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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남인의 진도이야기


왕의 목을 논하던 사연이 남은 논수동과 삼밭
운림에 가는 길 저수지엔 마을이 숨고
박남인 2008/12/01 11:22    

섬 안에도 수몰지가 생기고 삼별초 그림자가 떠오르는 곳

우마차가 다니던 길이 있는가 하면 봇짐이나 간단한 등짐 가방 등을 들고 다니는 산길 지름길이 따로 있어 제법 통행이 많던 시절도 있었다. 진도 고을엔 낮은 야산과 골짜기 옆 등성이를 이용한 산길들이 많이 발달했던 곳이다. 나무꾼들 성묘꾼들 장꾼들도 이 길을 자주 다녔다. 한적하면서도 왕래가 잦아 다져진 길이라 그리 어렵지 않게 지름길로 시간을 아낄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그런 길들이 거의 사라지고 없다. 불과 30여년 한 세대의 세월이 풍속과 길을 바꿔 놓았다. 이제 그 숲길엔 참나무와 해송이 많이 자라 맹감넝쿨로 호기심을 덮어버린 채 약초꾼들에게나 길의 흔적을 보여줄 뿐이다. 길옆에는 묘비도 없는 봉분들이 봄이면 연분홍 진달래로 둘레를 치장한 채 연이어 나타나기도 했다.
이젠 산 중턱 쯤에 돌담들이 묘를 둘러싸 있는 모습들이 가끔 보일 뿐이다. 제주도의 그것과 너무나 흡사하다. 영혼이 드나든다는 구멍은 진도에선 보이지 않는다.

진도에도 분명 왕의 무덤이 있다. 물론 마한의 54국 중 하나의 작은 왕국이나 조선의 임금의 봉분이나 능은 없다.
왕을 기리고 시립하는 비와 문무석은 없이 “전왕온묘”로 전남도 사적지로 지정된 곳. 울울하니 드러선 소나무들만이 오히려 역사의 앞을 가로막은 듯 외로이 자리한 삼별초 온왕의 묘는 그러나 해마다 제사를 모시고 있어 일말의 위안이 되고 있다.
1271년 5월 현재의 왕고개와 진설리 사이에서 대격전이 벌어졌다. 열세에 몰린 삼별초국의 온왕이 마침내 몽골적장 홍다구에게 사로잡힌다. 개경에서 달려온 조카들의 애원에도 국적을 잃은 채 핏발선 홍다구는 왕의 목을 치고 만다. 하여 이후로 이곳을 왕의 목을 논했다 하여 논수동이란 지명이 생겨났다. 전투를 치렀던 다근투골이며 피가 내를 이뤘다는 핏기내, 진을 쳐 싸웠던 곳이 진설리가 되었다. 이런 지명은 의신면 돈지 벌판을 지나 만길재의 급창둠벙, 거룡리 금갑리까지 계속 이어진다.

왕고개에 있는 삼별초 온왕묘(진도문화원에서 제물 진설해놓았다)

현재는 행정마을명이 사하리이다. 아직도 고유한 마을지명으론 삼밭과 논수동으로 부른다. 삼밭마을은 수년 전에 사천저수지를 증축할 당시 수몰되었다. 고향 땅을 떠나지 못한 대여섯 가구가 바로 그 위에 집터를 이루고 살고 있다. 수몰지엔 수양버들이 푸른 그림자를 저수지에 드리우고 있을 뿐이다.
이 저수지 안 어디엔가 샘이 있었다고 한다. 바로 그 샘 옆에 사는 집이 대대로 장사가 나오는 집이었다고 한다. 진도군지에도 소개된 200년 이내 근래의 전설로 삼대 째 연속 장사가 나온 것이 그 샘물을 먹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어느 날 그 집에서 가장 연소한 장사가 이웃 장흥으로 일을 보러가게 되었다. 마침 그곳 장터에서는 상씨름판이 한창 열리고 있었다. 드디어 한 장사가 상대방을 메다 꽃고서 주위를 돌아보다 진도의 사천장사를 발견, “한 번 해보지 않을래?”하였다. 소년장사는 서슴없이 그러면 무엇으로 샅바를 할까? 하더니 바로 주변에 있는 퉁퉁한 닻줄을 끊어 허리에 묶고서 “자 덤벼보라”하자 상대방이 놀라 도망을 가고 말았다 한다. 사천장사는 유유히 일을 보고 황소 한 마리를 끌고 왔다는 것이다.
사하리는 현재 총 27개 가구가 산다. 논수동이 18가호이다. 가장 젊은 부부는 차남진씨(37.진도기상대 근무) 집으로 아들 둘에 딸(유치원) 하나를 두고 있다.

