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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길의 사람이야기


38년 교단 여정의 반추
고영길 2006/02/28 07:57    

주여, 저로 하여금 교사의 길을 가게 하여 주심을 감사하옵니다. 저에게 이 세상의 하고 많은 일 가운데서, 교사의 임무를 택하는 지혜를 주심에 대하여 감사하옵니다…, 주여, 저는 이 일이 저에게 찬란한 영예나 높은 권좌나 뭇 사람의 찬사나 물질적 풍요를 가져오지 않을 것을 잘 알고 있사옵니다…, 주여, 그러나 저는 저에게 맡겨진 이 거룩하고도 어려운 과업을 수행하기에는 너무도 무력하고 부족하며 어리석습니다…, 주여, 저로 하여금 어린이에게 군림하는 폭군이 되지 않게 하시고, 자라나는 생명을 돌보아 주는 어진 원정(園丁)이 되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주여, 저로 하여금 혹사자가 되지 않게 하여 주시고, 언제나 봉사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주여, 저로 하여금 교사라 하여 어린이의 인격과 자유와 권리를 유린할 수 있는 것으로 착각하지 않게 하여 주시고…, 주여, 저에게 힘과 용기를 주시어 이 십자가를 능히 질 수 있게 하여 주시고, 저를 도우시어 긍지를 느낄 수 있는 스승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천석 박사의 저서 ‘스승’의 서사(序詞)「교사의 기도」의 일부분이다. 이 책은 오천석 박사가 한 평생을 교육에 바친 생활을 통해서 체득하고 느낀 바를 엮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2월말로 38년의 교직생활을 마감하면서

오는 2월말로 38년의 교직생활을 마감하면서 많은 상념과 반성 속에서 오박사의 교사론, 아니 스승론에서의 지론을 대비시키며 교단 여정을 반추해 본다.


내가 맡고 있는 교실이 사랑과 이해의 향기로 가득차게 하였는가?

내가 맡고 있는 어린이들에게는 채찍과 꾸짖음의 공포를 영원히 추방하였는가?

길을 잘못 가는 어린이들에게 책벌(責罰)을 주기에 앞서 관용으로서 바른 길을 가르쳐 주었는가?

저항한다고 응징하기에 앞서 애정으로써 뉘우칠 기회를 주었는가?

억압이나 위협으로 자라 오르려는 싹을 짓밟는 포학자(暴虐者)는 되지 않았는가?

어린이들이 성인의 축소판도 아니며 그의 완상물도 아니고, 나의 명령에 맹종하여야하는 꼭두각시도 아님을 항상 기억하는 교사였는가?

교사의 자리를 이용하여 어린이를 교사 자신의 사적인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쓰지 않았는가?

자기 스스로 항상 가르치는 어린이들의 성장을 돕는 협력자요, 동반자임을 잊지 않았는가?

내가 가르치는 어린이들의 성장이 곧 저의 영광임을 항상 잊지 않았는가?


이상의 몇 가지 자문에 대한 응답은 회의적이고 부끄러운 생각이 앞선다. 그것은 교육과정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너무나 단편적인 지식의 전수에 치중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 때문이다. 교사의 주 임무는 가르치는 일이다. 가르친다는 것은 단순한 지식을 전달한다는 협의의 의미가 아닌 광의의 ‘가르침’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가르친다는 것은 교육의 전 과정을 주관한다는 뜻일 것이다. 교과를 중심으로 하는 학습지도는 물론 학생 개개인의 건전한 성장과 발달을 돕기 위한 재량활동 지도, 특별활동 지도, 생활지도, 인성지도, 진로지도 등 어린이의 생활 전반을 가르쳐야하는 임무까지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 경쟁력의 근원은 교육의 힘

교직에 입문할 때는 박정희 장군을 비롯한 군부 세력이 5.16군사정변을 일으켜 군부 독재정치를 경제개발로 포장하면서 10월 유신으로 장기 집권을 꾀하게 되자 민주화 운동이 활화산처럼 타오르는 시기였다. 많은 민주 인사들의 고통의 대가로 오늘의 민주국가의 틀을 갖추게 되었지 않았는가?

