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16년 9월 12일 월요일
손님 환영합니다..



갈치낚시, 가을에 접하는 별미


 졸음운전, 음주운전보다 더 위험..
 여름철 물놀이 안전수칙
 여름철 건강관리 요령
 완강기 사용법
 비상구 등 피난.방화시설 관리방..
 기획공연 연극『난영』 공연
 일본역사테마기행
 삼학도 문화제전 사진모음
 해남군립예술단 성인합창단 신규..
 2007 삼학도문화제전 행사진행표
 법과 규제가 사람을 죽이[evil]..
 도둑은 수천이라도 잡아야 하며 ..
 함평군립 미술관 건립 추진을 충..
 "왜"함평군은 군민의 눈,귀,입를..
 [동참] 부패한 종교, 시민의 힘..
 뉴스 없는 뉴스를 전하는 최일구..
 현재의 공중파가 조중동 방송이..
 mbc가 있어서 방송이 산다.
 용산이 사라졌다
 문화방송은 변하지 않았다
고영길의 사람이야기


순례 2일째, 주권 독립국가인 바티칸 시국
2008, 광주평화방송 성지순례행기(聖地巡禮行記) - 2
고영길 2008/04/29 09:33    

┗━ 관련 기사목록
2008, 광주평화방송 성지순례행기(聖地..
호텔식으로 아침을 해결한 후 첫 순례지를 찾았다. 오전 8시30분에 바티칸시국의 문이 열린다고 하여 30분전에 도착하여 가이드가 나누어 주는 ‘무선수신기’를 꼽고 가이드의 안내에 귀를 기우렸다. 가이드는 녹음기를 틀어 놓은 것처럼 쉬지 않고 성지설명을 이어갔다.


반석위에 세운 작지만 강한 나라 바티칸 시국


“가톨릭의 총본산 바티칸 시국(Vatican City)은 로마 북서부에 위치한 약 13만3천여 평의 국토와 1,000여명 정도의 인구를 가진 세계에서 가장 작은 주권국가입니다”

“교황청이 주권 독립국가인 바티칸 시국으로 인정받게 된 것은 이태리와 1929년 맺은 [라때란조약]이후 부터입니다. 이 조약으로 바티칸 시국은 절대군주인 교황이 다스리는 독립국으로서 모든 세속적인 정치권력으로부터 완전한 자유를 누리고 있습니다”

△ 바티칸 궁전





위치 : 로마시
언어 : 이탈리아어, 라틴어
기후 : 온대지중해성 기후
종교 : 로마가톨릭교
면적 : 0.44㎢
역사 : 1929년 이탈리아로부터 교황청...
인구 : 1,000명(1996)
통화 : 바티칸 리라 (이탈리아 리라 등가)












△ 「바티칸 시국」은 사진(로마 시) 중 베드로 성당을 중심으로 0.44㎢정도의 면적임

“이후부터 바티칸 시국은 하나의 국가체제로서 뿐만 아니라 전 세계 가톨릭 신자를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필요한 조직과 기구를 갖추고 있습니다”

“바티칸 시국은 국제법상 전 세계 교회를 대변하는 특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이러한 주권의 행사로 전 세계에 교황사절을 파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현대의 사회, 문화, 도덕 등 여러 문제에 크게 관여하고 있고 UN의 전문기구와 학술기구 등에도 가입하고 있습니다”

“또 이 나라는 전 세계 8억 가톨릭 신자의 목자이신 교황의 거처 및 집무실이 있는 교황청이 있으며 교황이 국가원수로서 교황권을 행사하는 가톨릭국가입니다”

“이탈리아와의 국경은 성 베드로 광장 앞의 도로 위에 있는 흰색 선으로 삼고 있습니다. 바티칸 시국의 영토는 바티칸 궁전을 중심으로 하는 구역뿐 아니라 성 베드로 대성당, 그리고 그 주변 및 이탈리아 영토인 로마에 있는 성당과 궁전을 포함한 13개의 건물, 로마 동남쪽 120㎞ 지점에 있는 교황의 여름 별장지 카스텔 간돌포(Castel Gandolfo)를 포함합니다”

“이탈리아인과 스위스 인으로 구성된 약 1천 명 가량의 인구를 가진 소국으로서 이탈리아어와 라틴어를 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교황을 선출하는 콘클라베의 장소 시스티나 경당


성 시스티나 경당에 대해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가이드가 다시 설명을 시작하였다

