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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주의 영화로 보는 세상


색채의 마법사 장예모 감독이 그려낸 [황후 화]와 [영웅]
김영주 2007/01/29 14:45    

* 다음 주에 장예모 감독의 [황후 화]를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난 그의 작품을 3가지 성향으로 나누는데, [인생] [귀주이야기] [집으로 가는 길] 같은 영화 ` [붉은 수수밭] [국두] [홍등] 같은 영화 ` [영웅] [연인] [황후 화] 같은 영화. [황후 화]같은 영화는 4년전 [영웅]이라는 영화에서부터 비롯됩니다. 그의 영화를 모두 좋아하지만, 그 중에서도 [집으로 가는 길]같은 영화를 가장 좋아합니다. [황후 화]를 말하기에 앞서서, 4년전에 썼던 [영웅]이야기를 올립니다.( 2년전의 [연인]이야기도 올릴까? )

************************


[영웅] 색채의 마술사 장예모가 그린 무협영화

2003년 01월 31일 김영주

중국 무협영화이야기는 [와호장룡]에 이어 두 번째이다. [와호장룡]이야기에서 나는 코흘리개 시절의 [외팔이]를 이야기하였고, 젊음이 탱탱한 시절 [소림사] 그리고 [천녀유혼]을 지나, 젊음이 익어갈 무렵 [소오강호]와 [동방불패]에서 감동을 이야기하였다. 그런 감동에 비하면 [와호장룡]은 "그리 별 볼 일 없다!"고 했다. 성룡 영화로 가끔 무술영화를 만나기는 하지만, 무술영화로는 풀 수 없는 재미가 무협영화에 따로 있다. 그나마 성룡 영화마저도 요즘은 신통챦으니, 제대로 된 무협영화에 갈증이 자심했던 모양이다. [영웅]이 나왔다. 가슴이 설레었다. 더구나 색채의 마술사 장예모 감독작품이라니, 또 다른 기대감까지 보태서 목마른 기다림을 더욱 북돋우었다.

*****

검은 장막을 열고 시작되는 [영웅]의 화면과 액션은 가히 숨막히는 감동이었다.( 중국 왕조는 음양오행의 순환을 뜻하는 색깔을 선택한다. 진나라는 '검정색'을 숭상한다. 그래서 진시황은 황궁의 모든 권위를 검정색으로 상징한다. ) 그 장대한 스펙타클과 육중한 무게감 사이를 쇳소리로 가르며 파고드는 서슬 퍼런 칼과 창의 춤사위. 역시 무협영화는 무술의 경지에 삶의 깊이를 담는 비장미가 단연 으뜸이다. 장대한 스펙타클과 숨막히는 무술은 이어지고 이어진다. 눈이 시리도록 박혀드는 샛노란 이파리가 붉은 옷자락 끝에 휘날리며 펼쳐지는 장만옥과 장쯔이의 대결장면은, 무술이라기보다는 색채 마술사 장예모가 탐미의 극치를 달리는 환타지였다. 그렇게 30 여분은 그 동안 기나긴 목마름을 통쾌하게 씻어주었고, 무협영화에 또 다른 지평을 열어주는 새로운 면모를 보게 되었다.

궁궐과 군인들의 웅장하고 장대함. 신선이 사는 비경에 자리잡은 호숫가에서 물을 차며 가르는 무술. [대지]의 메뚜기 떼 몰려들듯이 숨쉴 틈도 없이 퍼부어 쏟아지며 내리 꽂히는 섬뜩한 화살. 몰아치는 모래바람만 외로이 스쳐 가는 황량한 쓸쓸함. 10보 비술에 찍어 가르는 칼끝의 파열. 눈동자에 박혀 들어와 가슴을 울렁이고 사무치게 하는 장면들이 이어진다. [소림사]의 앳된 얼굴로 만난 이연걸의 무술은 이 영화에서 한 번 더 도약한다. [와호장룡]에서 처음 만나 훌쩍 스타덤에 오른 장쯔이는 연기력에서 뭔가 허전하고 도식적이다. 양조위는 만날 때마다 왠지 가슴에 와 닿지 않는다. 내 청춘이 담장 너머로 훌쩍 떠나가는데, 장만옥의 젊음은 아직도 담장 안에 살아 있어 보인다. 붉은 옷에 늘어뜨린 검은 머리사이로 내리 깔은 장만옥의 눈매는 내가 만난 장만옥 중에서 가장 고혹적인 매혹을 그윽하게 담고 있었다.

