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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남인의 진도이야기


돌아온 백구 진도개이야기
의신면 돈지마을 백구공원에 동상과 시비 세워져
박남인 2009/08/27 12:33    

“돌아온 백구” 진도개 기리는 詩碑
의신면 백구공원에 세워졌다



“개만도 못한 인간”이란 말은 얼핏 인간의 품성을 극단적으로 폄하하는 비유로 자주 쓰인다. 그러나 이 말이 진도에서는 사람보다 먼저 “개”의 견성을 함부로 격하시키는, 잘못된 비유가 될 수 있다. 그냥 ‘짐승만도 못한 ○○’으로 치부하면 그만이다.

“고독한 여정/ 그 뼈아픈 귀향 소식// 예뻐라” 했더니.
의신면 백구공원에 시비(詩碑)가 새로 들어섰다. 바로 ‘돌아온 백구’를 기리는 시비이다.

대전으로 팔려갔다 7개월 만에 돌아와 전국적인 화제를 뿌렸던 '돌아온 백구(白狗)' 시비가 전남 진도군 의신면 돈지마을 백구 광장에 세워진 것이다. 시인 문희숙씨의 '돌아온 백구 공원에서'와 '살아있는 전설 돌아온 충견 백구'라는 두 편의 시를 새긴 높이 2m 크기의 시비를 마을 주민들이 백구 묘 옆에 건립했다.

이에 앞서 지난 2004년 대전으로 팔려갔다 7개월 만에 돌아와 전국적인 화제를 뿌렸던 "돌아온 백구"가 동상으로 세워지기도 했다. 당시 진도군은 백구마을인 의신면 돈지마을 백구광장에 7천여만원을 들여 돌아 온 백구상을 건립했다.

이 백구상은 "한 번 주인이면 영원한 주인"이라는 진도개의 충성심을 기리기 위해 돈지마을 주민 등이 나서 세우게 되었다. 높이 2.1m, 폭 1.2m, 크기의 이 백구상은 백구의 주인인 박복단(당시 88세) 할머니가 백구를 다정스럽게 어루만지는 형상을 하고 있다. 동상 옆에는 백구가 대전에서 진도까지 되돌아오는 여정 등을 새긴 표지판과 마을 앞에는 지석묘로 꾸민 백구묘도 있다.

의신면 돈지마을에 돌아온 백구는 지난 93년 3월 박 할머니가 키우다 대전지역 애견가에게 팔려갔다. 그러나 7개월이 흐른 같은 해 10월 중순 한 밤중에 뼈와 가죽만 남은 채 300㎞가 넘는 거리를 달려 돌아와 온 국민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이 백구는 할머니 가족들과 행복하게 살다가 2000년 14살 나이로 숨졌다. 특히 이 백구는 진도개가 탁월한 충성심에 특유의 귀소본능을 가졌다는 사실을 온 천하에 증명해 보이면서 일약 스타(?)로 발돋움해 모 컴퓨터 회사 광고모델이 되기도 했다. 현재 박할머니의 아들인 돈지리 이기서씨 집엔 백구의 증손자격인 또 다른 백구가 자랑스런 혈통을 이어받아 자라고 있다.

