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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 다큐 [예술과 인간] 그리고 문화와 사상
김영주 2005/12/08 18:23    

△ BBC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
교육방송 일요일 저녁 9시 ‘특선다큐멘터리’(재방송 토요일 저녁 7시 20분)에서, 지금 영국 BBC 방송국이 만든 [예술과 인간]을 방영하고 있다. 이 앞엔 [지질학의 기행]과 [흑인음악의 역사] 6부작을 방영하였다. BBC 다큐멘터리들은 하나 하나가 그지없이 훌륭하다. 깊은 사색성 ` 높은 예술성 ` 넓은 대중성을 모두 잘 갖추었다. 깊고 높은 게 넓은 품을 갖추기가 여간 어렵지 않은데, 그렇게도 깊고 높은 게 이리도 넓고 넓도록 품어줄 때면 가슴 벅차다. 그래서 영국 BBC와 일본 NHK의 다큐멘터리는 무조건 녹화한다.

작년에 [아름다운 바다]를 놓쳐서 얼마나 속상했는지 모른다. 요즘 좀 좋아졌지만, 우리 방송에선 다큐멘터리를 아직도 많이 푸대접한다. 방영시간이 아주 좋지 않은 건 말할 것도 없고, 예고는 전혀 없다시피 하고, 방영하다가 아무 말도 없이 도중하차해 버리거나 엉뚱한 시간대로 옮겨버리기 일쑤이다. 지방 방송국 프로그램의 땜빵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참 어처구니없고 분통이 터져서, 몇 번 항의해 보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다. 오늘날 우리의 문화예술 거의 대부분이 똥돼지들의 위선과 허영을 포장하는 악세사리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교육방송이 그나마 조금 낫다. 매년 9월에 열리는 교육방송의 ‘다큐멘터리 영화제’는 딱 어울리는 매우 훌륭한 기획이다. 우리가 자주 말하는 ‘광주정신’에 가장 어울리는 예술제는 ‘다큐멘터리 영화제’일 것이다. 다큐멘터리를 만들어내는 수준은 그 나라의 문화수준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시금석이다. 우리나라도 참 많이 좋아졌다. KBS [도자기] 5부작에 깜짝 놀랬다. 그러나 그걸 즐기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적고 약하다. 그래서 우린 아직 당당 멀었다.

그런데 넓은 대중성에서 문제가 생긴다. 깊은 사색성과 높은 예술성에 대중성이 넓어갈수록 평범해 보이고 때론 맹물맛으로 오해받는다. 제법 수준 높은 사람들마저 그 깊이와 높이를 잘 알아보지 못한다. 그래서 [와이키키 부라더즈] [플란더즈 개] [지구를 지켜라] [외출]에 숨겨진 깊이와 높이를 사람들이 제대로 가늠해내지 못한다. 내가 [박하사탕]보다도 [와이키키 ] [지구를 ]를 더 높이 여기는 이유도, 그 넓은 대중성 때문이다. 그런데 그 뒤에 깔린 깊은 사색성과 높은 예술성 때문에, 넓은 대중성이 오히려 힘을 쓰지 못하고 사람들이 외면해 버린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방영되는 BBC 다큐멘터리가 영락없이 그 꼴이다. 홈피 게시판을 들어가 보니, [흑인음악의 역사]는 그나마라도 반응을 보이는데, [지질학 기행]은 서너 글귀로 두어 마디뿐이고, 이번 [예술과 인간]은 끽소리도 없다. 참으로 안타깝고 안타까우나, 세상이 그 정도밖에 되질 않으니 어쩔 도리가 없다. 넘어가자.

