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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남인의 진도이야기


여귀산 푸른 자락 호랑이 함성을 삼키고
임회면 호구동 마을 이야기
박남인 2008/01/30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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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이야기
   고인돌과 푸른 들판 지나 기와골목이 예스러운 마을

  푸른 대파밭이 광전들 앞에 길게 펼쳐졌다. 엊그제 작업을 마친 배추밭 한 가운데 정방형의 커다란 고인돌이 한 눈에 띈다. 남쪽으로 우뚝 솟은 여귀산 등성이가 나부처럼 유려한 선을 자랑한다. 강증산에 앞서 여자가 귀해질 것을 미리 예견한 산 이름이다.
  이곳 어딘가에 천하 명당이 있다는데 막상 지관이 산에 오르면 바다안개가 뿌옇게 피어올라 눈앞을 가리는 판에 아직도 그 명당처를 찾지 못했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혹자는 그 혈맥이 바다를 건너 조도나 제주도 쪽으로 흘러가버렸다고도 한다. 수대에 걸쳐 덕을 베푸는데 힘쓰기보다 우선 발복만은 기대하는 인간들에게 어찌 명당이 나타날 것인가?

호구동 입구 풍종맹호상
  지난 해 진도문화원은 실버예술단(단장 조오환)으로 구성한 참가진이 진도 ‘호구동 액맥이굿’으로 남도문화제에서 우수상을 받았다. 진도에도 호랑이가 있었다는 사실을 외지 사람들은 선뜻 이해하지 못 한다. 호구동 마을 입구에는 커다란 호랑이형상 표지석이 자리하고 있다. 풍종맹호상(風從猛虎像)이라 적혀 있어 마을의 위세를 짐작케 한다.

  호구동은 진도 남서쪽 427m의 여귀산(진도 제2 고봉) 기슭에 있는 마을이다. 옛날에는 호식의 위험을 당했기에 음력 정월 보름이면 벽사액맥으로 호식액맥이 굿을 했다. 호환의 두려움이 없어진 해방 후 점차 잊혀지고 있다. 촌로들도 거의 유래나 내용을 알지 못한다.

  동네 동남쪽에 풍수상 대칭인 용산마을이 있다. 김성훈 전 농림부장관(상지대 총장)이 당시 서울대농대 1학년 재학시절 이곳 마을로 농촌봉사활동으로 찾아와 인연을 맺은 마을이기도 하다. 당시 김총장은 마을 학생들을 애향심과 향학열을 북돋우기 위해 직접 작사한 마을노래를 청소년들에게 보급하고 이를 기려 수년 전 김성훈씨를 제자들이 초빙해 마을노래 표지석을 세우기도 했다.

  일제 강점기 시절 만든 용산저수지를 지나 오른쪽으로는 도장기미라는 골짜기 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다섯 채 정도 집이 있다. 샘물이 맑고 너무 조용한 곳이다. 요즘 영험한(?) 기도처로 소문나 골짜기로 이주해오는 이들이 더러 있는 편이다.

  호식액맥이 굿 내용을 살펴보자. 범으로 분장한 두 사람이 사자춤과 같은 춤을 춘다. 범 분장은 두 사람이 구부리고 엎드린 등에 멍석을 뒤집어씌우고 흰 헝겁, 검은 헝겁을 멍석에 호랑이 무늬처럼 장식한 뒤 짚과 헝겊으로 범머리와 꼬리를 만든다.
  호랑이를 앞세우고 농악대가 가가호호 방문하면서 「산신령 문안이요」라고 주인에게 인사하면 주인이 합장해 맞아들이고 장독굿을 치는 사이 집주인은 음식상을 차려낸다. 마당밟기를 하고 동네 샘굿을 끝으로 보름놀이를 끝낸다. 굿이 성황을 이루지 못하면 호식액운을 당한다는 전설이 있어 정성을 들인다.


  梁太玉씨 말한 용호리 호식액맥이와
  아름드리 솔숲이 반겨주는 큰 마을


  호랑이가 개를 물고 달아나는 것을 발견한 동네 사람들이 이를 알고 농악을 신나게 치면 본디 호랑이는 굿판을 좋아하는 짐승이라 개를 놓아두고 덩실덩실 춤을 춘다. 이때 개가 도망쳤음을 알고 호랑이가 뒤늦게 벽력같은 소리를 친다.

  농악대는 「몰아내세, 몰아내세 살금살금 몰아내세」라는 합창을 하면서 「산군님, 호생님, 속거천리 하옵서소」 하면서 호랑이가 가장 무서워하는 죽창을 들고 몰이를 하고 깨진 대로 땅을 치며 위협한다. 농악대가 삼채가락을 치면서 동구밖으로 향하면 호랑이는 슬금슬금 농악대를 따라 나서고 동구밖에서 날당굿을 치면 호랑이가 조는 틈에 맺은 가락으로 범굿농악을 그치고 조용히 동네 안으로 들어선다.