“시스티나 경당(이탈리아어: Cappella Sistina)은 성 베드로 대성당과 인접한, 바티칸 궁전 내에 지어진 경당입니다. 미켈란젤로가 그린 천정화와 벽화로 유명하며, 교황을 선출하는 콘클라베의 장소로서도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교황 식스토 4세의 명령에 따라 교황 전용 경당으로서 1475년에 건설이 시작되었습니다. 1481년에 건물이 완성된 후, 보티첼리 등 초기 르네상스 화가들이 모세와 예수 그리스도를 테마로 한 벽화를 그렸으며, 1483년 8월 식스토 4세는 성모 몽소승천 날에 축복을 내렸습니다. 처음엔 천정에는 하늘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덧붙여 경당의 이름은 식스토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내부의 깊이는 40.25cm, 폭 13.41cm, 높이 20.73m로 이것은 열왕기 6장에 있는 솔로몬 왕의 신전 비율(60:20:30)에 그대로 맞춘 것이라고 합니다.”

“내부의 벽화로 좌우벽면에 《모세의 생애》와 《예수의 생애》각 6 점씩 그려져 있고, 300명이 넘는 인물들이 어떤 사람은 실물보다 3,4배나 더 크게 그려져 있는 천장화(天障畵) 천지창조, 중앙제단 벽화《최후의 심판》등 르네상스 회화의 보고(寶庫)임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성 시스티나 경당 벽화
좌우벽면에 《모세의 생애》와 《예수의 생애》각 6점씩


“모세의 일생에 대한 그림은 ①이집트로 가는 모세(페루지노) ②모세의 선택(산드로 보띠첼리) ③홍해를 가르는 모세(코시모 로첼리) ④코레의 아들을 벌하는 장면(보띠첼리) ⑤십계(루카 시뇨렐리) ⑥모세의 죽음(루카 시뇨렐리)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은 피렌체의 움브리아의 대표적 화가명

벽화《모세의생애》①-⑥



모세의 생애① 이집트로 가는 모세, 프레스코, 1482년경 작, 350× 572㎝



모세의 생애② 모세의 선택, 프레스코, 1481-1482년 작, 350× 572㎝



모세의 생애③ 홍해로 가는 모세, 프레스코,1481-1482년 작, 350× 572㎝



모세의 생애④ 십계명을 받는 모세, 프레스코, 1482년 작, 350× 572㎝



모세의 생애⑤ 모세와 이른이 코라를 징벌, 프레스코, 1481년 작, 350× 572㎝



모세의 생애⑥모세의 유언과 죽음, 프레스코,1481-1482년 작, 350× 572㎝


※ “프레스코란 무엇입니까?”: 순례자 중 프레스코(Fresco)에 대한 질문이 있자 가이드는 구체적으로 잘 설명해 주었다.

“건물의 벽과 천장 등에 그림을 그리는 벽화기법의 하나로 대단히 중요한 벽화기법입니다. '프레스코(fresco)'는 이탈리아어입니다. 영어로는'신선 한(fresh)', '젖은(wet)', '새로운 (new)'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프레스코 화법은 건축물의 벽이나 천장에 석회와 모래를 섞 어서 만든 석회모르타르를 바르고 석회모르타르가 건조되기 전에 안료를 물(증류수)과 반죽해서 만든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는 화법을 말합니다”

“성 시스티나 성당의 제단을 향해 우측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예수의 생애》에 대한 벽화 6장이 연속적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예수 일생을 그린 순서는 ①예수의 세례(페루지노) ②예수 시험을 받으심과 나병환자를 낫게 하심(산드로 보띠첼리) ③첫째 사도를 부름(도메니코 기로란다이오) ④산상 설교(로쎌리와 삐에로디코시모) ⑤천국의 열쇠를 주시는 예수(페루지노) ⑥최후만찬(코시모 로첼리)을 그렸습니다.”


벽화《예수의 생애》①-⑥



예수의 생애 ① 그리스도의 세례, 프레스코, 1482년 경 작, 350× 572㎝



예수의 생애 ② 그리스도의의 세가지 유혹, 프레스코, 1481-1482년 작, 350× 572㎝



예수의 생애 ③ 어부 네 사람을 제자로 부름, 프레스코, 1481- 1482년 작, 350× 572㎝



예수의 생애 ④ 산상설교, 프레스코, 1481- 1482년 작, 350× 572㎝



예수의 생애 ⑤ 베드로에게 열쇠를 맡기시는 그리스도, 프레스코, 1481- 1482년 작, 350× 572㎝



예수의 생애 ⑥ 최후의 만찬, 프레스코, 1481- 1482년 작, 350× 572㎝



미켈란젤로의 천정화 ‘천지창조’


이어폰을 통해 미켈란젤로의 천정화 ‘천지창조’에 대한 가이드의 설명이 부드러웠다. 대학에서 석사과정을 이수하고 있는 귀엽고 깜직한 여학생이 안내를 맡았다.

