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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주의 영화로 보는 세상


[인사이드 맨] 5.18영화도 이쯤은 되어주어야 ...
김영주 2006/04/28 17:19    

    난 ‘영화중독증’에 걸려 있다. 한 달에 서너 편쯤을 영화관에서 보지 않으면 생활리듬에 정서불안을 느낀다. 보고픈 영화야 열 편쯤은 되지만, 이래저래 그럴 형편이 아니어서 줄이고 줄여서 너댓 편쯤을 고른다. 새 영화들에게 떠들어 대는 매스컴의 호들갑이나 네티즌의 감상평을 별로 미더워하지 않기 때문에, 이들의 요란스러움을 건성건성 헐렁헐렁 훑어보면서 볼 영화를 찍는다. 가장 중요한 가늠자는 단연 감독이다. 출연배우도 함께 눈여겨 살펴본다. 진짜 좋은 배우는 좋은 작품을 골라서 출연하기 때문이다.( 배우가 이걸 소홀히 하거나 서툴게 하면 길게 못 간다. ) 그러나 좋은 감독도 좋은 배우도 실수한다. 고르고 골라낸 영화도 맘에 흡족한 작품일 확률은 80%쯤이다. 이런 내 까다로움에 딱 들어맞는 작품도 그리 많지 않다. 아쉬운 대로 그 차선이나 차차선을 골라낸다. 그러다가 미처 알아보지 못한 감독이나 배우도 찾아내고 새롭게 빨려드는 감독이나 배우도 만난다.

    이번엔 내 까다로움에 딱 걸려든 영화가 있었다. [인사이드 맨], 감독 스파이크 리, 출연배우 덴젤 워싱턴 · 조디 포스터. 덴젤 워싱턴, [말콤X] [펠리칸 브리프]에서 [맨 온 파이어]까지, 그는 모건 프리먼과 함께 지성적이고 진중하게 건실한 흑인의 이미지를 대표한다. 람보나 코만도 같은 무지막지한 파워는 아니지만 강직하고 듬직한 파워로 그 어떤 역경도 헤쳐 나오는 숨겨진 영웅이다. 그의 등 뒤에만 서 있으면 언제나 든든하다. 얼굴에 상처쯤은 나겠지만. 조디 포스터, [피고인]에서 [플라이트 플랜]까지, 그녀는 이지적이고 다부지고 거침없이 당당하다. 그녀가 선 자리에는 펄럭이는 옷자락마저도 긴장한다. 그녀의 푸른 눈빛은 우릴 그윽하게 빨아들이는 게 아니라 서릿발처럼 내쏘아서 꿰뚫는다. 뜨거운 가슴을 단단히 여미고 매몰차고 확실하게 끝내버린다. 클라이브 오웬? 얼굴이 아른거려서 찾아보았더니, [킹 아더]에서 만났던 배우이다. 어중간하게 김빠진 영화라 그가 확실하게 다가오지 못한 모양이다. 이 영화에선 거의 대부분 검은 안경에 마스크로 얼굴을 온통 가리고 나오니까 그의 이미지와 연기력을 확실하게 잡아내기 어렵지만 강렬하면서도 우울한 우수가 깃들어 있다. 좋은 감독을 만나 그 이중성을 잘 살려내면 좋은 배우가 되겠다.

    스파이크 리는 올리버 스톤과 앨런 파커와 함께 미국에서 진보적인 감독이면서도 대중적이다. 영화를 만드는 솜씨도 높고,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도 강렬하다. 정치적으로 진보적인 색채를, 올리버 스톤과 앨런 파커는 에둘러 보여주거나 은근하게 숨겼으나, 스파이크 리는 노골적으로 으르렁 송곳니를 드러냈다. 그런데 이번에는 많이 숨기고 많이 에둘렀다.( 그걸 사람들은 그가 상업적으로 변했다고 말한다. 난 아직 그렇게 말하고 싶지 않다. ) 그래도 그 발톱은 여전하다. 말콤X가 말했던 “Black is Beutiful!"이 여실하다. 금발백인을 조롱하다가 시리도록 할퀴어댄다. 나쁜 부자와 그 주변을 맴도는 상류층 그리고 그 똘마니들. 우리야 영화가 재미있으니 그 재미에 빠져 그거야 그러려니 하겠지만, 미국 금발백인들은 그런 영화가 있다는 자체가 울화통이 치밀 것이다. 그래도 말콤X의 생애에 기대어 미국의 금발백인을 사정없이 물어뜯고 흑인의 극렬한 자주선언을 외친 [말콤X], 그리고 미국 영화에서 가장 큰 금기사항이라고 할 수 있는 백인여자와 흑인남자의 섹스장면을 생생하게 보여주면서 흑백갈등의 가장 예민한 문제를 정면으로 그려내는 [정글 피버]에 비하면, 이 영화는 참말로 많이 순해졌고 많이 봐 준 것이다.


