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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남인의 진도이야기


아! 삼별초
구국의 고려전사 삼별초 무대에 오르다
박남인 2009/01/28 19:20    

예언이 난무하는 시대다. 예언은 국가가 통제력을 상실하는 역사적 혼란기에 정부 권력에 도전하는 새로운 사회세력의 무기로 사용되기도 한다.
민중의 삶이 피폐하고 더 이상 떠밀려갈 곳이 없는 각박한 처지에서 백성들은 자신들을 구원하거나 위로할 그 어떤 것에 당연히 기대이고 싶어진다. 그러다가 그들 스스로가 주체가 되어 기치를 올리고 삶의 혈로를 뚫어내기도 한다. 혁명은 그런 것이었다. 더러움과 두려움을 일소하고 분연히 떨쳐 일어서는 그들에겐 뒤가 없다. 가진자들은, 기득권자들은 그 선연한 의기를 짓누르고 폄하하는데 온갖 계략과 역사의 분탕질을 일삼는데 한치도 주저하지 않는다.

인간의 삶이, 그 역사가 시대의 골짜기를 지나 그렇게 흘러왔다. 눈 밝은 이들은 먼 후일에야 그 사실을 직시하고 한탄하면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데 심혈을 기울인다. 그 또한 인간의 후예이기 때문이다.
“후세에 누군가 단 한 사람이라도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비록 눈을 감아서도 위로가 될 것이다”라고 말한 민족의 선각자들의 유언은 그래서 더 소중하다.

삼별초는 무려 700여년의 세월 저쪽에 자리한 역사의 한 대목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강대한, 광대한 제국을 이뤘던 초원의 몽골제국과 한판 상씨름을 마다하지 않았던 배달민족의 후예 사내들이 뭉쳐 모인 이름이 곧 삼별초다. 그들이 초기엔 무신들의 근위병 역할로 시작하였지만 몽골부대를 탈출하고 자주적 정신을 강고히 한 집단임은 부인할 수 없다.

삼별초가 왕궁을 세웠던 용장산성 입구

그 삼별초가 다시 살아났다. 이 피폐한 세상. 자본주의의 병폐가 극심해지면서 부의 양극화가 가속되는 대한민국의 가장 남쪽 바다 해중도 신비의 섬 진도에서 경이롭게 부활하고 있다. 사람들은 삼별초 하면 흔히 제주도를 먼저 연상한다. 그러나 진도야말로 진정 삼별초의 중심이자 새로운 왕국의 터전이었다. 일본에 복속한 만주제국처럼 정체성을 잃어버린 강화고려, 개경의 고려는 민중들의 염원을 계속 담아낼 수 있는 그릇이 되지 못했다. 금이 간 그릇은 당연히 깨어버려야 한다.
삼별초는 새로운 의식을 담은 하늘빛의 고려자기로 태어났다. 일천척이 넘는 선단을 이끌고 서해안을 따라 백성들의 성원을 계속 담아가면서 마침내 서남쪽 발꿈치 진도에 이르렀을 때에는 위대한 해상제국의 꿈을 부풀리고 있었다.

당시 동양의 정치적 흐름을 제대로 파악한 온왕과 김통정 배중손 유존혁 등 삼별초는 오만한 몽골제국에 맞서 공동전선을 구축하기 위해 일본에 국서를 보내기도 하고 적들의 예기를 꺾고 경계를 풀기 위해 거짓 투항의 연기를 피우면서 내부강화를 구축하고 남해안 일대는 물론 경상도 강원도부근까지 해안을 중심으로 고려민중들의 절대적 지지를 끌어안았다.

이솝이 말했던가. 단 하루를 살더라도 자유인으로 사는 것이 안락한 왕의 노예로 사는 것보다 더 소중하다고 하지 않았던가? 삼별초 진도정부는 두 해를 그렇게 온전히 고려의 정신을 지켜왔으니 이 장한 역사가 또 어디 있단 말인가? 삼별초는 강화나 제주 진도만의 역사에 한정될 수 없다. 그 중심에 용장성과 왕국이 들어선 진도의 전투는 역사의 갈림길로 분명한 획을 그은 천년의 일대사가 아닐 수 없다.
삼별초가 진도에서 다시 부활하고 있다. 이번엔 사내들이 중심이 아니다. 민초는 민초이로되 그 억세고 활달한 진도의 아낙들이 소매를 걷고 밤을 세우며 삼별초의 거대한 해류를 만들었다. 귄단이와 시바와 동백의 줄다리기 사랑이 맛을 더한다.