“천정화 ‘천지창조’는 미켈란젤로가 1508년 5월 작업에 착수하여 4년5개 월 동안 정열과 창작력을 총 동원하여 1512년 불후의 대작으로 완성한 것 입니다”

“천정화 ‘천지창조’는 구약성서의 천지창조 일화를 주제로 《빛과 어둠의 분리》, 《해와 달의 창조》, 《물과 땅의 분리》, 《아담과 이브이 창조》, 《원죄와 낙원으로부터 추방》, 《노아의 제물》, 《노아의 대홍수》, 《술취한 노아》등 9개의 그림입니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그림입니다. 이 천정화는 미켈란젤로가 그린 그림가운데 그림 자체도 정말 멋있고 입이 벌어지지만 그림을 그린 미켈란젤로의 이야기를 들으면 더욱 입이 벌어지는 그림입니다”

“그림을 그리는 과정이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습니다. 성당천정까지 미켈란젤로는 높은 제단 같을 것을 만들고 사다리를 타고 오르락내리락하면서 그림을 그렸다고 합니다. 재료가 떨어지면 긴 사다리를 타고 내려와서 회반죽과 물감과 물을 가지고 낑낑거리고 올라가서 그림을 그리는 것입니다. 또 그림을 그리는 자세는 옆으로 누워서 얼굴을 천장 쪽으로 들고 한 팔은 몸을 지탱하고 한 팔로 그림을 그렸다고 합니다”

“미켈란젤로는 이 그림을 위해서 장장 4년 6개월 동안 계속 그 자세로 그림만을 그렸던 것입니다. 현대 수학자들이 4년 6개월 동안 그 넓은 공간에 그림을 완성시키려면 하루에 얼마나 그림을 그려야 하는지 계산을 해봤더니 장장 20시간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하루에 4시간씩만 자고 그 불편한 자세로 20시간을 꼬박 그림만 그린 셈입니다”

가이드는 설명을 계속하였다.

“이 천장화는 성서의 〈천지창조〉의 순서와는 반대로 노아에 관한 3가지 이야기, 즉 입구 쪽에서부터 그려졌는데, 완성까지는 4단계를 거쳤습니다.”

“첫 번째 단계는 2개의 곡면 벽화에 그린 3가지의 노아에 관한 이야기와 8명의 나체상으로 1509년 9월 15일에 완성되었습니다.”

“두 번째 단계는 〈아담과 이브의 원죄와 낙원추방〉과 〈이브의 창조〉, 4명의 나체상, 두 명의 예언자, 4개의 삼각형 벽화, 2개의 곡면 벽화로 1510년 8월에 완성되었습니다.”

“세 번째 단계는 〈아담의 창조〉 〈하늘과 물의 분리〉 〈달과 해의 창조〉 〈빛과 어둠의 창조〉의 4가지 이야기와 8명의 나체상, 5명의 예언자, 4개의 삼각형 벽화, 2개의 곡면 벽화로 1511년 1월과 8월 사이에 완성되었다고 합니다.”

“네 번째 단계는 나머지 모든 원형 벽화로 같은 해 10월부터 1512년 10월 사이에 완성되었다.”

“그려나간 순서에 따라 화면은 점점 단순화되어 가는데, 이것은 높은 곳에 그려지는 천장화의 특수성을 미켈란젤로가 차츰 깨닫기 시작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그림은 1512년 완성되어 같은 해 만성절인 11월 1일 제막식을 가졌습니다. 그 후 500여 년 동안에 이 벽화는 여러 차례에 걸쳐 덧칠과 복원작업이 이루어 졌습니다.”

“1982년에는 일본의 한 방송사의 후원으로 최첨단 기법을 동원한 복원작업이 9 년에 걸쳐 실시되어 그림을 덮고 있던 때와 후대에 이루어진 덧칠이 제거되어 본래의 색채와 형태가 되살아났다고 합니다.”


