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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보그 ] 박찬욱은 천재니까 괜찮아?
김영주 2006/12/21 11:18    

[사이보그]는 너무 허전해서 도무지 잡히는 게 없다. 자기가 사이보그라고 착각하고 있는 여자애(임수경)과 토끼 마스크를 쓰고 남의 일에 두서없이 나서서 도와주는 남자애(비-정지훈)가, 어느 정신병원의 같은 병동에서 별 의미 없는 만남이 이어지면서 얼렁뚱땅 이루어지는 사랑이야기이다. 자기의 가장 소중한 걸 잃고서 세상을 향하여 깊어진 증오를 감당하지 못하고 도피처로 찾아든 정신병. 그걸 예쁘고 천진난만하게 그려 보고 싶은 것 같은데, 섬뜩하게 가녀린 신음소리가 깔려 있어 예쁘게도 천진난만하게도 보아주기 어렵다. 일부러 그리 했는진 모르겠지만, 스토리가 정신병처럼 산만하게 흩어져서 낯설고 아리송하게 펼쳐지니, 그런 게 순결한 사랑인지 얘들 짝짜꿍인지 어리벙벙하다. “긍께 머가 어쩐다고~?”하는 맹물 같은 허전함만 남는다.

돋보이는 게 딱 두 군데가 있긴 하다. 여자 주인공의 ‘사이보그 증세’로 벌어지는 특이한 에피소드와 그걸 그려내는 갖가지 특수효과. 그리고 맨 처음 출연배우 음악 음향 미술 조명 편집 기획 제작 ··· 감독이 누구누구라며 보여주는 타이틀 장면.( 기발하고 참신했다. 지금까지 만난 것 중에서 가장 좋았다. “역시 박찬욱은 뭔가가 달라!”하고 감동했더란다. 그런데 감동은 이걸로 끝이다. ) 그러나 겨우 이런 걸로 이 어리둥절하고 맹물처럼 허전한 영화에 돈 깨고 시간 죽이라고 남들에게 권유할 순 없다. 그럼에도 이렇게 이야기꺼리로 삼는 것은, 박찬욱 감독에게 아직도 ‘기대와 갈증’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지금 이 세상은 ‘창의성’이라는 이름으로 ‘괴팍한 천재’를 높이 찬양한다. 정신병자가 아니면서 이런 부류로 보이는 사람으론, 도올 김용욕 · 비디오 아트 백남준 · 여성화가 이불 · 김기덕 감독 · [달콤 쌀벌한 연인]의 손재곤 감독 · [지구를 지켜라]의 장준환 감독이 그렇다. 도올 김용옥은 노는 물이 달라서 비교하기 어렵고, 백남준과 이불은 박찬욱에 많이 못미처 보이고, 손재곤과 장준환은 더 지켜보아야 한다. 김기덕은 자기가 이런 류의 천재라는 걸 은근히 즐기고 자부하는 것 같은데, 박찬욱에 비하면 내공도 많이 딸리고 재주도 한참 아래다. 박찬욱은 ‘괴팍한 천재’에서 어느 누구도 버금할 수 없을 정도로 가히 세계적이요 세기적이다. 그러면서도 겉모습이 전혀 괴팍하지 않으면서 천연덕스럽게 정상적이고 당당하다. 무섭고 놀랍다. 우리나라 관객쯤이야 장난감처럼 맘대로 가지고 놀 수 있다. 그럼에도 왜 이번엔 이런 맹랑한 작품을 만들었을까? 이젠 명예도 권력도 주머니도 빵빵해 졌으니, 그 동안 복수 3부작으로 피곤해진 심신을 달랠 겸 잠깐 개구쟁이처럼 장난쳐 본 걸까? [친절한 금자씨]에서 자긍심이 지나쳐서 건방지게 날 넘어가는 느낌이 들었는데, 그 무서운 내공과 재주가 너무 넘쳐서 잘못 흘러가는 건 아닐까? 자못 궁금하지만 별 수 있나! 또 다음 작품을 기다려야지 ... .

그에 대한 이런 기대와 갈증이야 내 개인사정이고, 일반 관객에게 이런 영환 참으로 황당하다. 더구나 [올드 보이]에 감탄했던 관객들에겐 더욱 그러했겠다. 그의 복수 3부작은 현대예술에서 정신병적으로 기괴하고 섬뜩한 미감 쪽을 극단적으로 몰고 간 ‘현대예술’의 세계 최첨단 작품이다. 악마적인 그로테스크이다. 동반자살하려는 듯한 그 극렬한 충격을, 어떤 사람은 감당하지 못하고 진저리를 치며 어떤 사람은 파르르 떨면서 감동 먹는다. 우리가 ‘과학과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가꾸어 온 서양문명의 짙은 어둠에 가려진 악마를 들추어 낸 것이다. 이게 기계문명으로 이룩한 대도시의 화려한 풍요로움에 대한 ‘신랄한 경고’인지 ‘악마적인 유희’인지 가늠키 어렵다.


우리가 ‘광주 비엔날레의 미술’로 만나는 현대예술 뒤에 숨겨진 이중성이다. 이 기괴하고 복잡하게 어지러운 이중주를 얼마쯤이라도 이해하려면, 극단적인 경쟁사회에 대한 사회구조적 문제의식 · 니체에서 데리다에 이르는 현대사상의 저항과 방황 · 피가소에서 백남준 그리고 [올드 보이]에 이르는 포스트모던한 이중적 극단성이라는 세 개의 산봉우리를 넘어야 한다. 우리나라에 이 드높은 산봉우리들을 넘어선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이런 걸 우리에게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강요하고 협박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들의 음울한 고통과 이중적 극단성에서 비롯된 정신병적인 난해함에 당황하지 않고, ‘천재’라는 이름으로 찬양하고 ‘예술’이라는 이름 아래 고개 끄덕이며 이해하는 체 해야 한다. 천재와 예술 앞에서 오도가도 못하고 참 죽을 맛이다.

이 난처함에 대처하는 방법은 두 가지뿐이다. 현대사상과 현대예술 옆에 아예 얼씬거리지 말라. 혹시 어쩔 수 없이 얼씬거리게 되더라도 아예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말라. 광주시민은 아예 그 옆에 얼씬거리지 않는 쪽을 택한 것 같다.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자길 포장하고 싶거나 억지로 동원된 사람들이야 어쩔 수 없겠지만.

독자 의견 목록
1 . 천재와 예술 도토리 2006-12-27 / 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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