삼별초 연극 오디션을 마치고 신영희명창과 기념사진

그들은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들은 분명히 느끼고 있다. 천년의 핏줄을 타고 흘러온 자주정신이 이곳 진도에서 어떻게 불꽃처럼 타올랐는지 진도의 백성들이 어떻게 삼별초와 삼별초의 자주정신과 한 몸이 되었는지, 바람에 쓰러지고 또 쓰러지고 다시 일어서는 산야의 풀잎처럼 그들은 수백 번 수천 번 허리를 굽혔다 펴면서 이렇게 오늘의 삼별초가 되었다.

이것은 연극이 아니다. 이것은 더더욱 오페라가 아니다. 단순한 국악놀이로 치부하면 얼치기 청맹과니나 식민주의자임을 폭로하는 것 밖에 아니다.
여기에는 오래 동안 벼르고 벼르던 한 여인의 단내나는 분투가 밑바탕이 되었다. 중년의 나이에 세상의 화려한 인연들을 끊고서 귀향을 결심한 작가 곽의진씨가 고향 진도에 정착해서 가장 먼저 뜻을 품었던 것이 바로 삼별초의 재조명과 부활이었다.
시대가 그에게 이렇게 명령했는지 모른다. 그는 순명했다. 아니 그 영광스런 명을 기꺼이 펼치기 위해 진도 세방의 저녁노을 위에 또 하나의 고려사를 쓰기 시작했다.
그 첫 번째 결실이 지난 2000년 가을이었다. “또 하나의 고려 있었네”라는 제목으로 진도향토문화회관에서 초연을 가진 것이다. KBS역사스페셜은 이 연극을 토대로 특집을 만들기도 했다.

복받은 관객들


이번 연극(?) 노래극이기도 한 이 공연은 또 다른 특징이 재미를 더한다. 아리랑 강강술래 북놀이 만가 씻김굿 이 모든 민속의 앞에는 “진도”라는 말이 들어간다. 이토록 풍부한 민속문화를 간직한 고장은 대한민국에서 진도밖에 없다. 이번 공연에서도 여지없이 진도의 토속민요가락이 밑바탕된 소리가 넘실대고 흥겨운 풍물 북소리가 연이어진다. 너른 들판에서 새참을 즐기며 흥에 겨우면 진도강강술래와 진도아리랑이 옥주고을 벌판을 수놓는다.
이것만 보아도 관객들은 복 받은 셈이다. 이 모두가 중요한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민속놀이로 단 한 종목만으로도 흥겨운 축제판을 벌릴 수 있으니 그 보는 재미가 몇 배나 더할 것이 틀림없다고 본다. 여기에 역사적 사실, 진도의 삼별초정부가 반역의 도당이라는 억울한 누명을 함께 벗겨내는 역사적(?) 사업에 동참하는 기쁨도 누리게 되는 것이다.

역사는 흐른다. 우리 살아있는 사람들이 온전한 의식을 되찾을 때 바른 역사관이 재정립되는 것이다. 엇 그제 지난 80년대 고문과 폭력으로 조작된 간첩단사건이 마침내 28년 만에 재심의 끝에 무혐의 판정을 받은 것도 바로 민중의 끈질긴 투쟁이 하나의 결실을 거둔 사례라고 본다. 아직 박동운씨 등의 재심의도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그래야 우리 또한 역사의 공동죄인의 혐의를 벗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5년 전 5월 왕무덤재 오른편에 자리한 삼별초 온왕의 묘역에서 온왕제를 모시면서 축문을 읽은 적이 있다. 다시 한번 그 글을 잠시 옮겨본다.

그날의 축문


-1만명의 포로가 끌려갔던 시절, 배중손과 남은 세력들은 진정 유구열도로 갔을까?