    영화관 앞에 널린 홍보물은 손님을 유혹하려는 뻥으로 넘친다. 이 영화의 홍보물은 뻥이 아니다.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트릭, 완벽한 시나리오! 헐리웃 최고 연기파배우들의 완벽한 캐스팅! 세계가 인정하는 거장이 된 헐리웃의 블랙파워 스파이크 리” 무엇보다 시나리오가 탄탄하다. “스파이크 리 감독이 감탄해마지 않았던 정교한 시나리오는 영화를 더욱 박진감 있게 만들어냈다.”( 이 영화는 홍보물 내용을 읽지 말고 보시라! 다른 영화도 대체로 그렇지만, 이 영화는 특히 그렇다. ) 음악도 참 좋았다. 맨 처음과 끝을 인도음악으로 장식한 게 독특했다. 스파이크 리 감독은 단단하고 단정하게 잘 만들어 말끔하게 마무리했다.

*****

    강준만은 [전라도 죽이기]라는 책에서 말했다. “전라도차별은 ‘한국판 인종차별’이다” 우리 사회의 어둠들을 이렇게 정곡으로 여지없이 찔러대니까,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아주 불편하다. 난 말한다. “5.18은 전라도차별 위에 핏빛으로 피어난 ‘악의 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이 전라도차별에 가담했기에, 이 말은 많은 사람들을 아주 불편하게 할 것이다. 그 캥긴 맘을 무의식 밑에 깊이 묻어두었지만, 이게 건들려 고개를 삐죽 내밀고 나올 땐 온 몸을 파르르 떨며 거꾸로 핏대를 올린다. 게다가 오월광주를 뒤틀리게 하는 심리는 광주사람들 안에도 숨겨져 있다.( [블러드 썬데이]를 이야기하면서 이미 말했다. ) 광주의 안과 밖에서 세상인심이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그것이 3.1절이나 4.19의거하고는 전혀 다르다. 그래서 광주의 밖은 물론이고 안에서까지, 5.18을 애도하기는커녕 그걸 떠올리는 것 자체를 피하고 싶어하는 심리가 수많은 사람들에게 숨겨져 있다. 안타깝지만 현실이다.

    이런 5.18을 소재로 영화가 만들어진단다. 가제 [화려한 휴가]. 100억원이나 거금을 들여 만들 블록버스터라고 했다. TV드라마[모래시계]는 오월광주를 우롱했고, 장선우의 [꽃잎]은 그 폭력의 껍질을 그리는 데 그쳤다. 매스컴의 르뽀나 다큐도 상투적인 자료모음의 나열에 지나지 않는다. 돈이 얼마 들고 영화스타일이 무엇인가는 문제가 아니다. 5.18영화도 [말콤X] [플래툰] [펠리칸 브리프]쯤 되게 만들 수는 없을까? 영화에서 감독은 두뇌이고 심장이다. 그런데 [목포는 항구다]를 만든 김지훈 감독이 [화려한 휴가]를 맡았단다. [목포...]는 싸구려 코믹영화이다. 더구나 주인공 차인표의 전라도 사투리가 너무나 어처구니없이 서툴고 어색해서 기본 성의마저 없어 보였다. 1년 2년 사이에 그 감독의 수준이 높이 상승하였을까? 과연 그가 오월광주와 같은 진보적인 소재를 올리버 스톤이나 앨런 파커나 스파이크 리처럼 잘 그려낼 수 있을까? 욕심으로야 오월광주를 예술적으로 잘 승화시켜주면 오죽이나 감사할까마는, 그렇진 못하더라도 제발이지 오도하거나 우롱하지나 않았으면 좋겠다.

***** ***** *****

* 다음 글은 앞의 [인사이드 맨]이야기 뒤끝에, 5.18영화에 대한 바라는 바를 썼기에, 그해 오월광주와 아주 비슷해보이는 '북아일랜드의 그날'에 관한 영화이야기를 여기에 덧붙였습니다. 2004년 8월에 [블러디 썬데이]라는 영화를 보고 썼던 슬픈 이야기입니다.
[블러디 썬데이] 그리고 그 해 오월광주

04/08/27 김 영주

오월광주가 전두환 정권의 두터운 장막에 무겁게 가려져 있던 시절, 그리스 독재정권의 비극을 담은 [Z] ` 엘살바도르 사태를 비판하는 종군기자에게 비친 [살바도르] ` 엘살바도르 군부정권의 폭압에 희생된 신부 [로메로]를 보면서, 오월광주에 살아남은 죄인의 자책감과 군사정권의 폭압을 그저 바라만 보는 초라한 비겁함으로 깊은 자학의 구렁에 빠져 헤매었다. 어차피 투사가 되지도 못하고 이 개똥밭에서 뒹굴며 살아갈 바에야, 더 이상 그런 자학의 구렁에서 헤매고 싶지 않았다. “앞으론 이런 영화 절대 보지 않을 꺼야!”

[블러디 선데이]는 우리의 그 해 오월광주와 비슷한 북아일랜드의 비극을 다룬 영화라고 했다. 보지 않으려 했다. 오월광주의 꾸지람이 계속 들려왔다. “오월광주를 몸소 경험한 네가, 별 오만가지 영화는 다 보면서 정작 이런 영화를 보지 않으려 하다니! 네 이 놈, 그 세월 사이에 차 오른 기름진 뱃살이 네 놈의 머리통까지 덮었구나!” 무거운 가슴을 안고 발을 끌어 이 영화를 만났다.

