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16년 9월 12일 월요일
손님 행복한 하루 되세요



갈치낚시, 가을에 접하는 별미


 졸음운전, 음주운전보다 더 위험..
 여름철 물놀이 안전수칙
 여름철 건강관리 요령
 완강기 사용법
 비상구 등 피난.방화시설 관리방..
 기획공연 연극『난영』 공연
 일본역사테마기행
 삼학도 문화제전 사진모음
 해남군립예술단 성인합창단 신규..
 2007 삼학도문화제전 행사진행표
 법과 규제가 사람을 죽이[evil]..
 도둑은 수천이라도 잡아야 하며 ..
 함평군립 미술관 건립 추진을 충..
 "왜"함평군은 군민의 눈,귀,입를..
 [동참] 부패한 종교, 시민의 힘..
 뉴스 없는 뉴스를 전하는 최일구..
 현재의 공중파가 조중동 방송이..
 mbc가 있어서 방송이 산다.
 용산이 사라졌다
 문화방송은 변하지 않았다
박남인의 진도이야기


용장궁성의 꿈은 무엇이었을까?
340년 전의 진도에 용트림을 한 용사들이 새긴 “짐세의 꿈” 다시 살핀다.
박남인 2011/02/27 22:45    

    용장성은 우리에게 무엇이었을까? 용장성은 수만의 포로 몽골 이송, 고려를 넘어 혹독한 공도시절과 조일전쟁 때 일본왜군의 보복 살해당했던 영혼들을 어떻게 위로하고, 살아남은 자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시대를 넘어 희망을 던져 줬을까? 어떤 것도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은 비밀의 영토, 노래에 역사를 새긴 침묵의 섬 진도 용장성은 아무것도 알 수 없기 때문에 무수한 해석의 공간이 됐다. 이제 바람의 골짜기를 건너온 뜻있는 옥주골 후손들의 상상 속에서 용장성의 꿈들이 실체를 얻기 시작할 것이다.
    용장성에 대해 실재적으로 접근하고, 앞으로의 용장성과 삼별초역사 탐방과 재현은 어떠해야 되는지를 고민하는 학술행사가 열려야 한다. 그것도 매 계절마다 진도전역을 돌면서 말이다. ‘2011 진도 고려삼별초 역사문화제’(가칭)가 열려야 한다. 여기에는 용장성과 삼별초의 시대적 역사 고찰과 문학· 민속· 지역 유적 등 다양한 작은 주제에 대한 깊이 있는 논의가 진행되기를 바란다.
    발굴을 통해 드러난 진도 군내면 용장성 유적의 현황은 수수하기만 하다. 당시의 치열한 자주정신이 어느 주춧돌 아래 새겨졌는지 하나하나 들춰보고 싶은 갈망이 절로 인다.
    전남 동북으로 올라가면 당시 삼별초가 궐기하기 전 이곳 용장사에서 머물렀던 당시 최고 권력가의 아들 최항은 진도군수의 엄중한 질책에 놀라 화순 쌍봉사로 도망갔다는 일화가 있다. 그 고려시대 11세기 이전 화순 운주에는 운주사가 창건되어 ‘천불천탑’ 도량으로 명성을 잇다가 정유재란 직후 폐사됐다고 한다. 진도 또한 정유재란 때 명량대첩을 이루고 나서 일본군들의 보복공격에 수많은 군민들이 목숨을 잃고 무명의병들의 분전과 사망은 현재 고군면 오일시 앞 무명용사묘역으로 단장되어 있을 뿐이다.