준설을 한 사천저수지, 삼밭마을이 일부 수몰되었다

차씨 문씨 집성촌이 흩어지고 여러 성받이가 어울려


이곳 사하마을에 처음 들어온 성씨는 민씨와 박씨였으나 현재는 김씨 박씨 차씨 문씨 등이 주를 이룬다. 주민 수도 약 75명 정도다. 벼농사가 주된 작물이지만 작년부터 울금을 재배하기 시작했다. 또 월동배추와 표고버섯도 하고 있다. 약 2ha가 들어갔는데 차철웅씨가 가장 많이 재배한다. 주민 중 김환승 신영철씨(14마리)가 돼지를 치고 있다. 또 친환경농업이 2년째로 주민들은 기대를 걸고 있다.

논수동 위쪽 옹골 안에는 10여 년 전 양화수 정미정부부가 만든 농원에 매화와 유자밭이 있다. 초봄이면 매화꽃이 만발해 제법 운치있는 풍경을 보여준다. 정씨는 현재 다문화가정을 위한 한글문화학교 강사로 일하고 있다. 예전에는 이곳으로도 옹골(언골)방죽을 지나 학생들이 읍내로 다녔다. 산길은 또 다른 먹거리와 재미를 주기 마련이라 일부러 산길을 택하는 아이들이 있었다. 또 큰길은 더 큰 학생 청년들이 가끔 시비를 걸어 봉변을 당할 위험도 없지 않았다. 진도라는 동네는 여자들도 곧잘 통행료인 ‘길세’로 노래 한 자루 부르고 지나가라며 은근히 텃세를 부리기도 했으니 동네어귀의 남정네들이야 더더욱 그러했다.

“수세폐지, 시청료 거부, 농민운동 주도했던 차철웅 양화수와 진도국악 발전에 기여한 고 정의현씨, 서예가 문관효 씨 등이 이곳에 살았다”

이 마을은 매년 정월 열나흩날 밤 8~9시에 동제를 모신다. 이 동제를 거리제 또는 당산제라고 부른다. 사하마을은 당산제를 거른 적이 없다고 한다. 논수동 마을입구 회관과 모정 옆에 자리한 소나무 아래에서 제를 모신다. 마을사람들은 그 나무를 ‘당산할머니’ 혹은 ‘당산나무’로 부른다. 수령이 약 210년으로 수고가 18미터, 관리자는 사천리장이며 95년 7월 보호수로 지정되었다.
제를 지낼 때 소나무 바로 옆에 짐대를 세워놓는다. 이 짐대는 그냥 지팡이라 부른다. 당산할머니가 짚고 갈 지팡이라고 한다.
거리제는 두 사람이 지내게 되는데 각각 제관, 제주라고 부른다. 제주는 음식을 장만하는 사람으로 여자를 한 명 뽑는다. 제관과 제주가 부부간에 맡아 하기도 한다. 거리제에 쓰이는 비용은 마을기금으로 하고 음식비는 약 5~6만원 가량이며 제주에게도 적정한 금액을 수고비로 준다. 2008년 올 초에는 양복만(71)노인회장과 홍정순 부녀회장이 제관 제주를 맡아 지냈다.
제물은 제일과 가장 가까운 읍장날을 잡아 물건을 산다. 오채나물과 과일 생선 등을 산다. 떡도 함께 산다. 음식이 말녀되면 제관이 술을 올리고 나서 절을 하고 축문을 읽는다. 제가 끝나면 북, 장구, 꽹가리 등을 쳐서 마을사람들이 회관으로 모이도록 한다.

예전에 당산나무 밑에서 상여를 만들다 사람들이 다쳐 이후론 그곳에서 하지 않는다고 한다. 또 사하마을은 전염병이 돈다거나 하는 일이 없었으며 가정마다 자손들이 많고 아들이 더 많은 편이다. 이 모든 게 당산할머니 덕으로 믿는다.