미켈란젤로의 천정화 ‘천지창조’



인류의 고귀한 문화유산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


“미켈란젤로는 1533년 중순 당시의 교황 클레멘스 7세로부터 시스티나 성당의 제단 뒤 벽에 최후의 심판도를 그리라는 명을 받았다. 클레멘스 7세가 이 그림을 주문한 것은 스페인 군에 의한 로마의 점령과 약탈 등 재난의 연속에 대한 분노의 감정을 달래기 위한 것이었는데, 1534년 교황의 사망으로 이 작업은 일단 중지되었다고 합니다”

“클레멘스 7세가 죽고 나서 뒤를 이어 바오로 3세가 교황으로 선출되었습니다. 교황 바오로 3세(재위 1534~1549)는 미켈란젤로에게 세 가지 조건을 내세워 다시 한 번 시스티나 성당작업을 위임합니다.”

첫째는 그를 ‘교황청 최고의 건축가, 조각가, 화가’로 임명한다.

둘째는 그에게 장려금으로 매년 금화 1,200에퀴를 평생 지불하기로 약속한다.

셋째는 그림이 그려지는 동안 작품내용에 대해 전혀 관여하지 않겠다는 약속이다.

그러면서 교황은 미켈란젤로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는 당신의 그림을 갖기 위해 교황이 되기를 30년 동안이나 기다렸소.”

“교황의 감동어린 말 한마디가 미켈란젤로로 하여금 노인임을 잊게 했습니다. 그래서 천지창조를 그린 지 24년이 지난 1536년에 그는 시스티나성당으로 다시 오게 됩니다. 그는 새 프레스코를 제작하기 위해 다섯 점의 작품을 없애야했습니다. 자신이 그린 예수님의 족보에 관한 두 점의 루네트화(반달모양의 그림)를 비롯하여, 페루지노가 그린 <성모승천>과 다른 화가들이 그린 <예수님의 탄생>과 <모세의 발견>을 없앴습니다. 그리고 단테의 <신곡>에서 영감을 얻어 <최후의 심판>을 그렸습니다”

“이 작품은 도식적으로 다섯 개의 띠로 이루어졌습니다. ①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는 <천상세계>,②<트럼펫을 부는 천사들>, ③ 천사들 우측에 묘사된 <지옥으로 떨어지는 죄인들>, ④천사들의 좌측에 있는 <신에 의해 은총을 받은 영혼>, ⑤왼쪽 아래에 있는 <죽임에서 소생하는 인간들> 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꼭대기에 있는 첫 번째 띠에는 천사들이 그리스도의 수난에 사용된 도구들을 들고 있습니다. 왼쪽 루네트에는 대천사 가브리엘을 중심으로 천사들이 십자가를 들어 올리고 있고, 일부 천사들은 가시관을 들고 갑니다.”





“오른쪽 루네트에는 천사들이 “책형기둥”을 일으켜 세우고, 한 천사가 채찍을 들고 옵니다. 이것으로 수난에 사용된 도구들이 바로 구원의 도구임을 천사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림의 중심에 해당되는 두 번째 띠에는 심판자 그리스도와 성인들이 있습니다. 벽화의 중앙에 선 예수는 머리 위로 쳐든 오른손과 밑을 향해 뻗은 왼 손의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천국과 지옥으로 나누어지는 화면은 유동적인 화면임에도 불구하고 힘의 역동성으로 통일적인 화면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 주위를 성모를 비롯한 성자들이 모여 있습니다”



“주위에는 죽은 자가 소생하여 하늘에 오르고 있습니다. 예수의 바로 밑에 있는 것은 왼 쪽이 라우렌티우스이고, 오른쪽에 성 바르톨로메오가 미켈란젤로의 얼굴이 그려진 사람 가죽을 들고 있습니다. 마리아의 왼쪽은 십자가를 든 성 안드레아, 그 곁에는 성 요한, 예수의 오른쪽 백발노인은 열쇠를 들고 있는 성 베드로이며 그 왼쪽은 성 바울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주변에는 사도들과 순교자들이 둘러싸고 있습니다. 그중 중심인물은 왼쪽에 있는 세례자 요한과 베드로 사도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광야생활을 상징하는 낙타털옷을 망토처럼 걸치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그를 낙원에서 추방되어 황무지를 일구어야 했던 아담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베드로는 두 개의 열쇠를 들고 있습니다. 왜 두 개의 열쇠를 쥐고 있을까? 하나는 과거의 열쇠요, 다른 하나는 현재의 열쇠 아닌가? 그래서 그를 바오로 3세 교황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세례자 요한과 성모님 사이에는 안드레아 사도가 십자가를 들고 뒤돌아서 있고, 베드로 사도 위에는 예수님의 사랑받던 제자 요한이 예수님과 비슷한 동작으로 우리를 노려보고 있습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아래에는 라우렌시오 성인이 석쇠를 들고 있고, 바르톨로메오 성인이 살가죽을 들고 있습니다. 라우렌시오 성인은 석쇠 위에서 화형을 당하면서 재판관에게 이런 농담을 했습니다.”