긴 목마름에서 헤어난 충만감에 가슴 뿌듯하였다. 그러나 장예모 감독 작품에서 항상 느끼는 불만이 이 영화에서도 여전하였다. 나는 장예모 영화를 보면 꼭 임권택 감독이 떠오른다. 지나치게 아름다운 영상미에서 오는 이질감. 뭔가를 교훈으로 남겨 관객에게 굳이 말하고 싶어하는 고지식함. 정성들인 영상미 사이사이에 빵꾸난 틈새를 메우지 못하는 미숙함도 참 닮았고,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시나리오가 항상 허술하다는 점도 참 닮았다.

탐미적 미감의 극치를 내달려 우리 산천에 처연한 아름다움을 담아내려는 정일성 촬영감독처럼, 탐미적 색감의 극치를 내달려 중국 산천을 선연한 아름다움으로 찬양하려는 '지존적인 중화주의'를 꿈꾸는 것 같다. 미국문화 제국주의에 도전하려는 발칙한 의도가 역력하다.

그는 [붉은 수수밭]에서 중국 여인의 서러운 시집살이도 선연하게 붉은 색감으로 아름답게 감싸 안았고, [국두]에서 옷감집의 착취노동과 성폭력도 샛노랗게 물든 비단폭에 휘감아 안았으며, [홍등]에서 첩살이의 숨막히는 갈등과 죽음도 검회색 높은 담장에 걸린 붉은 등불의 선연한 색감으로 숨죽이게 만들었다. [집으로 가는 길]은 그의 미감과 크게 어긋나지 않은 소재이어선지, 그나마 가장 편안하고 훈훈하였다. 그는 이번에도 자객들의 숨어살며 옥죄어 드는 숨막힘도 탐미적 색감과 유장한 붓글씨 그리고 환상적인 풍광에 감추어 버렸다. "영화 보는 사람이 돈 내고 즐기면 그만이지, 괜히 머리 아프게 꼬치꼬치 파고들 게 무에냐!"라고 힐책하면, "나도 그렇다!"고 맞장구 칠 수도 있다. 그러나 그의 영상미와 색감을 즐기는 팬으로서, 다음 영화쯤에서는 그의 역량이 한 차원 승화된 모습을 보고 싶다는 바램을 가져 본다. 그의 영화가 심심풀이 껌이나 땅콩하고 격조가 다른 바에야... .

[와호장룡]에서도 하늘을 나는 비공술이 어색하더니 이 영화에서도 어색하고 남용이 심하다. 영화가 30 여분을 넘어서면서, 진시황과 옥신각신하는 스토리 전환이 불필요한 번거로움을 주고 긴박감이 풀어지고 늘어진다. 그걸 사마천 [사기]의 '자객열전'에 실린 진시황과 자객이야기로 연결 지었다면, 훨씬 실감나고 긴박한 무협영화를 만들 수 있었겠다는 아쉬움이 들었다.

*****

장예모 감독작품에서 이런저런 서운한 점도 이야기했고, 이 영화에서 잡혀드는 트집도 꼬집었다. 그러나 [영웅]은 정소동 감독의 [천녀유혼] [소오강호] [동방불패]이후로 참말로 오랜만에 무협영화가 주는 재미를 맛보게 했고, 무협영화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는 가능성을 가득 담고 있음에 분명하다. [반지제왕]이나 [스타워즈] 같은 서양적 환상에 맛이 물린 사람들은 [영웅]을 보라! 새로운 면모를 여는 무술의 재미를 한껏 음미하라! 그러나 그 재미로만 보기에는 아까운 영화이다. 그 장대한 스케일과 수려한 풍광과 함께, 색채 마술사 장예모의 영상미를 진하게 즐기시라!


독자 의견 목록
1 . 영웅을 보았지요 도토리 2007-01-30 /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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