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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주의 영화로 보는 세상


[원초적 본능2] 추락하는 샤론 스톤
김영주 2006/04/14 11:55    

    원래는 [시리아나]로 미국의 석유재벌과 중동의 부유한 왕실 그리고 미국의 CIA에 의한 세계관리를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런데 [볼링 포 콜럼바인]이나 [화씨 9/11]같은 다큐멘터리도 아니고 [트래픽]이나 [뮌헨]처럼 어떤 사건을 각색한 극영화도 아니었다. 어떤 사건의 실체를 잡아 제대로 파고들지도 못했고, 드라마틱한 스토리나 장면으로 어떤 이슈를 잡아내지도 못했다. 죽도 밥도 아니었다.
    꼭 보려고 하지는 않았으나 우연히 보게 된 [달콤 살벌한 연인]. 아주 독특했다. 황당하기만한 스토리에 기발한 상상력을 뒤섞어서, 어디로 튈지 모르는 대사들로 끊임없이 자극하고 웃겨준다. 어처구니없이 뒤통수치며 예측불허하는 엽기코메디이다. 얼핏 유치해 보이기도 하지만 유치하다고 하기엔 고비고비 넘어가는 대목이 범상치 않다. 기존의 잣대로 감당할 수가 없다. 이걸 세상살이에 엮어 이야기해 보려니, 무엇에다 어디에다 기대어 말할 수가 없어서 이 영화이야기를 포기했다. 우리나라의 영화적 상상력이 이렇게까지 기발할 수 있구나! 영화 곳곳에 천재적인 번뜩임이 넘친다. 놀랍다. 손재곤 감독.

*****

    [원초적 본능] 팜므 파탈, 치명적인 요부. 60년대 유명한 조연 여배우 ‘도금봉’의 앙칼지고 독살스런 모습을 만나노라면 “저런 오살 맞을 년!”이라고 분노하기만 하였지, 거기에 암사마귀와 섹스하면서 자기 몸을 씹혀 먹히는 숫사마귀에게 엄습해드는 ‘원초적 마조히즘’이 숨어있는 줄을 전혀 몰랐다. 여자는 보송보송한 솜털처럼 따뜻하고 부드러우며 야들야들한 젤리처럼 촉촉하고 달콤한 줄만 알았다. 그래서 스무 살 시절이 파릇해 때까지, 여자는 나에게 수줍은 짝사랑으로 호기심에 가득 찬 미지의 환상이었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겉으론 솜털 같고 젤리 같았지만 속으론 매섭고 앙칼졌다. 물론 그 겉과 속의 섞임이 여자들마다 다르다. 그러나 그 가슴에 품은 은장도가 서슬 퍼렇게 날을 세우고 번뜩이노라면 서릿발 치듯이 소스라친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친다”더니, 유리창이 쨍그랑 산산이 부서지며 가슴에 파고들어 찢어발기는 듯하다. 영화나 소설에서 팜므 파탈의 모습을 만나노라면, 어쩌다가 드물게 보는 어떤 나쁜 여자가 따로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많든 적든 모든 여자의 마음새에 숨겨져 있다는 걸 조금씩 알게 되었고, 그게 강렬한 섹시함을 드러내는 원초적 본능과 또 다른 한 몸이라는 걸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섹스에 사디즘과 마조히즘의 심리가 꿈틀거리기에 그 지나침은 파탄과 파괴를 부른다. 기득권층과 상류층은 그게 기존 질서를 온통 뒤흔들 정도까지 작동하지 못하도록 가두고 묶어두어야 했다. 여자들의 팜므 파탈과 남자들의 떠돌이 성욕을 막아야 했다. 국가와 종교에는 기득권자와 상류층의 중심을 이루는 남자들의 권력욕이 또아리를 틀고 있다. 국가와 종교는 섹스를 짓눌렀다. 한 쪽으론 여자에게 뒤집어 씌워 ‘마녀사냥’하는 이데올로기로 세뇌하였고, 다른 한 쪽으론 쌍스러운 저질들의 싸가지 없는 짓거리로 매도하였다. 그래서 우리는 그 너무나 원초적이고 자연스러운 본능을 죄악으로 여기게 되었고 금기의 울타리를 쳐 가두었다. 마침내 우리는 섹스를 억압하는 것이 품격 있는 교양이 되었고, “우리 엄마 아빠가 그 짓을 해서 나를 낳았다”는 사실에 한 시절이나마 자기 몸을 추하고 역겨워하다가 끝내는 곤혹스러워하고 쉬쉬한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딜렘마를 아무도 내놓고 말하지 못하게 하는 문화이데올로기의 굴레로 우릴 억압하고 있다. 이러한 이념적 감옥과 종교적 굴레의 문화이데올로기에 박치기하며 나선 사람들이 니체에서 푸코에 이르는 현대사상과 피카소에서 백남준에 이르는 현대예술 그리고 비틀즈에서 올드보이에 이르는 대중문화, 이른바 포스트모더니즘이다. 그들은 가부장제와 일부일처제를 비난하며 ‘성의 해방’을 외치며 마침내 프리섹스를 말하였다.
    욕망 자체가 나쁜 게 아니라 그것이 지나쳤을 때 나쁜 것이다. 섹스 자체가 나쁜 게 아니라 섹스를 노리개 삼아 지나친 섹스놀이에 빠지는 것이 나쁜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 엄마 아빠가 섹스해서 나를 낳았다”는 사실이 나쁜 게 결코 아니라, 섹스를 노리개 삼아 함부로 가지고 노는 남녀들이 나쁜 것이다. 무엇이나 지나친 것이 문제이다. 극우와 극좌가 지겨운 것은 그 이념적 추구가 극단적이어서 사람을 메마른 이념의 감옥에 가두기 때문이요, 국가와 종교가 숨 막히는 것은 질서와 안정이라는 이름아래 옭아매어 우리의 자연스런 원초적 욕망을 지나치게 억누르기 때문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이 지나침에 극렬하게 저항했다. 지나친 억압에 극렬한 저항은 당연한 것이기도 하지만, 이 극렬한 저항도 또한 너무 지나치다. 그래서 서양은 근대 이전에도 지나쳤고, 근대에도 지나쳤으며, 현대에도 지나치고 있다. 지나친 것은 언제나 문제이다. 서양은 옛날부터 지금까지 지나치게 극렬한 게 문제이다.