  동네 어귀에 죽창과 그물을 쳐 놓고 동네사람들은 풍류굿ㆍ농요ㆍ민요ㆍ성주풀이등 각각 장기자랑 판굿을 하며 축호의 기쁨을 누린다.
  춤판이 끝나고 당산제를 지내 호식방지를 축원하고 동네 풍년을 기원하며 풍년굿으로 뒷풀이를 마감했다.


  묵암(黙庵) 조병수 고가 지방문화재 지정
  썩은 정치인은 호랑이도 안 물어가고
  광석 들녘 고인돌에 새겨진 선사시대
  마을문화가 살아야 농촌이 사는 것


   사람들은 호랑이를 영물로 여겼다. 그래서 재벌이나 정경유착 정치인등 썩은 선비는 잡아먹지도 않는다는 속담이 나왔다. 또 호랑이는 여자 속살을 외면하고 임신한 여자, 병든 사람은 먹지 않는다. 효자나 중도 잡아먹지 않았다. 해서 가히 산중군자의 덕을 갖춘 것이다. 호식당한 사람 무덤은 돌담헐을 한 뒤 가락을 꽂은 시루를 엎어 표한다.

  호랑이는 재앙을 몰고 오는 포악한 맹수로 이해되기도 하지만, 사악한 잡귀들을 물리칠 수 있는 영물로 인식되기도 한다. 또한 은혜를 갚을 줄 아는 예의바른 동물로 대접받기도 했다. 우리 조상은 이런 호랑이를 좋으면서 싫고, 무서우면서 우러러보았다.
  무속에서는 산악 숭배 사상과 융합되어 범이 산신 또는 산신의 심부름꾼을 상징했다.   각 지역에서 신봉하는 산신을 모신 산신당의 산신도에는 범이 그려져 있다.
  귀신을 물리치는 힘이 있다하여 범그림이나 범호 字 부적을 썼다.


  호구동에서 만난 시인

  호구리 동네에 농사짓는 시인이 살고있다. 용강(龍岡) 이춘식씨다. "종이비행기 접기" 외 2편을 한울문학에 등단해 신인문학상을 수상했다. 현재 한울문학 문인협회 호남지부 부회장으로 활동중이다. 이웃 삼막리는 장전 하남호, 임농 하철경을 비롯한 화가들이 많이 배출된 곳이다. 이에 반해 이곳 호구동은 공무원과 교육자가 많다.
  100가구가 넘은 대촌이지만 마을 동산이 바람막이를 하면서 적절히 가려 막상 동네 안으로 들어가 보지 않으면 그 크기를 알기 어렵다.

  1월에 호구동 이장님이 바뀌었다. 1반에 사는 김환산씨가 4년 동안 이장을 역임하면서 건강관리실, 농로포장, 회관옆 화장실(수세식)과 주방시설에 2층 노래방시설 등 호구동을 위해서 많은 일들을 했다. 2008년 동계를 마치고 잠시 공석으로 있다가 1월 11일자로 4반의 조의홍씨를 추대 새로운 이장으로 취임했다.

호구동 전경


  진도 최초 자가용 구입한 일제시대 재력가 조병수씨 일화

  이 마을 출신 유명인사로는 우선 조병수씨를 꼽을 수 있다. 진도갑부였던 묵암 조병수(1893-1971)옹에 대한 일제 때 신문기사 자료는 총 30여 편에 달한다.(향토사학자 박병훈 자료. 수보당 약방 운영)
  묵암 조병수씨는 일제시 도 평의원을 2회 역임했으며 1925년 본군에서는 최초로 자동차(승용차)를 들여왔다. 또 목포-제주간 정기여객선인 선남환과 룡해환 두척을 운영하기도 했다.
  해방직후인 1946년 초에는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진도군 위원장을 맡는 등 민족진영의 정치지도자로도 활동했다.
  “용호리 918번지 조병수(29)씨는 자선사업을 많이 하여 사람마다 칭송하는 터인데 이번 진도부 공립보통학교에도 많은 기부가 있었으며 십일시 석교(돌다리) 건설 때에도 금 1백원을 기부하였고 도초도(都草島) 이재훈 백성에게도 거대한 금액을 보내여 구제하였다.”
  또 “고학생인 곽민은 군을 경성에 보내 중등학교에 다니게 하고 졸업하기까지 1개월마다 10여원의 학비를 지출하며 또 학비가 없어서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자가 있으면 힘을 다하여 공부를 시켜줄 예정이라고 한다하더라.”는 기사를 보더라도 자선사업에 힘썼음을 알 수 있다.