강아지들-두달만에 낳는다해 흔히 '월이'라고 부른다

『이에 맞춰 국립남도국악원에서는 ‘백구의 진도아리랑’이란 주제로 극을 무대에 올렸다.
 8월 26~27일 오후 7시30분 광주문예회관 대극장에서 선보인‘백구(白狗)가 부르는 진도 아리랑’이 그것이다.
 국립남도국악원이 지난해 개발한 창작극으로 지난해 11월 국립남도국악원에서 첫 선을 보인 이후 국립국악원과 국립부산국악원(원장 박영도) 원 등에서 공연을 펼쳐 크게 호평 받았다.
 이번 공연은 광주문예회관이 남도국악원과 공동으로 주최, 2차례 공연을 모두 무료로 진행했다.
 ‘백구가 부르는 진도 아리랑’은 진돗개의 시선으로 사람들의 삶과 예술을 진도 무형예술로 담아낸 종합 가무악극. 모두 여섯 마당으로 구성돼 소치 허련, 무정 정만조, 대금산조의 창시자인 박종기의 삶 등을 육자배기, 흥타령, 강강술래, 대금 산조, 진도아리랑, 들노래, 다시래기, 씻김 굿 등으로 그렸다.
 진도 고유 예술을 원형 그대로 표현하기 위해 강강술래에 김종심, 남도들노래에 박동매, 다시래기에 강준섭, 박종기 대금산조에 박환영 등 분야별 예능 보유자를 자문위원으로 제작 과정에 참여시켰다. 예술감독은 김재운, 대본·연출은 지기학, 작곡 심인택, 안무는 이노연 씨가 맡았다.
 공연은 주인공인 백구가 주인 소치(허련. 남농선생의 할아버지)의 삶을 이야기하는 형식으로 시작된다. 소치가 운림산방 근처의 빼어난 경치 10곳을 뽑아 ‘운림십경’이라 칭하고, 찬시를 한 수씩 붙인 자신의 시를 새로운 흥타령과 육자배기 등으로 들려준다.
 둘째 마당에서는 1896년 진도에 유배돼 12년을 살다간 정만조의 이야기를, 셋째 마당은 대금산조를 창작한 젓대 명인 박종기의 삶과 예술을 대금 연주와 소리, 무용으로 표현한다.
 넷째 마당은 백구와 황구의 사랑 타령을 매개로 관객과 하나되는 순간을 진도 아리랑으로 표현.
 다섯째 마당은 천부적인 성음으로 잘 알려진 진도의 토속 소리꾼 조공례 명창을 소재로 농경문화에 함께한 소리와 절기별 내용을 소리와 반주, 무용 등을 선보였다.
 마지막인 여섯째 마당에서는 죽음을 극복하는 진도의 특별한 장례놀이인 ‘다시래기’와 죽은 영혼을 위한 씻김 등 진도만의 특별한 장례민속 예술을 보여 주었다.』


※의신면 백구공원을 둘러싸고 소위 “보신탕”집이 세 곳이나 자리하고 있어 이곳을 찾는 관광답사객들에게 의아심을 일으키기도 한다. 한 집은 예전 “궁자네 집”으로 그 명성이 진도 안에서 자자했던 곳이다. 또 다른 ‘개장시네 집’과 ‘돈지 그집’도 보신탕을 취급하고 있다.

어떤 호사가들은 ‘그 백구가 조금만 길을 잘못 들었어도 바로 된장 발랐을 것’이라고 혀를 차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 식당에서 취급하는 개들은 진돗개가 아니며(사실 진돗개 값은 너무 비싸서 수지가 맞지 않는다) 주로 외지에서 반입해 오거나 잡견들을 구입해 음식재료로 쓰고 있다.

또 다른 일각에서는 84년 이후 해남 우수영과 진도 녹진간 사장교 다리가 놓아진 이후 팔려간 ‘진돗개가 과연 몇 마리나 돌아 왔는가’며 의구심을 나타내기도 했었다. 이에 한 향토문화사 연구가는 “진도개를 골라 여러 마리를 함께 진도 바깥에 풀어놓고 몇 마리쯤 자기 집 주인에게 찾아오는지 직접 실험을 해보자”는 제안을 내놓기도 했다. 충분한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며 그 자체가 대단한 이벤트효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예상을 갖고 있었다.