『다 구워졌으니 이제 뒤집어서 잡수시오』

“그의 일화는 전설이 되어 그는 로마의 가장 유명한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또 바르톨로메오 사도는 아르메니아에서 선교하다가 순교했는데, 산채로 살가죽을 벗기는 형벌을 받았습니다”

“원형을 이루는 성인들의 왼쪽에는 여 선지자들과 구약의 여인들이 있고, 동정녀와 순교자와 성녀들이 모여 있다. 무릎을 굽힌 어린 소녀를 보호하는 것처럼 보이는 거대한 여인은 보통 하와 혹은 가톨릭교회로 불립니다”

“또 오른쪽에는 구약의 예언자와 성조들이 있고, 성인들이 서 있습니다. 그 중심에는 예수님을 도와 십자가를 진 키레네 사람 시몬이 큰 십자가를 짊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선한 도둑 디스마도 작은 십자가를 들어 올리고 있습니다. 그 사이에 블라시오 성인이 강철제 소모기를 들고 있고, 알렉산드리아의 카타리나 성녀는 부셔진 칼날바퀴를 들고 있으며, 세바스티아노 성인은 화살을 손에 들고 있습니다. 블라시오는 강철제 소모기로 찢겨서 순교했고, 알렉산드리아의 카타리나는 칼날을 박은 바퀴로 찢어 죽이려고 했으나, 갑자기 벼락이 떨어져 고문도구를 부수자 결국 칼에 맞아 순교했으며, 세바스티아노는 화살에 맞아 처형될 뻔 했으나, 극적으로 살아났다가 다시 발각되어 영웅적으로 순교했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 띠의 중앙에는 최후의 심판을 알리는 천사들이 일곱 나팔을 불고 있고, 구원자들의 명부를 든 대천사 미카엘이 구원의 명부를 펼쳐들고 있으며, 반대쪽의 천사는 지옥의 명부를 펼쳐 들고 있다”

“그런데 구원의 명부는 작고 지옥의 명부는 크지 않은가? 또 왼쪽에는 연옥에서 천국으로 올라가는 복된 사람들이 있고, 오른쪽에는 지옥의 불로 떨어지는 천벌 받는 자들이 그려져 있습니다. 묵시록에 보면 심판의 날에

△ 지옥 불속으로 떨어지는 사람
△ 천국으로 올라가는 사람

천사들이 나팔을 불면 무덤이 열리고, 사람들은 덕행과 악행의 무게를 잰 다음 구원받는 영혼과 저주받는 영혼으로 나뉘어서 천국으로 올라가거나 지옥불의 아가리 속으로 떨어진다고 했습니다. 왼쪽의 모습을 보면 선행한 영혼들이 자력으로 천국으로 오르는 것을 힘겨워하자 천사들이 위에서 당겨주고 끌어올려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왼쪽의 모습을 보면 천국으로 올라가려고 애쓰는 영혼에게 천사들이 난폭하게 주먹질을 하지 않는가? 또한 악마들도 소리 지르는 영혼들을 붙잡아 끌어 내리고 있다“



“악마와 뱀에게 사로잡혀 있는 절망의 천벌을 받는 영혼은 내면의 고통으로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그 고통은 미켈란젤로 자신의 고통과 유사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이 작품을 그리면서 절망과 회의를 느꼈고,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다는 반대자들에 의해 그림 전체를 없애야 하는 두려움에 사로잡혀야했습니다”


“네 번째 띠 왼쪽에는 무덤에 갇혔던 영혼들이 다시 살아나고 있고, 오른쪽에는 영벌을 받은 영혼들이 카론의 배에 실려 지옥으로 향하고 있으며, 이들을 심판하는 미노스가 지옥문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클레멘스 7세 교황은 수도복을 입고 무덤에서 나오는 영혼을 돌보고 있고, 교황청 의전 담당관인 체세나 추기경은 미노스로 표현하지 않았던가?”

“체세라는 공식적으로 이렇게 논평했습니다.