그 때, 우리들의 경제생활은 세끼 먹고 살기도 힘들었던 농경중심의 사회였으나, 오직 경제개발만이 살길이라고 외치던 산업사회를 거치면서, 국가경제는 눈부신 발전에 발전을 기하게 되었고, 그 원동력은 교육의 질과 양에 있어서 국가에서 필요한 동량들을 충분히 공급한 것을 꼽을 수 있다.
21세기 들어서도 우리의 국가 경쟁력이 세계 선두그룹에 접근하면서 정보화 사회를 이끄는 것도 교육의 힘이라고 감히 주장할 수 있다.

긍지를 느낄 수 있는 스승이 되게 하여 주심에 감사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그 강산이 4번을 바뀌는 동안 짧게는 1년, 길게는 4년 동안 15개 학교 조직, 각기 다른 그 학교 조직 문화 속에서 학생들의 학습조력자로서의 역할, 인생 안내자로서의 역할, 모형(模型)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끊임없는 연수를 바탕으로 최선을 다 했다고 자부할 수는 없지만 훗날 부끄럽지 않으려고 노력했다고 생각한다.

주여, 저에게 힘과 용기를 주시어 이 십자가를 능히 질 수 있게 하여 주시고, 저를 도우시어 긍지를 느낄 수 있는 스승이 되게 하여 주심에 감사하옵니다!
당신이 하고자 하는 모든 일이 꼭 성취되기를

매년 2월이면 같이 근무했던 동료 교사들이 근무 학교를 옮기면서 송별의 장을 갖게 되는데 며칠 전 우리들도 그 자리를 마련하게 되었다. 아주 평범하고 요식적이고 형식적인 자리, 그 자리에서 퇴임이라는 형식은 생략한 채 평생 교직을 마감한다고 약속되어 있었기에 부담없이 참석했던 자리였다.

동료들 중 몇 분은 다른 학교 근무를 희망하는 내신을 했고, 필자는 가정으로 근무지를 옮긴다는 표현으로 전근으로 결정된 상태에서 학교의 모든 교직원들이 모여 식사를 하고 간단한 주연으로 학교생활을 마감할 것으로 생각하고 참석한 자리였다.

그러나 직장에서의 약속과 전혀 달리 모임이 진행되었다. 약식이지만 퇴임식의 형식을 밟는 자리로 변한 것이다. 편하지 만은 않은 자리가 되고 말았다. 마음의 준비뿐만 아니라 최소한의 나의 어떤 준비도 하지 못한 자리가 되고 말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신경써준 교직원 모든 분들께 지면을 통해 감사의 뜻을 표하고자 한다.
학교장의 송별사에 이어 송별시 낭송 중 목이 매여 중도에서 다른 선생님이 대독하는 연출 아닌 연출, 그것은 나의 눈시울을 적시게 하는 것이었다. 또 그 자리에 있던 모든 분들을 숙연하게 만들었던 그 송별시, 그 송별시를 독자들에게 소개하고자 이 글의 말미에 올린다.

아무튼 학교의 모든 교직원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뜻을 전하고자 합 니다. 그대들이 하시고자 하는 모든 일들이 꼭 성취되기를 비오며 감사드립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송 별 시(送 別 詩)

옷깃을 여미며 아무 일 없는 듯 式場에 들어서면서
白蓮의 향기처럼 은은한 선생님의 모습을 바라봅니다.
自身에게는 냉철한 克己心으로,
他人에게는 너그러운 가슴으로,
삶의 진실된 모습을 몸소 보여주시던 평소의 모습 그대로
오늘도 변함 없이 앉아 계시는 모습이
지리산의 한 자락처럼 넓고 크게만 보입니다.