그런데 막상 만나 보니, 마음이 무겁고 힘들기는 하지만, 예전처럼 그렇게까지 깊은 자학의 구렁에 빠지지 않았다. 왜 그럴까? 생활의 달콤한 안락함을 향한 도피에 깊히 젖어든 걸까? 오월광주에 담긴 비장한 슬픔에서 벗어나고픈 자기 합리화가 자리를 잡은 걸까? 오월광주를 이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에 이런저런 실망이 겹쳐 그들에게 가졌던 ‘양심의 가책’이 닳고 닳아져버린 걸까? 세상사에 이리저리 시달리다 ‘도사연’하는 초탈로 오월광주가 ‘진흙탕 인간사’의 한 장면으로 무심해질 수 있게 된 걸까? 누구나 그러하고 무엇이나 그러하듯이, “세월이 약”이라는 망각의 강을 흘러 희미해져 가는 걸까?

이런 저런 상념을 버리고, 영화 자체만 보면, 그 해 오월광주과 쌍둥이처럼 비슷하면서도, 그 양적이고 질적인 정도에 차원이 다르다. 그 나라에 묵히고 묵힌 비극의 지층을 제대로 절감하지는 못하겠지만, 이 영화에 보여지는 것으론 우리의 그 해 오월이 훨씬 처절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런 정도의 접근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 [모래 시계]는 오월광주를 우롱했고, [꽃잎]은 그 폭력의 껍질을 그리는 데 그쳤다. 매스컴의 르뽀 다큐도 상투적인 자료모음의 나열을 넘지 못한다. 지금 우리 광주의 오월정신계승은 스스로 둘러친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하거나 샛길로 빠져 세상사의 잘못된 수렁에 휘말려 있어 보인다.

광주극장에서 오월광주를 쌍둥이처럼 닮은 영화가 상영되고 있는데, 극장에 찾아오는 손님이 하루 3번 상영에 모두 합쳐 10명쯤 밖에 되지 않는단다. 그것도 그 동안의 단골손님이 거의 대부분이란다. 광주극장에서 앞장서서 설치는 게 조심스러워, 먼저 오월광주에 관련된 단체나 사람 20여 군데에 초청장을 보냈는데, 그들에게서 아무런 연락도 없다고 한다. 광주지역의 언론 그 어디에서도, 이 영화를 맘 먹고 홍보해 주는 곳이 없단다. 그 많은 단체 그 많은 매체들는 어디에서 무얼하는 걸까? 그 조금의 관심도 그 잠깐의 틈도 없이, 무얼로 그리 바쁘신가!

상당히 많은 사람이 위에서 말한 나의 심정처럼, 그 해 오월광주를 외면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설사 그렇다고 해도 그걸 소홀히 해서는 안 되는 사람들과 단체들이 있다. 오월광주가 '전국화'되지 못하고 광주에서마저 변질되어가는 모습에, 지역적으로 계층적으로 그리고 운동권 내부에까지, 우리 사회가 구조적으로 조장하는 위선과 허세가 깊이 스며들어 있다. 언젠가는 그 사회심리적 분석을 냉철하고 리얼하게 이야기해야 할 것이다. 폼 잡고 자기 울타리를 살피면서 말하면 그 껍데기 밖에 없다.

다른 영화라면 몰라도, 광주가 이 영화를 이렇게 무심하게 흘려 보내선 안 된다. 그냥 흘려 보낸다면, ‘문화도시’로서 부끄럽기에 앞서서, 오월광주로서 낯뜨거운 일이다. 썰렁한 광주극장이 항상 안타까웠지만, 이번 썰렁함은 안타깝다기보다는 참담했다. 오월광주를 외치며 ‘문화도시’로 자리를 차지하며 떠들썩하게 판을 잡던 그 수많은 사람들과 단체들은 도대체 어디서 무얼 외치고 무슨 판을 벌이는가! 지금 우리 꼴이 '벌거숭이 임금님'이라는 우화처럼 너무나 속보이는 우스개 짓을 하고 있지 않은가?

지금 광주는 왜 이 정도 밖에 되지 않는 걸까? 말하지 않겠다. 사람마다 놓인 처지가 다르고, 일하는 스타일이 다르니, 오월광주를 펼쳐내는 의견과 방법도 다르고 다르겠다. 그게 아무리 다르고 다르더라도, 이런 참담한 모습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지금 광주가 빠진 수렁에서 벗어나려면 ‘또 다른 큰 홍역’을 치러야하겠구나 하는 심난스런 생각에 무더운 여름밤이 더욱 무더웠다. 그 또 다른 큰 홍역을 치른 다음은 좋아질까? 그걸 어찌 알겠나! 우리 인간사 진흙탕이 모두 다 그렇고 그런 건데 ... . 우연히 들려오는 [프리다]에서 챠벨라 바르가스의 ‘라 요로나’라는 멕시코 노래가 우울한 밤을 더욱 깊게 짖누른다. 하고 많은 노래에서 이 노래가 들려오는 우연이 스산하게 처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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