『이처럼 거룩한 장소에 부끄러운 부분을 아무렇지 않게 드러낸 수많은 나체를 그린 것은 매우 그릇된 일이며, 이 작품은 교황의 소 성당이 아니라 목욕탕이나 매춘굴에나 어울린다』

미켈란젤로는 지옥의 망령들 속에 체세나의 초상을 그려 넣음으로써 그에게 복수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체세나는 다리에 꽈리를 튼 큰 뱀과 악마의 한가운데 있으며, 큰 뱀이 그의 성기를 물고 있게 그렸습니다”

“어쨌든 성당의 제단 뒤 전체의 벽에 1534년에서부터 1541까지 7년간의 긴 세월에 걸쳐 그린 『최후의 심판』은 인류의 고귀한 문화유산이 된 것입니다”

“이 세기의 걸작은 천국에 대한 인간의 갈망과 지옥의 공포를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인류 종말을 상상시키는『최후의 심판』은 20년 전에 그린 낙관적인 천장화의 『천지창조』와는 전혀 다른 당시의 비극적인 시대상과 미켈란젤로의 비관적인 인생관을 여실히 반영하고 있습니다”

“『최후의 심판』을 그리던 당시 세상은 매우 암울했습니다. 로마는 스페인 군대에게 점령, 약탈당했고, 유럽은 신, 구교로 분열되어 전쟁에 휩싸이면서 교회의 귄위는 땅에 떨어졌을 때 였습니다”

“미켈란젤로는 신을 버리고 미쳐버린 인간과 미술에 대한 신의 심판이 멀지 않다고 믿었고, 종교적 경건주의에 빠져있었습니다”

“하여튼 시스틴 성당의 『최후의 심판』은 르네상스 예술의 극치이며 「바오로 3세」가 「트렌토 공의회」에서 규정한 것 같이 이것은 종교개혁에 대처하는 최대의 작업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권위는 그림 수정을 결의합니다”

“1564년 1월 21일 트렌티노 공의회의 결정은 미켈란젤로가 여든 아홉 나이로 숨을 거두기 한 달 전에 내려졌습니다. 수정작업을 그의 제자 ‘볼테라’가 맡은 건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었습니다. 스승의 뜻을 크게 다치지 않고 최소한의 가래개만 씌우는 정도에서 일을 마무리 했습니다”

“다만 엉덩이를 흔들어댄다고 비난을 모았던 성녀 카테리나는 본격적으로 손보았습니다. 성자들의 부끄러운 곳을 덮는 가리개는 회벽을 파내고 젖은 석회를 새로 바른 뒤에 물감을 칠하는 방식으로 진행 되었습니다”

“볼테라는 이후 ‘브라게토니’라는 별명을 얻었다고 합니다. ‘가리개 귀신’이란 뜻이라고 합니다”

가이드는 『최후의 심판』에 대하여 자신 있는 설명을 해 주었다.

다시 가이드를 따라 성 베드로 대성당으로 이동했다. 가이드의 이야기로는 지금 이 시기는 비 성수기인 겨울인 1월인지라 이렇게 한가히 순례할 수 있지만 3월이 되면 입장하려는 관광객의 줄이 몇 바퀴 돌아 끝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입장 대기 시간이 2-3시간은 보통이었고, 입장하더라도 뒷 입장객이 밀어대기 때문에 무엇을 보았는지 알지 못하고 몇 시간 밀려다니다가 출구로 나오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했다.


착공 120년 만에 완성한 베드로 무덤위의 성당 ‘베드로 대성당’


가이드의 설명이 무선 마이크를 통해 들리기 시작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와 그의 모친 헬레나 성녀가 349년 봉헌으로 이루어진 베드로 대성당은 410년 비스고티족의 로마 침략을 시점으로 455년에는 반달족, 846년에는 사라센족, 그리고 1084년에는 노르만족 등, 이민족들에 의해 끊임없이 약탈당했으며, 그 결과 초대교회의 중요한 보물은 거의 다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15세기 중엽에 들어오면서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세운 원래의 대성당은 1100여 년의 역사를 지켜오는 동안 여러 차례에 걸친 수리와 확장 등으로 원래의 모습을 많이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모습으로 세워진 대성당은, 사도 베드로의 무덤 위에 처음으로 성당(콘스탄티누스의 기념 성당)을 세우고 축성(349년)한지 1276년 만인 1625년 11월 18일, 교황 우르바누스 8세에 의해 새롭게 축성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교황 율리우스 2세가 1506년에 시공한지 꼭 120년 만에 축성하게 된 셈이다”

“1625년에 완성된 성 베드로 대성당은 미켈란젤로의 걸작품 중의 걸작품입니다. 현재의 성 베드로 대성전은 1510㎡의 면적과 내부 길이 186m, 안뜰과 벽의 두께까지 합하면 211m입니다. 돔의 직경은 42m, 성당 안의 제대는 44개, 성상이 395점, 이 가운데 대리석이 104개, 석회석이 161개 청동이 40개, 석고가 90개입니다”