삼별초 관련 시설 들어설 예정


현재 사하리 이장일을 맡고 있는 문석현씨
이제 홀로 사는 이들이 갈수록 는다. 현재는 5가구가 홀로 사신다. 주로 회관을 찾기도 하는데 이 회관은 2000년도에 신축을 했다. 평당 5만원 정도로 밭을 구입해 지었다.
이 마을 재경향우회는 문봉택(50)씨가 회장을 맡아 20여명이 친목을 다진다. 출향인사들 중 문관효(호 청농)씨가 서예에 조예가 있어 이번 소치미술제에 서예부문 심사를 맡기도 했다.
그러나 이 마을을 이야기 하자면 삼밭의 차철웅(57.사천동산)씨를 빼기 어렵다. 80년대 진도에서 처음 농민운동바람이 불 때 가장 앞장서 이끌었던 농민운동가로 자타가 인정한다. 옹골(언골)에 거주하던 양화수씨도 초창기 주류멤버로서 부인과 함께 운동을 했다. 수세폐지, 고추파동 보상, 수신료거부 등은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또 국악인으로 진도최초 국악원을 개설했던 고 정의현씨도 빼놓을 수 없는 분이다. 국가유공자로는 문병섭(작고)씨가 있었다. 군의원인 박동흔씨가 옹골에서 유황오리를 사육하지만 주소는 진도읍으로 되어 있다.

물반 고기반 메기의 궁전 소문나


읍으로 가는 길은 이웃 사상마을이 절재를 넘어 다니는 것과 달리 냇가 돌다리를 건너 왕무덤재로 다녔다.
동네 풍습으론 5월에 경로잔치를 열고 있다. 서울 향우들의 지원도 받는다. 인천에서 한약방을 하는 차끝둥이라는 분도 고향에 도움을 주곤 한다. 군인으로 육사를 나온 양재훈 중령이 있으며 진도읍 만나교회 담임목사인 문명수와 문명호(건설회사 근무)씨 등도 이 마을 출신이다. 농촌이면서도 젊은 사람이 적잖으며 모두 인터넷 활용(6가구)을 하고 있다. 이제 자라는 아이들을 위해서도 필요한 제품일 것이다. 수상경력으론 70년대 문흥식씨가 효자상을 받았다. 진도국악협회 이사를 맡고 있는 전말심씨도 이 마을 출신이다.

진도요양병원과 자매결연


현재 마을로 들어오는 입구 노인요양병원을 운영하는 전남병원과 자매결연을 맺고 있어 주민들이 그 병원을 찾을 때는 수임료는 받지 않는다고 한다.
삼밭 쪽엔 관정(2002)이 2곳 있으며 논수동은 더 오래되었다. 유명한 지명으론 게락굴을 들 수 있다. 예전엔 이곳에 애기돌무덤 공동묘지가 있어 밤에는 이 앞을 지나기가 너무 무서웠다고 한다. 노루새끼나 짐승들의 울음소리가 꼭 아이울음과 똑같이 들려 지나는 이들은 청년들도 머리칼이 쭈뼛하니 서고 오금이 당겨 걷지를 못했다는 설화가 전해온다. 지금은 통닭가게가 들어서고 동백숲이 우거졌다.

예전의 삼밭 마을 입구 에 세워진 수몰비

삼밭에서는 면소재지인 돈지나 옥대 등으로 갈 때 지름길로 삼밭 앞 산 접포리재(웃사구지)를 이용했다. 젊은이들도 연애를 하러 수시로 이 재를 넘어다녔다. 그래서 옥대리나 청룡 중리 마을과 혼사를 맺은 사돈지간이 매우 많은 편이다. 지금은 숲에 길이 잠겼다. 저수지가 막아지기 전 까지는 그 한 가운데로 길이 있어 의신초등학교를 다녔다고한다. 60년대 중반부터 모두 진도읍으로 학군이 변경되었으며 농협조합은 통합 이전부터 진도농협에 가입되어 있었다. 이 또한 교통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며 수십 년 전부터 읍내장을 이용하며 나뭇거리의 애환을 누구보다도 깊이 간직한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다.
인구가 작은 동네지만 초등생이 5명(논수동 2, 삼밭 3)이고 고등생 4명에다 대학생도 4명이나 된다.
수몰과 이사 등으로 인해 기록 등이 많지 않다. 노인들은 기억력이 떨어지고 있어 쓸쓸함이 감돌곤 한다. 그래도 이곳에 대규모 삼별초관련 시설 등이 들어설 예정이라고 한다. 주변을 잘 꾸며 놓으면 사천권의 또 다른 볼거리가 될 것이며 주민소득에도 기여할 것이다. 요즘에도 이곳 저수지는 낚시하는 이들이 끊이지 않는다. 여러 지명과 유적 들을 다시 복원하고 진도가 삼별초의 중심이며 굴하지 않는 왕국으로서 자존심을 우뚝 세우는 작업들이 뒤 따를 때 우리 의식에서 수몰된 자주정신이 찬란히 떠오르지 않을까? (박남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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