[예술과 인간]이 몇 부작인지 알 수 없으나, 1.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2. 그림의 탄생 3. 권력의 도구까지 방영했다. 사람들 눈에는 [외출]만큼이나 맹물맛일 게다. 그래서 끽소리도 없는 모양이다. 그러나 그 껍데기를 조금만 벗겨 보면 그 맹물맛이 오히려 놀랍도록 깊다. 지금까지 예술에 관한 다큐나 글들을 보면 ‘찬양과 감동 일색’이다. 예술 작품들을 향한 그 찬양과 감동들이, 그 뒤에 “결국은 자기 자랑이나 자기 포장”에 목적을 두고 “자기도 속이고 남도 속여서 세상도 속이려는 자기 나르시즘의 쓰리 쿠션이 아닐까?”하는 삐딱한 심뽀를, 나는 오랫동안 지울 수 없었다. 이 다큐에는 그게 없다. 그리고 예술에 대한 인간의 개인적 사회적 심리작용을 덤덤하지만 실은 신랄하게 뿌리부터 뒤집어 놓는다. 이 다큐는 아놀드 하우저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라는 책과 함께, 나의 그런 삐딱한 심뽀에 문을 열어주었다. [ 사회사]는 일반사람이 다가가기 상당히 어렵다. 아놀드의 깊은 안목과 예리한 평론이 보석처럼 찬연히 빛나지만, 창작비평사의 번역이 별로 좋지 않아 다가가기가 더욱 어렵다. 예술에 관련된 책들의 그 지루한 현학과 허접한 과시에 너무 시달려서일까? 이 다큐가 이토록 아무런 거침도 없이 편안하게 이끌어 들려주는 그 범상한 이야기를 돌이켜 새겨 볼수록 놀랍다. 갈매기부리에서부터, 이집트의 카르낙 신전 ` 그리스의 청동과 대리석 동상들 ` 로마의 황제 옥타비아누스가 예술을 권력의 도구로 이용하는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결국 문화예술은 ‘사상이나 이념’을 뿌리로 하여 맺어낸 열매이다.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해석하느냐에서 출발한다. 미륵반가사유상 ` 박지원의 열하일기 ` 김홍도의 그림 ` 김민기의 노래 ` 최명희의 혼불 ` 박재동의 만화 ` 임순례의 영화 ` 열국지 ` 삼국지 ` 홍루몽 ` 미야자끼 하야오 애니메이션 ` 세익스피어의 희곡 ` 렘브란트 자화상 ` 헤밍웨이의 소설 ``` 그리고 BBC 다큐도, 모두 그 시대상에 깔린 문화이데올로기의 열매들이다. 동양의 유불선 그리고 서양 근대사와 우리의 근대화 그리고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라는 이념에 의한 그 시대상과 사회상을 읽어내는 눈높이를 올리지 않으면, 문화예술은 우리의 위선과 허영을 포장하는 ‘손재주나 장신구’로서 노리개에 지나지 않게 된다.

[그림형제]의 영화이야기에서, 그 ‘마녀사냥’에 숨겨진 문화이데올로기에 대한 강조가 지나쳤다. 그러나 그런 나의 지나침은 가을 달밤에 쓸쓸히 울어대는 귀뚜라미 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오히려 온 세상을 천둥처럼 떵떵거리며 울리는 지나침은, 서양 근대문명이 일방적인 ‘자기 중심적 진리’를 막무가내로 사회제도의 틀 안에 집어넣어 세뇌하는 ‘정신적 폭행’이다. 지금 지구촌의 다른 문화는 서양 근대문명이 짓누르는 일방적인 막무가내 횡포에 변두리로 밀려나 울먹이고 있다. 마침내는 지구도 헐떡이며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다. 그러니 나의 지나침이 눈에 거슬리더라도, 지금 우리는 서양 근대문명이 추구하는 사회체제유지를 위한 ‘문화적 마약’의 마법에 걸려들어 그 노리개로 놀아나고 있는 ‘눈뜬 장님’이라는 걸 알고는 있어야 한다. 그걸 알고나서 "우리가 지금 무얼 어떻게 할 것인가?"는 그 다음 문제이다.


독자 의견 목록
1 . 심미안 꿀떡 2005-12-12 /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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