“성당 지하에는 역대 교황들의 묘소가 있습니다. 이곳에 모든 교황의 묘소가 다 있는 것은 아니지만 꽤 많은 수의 교황의 묘소가 이곳에 있으며 그 중에서도 성 베드로의 묘소는 가장 중요한 성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 피에트로의 묘(베드로 무덤)


“성 베드로 대성당은 로마 가톨릭의 총본산지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대성당으로《산 피에트로 대성당》이라고 표기되기도 합니다”

“성 베드로 대성당은 교회 건축으로서는 세계 최대급의 크기를 자랑하며, 최대 5만 명을 수용할 정도로 거대합니다”


베드로 대성당



성모상의 성모님!,
왜? 50대인데도 10대의 얼굴로 조각되었을까?


“대성당의 정문으로 들어와 오른쪽으로 향하면 미켈란젤로의 작품인 ‘라피에타(성모상)’을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의 아들인 예수의 죽음에 슬퍼하는 성모 마리아상인데 그냥 보기에도 경건하고 성스러운 기운이 느껴지도록 조각한 미켈란젤로의 솜씨에 경탄을 금할 수 없습니다”


미켈란젤로의 ‘라 피에타’(성모상)


“19세의 미켈란젤로는 여러 지방을 거쳐 로마로 갔습니다. 로마 성 베드로 성당의 ‘피에타’가 그에게 최초의 명성을 안겨주었습니다”

“1499년, 그의 나이 불과 24세의 작품이나 그야말로 걸작 중의 걸작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어쩌면 돌을 흙처럼 주물러 자유자재로 빚어낼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언뜻 보기에도 ‘피에타’는 이상한 점이 너무 많습니다”

“어린 소녀의 모습을 한 성모가 죽은 청년 예수를 안고 있습니다. 성모의 실제 나이는 50세가 넘었으련만 얼굴은 10대, 아니 그 밑으로 봐도 무방할 만큼 앳되기 그지없습니다”

“이는 사보나롤라를 비롯한 당시 그리스도교 인들이 성모는 무 원죄의 영원한 순결 처녀라 말한 것에 따른 결과입니다. 어린 모습에도 성모의 얼굴은 지엄하기 짝이 없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아들을 안고 있으면서도 눈물은커녕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어 보입니다”

“성모상은 큰 방탄유리로 보호되고 있는데 예전에 어떤 정신병자가 망치로 마리아 상의 코를 부순 적이 있던 이후로 그렇게 보호되고 있다고 합니다. 다행히도 잘 복원되어 그 피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아 보입니다”


발가락이 닳아 없어진 성 베드로 청동상


“아르놀프 디 캄비오(1245-1302)의 작품으로 , 작가는 현재 베드로 대성당 지하 무덤 출구 앞에 놓여 있는 성 베드로의 오래된 대리석상(5세기 것으로 추정됨)에서 영감을 얻어, 이와 비슷하게 청동으로 작품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중세기 때부터 이곳을 찾는 수많은 순례자들이, 특히 이 청동상의 발에 입 맞추며 기도를 바치는 전통 때문에, 현재 오른쪽 발가락은 거의 다 닳 아서 그 원 모양이 없어지고, 이제는 발가락도 많이 닳은 상태입니다”

“아는 1857년 3월 15일, 교황 비오 9세가 특별한 회칙을 통해 이날부터 50일간을 임시 성년으로 반포하며, 베드로 대성당에 와서 이 동상의 발에 입맞춤해야 전대사를 받을 수 있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그러자 유럽 전역의 많은 순례자들이 이 기간 동안 한꺼번에 물려들어 사도의 오른쪽 발등에 입맞춤하는 바람에 발등에 심하게 닳았다고 합니다”

△ 발가락을 만지며 기도하는 순례객
△ 발가락이 닳아 없어진 모습

“성당 내부에는 교황 요한 23세의 유해가 밀납에 쌓여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요한 23세 사후 그 무덤을 다시 열 일이 있어 열어보니 시체가 전혀 썩지 않아 기적이라 하여 밀납으로 시신의 표면을 처리 한 후 이곳에 모셨다고 합니다”


교황 요한 23세의 유해


“1881년 11월 25일 이탈리아의 베르가모에서 가난한 집안의 13명의 자녀들 중 장남으로 태어나 일을 하다가 12세에 베르가모 신학교에 입학하여 교회사, 교부학, 호교론을 연구하다 신학박사학위를 받은 다음 1904년 8월 10일 사제로 서품 받았고, 라디니 테데스키 백작이 베르가모의 주교로 임명된 동안 그의 비서 겸 신학교수로 근무하였습니다”