필자의 경험담으로는 어린 시절 집에서 키우던 개(백구)를 개장수에게 팔았다가 며칠 후 목에 상처를 입은 채 시골집으로 찾아와 온 식구를 놀라게 한 적이 있다. 당시 집안에서는 돈을 받고 팔았기 때문에 그 개를 돌려주어야 한다는 것(늙어 새끼를 낳지 못한 데다 자주 망령끼가 났기 때문)과 ‘키웠던 정이 있는데 차라리 돈을 되돌려주고 키우자’는 주장이 엇갈렸었다. 이런 저런 주고받는 이야기에 어떻게 낌새를 챘는지 그 백구는 앞산으로 도망가 멀리 집을 쳐다보면서 좀체 들어오려 하지 않아 식구들의 애를 태우기도 했다. 원래 사냥에 능숙하여 노루는 물론 꿩까지도 잘 잡아 할아버지와 큰 형 등 식구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으며 나와는 동갑내기로 눈빛만 봐도 마음을 읽을 수 있는 관계였다. 결국 형제들이 산으로 가 달래 집 가까이 왔으나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게 으르렁거렸으나 가장 어린 내가 나서 목을 감아 겨우 붙잡아 며칠 후 찾아온 개장수에게 넘겨주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배가 고프면 부엌에 걸린 소쿠리 속 보리밥을 꺼내 먹기도 하고 무거운 솥 뚜겅도 혼자 열거나 꽃밭을 파헤치곤 해 아버지는 백구를 팔기로 결심했던 것 같다.
그런 이후 한 동안 우리집에서는 개를 키우지 않았다. 어쩐지 허전하며 미안함이 저마다 마음속에 도사려있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진도개발전전략-미견대회로 가는가

사실 이런 류의 경험은 진도 안에선 흔한 이야기에 속한다. 사냥에 관한 일화도 믿기지 않을 정도로 용맹성과 영민함을 갖춘 내용이 많다. 진도 지산면 금노리의 “똘이”(당지 주인 최홍림씨)의 일화는 거의 전설적이다. 전주의 진돗개마니아들은 아직도 그 똘이의 후손을 찾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최씨로부터 몇 번이나 들었다.
그러나 지금은 대부분 우리에 가둬 키우기에 민첩성이 많이 떨어지고 단지 새끼 치우는데 주력해 돈벌이 대상으로 전락한 느낌이다.
몇 몇 애견 사육가들은 운동과 목욕을 제 때에 맞춰 해주고 ‘넉사냥’훈련을 통해 본능적인 수렵성을 일깨우는데 노력하고 있다.

의신면 돈지에서 만길재를 넘어 오른쪽에 거룡마을이 있다. 이곳 마을 첫 들머리에 “옛진도”라는 간판이 보인다. 진도개를 사랑해 강원도에서 아예 진도로 집을 옮겨 사는 ‘김남걸’씨의 견사가 있는 곳이다. 그는 몇 년 전 그가 그토록 사랑했던 ‘자식’ 노랑이(이름은 잊었다)가 수명을 다하자 지인들을 불러 정식으로 장례를 치러주었다. 진도에 가면 꼭 그 집에 한 번 들려보시길.

집구조의 변화와 다두사육의 추세 등으로 진돗개는 ‘식구’라는 개념에서 점점 멀어져가고 있다. 특히 대파 배추 등의 밭농사에 지장을 준다는 이유로 경작자들이 ‘묶어키우기’를 요구해 갈등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밭둑에 놓은 ‘쥐약’을 먹는 진돗개는 사실 진돗개라고 볼 수가 없다. 내가 키우던 개들도 절대 그런 음식들을 먹지 않았다. 처음부터 묶어키운 개들이 한 번씩 풀어놓으면 어쩔 줄을 몰라 마구 사방으로 튀어다니기에 밭작물을 훼손시키는 것이지 처음부터 푸러 키운 개들은 ‘노루가 튀어 오지 않는 한’ 함부로 밭에 들어가 해를 끼치는 일이 거의 없다고 본다.