우리민족의 기개와 염원을 안고 옥주고을 땅을 찾았던 온왕께서 한을 품고 묻힌지 벌써 734년의 세월이 흘러갔습니다.
이미 민족의 자주성을 잃어버린 채 몽골에 투항한 괴뢰정권에 단호히 반대하고 배달민족의 자주성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 강화에서 진도까지 뱃길을 달려온 사람들.

당신을 찾아가는 길은 너무 오랫동안 지워져 있습니다.
역사의 진실은 항상 시대의 모순을 비켜간 사람들이 화려하게 각광받고 있는 우리의 현실에 대한 서글픔이 지금 걷는 이 길이, 풀 섶에 맺힌 이슬방울이 우리가 다시 씻어야할 맑은 눈물방울만 같습니다.

새로운 감수성을 담은 시대가 선포되고 불편한 과거와 함께 현재의 모순까지 묻혀져가는 오늘의 현실에 맞서서 진정한 인간적 고뇌를 형상화하는 작업보다 우리를 힘있게 지탱해주는 가치는 없다고 믿습니다.
비록 역사의 한 굽이에 스며든 슬픔일지라도 자칫 날선 바람처럼 심장을 애일지 모르기에 더더욱 가슴을 여미며 조심스레 여정을 떠나는 길이 있습니다.
천년이란 세월을 담기에는 아직 멀었습니다. 그러나 진도는 누구에게나 천년의 시간을 훌쩍 뛰어넘거나 아니면 그 자신이 시간의 흐름을 잊은 채 절로 동화시키는 곳으로 알려져 왔습니다.

한 시대를 대표하던 고도(古都)의 유적과 명승이 어우러진 곳도 아니요 문명의 시발을 찾는 열쇠가 숨겨진 곳은 더더욱 아닙니다. 그러나 진도에 가면 누구나 한 역사의 풍향을 감지하게 됩니다. 구르는 돌멩이와 풀잎과 수북하니 쏟아지는 달빛을 따라가 보면 문득 너무 오래 잊혀졌던 한 인물과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관습이라는 거대한 그림자 속에서 스스로 그리워하지 않아, 청년의 탐탐한 눈빛을 무망한 시간의 제단에 바친 지 너무도 오래
아무런 굴욕도, 은밀한 내약도 휘황한 능력도 앞세우지 않고 굵은 동아줄 가슴에 감아 한 판 상씨름을 겨누고도 더운 김을 흘리지 않는 그런 시대와 다시 만나야 하는지요.

위인은 난세에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장엄한 비극을 예감한 시대에 스스로 창조되는 것이라고 주장한들 누가 시비를 걸진 않겠지요.
무망한 자랑거리만 가지고 살다보니 헐렁한 신세와 닳아진 꿈이 오히려 거추장스러운 처지도 잠시 잊었습니다.
허식적인 숭배에는 본디 마음자리는 한쪽으로 밀려나고 돈의 위력이 처마를 떠 바치게 마련입니다.

의신면 진설리 고개. 오늘도 사람은 가고 오지만 저 무심한 바람의 숨결을 느끼는 자 누구인가? 성황당 바위에 돌을 던지고 침을 뱉으며 모욕을 참아온 세월.
그 세월은 우리의 정신이 황폐한 시대일 수밖에 없습니다.
당신과 당신을 따르던 군사와 백성들을‘위왕’과 반역으로 규정한 동안 이 나라도 역시 사대주의에 물든 패전국과 식민지 사관에 깊이 물들어 있었던 시대가 이어졌습니다.

온왕과 그 민중들을 다시 역사의 격랑을 헤쳐 끌어 올린 이들은 바로 불우한 시대를 죽창처럼 찔러 일어난 옥주고을 주민들입니다.
당신을 앞세운 배중손이 늑대의 성깔로 수많은 왕족, 귀족들을 단칼에 베어버린 잔인한 뱃놈 출신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는 당신과 함께 민족의 정신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비굴한 항복으로 일신의 안위와 바꾸려 하지 않았습니다.
김통정과 마지막 70전사의 결사항전에 앞서 당신과 배중손은 이곳에서 왜곡되지 않을 역사를 새겨놓았습니다.