“뒷날 비오 11세가 된 아킬레라티와 친분을 맺었고, 1차 세계대전 후 교황청에서 행정업무를 맡기도 하였습니다. 1025년 아레오폴리스의 명목상의 대주교 및 1935년 아레오폴리스의 대목으로 임명되었고, 불가리아 그리스의 교황 사절, 파리주재 교황청 대사(1944∼1953년)를 거쳐 1953년에는 사제추기경으로 임명, 1958년 비오 12세에 이어 교황으로 선출되었습니다”

“성당 내부의 많은 성화와 조각들은 모두가 명작들, 우리로 치면 모두가 국보급이라고나 할까요!”

△ 교황청을 상징하는 솔방울
△ 환경파괴 상징 지구모양

“바티칸 박물관 건물 밖으로 나오면 정원이 보일 겁니다. 높이 4미터의 솔방울 모양의 조각이 있는 ‘파냐의 안뜰’ 흔히 ‘솔방울 정원’이라고 합니다.

솔방울 정원!!,
교황청을 상징하는 솔방울!!,
그 솔방울 정원의 넓은 뜰에 있는 환경파괴문제를 상기시키는 지구모양의 조각상이 있는데,
파괴되어가고 있는 지구의 모습!!
환경문제는 바티칸 시국에서도 문제인가 봅니다”

바삐 움직이려 하나 비 때문에 수월치 못했다. 유럽에서는 겨울이 우기라고 하니 우리의 사고로는 이해하기 곤란한 부분이었다. 이렇게 여러 성지를 둘러보고 저녁은 양식으로 때운 다음 약간의 휴식을 갖은 다음 로마공항으로 출발하였다. 이스라엘 텔아비브로 이동하기 위해서이다.

독자 의견 목록
1 . 2018-01-10 / 19:25
2 . 2018-01-16 / 17:18
3 . 2018-01-19 / 11:58
4 . 2018-01-19 / 14:15
5 . 2018-01-19 / 15:56
6 . 2018-01-19 / 17:02
7 . 2018-01-19 / 18:23
8 . 2018-01-19 / 21:18
9 . 2018-01-20 / 16:24



의견글 쓰기
글은 인터넷에서 자신의 인격을 비추는 거울입니다
글쓴이 비밀번호
제 목
내 용



  순례 3일째, 이스라엘! 잃어버린 2천년! 2008.05.09
  → 순례 2일째, 주권 독립국가인 바티칸 시국[9] 2008.04.29
  2008, 광주평화방송 성지순례행기(聖地巡禮行記)[1] 2008.03.26
  정해년 새 해를 맞으며[4] 2006.12.31
  수(數)에 대한 이런 저런 이야기 2 2006.11.28
  수(數)에 대한 이런 저런 이야기Ⅰ[2] 2006.11.18
  지팡이 선물[4] 2006.10.29
  모기 입이 귀밑까지 찢어진다는 처서[3] 2006.08.20
  부채에 얽힌 이야기들[2] 2006.08.15
  무더운 여름 지혜롭게 극복하기[3] 2006.08.09
  도박(賭博)의 육불리(六不利)[3] 2006.08.02
  한자공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2] 2006.07.23
  공부는 왜 해야 하는가?[5] 2006.07.05
  진정 행복한 삶이란?[2] 2006.06.28
  진짜와 가짜 2006.03.13
  38년 교단 여정의 반추[8] 2006.02.28
  2006년 병술년 개띠 해를 맞이하면서[2] 2006.01.03
  스승의 길[3] 2005.10.06
  이런 일도 아첨이라고? 2005.09.04
  친구의 죽음을 접하고서[4] 2005.08.07
  120세까지 살 수 있다고[1] 2005.06.02
  유머형인간이 되자[4] 2005.05.18
  IQ 높다고 공부 잘 할까?[2] 2005.04.19
  현대 맹모(孟母)가 되는 길[3] 2005.04.04
  밥상의 터줏대감 김치[4] 2005.03.27

1 2
우리힘소개 | 개인정보보호정책 | 광고문의 | 기사제보 | 제휴문의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 거부
Copyright © 2003 인터넷신문우리힘닷컴주식회사 All rights reserved Tel : (061) 277-5210 / Fax : (061) 277-5290
신문 등록번호 : 전남 아 1 등록일 : 2005.08.11 발행인 : 김은정 / 편집인 : 오승우 54.162.239.2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