  1921.4.1일 조선일보사 사고로 진도지국장에 조병수, 기자에 조병기 소진춘 허혁 임태석 박명규씨를 임명했다.(주-1921년에는 진도기사가 200여 편에 달하여 언론활동이 가장 활발했으며 이 분들은 기록상 진도 최초의 언론인들이다)
  24년 동아일보에 따르면 진도소작인회 제1회 정기총회가 15일에 개최되었는데 운집한 회원은 1천여명에 달했다. 광주, 목포, 등지의 내빈들도 다수 참석하였는데 경과를 보고하는 중에 돌연히 대지주 조병수씨가 나타나 “나는 소작인회가 창립당시에 결의했던 소작료 4활 결의를 존중하며 이를 실행하겠다”고 발표하자 만장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용산수리조합-31년 조선일보는 “본 조합은 이곳 유지 조병수의 발기로 소화 3년(1928) 4월 5일에 용호리 조병수씨 댁에서 창립발기회를 개최한 이래 4년 동안의 창립기성에 조병수씨는 물적 공헌이 지대하였다.”고 했다.
  1935년 호남논평에도 ‘진도유지 조병수’라는 제목으로 “진도 실업계의 왕자이며 도의회의원 조병수씨를 소개하면 4통8달로 통하는 도로망 위에 깔려있는 자동차는 씨의 희생적 경영으로「진도자동차부」에서 운영하고 있으며 기타 정미업, 운송업으로 진도사회 발전에 부단한 노력을 하고 있다.”며 진도의 발전책을 “진도는 1단보 논에 6-7석을 얻을 수 있는 천혜지이다. 그러므로 영농에 전력을 다해야 할것이며 수산업에도 치중해야 할 것이다.
  조도 거차도 축항건축에 대하여서는 내가 도의회에 건의안을 제출하였으니 머지않아 착공을 보리라고 본다. 그리고 선박 연락에 있어서는 현재 해창항로는 불편이 지대함으로 목포와 연락되는 기선은 군내면 수유리에 정박하도록 하고 자동차 도로를 놓는다면 목포간 교통이 편리할 것이라 믿는다. 교육발전에 있어서도 큰 부족을 느낀다. 보습교육을 시킬 수 있는 “농업보습학교”의 신설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조병수씨의 아들 조인환씨도 관내 초등학교에 5만환 기부 기사가 보인다. 묵암의 손자인 조은(73세. 진도읍 제일부동산 경영)씨는 자기 조부님이 향현사 부지와 향현사 건립 건축자재 일체를 제공하여 주었다고도 증언했다. - 이 모든 이야기는 신문사 기자들이 현지를 찾아와 재력이 탄탄한 지역유지에 대한 미화작업의 흔적이 없지 않다. 또 다른 마을 노인은 '무슨 대단한 사람이라고'하며 일축해버리곤 했다.

호구동 옛사진

  국도 18호선이 지나가는 길옆에 농협건물이 있다. 예전 광석농협이었다가 임회농협으로 흡수 합병된 뒤 이제는 서진도농협(조합장 장만윤) 광석지소로 바뀌었다. 2 년전 조도농협, 지산농협, 임회농협이 합병되었기 때문이다.
  연쇄점과 주유소가 함께 있어 마을주민들의 편리하게 이용하고 있다. 이곳 말고도 마을 안에 가게가 두 곳 있다. 또 광석초등학교가 있지만 올 봄부터는 석교초등학교 분교가 될 것이라고 한다.
  하진규씨와 박승준씨 등이 조합장을 역임했다.
  행정구역상으로 용산마을과 호구동을 합해 ‘용호리’로 부르고 있다. 김해김씨 사당이 있고(안골) , 또 다른 사당(진주 하씨) 마을 입구에 자리하고 있다. 임도로는 마을 서쪽으로 고뱅이와 봉상리까지 연결되어 있어 주민들이 운동 산책로로 이용하고 있다.


  공직자가 유난히 많은 동네, 교육열도 높아

  매년 4월 1일은 호구리민의 날이다. 이날은 온 동네 주민들이 마을회관에 모여 큰 잔치를 연다. 소리꾼도 부르고 2층 노래방에서 돌아가며 한 곡조 뽑기도 한다.


  들독과 고인돌

  마을회관 앞에는 들독이 하나 있다. 이 돌을 가슴팍까지 들어 올린 사람은 홍정기씨와 하원규씨 뿐이라고 한다.(카페 ‘호구동사람들’중에서)
  광석들 주변에는 고인돌이 많다. 농지정리를 하면서 많이 유실되었지만 용호리 마을 입구 배추밭에는 지금도 거대한 고인돌 하나가 마을의 역사를 알려주고 있다. 이 외에도 광전마을 선항리 등에도 고인돌이 여러 기가 남아있다.