진도 의신면 진설리의 온왕묘역, 진도실버예술단

나를 구원할 절대적 타자를 갈구하는 시대가 악을 낳고 전쟁을 낳았습니다. 히틀러나 히로히토와 모든 정복전쟁의 주인공들은 인류역사를 잠시 불행한 페이지로 장식하는데 앞장섰습니다. 개발의 광기가 화염에 타오르며 무고한 서민들의 목숨을 악법의 제단에 제물로 삼으려는 집단이 우리시대에 또아리를 틀고 있습니다.

하나의 진리를 품은 표상을 그리워할 때 독재와 이단이 한 세계를 지배하게 됩니다. 함께 했던 수만명의 백성 진도민중들은 수십 년을 허허로운 지나의 벌판에서 전쟁포로 노예의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그저 한 시대의 불우한 외침에 머무는 백성이 아니라 가장 슬픔의 밑바닥에 제 어미와 어버이를 기꺼이 누이고서 제 모습과 제 길을 똑바로 찾아낸 이들이 이곳 진도의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변방의 노래만을 불러왔는지도 모릅니다.

마음 길이 괜스레 흔들렸습니다. 다시 써야 할 역사의 길목에서도 우선 한탄과 자괴로 한동안 몸을 추슬러야 합니다.
그러나 제대로 된 적을 만들 줄 알았던 사람들. 제 운명을 스스로 거역하며 불우한 신화가 되고자 한 사람. 한 때는 역사의 바깥으로 튕겨나갈 정도로 제 이름과 운명에 가혹했던 이의 진정한 꿈은 무엇이었을까?
‘망할 자는 육지로 나간자요 살아남을 자는 삼별초를 따라 바다로 나가는 자’라고 호언하던 그 사람들.
오늘 스치는 바닷바람 어디에도 그의 끊어 담은 숨결을 찾을 길은 없습니다. 지금도 바다는 기회의 푸른 밭으로 넘실대지만 진도는 닻줄이 풀린 채 빙글거리고 있습니다.
진도의 산하는 한눈에 삼켜 안아 일어서는데 나는 무엇에 오늘을 주저하며 중년의 삶을 이토록 황폐하니 이끌어왔단 말입니까?
진정한 슬픔은 거대한 꿈을 가졌던 이들에의 경배와 위로에서 나오는 것이지 그저 회피와 주저로 일관한, 협량한 가슴에는 슬픔이 아니라 단지 애상한 바람이 스칠 뿐입니다.

평화를 사랑했지만, 평등을 갈구했지만 변방의 방패막이로 생을 마쳐야 했던 옛 젊은이들의 한이 흰 당목천으로 풀려나는 오월의 하늘 구름과 만나고 있습니다.
그토록 간절한 열망을 접어야 했지만 한겨울에도 터질 듯이 핏빛으로 타오르는 동백꽃처럼 오늘 진도의 산과 바다를 지키고 있습니다.

배중손사당에 모인 배씨문중들의 제례-윤선도공적비도 함께 있다

싸움이 곧 삶이고 사랑이며 내일의 아침을 여는 고단한 행군임을 누구보다 더 절실히 깨달아 사는 이들, 진도의 주민들은 오늘 너무도 공허한 외침 앞에 서 있습니다. 애국의 길이 가로 막히고 생존의 길도 마구 허물어져 가는 이 시대를 앞장서 구원할 깃발과 해답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토록 힘을 다해 지켜왔던 쌀농사도 이제는 한숨과 절망의 씨앗으로 변하려 합니다. 농민은 그저 늙어 죽어야만 농촌문제가 해결된다는 정부관리들의 안이한 정책자세로 이 땅은 이미 병들어 썩고 있습니다. 농촌에 사는 일이 죄가 된지도 오래입니다.

그래서 오늘 나는 가장 변방의 땅 진도에서 배달겨레의 혼을 찾았던 삼별초 고려왕국을 떠 올립니다.
고뇌의 흔적은 몇 겹의 주름처럼 용장리 산성에 남았지만 그 기상은 미처 재를 넘지 못해 의신면 진설리 말무덤과 전설로 남기고, 오직 화해할 수 있는 것은 책임있는 죽음이었지 시대의 한계가 아니었음을 분명하니 가르쳐주는 이곳 의신면 진설리에서 맑은 술 한잔을 올리며 위무합니다.
삼별초가 진정으로 역사의 중심이었음이 확인되는 날 진도와 우리겨레 또한 역사의 중심으로 설 것을 분명하니 믿기 때문입니다.


