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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주의 영화로 보는 세상


[열혈남아]의 사무친 그리움, 엄마-!
김영주 2006/11/24 11:32    



[친구] 이후로는 건달을 건달답게 그려낸 영화를 만나지 못했다. [조폭마누라]나 [가문의 영광]씨리즈야 건달영화라기보다는 <웃찾사>의 ‘형님뉴스’ 같은 코메디이고, [달콤한 인생] [비열한 거리]는 괜찮지만 부족한 점이 많다. [열혈남아]? “건달이 건달다와야 건달이지~! 비디오나 보지 뭐~” 뒤로 미루었다. 우연히 지나친 인터넷에선 이야기 흐름이 ‘이창동 감독’의 분위기라고 했다. 시나리오도 깐깐하단다. 건달영환데? 구미가 땡겼다.

호텔의 높고 널찍한 연회장에서 벌어진 건달선배네 엄니의 어벌쩍한 환갑잔치. 샛붉은 비로도에 누~런 봉황새가 큼직하게 수놓인 치졸한 병풍을 마주보다가 아~살짝 돌아서는 민제. 제 깜냥엔 맘 먹고 뽑아보는 ‘You mean everything to me’. 어중간한 밥송발음에 싸가지 없이 까진 음색을 비벼 넣어서, 그나마 즈그들끼린 정겨운 몸짓과 안하무인으로 비웃는 거드름을 피우며 불러재끼는 노래가락에,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치르고도 살아남은 비릿하게 잔혹한 표정이 사시미 칼빛처럼 서늘하게 시리다. 난 그의 이 절창(?) 한 방에 영화 속으로 쏘옥 빨려들었다. 대-단하다, 설경구!!! [박하사탕]에서 그의 연기에 전율했다. 그리곤 그는 스타덤에 올라 그의 연기력을 온 세상에 떨쳤다. 그러나 굳이 따지고 들자면, 그건 [박하사탕]과 [오아시스]에 비하면 고만고만하게 잘 하는 정도였다. 그런데 이번 이 영화에서 그 신끼어린 경지를 다시 맛보았다.

배우의 연기력도 감독의 역량으로 오르고 내린다. 설경구가 이번에 이런 절경을 보여준 것은 저 혼자 만든 게 아니다. 감독이 자알 이끌어냈다. 나문희도 엄마 역할을 잘했고, 동네꼬마들도 면장님도 잘했다. 꼬막다방 박 양의 인생을 자포자기한 몸짓이 [라디오 스타]의 청록다방 김 양 못지 않게 아리도록 애잖다. 화면 구도나 영상 색감도 소탈하면서 단정하다. 시나리오도 단단하다. 이정범 감독. 그의 첫 작품이라는 게 더욱 놀랍다. 앙팡 떼러블이라더니, [내 생애···일주일]의 민규동 감독 · [달콤 쌀벌한 연인]의 손재곤 감독. 무서운 풋내기들이다.


안타까운 점도 있다. 대사가 리얼하고 간결했지만, 욕설에 좀 어설픈 대목이 있었고, 전라도 사투리가 많이 어색했다.( 그래도 다른 영화나 드라마에 비하면 훨씬 낫다. ) ‘You mean everything to me’는 팝송치고는 좀 유치소박하지만, 건달이 가지고 놀기엔 입술과 귀볼이 간지럽다. ‘59년 왕십리’쯤이 좀더 낫지 않을까? 심수봉의 ‘백만송이 장미’는 어머니세대가 소화하기엔 곡의 흐름이 귀설고 어렵다.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나 조미미의 ‘가슴 아프게’쯤이 좀더 낫지 않을까? 설경구의 비릿한 잔혹함을 돋보이게 하려고 그랬는진 모르겠으나, 시다바리 조한선을 너무 착하게 그려낸 게 오히려 극의 리얼러티를 떨어뜨린다. 그래서 [친구]보단 못해 보인다.

난 어려서 변두리의 빈민촌에서 살았기에, 친구들이 건달로 흘러들어가는 모습을 누구보다도 생생하게 알고 있다. 그들도 어린 시절엔 그토록 나쁜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정겹고 속 깊은 맛을 내는 친구도 있다. 그러나 그들이 건달조직에 발을 담는 순간, 그 조직의 생리 때문에 그 개인들의 인간성과는 상관없이, 세상의 음습한 그늘에 도사리고 단물을 빨아먹는 기생충으로 타락해 간다. 그럼에도 건달영화 대부분이 [모래시계]처럼 비정한 서늘함을 ‘남성스런 비장미’로 그려내거나, [가문의 영광]처럼 코메디로 덧씌워서 ‘소박한 정겨움’으로 그려내는 것은 잘못이다. 어쨌든 건달은 사시미 칼끝에 돋아나는 소름처럼 살 떨리게 독살스런 사람들이다. 이런 건달의 냉혈한 삶을 미화하지 않고 그 겉과 속을 섬세하면서도 리얼하게 찬찬히 그려냈다는 점에서 [친구]보다 더 낫다.

찬찬히 그려가는 이야기 흐름이 흔한 건달영화에 젖은 관객들에겐, 오히려 지루하게 느낄 수도 있겠지만, 이 영화에선 이렇게 느린 듯이 찬찬히 그려내는 그 자체가 바로 이 영화의 참 맛이다. 이 영화의 소재는 비록 잔혹한 건달들이지만, 주제는 그동안 잃어버린 고향땅의 ‘어머니의 품안’을 향한 사무친 그리움이다. 마지막 장면이 이렇다. 국밥집 의자에 축 늘어져 앉은 재문이의 창백한 얼굴에 검은 안개가 깔려든다. “엄마-, 미안해~!” * “뭐-가~!” * “그냥~!” * “썩을 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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