마을회관 마당에 있는 들독

  용호리는 지리적으로 동쪽으로는 광석들을 낀 진도읍 방향 도로를 비롯 고산마을을 거쳐가는 국도 18호선이 놓여있으며 동남쪽으로 중미실 상미실과 의신 거룡과 연결되는 군도가 포장되어 있을 뿐 아니라 여귀산 자락 용산마을을 거쳐 강계 바닷가에 이르는 임도까지 개설되어 교통의 요충지이기도 하다.
  10여년 전까지도 식당과 정육점이 있었다. 마을에 단골무당이 있고 이발사도 있어 흔히 마을에서 도부금을 걷어 이들의 생계를 유지시키는게 관레였다고 한다.

  1월 중순 이른 아침 나는 인천에서 내려온 초로의 의사 한 분과 함께 그 임도를 걸었다. 새벽 공기가 제법 차가왔다. 흑염소농장도 눈에 띄었다. 작은 저수지 앞엔 김해김씨 사당이 자리하고 있었다. 동네사람들은 오후에 이곳을 운동 산책로로 활용하고 있다. 중간에는 예전 성황당의 흔적도 남아있다.
  이 마을의 주요 성씨로는 김해김씨와 창녕 조씨, 진주 하씨 등이 있다. 이외에도 박씨 이씨 등도 여러집이 된다.
  주요 공공건물로는 마을회관과 건강관리실, 인근 열 두 마을이 함께 이용하는 광석보건진료소(소장 김명수)와 마을정자 2개가 있다.

  바로 이웃마을인 임회 삼막리출신 대금의 명수 박종기선생(53년 작고)이 있다. 그는 진도아리랑을 체계적으로 정리했다고 알려졌다.
  사업가로는 마을에 진도특산해산물을 가공 판매하는 (주)아침가리 대표 김영수(45)씨가 살고 조화영(60)씨 부부가 유기농김치를 직접 담아 팔고 있다.

  600여년 전 창녕조씨가 입촌 뒷동산 원골에 터를 잡았다 지금 자리로 옮겨 번성했다고 한다. 본디 호계리(虎溪)라 부르다 호구리로 바꿨다고 한다(전 노인회장 박동석씨)
  사당 제각으로는 조인택씨 할머니 사당과 진주하씨, 창녕조씨 시중공파와 선박 조씨 제각이 있다.
  마을 단체 중 향호회(회장 박승준)가 눈에 띈다. 40여명에 이르는 회원들은 마을의 애경사에 빠지지 않고 참여와 도움을 아끼지 않는다고 한다. 이외 서울에도 ‘서당뫼’라는 계모임이 있어 애향심을 키운다.

  주요인물로는 국회의원에 입후보했던 조대환(9대. 통일당), 하진규(광석농협조합장 역임), 하일룡(전남도의원 역임), 조옥환(행정고시 합격)씨 등을 비롯해 많은 분들이 있다.
  고향을 묵묵히 지키며 농사를 짓는 사람들과 그 후손들이 더 훌륭한 분들일 수도 있다.
  임회면 봉사단체인 선진회를 이끌 고 있는 조상현(회장)씨도 이 마을 출신이다. 하영정씨 등을 비롯한 공무원 교사(조성신 외 다수)들이 많은 편이다.
  또 홍주를 내리는 집(아리랑홍주)도 한 곳 있다. 그러나 이 마을의 주된 작물은 밭작물이다. 배추 대파 봄동 양배추에다 유자밭도 있다. 땅이 비옥하고 햇볕이 잘 드는데다 수리시설이 잘 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용호리는 이제 단일 경제문화권역으로 자리잡기에는 인구가 많이 줄었다. 교통도 읍권이나 면소재지로의 유입을 재촉하고 있다. 그래도 너른 들과 주변의 마을들의 중심기점으로 아직도 사람들의 내왕이 많고 유적과 문화자산을 보유하고 있어 이의 활용이 요구된다.
  마을 안에 한옥 기와집이 대여섯채가 있어 돌담길이 정겹다.
  마을 숲 가꾸기나 하천의 친화경적인 정비, 고인돌 보존과 한옥 돌담길 보수 복원도 주민 스스로 일궈 더 살기 좋은 마을이 되길 기대한다.
  언제나 넉넉한 품으로 멀리 감싸 안은 여귀산이 함께 하니 귀한 대접도 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독자 의견 목록
1 . 호환을 맞아도 쌀 사람은 호랑이가 안물어간다? 들국화밭에서 2008-01-31 / 19:50
2 . 어귀산속에 호랑이라 일산 2008-02-02 / 13:00
3 . 헉.. “방탄소년단 기업가치 최대 2조3천억원” 방탄 2019-06-08 / 0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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