이상향’의 롤모델이 아니겠는가!

‘진도에는 양반문화정신이 없다’라는 지적을 하는 이들도 더러 있지만 이는 진도라는 그 본질성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가 사는 시대는 높낮이를 지운 수평적 ‘문화’와 타율을 물리친‘자치’가 가장 큰 가치요 슬로건이 되었다. 문화예술이 진도만큼 번성하고 누구나 다 누리는 고장이 어디에 있으며 자주적 기질이 넘쳐나는 지역이 어디에 있는가?

결코 아픔에 짓눌리지 않고 강강술래로 동질감을 강화하고 진도아리랑으로 남도들노래로 육자배기로 신명을 되살리며 수천 년 살아온 진도사람들. 진도사람들처럼 ‘판’을 잘 만드는 능력을 발현하는 주민들이 이 천지 어디에서 찾는단 말인가!

진도 신비의 바닷길이 열리는 것은 바로 진도사람들의 신명의 작용 때문이라고 감히 나는 주장한다. 진도대교를 건너 반대편 정 남쪽 바다에서는 해마다 ‘영등사리’ 때가 되면 ‘신비의 바닷길’이 열린다.
이 바다 갈라짐은 1월에 4회, 2월에 6회 등 연간 총 30여회 고군면 회동과 의신면 모도(띠섬)가 연결되는 놀라운 기적(?)을 연출한다. 하지만 제대로 바다 밑까지 드러나는 현상을 목격할 수 있는 것은 음력 3월 중순 무렵이다.

오는 4월 7일부터 사흘간 제34회 ‘진도 신비의 바닷길’ 축제가 열린다. 대한민족의 화합과 통일과 번영이라는 염원이 마침내 신비의 바닷길처럼 훤히 맞닿아 열리는 “보배로운 섬” 진도 오는 길 그 자체가 희망과 사랑의 시작이 되도록 모든 군민 향우들이 합심해 친절한 안내자가 되도록 노력해 나가자! 축제의 마당에선 우리가 진도를 대표하는 군수이며 우리가 진도의 주인이기 때문이다.(박남인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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