9년 만의 무대-더 성숙한 소리와 몸짓


삼별초 역사를 재조명하고 자주 고려의 건국을 꿈꿨던 대몽항쟁의 영웅 '삼별초'를 기리는 공연이 개최되어 다시 화제가 되고 있다.

구국의 전사 삼별초 공연 서막-진도아짐네들

“(사)삼별초역사문화연구회(이사장 곽의진)가 국악 오페라 '구국의 고려전사, 삼별초'를 지난 1월 27일(화) 오후 2시 진도향토문화회관에서 열리고 31일(토) 오후 2시 목포시민문화센터에서 두 차례 공연을 가졌다. '구국의 고려전사, 삼별초' 공연은 진도에서 활동한 삼별초 역사를 재조명하고, 용장산성 궁궐을 복원하기 위한 국민적 관심을 고조하기 위해 기획된 작품이다.
공연 내용은 고려시대 몽고에 대항해 '정통 자주고려' 건국을 꿈꾸며 진도지역에서 민초들과 함께 대몽항쟁을 이끈 배중손 등을 비롯한 삼별초의 활약과 그 역사적 흔적들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고려 왕실이 강화도를 버리고 개경으로 천도할 때 대몽 항쟁에 앞장섰던 배중손 등이 ‘자주고려’ 의 깃발을 들고 진도 벽파로 입도, 용장리에 왕궁을 세우고 ‘정통 자주고려’ 건국을 꿈꾸는 내용을 무대에 올린 것이다.

특히 이 공연에는 구국의 정신과 함께 '진도북춤' '만가' '육자배기' '들노래' '진도아리랑' 등 다양한 남도소리가 녹아들어 민요 창극으로서 재미를 한층 더해준 공연이라는 평이다.
이밖에 대부분의 스태프와 배우들은 현재 진도에서 생활하고 있는 농어민, 학생, 서예가, 학생, 화가 등 평범한 주민들이 참여해 의미를 더했다. 예술 총감독은 박병도 씨가 맡았으며, 원작ㆍ각색은 곽의진, 연출은 곽작가의 둘째 아들인 조운 씨가 맡았다.

상여행렬이 극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관람료대신 천돈을 걸었다

이 극은 2001년에는 국립국악원 개원 50주년 기념 초청작으로 공연된바 있다. “섬마을 동네아짐들이 서울바람이 났다”고 언론에 소개되어 당시에는 민요창극 '진도에 또 하나 고려 있었네'로 무대에 올라 "전문 배우들도 아닌 시골아줌마들이 정말 대단하다"며 장안에 소문이 나기도 했다. 신문 방송에서 인터뷰 요청이 줄을 이었다. 그러나 정작 진도군에서는 예산타령으로 재공연을 외면해 큰 아쉬움을 주었다.

곽의진 삼별초역사문화연구회 이사장은 "구국의 전사 삼별초 오페라는 배중손을 비롯한 삼별초군과 민초들이 자주독립을 부르짖으며, 항쟁의 불꽃을 사른 '피 흘린 역사'를 말하고 있다"며 "아직도 역적의 누명을 쓰고 있는 '삼별초'들의 구국 혼을 한 판 큰 굿으로 달래며, 삐뚤어진 역사 문제를 바로 세우기 위해 마련한 무대이다"고 밝혔다.

아쉬움은 남아있다. 장대한 역사극의 묘미가 아무래도 부족하다. 예산과 장비의 부족 탓이다. 의상의 고증도 더 세밀해야 하며 멜로적인 진행보다도 병사들의 의기와 고뇌, 현지 주민들의 갈등과 호응을 더 깊이있게 다뤘으면 하는 아쉬움이다. 이 또 한 괜스런 트집에 불과할지라도 입소문을 타고 전국 순회라도 하게 되면 보충할 부분을 미리 염두에 두어야 하겠기에 쓴소리를 덧붙일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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