    [원초적 본능]에는 서양의 이 지나치게 극렬함이 강렬하게 부딪히고 있다. 남자는 국가권력의 집행자인 형사이거나 정신병자를 치료하는 의사이고, 여자는 매섭고 앙칼지게 숫컷을 물어뜯는 걸 즐기며 스스로 범죄에 깊이 빠져드는 팜므 파탈이다. 남자는 건실하고 꿋꿋하지만 음습하게 치솟는 떠돌이 성욕을 이기지 못하고 그 경계선을 아슬아슬 오고가며 방황한다. 우리는 오랫동안 가정에서 아버지의 가부장적 위엄아래에 꾸지람을 들었고, 학교에서 선생님에게 사회에 모범이 되는 삶을 세뇌 받았으며, 성인의 말씀에 뉘우치고 감복하며 그 거룩하심을 찬양하고 살아왔다. 그렇게 억눌린 갖은 욕망은 무의식으로 숨어들었다가 틈틈이 고개 들어 소용돌이치며 치솟아 오른다. 우리는 그 경계를 오고가며 고뇌하고 방황했다. 그 형사와 의사처럼 나도 그녀에게 휘몰려들었다. 샤론 스톤, 그녀의 치명적인 유혹에.

    [슬리버]에서도 그녀의 매혹은 그대로 이어졌다. 그 뒤론 그런 치명적인 유혹을 담은 역할이 보이지 않았다. [캣 우먼]에서 하얀 고양이 이미지로 그녀의 카리스마가 아직 살아있었지만, 그 탱탱하게 육감적이던 몸매와 매섭게 내쏘아보는 뜨거운 눈빛은 시들었고, 볼살이 패이고 광대뼈가 불거져 거칠게 퇴폐적으로 찌들어버린 늙은 여우의 교활함이 짙어졌다. 많이 실망했다. [원초적 본능2]에서 우리의 원초적 본능에 다시 불을 지피겠다며 잔뜩 꾸미고 야한 옷매무새로 우릴 유혹했지만, 찬란했던 그 시절에 슬픈 회한의 그림자에 버둥거리는 초라함으로 추락해 가고 있었다. 이 감독은 폴 버호벤 감독이 1편에서 보여준 파워풀한 연출력을 전혀 갖추지 못했다. 영화의 모든 게 따로 따로 놀았다. 그래서 샤론 스톤이 더욱 초라해 보인 것 같다. [예고편]에서 이미 예감했듯이 이 영화를 보지 않았어야 했다.

    요즘 부쩍 나이가 먹어간다는 걸 의식한다. 나의 젊음을 불살랐던 그녀의 치명적인 유혹을 되새기면서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평범하게 살아가는 우리들도 많은 회한들이 쌓여 가는데, 한 시대를 풍미하였던 그 스타들에게 세월에 묻힌 회한들은 참으로 힘들겠다. 좋게 나이 먹어 간다는 것, 참 어려운 일이다. 더구나 이렇게 갖은 욕망의 소용돌이를 부채질하는 세상에선 더욱 ... .

독자 의견 목록
1 . 그 치명적인 유혹이란.... 도토리 2006-04-17 / 20:25
2 . 항상 관심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영주 2006-04-19 /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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