©우리힘닷컴

    진도 삼별초왕국은 어느 한 곳 분명한 구석이 없다. 배중손의 사망시기와 장소가 아직도 오리무중이며 남도진성과 금갑성 부근 해상세력의 역할은 무엇이었을까? 진정한 퇴각로는 어디어디인가? 내부에서의 분열이 있었던 것일까? 유구열도로 건너간 것일까?
    「용장」은 龍藏 처럼 신비성이 아직 풀리지 않았다. 누군가 혹은 한 여인이 그 역사의 한 열쇠를 찾기 위해 산등성이를 더듬는다. 새로운 세상을 갈망하는 ‘혁명의 주체’는 곧 용으로 형상화된다. 진도의 토착민들은 그 꿈의 환타지에 젖어들었을 것이며 무엇보다 진도로 온 삼별초 용사들 또한 용이 잠들어있는 이곳에서 천년의 기다림을 일깨워 사해(四海)에 물보라를 떨치며 대륙벌판으로 웅비하고 싶었을 것이다.
    용장성은 여러 특성이 복잡하게 얽혀 해석이 쉽지 않지만 결코 하늘에서 떨어지거나 땅에서 솟아오른 게 아니다. 용장성과 진도삼별초는 그 아련한 궁금증을 수증기로 증폭시켜 꽃을 피우는 문학적 성과로 이어지는 통로가 제대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 소설은 물론 시 한편이 아쉽기만 하다. 상징 없는 대결은 남루한 법이며 또 다른 편협한 역사해석과 고루한 왕도중심의 편년체에 귀속될 뿐이다.
    우리는 아직도 용장에 갇혀있는 것은 아닐까? 오룡쟁주의 명당길지가 오늘도 눈먼 지관의 지팡이만을 기다린다거나 “샘파는 노인”의 꿈은 열자 물길에 잠겨 더 이상 구세 이상의 광채를 잃어버린 것일까? 민속의 제국에서 예술의 모태 섬으로 거듭 떠오른 진도이지만 아직도 역사와 관련해서는 변방의식으로 떠밀려간다는 아쉬움이 있다. 진도의 문화예술인들의 분발과 각성은 또 다른 삼별초정신의 계승이 아닐까?
    나는 며칠 동안 진도역사에 관심있는 지인(박정석 전 진도군 기획실장. 진도다시래기 이수자 최홍림 이우재)들과 곽의진 작가와 함께 용장성 일대를 둘러보았다. 한 달 전에는 당시 몽골에 대항한 지도자와 병사 백성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삼별초위령탑이 이곳에 세워졌다.
    눈발이 녹는 질척거리는 산길을 몇 번이나 걸어 등성이를 넘을 때마다 격랑에 쌓인 역사의 이랑을 넘던 삼별초의 정신은 무엇이었을까. 혹은 푸른 벽파의 바다를 바라보며 감부도처럼 의연하며 시대와 민족을 지켜내는 요새로 끝까지 떠밀려 흐르지 않겠다는 다짐과 꿈이 내게 흘러오는 듯 하다. 이곳 연동마을 주변에는 수년 전 고군면장을 지낸 박호성(현 진도군 수산지원과장)씨 등이 세운 삼별초호국공원이 우리의 답사 여정을 잠시 머물게 한다.
    역사에 인체의 구조처럼 맥락이 있어도 단절은 있을 수가 없다. 격동하는 동아시아의 정세는 세습왕국집단으로 전락하고 있는 북한정권과 도덕성을 상실한 채 민중을 도탄시키는 현 남한정권의 오만에 맞서 이곳 ‘짐세의 꿈’ 거대한 해상왕국을 지향했던 ‘백제의 꿈’이 삼별초로 이어져 다시 자주 보배의 섬, 진도를 중심으로 격랑처럼 혹은 들불처럼 서해에서 동해까지, 삼천리 강산에 번지며 21세기 해상환국(海上桓國)의 중심으로 우뚝 서야하지 않겠는가!




독자 의견 목록



의견글 쓰기
글은 인터넷에서 자신의 인격을 비추는 거울입니다
글쓴이 비밀번호
제 목
내 용



  시네마천국의 계단에 오르다[2] 2017.08.11
  조금장터[1] 2017.02.16
  숭어는 어디에서 오는가[1] 2016.10.25
  그날[1] 2016.05.06
  군민과의 대화가 즐겁다[1] 2016.01.29
  구보시 [1] 2015.08.11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1] 2014.12.29
  진도사투리사전에 나타난 진도말의 특징[1] 2014.10.29
  다시 팽목항에서[2] 2014.09.26
  조국은 어디에 있는가[1] 2014.08.05
  세월호와 진도[1] 2014.07.09
  꿈이로다 꿈이로다 2014.05.26
  진도 팽목항에서[70] 2014.04.17
  춤추는 인형은 밤을 두려워하지 않는다[1] 2014.02.06
  옥주미장원 2012.11.13
  독도 2012.07.03
  어디로 흘러갔는가[1] 2012.06.25
  옥주골의 신명을 되살리자! 2012.03.21
  소치미술관 운영에 관한 제안 하나 2012.02.21
  군수님, 왜 그럴까요? 2012.01.24
  어느 육사교장의 놀라운 식견 2012.01.04
  알고보면 우리가 남이 아니다? 2011.06.10
  여성이장 확대와 마을 “별호 짓기” 운동 펼치자[1] 2011.06.03
  [일제 下 진도인물열전-2] 진도의 독립운동가 정경옥씨 2011.03.25
  → 용장궁성의 꿈은 무엇이었을까? 2011.02.27

1 2 3 4
우리힘소개 | 개인정보보호정책 | 광고문의 | 기사제보 | 제휴문의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 거부
Copyright © 2003 인터넷신문우리힘닷컴주식회사 All rights reserved Tel : (061) 277-5210 / Fax : (061) 277-5290
신문 등록번호 : 전남 아 1 등록일 : 2005.08.11 발행인 : 김은정 / 편집인 : 오승우 54.198.170.1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