벌써 2년이 되었네요.
이 곳에 발령 받아 처음 선생님을 뵈올 때
편안한 미소로 저를 맞아 주셨고
연구 보고서를 쓰도록 격려해 주시던 자상함이
오늘은 가슴아픈 서글픔으로 남습니다.

선생님의 지도와 격려의 말씀을 가슴 깊이 새기고
열심히 살겠습니다.

존경하는 선배님,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길을 가르치기 위해
뼈를 깎는 아픔과 헌신만이 요구되는
교육자의 험난한 길을
38년 동안 꿋꿋이 걸어 오셨습니다.
그 누구 못지 않은 훌륭한 교육자의 길을
걸어 오셨습니다.
물질문명의 팽배 속에서
홀대받지 않을 수 없는 사회 분위기와
열악한 교육환경을 극복해야만 하는
전남 교육의 현실 속에서
굳은 신념과 의지, 제자 사랑으로 외길
인생을 사셨습니다.

그 덕택에 오늘이 있고 우리 후배들이 있습니다.

부모님께는 지극 정성의 효부로
자녀에게는 따스한 어머니로
직장에서는 존경받는 스승으로 역할을 다 하시면서도
교육을 향한 남편의 큰 뜻이 이루어지기를 밤 새워 기도하시던 사모님,
1968년, 명금초등학교를 시작으로
오늘에 이르기까지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으셨을 사모님,
낮의 뒤에는 밤이 있고,
태양을 더욱 밝게 하는 것은 달의 위대함임을 어찌 모르겠습니까?
사모님 고생 많으셨습니다. 여기에 참석하신 모든 직원들의 이름으로 영광스런 마음의 훈장을 달아 드립니다.

떠나는 건 슬픕니다.
그러나 보내는 마음은 더욱 아픕니다.
언제나 나보다 우리를 먼저 생각하셨고
너그러움과 세심함으로 우리 모두의 본이 되셨으며,
개인보다 학교의 발전을 먼저 염려 하셨던 선배님,

오늘도 해가 뜨고
학생들이 등교하고,
선생님들은 열심히 가르치고,
달그닥거리던 의자들
칠판 위에서 항상 신나던 분필들
종이 비행기 날리며 마냥 즐거워하던 학생들
모두 그대로인데
모두 버려 두시고
왜 떠나야만 하는지 저희들은 잘 모릅니다.

다만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선배님께서
이 모든 것들을 위해 젊음을 송두리째 바쳤다는 것
우리들이 두고두고 잊지 못할 거라는 것
지금은 떠나가시지만 더욱 큰 관심과 사랑으로 우리를 지켜보시다가
문득 어느 곳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는 것.

선배님,
건강하세요.
저희들을 잊지 마세요.
선배님께서 뿌려놓은 씨앗들이 자라서 꽃이 피고,
열매 맺는 날
선배님께서는 언제나 그 자리에 계실거예요.
저희들의 가슴 가슴마다에 환한 얼굴로 웃고 계실거예요.

안녕히 가십시오.
부디 안녕히 가십시오.

2006년 2월 17일

000초등학교 교사 장00 드림

독자 의견 목록
1 . 선생님--- 김희재 2006-02-28 / 11:35
2 . 이제 편안하고 홀가분한 생 누리시길 만다라 2006-02-28 / 11:50
3 . 실감나지 않습니다. 샐리 2006-02-28 / 22:48
4 . 좋은 교사는 떠나고 큐제이 2006-03-01 / 11:13
5 . 아름다운 은퇴 새롬이 2006-03-01 / 15:30
6 . 아름다운 사람같구먼요 아침이슬 2006-03-01 / 21:24
7 . 더 큰 사회의 스승으로 시작하시길 빕니다. 노만 2006-03-03 / 01:54
8 . 수고 하셨습니다. 양 촌 2006-03-03 /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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