진도개에 대한 꾸준한 연구로 세계 명견화를 이룩했지만 진돗개의 앞날이 그렇게 밝은 것만은 아니다. 현재의 추세가 애완용을 선호하고 덩치가 큰 개들은 말 그대로 사육용으로 취급하기 때문이다. 진도 안에서도 진돗개 혈통보존에만 신경을 써 우수한 종자 강아지를 파는 데만 골몰하고 있다.(박남인)


「진도개 바로알기」


한글맞춤법 표기안을 따르면 ‘진돗개’가 맞는 표기이지만, 문화재 지정 공식 명칭은 ‘진도개’이다. ‘진도개’라는 명칭은 섬이라는 특수한 환경의 진도를 서식지로 하였다는데서 유래되었다.(나주에서 나오는 배를 ‘나줏배’라고 하지 않는다. “두 단어 사이에는 ‘사이시옷’이 들어가야 한다”는 한글맞춤법 규정도 현실적인 용례에는 미치지 못하는가 보다 )

[역사적 관련사항]


진도개의 시원을 알 수 있는 정확한 기록들은 남아 있지 않다. 진도개의 유래에 대해서는 송나라 배가 파선해 그 배에 있던 개가 표착했다는 설, 몽고 목장개가 진도 목장견으로 쓰였다는 설, 진도 토종개가 늑대와 교배해 되었다는 설 등이 있다.
그러나 근래 중국·일본·한국 남해안의 패총이나 선사유적들에서 나오는 개 뼈로 보아 신석기 때부터 있어 온 개가 진도라는 특수지리에서 외래견과의 혼종이 덜 되어 진도개로 발전했다는 학설이 신뢰성을 얻고 있다.
한편, 진도군 바로 인근에 위치한 해남군 우항리에서 3000년 전의 개 뼈가 발굴되었는데, 지금의 진도개 뼈와 비슷한 중형견 뼈로 밝혀져 그 연관성이 추측되고 있다.
진도개가 한국 토종개로 주목을 받은 것은 일제강점기인 1938년의 일이다. 조선총독부 고적명승천연기념물 보존령에 의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뒤 1939년 7월에 650마리를 지정했으나 일본인들의 반출이 심해 같은 해인 1939년 11월에 313마리로 줄어들었다. 조선총독부는 1940년에 이러한 사실을 발견하고 1942년에 반출 통제령을 내리기도 했다.

[생태]


진도개는 환경에 쉽게 적응하고 병이 없으며, 다루기 쉽고 품성이 훌륭하여 진도를 비롯한 한국 전역에서 사육이 가능한 개이다. 진도개의 품성으로는 주인에 대한 충성심, 귀가본능, 수렵본능, 청결성, 경계성 등을 꼽을 수 있다.
첫째, 진도개는 주인에 대한 충성심이 강하다. 진도개는 한번 주인을 만나면 그 주인을 평생 동안 배반하지 않는 강직한 품성을 가졌다. 그래서 이미 성장한 진도개를 구입한 사람들은 그 개와 친숙해지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둘째, 진도개는 귀가본능이 뛰어나다. 진도개가 다른 지역으로 팔려갔다가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너서 주인집으로 돌아온 사례는 허다하다. 그 사례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돌아온 백구’ 이야기이다. ‘돌아온 백구’ 이야기는 동화, 애니메이션, 광고 등으로 제작되어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돌아온 백구’가 세상에 널리 알려진 것은 지난 1994년 1월 광주일보에 보도된 것이 계기가 됐다. 그 화제의 주인공은 진도군 의신면 돈지리 박복단 할머니가 키웠던 진도개 ‘백구’이다.
‘백구’는 1988년 의신면 돈지리 박복단 할머니의 집에서 태어나 다섯 살이 되던 1993년에 대전으로 팔려갔다. 하지만 백구는 할머니와 손자, 손녀의 따사로운 정을 잊지 못하여 목에 메인 줄을 끊고 도망쳐 300㎞의 거리를 찾아 헤매다가 1993년 10월에 옛 주인인 박복단 할머니의 품으로 돌아왔다. 백구는 할머니의 사랑과 보살핌 속에서 행복하게 살다가 2002년 2월에 세상을 떠났다.(참고자료 ‘디지털진도문화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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