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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주의 영화로 보는 세상


@ [친절한 금자씨]의 섬뜩하면서도 통쾌한 복수, 그러나
김영주 2005/08/05 08:44    


나는 엽기적인 공포영화나 처참하게 슬픈 영화는 안 보려고 한다. 몸과 맘이 너무 버겁기 때문이다. 그런데 김기덕 작품은 우연히 이래저래 보게 되고, 박찬욱 작품은 그 작업솜씨를 놓칠 수 없어서 보게 된다. 박찬욱감독의 영화 만드는 능력은 그 어느 면으로 보나 놀랍도록 대단하다.

항상 2% 부족하면서도 단단한 힘이 느껴지는 스토리텔링과 그걸 뒷받침하는 시나리오. 귀에 익숙하고 하지 않고에 상관없이, 낯설게 들리는 음색과 곡조의 흐름이 낯선 복수극의 낯선 화면 연출에 어울려 이상야릇하게 섬뜩해지는 으스스함. 출연배우들에게 최상의 연기를 끌어낸 듯한 정성스런 연기연출. 은근하면서도 탄탄하게 바쳐주는 의상과 배경 그리고 소품. 이런 음악 조명 미술 의상 소품 그리고 배우의 연기를 장면 하나 하나에 응축해서 뽑아내는 화면 연출감각과 연결 솜씨가 무엇보다도 빼어나다. 그보다 더욱 대단한 건, 그가 이렇게 뛰어난 감각적 솜씨를 껍데기 재주자랑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의 영화가 보여주는 겉모습을 리얼리즘 양식이라고 하기엔 뭔가 낯설고 환상적이고 극단적이며 극렬하다. 그러나 그가 진짜 말하고 싶어 하는 알맹이는 ‘우리 사회의 어두운 그늘을 향한 연민과 분노’이다.( [올드 보이]를 이렇게 말하기는 좀 딱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복수는 나의 것]과 [친절한 금자씨]는 분명코 그렇다. ) 대중적인 재미만을 노리고 만든 영화가 결코 아니다. ‘환타스틱 리얼리즘’이라는 게 이런 게 아닐까?

박찬욱 감독의 겉모습은 듬직하고 반듯하지만, 작품에선 기발하고 괴이하고 치열하여 기이한 천재 같다. 그 겉과 속을 함께 겹쳐서 다시 보면, 그는 여러 가지 각도에서 ‘진짜 무서운 사람’이다. 그런 무서움과 그의 작품에 비치는 극렬한 미감에서 오는 염려 때문에, 그의 놀라운 천재적 능력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을 [와이키키 부라더즈]와 [박하사탕]보다 높게 보지 않는다.( 그의 극렬한 미감에 대한 염려는 ‘[올드 보이]의 칸 그랑프리에 시비걸다’는 영화이야기에서 자세하게 말했다. )

*****

이 영화에서 금자씨는 천사와 악마의 이중성을 극단적으로 보여 주어야 한다. 이영애는 그저 인형처럼 예쁘고 착해 보인다. 그래서 천사의 얼굴엔 이영애가 상당히 제격이다. 문제는 그녀가 악마의 얼굴을 보여줄 수 있느냐 이다. 이영애가 연기를 잘한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악마의 얼굴을 무표정한 얼굴과 말씨 그리고 화면의 분위기로 그려냈다. 염려했던 것보단 괜찮았다. 그러나 흡족하지 못하다. 음색도 기본적으로 여리고, 욕설도 전혀 소화하지 못했다. 놀라운 변신을 하기엔 기본역량이 딸린다. 다른 배우라면 누가 더 적절할까? 담박에 이미숙이 떠오르지만, 나이가 너무 들었다. 김혜수? 이승연? 이영애를 염두에 두고 만든 영화란다. 박찬욱감독의 애정과잉이다. [공동경비구역]에서도 이영애와 그 역할이 영화 전체에 걸쳐 어색했다. 박찬욱답지 않다. 자기가 스스로 ‘진짜 무서운 사람’이라는 걸 느끼고, 그저 순하디 순해 보이는 이영애를 애정과잉해서라도 자신의 빈자리를 메우려는 본능적 자기 보호일까?

나는 바이올린의 시퍼렇게 차갑고 날선 음색을 싫어한다. 그런데 이 영화에선 유난히도 바이올린 곡이 많이 나온다. 이 날카롭고 매서운 복수이야기에는 바이올린 음색이 썩 잘 어울린다. 개인적으로 매우 싫어하지만 이 영화에는 잘 어울리는 게 음악만이 아니다. 의상 미술 무대의 색감과 디자인 그리고 소품까지 정신병적인 섬뜩함으로 가득차 있다. 이영애가 상상으로 똥개선생을 살인하는 장면은 이 영화의 ‘정신병적 미감’을 상징하는 압권이었다. 샤갈이나 달리의 미감을 흉내내었지만 그들보다도 더 나아보인다. 후광이 비치면서 새하얀 공주옷에 성모 마리아 비슷한 이미지로 귀신들린 듯이 섬뜩한 포스터는 깊은 상징적 미감이 느껴진다. 그런 점에서 ‘친절한 금자씨’라는 제목과 “너나 잘 하세요”라는 대사에서 풍겨오는 복합적 여운은 참으로 절묘하다.

천사와 악마의 극렬한 대비는 금자씨에게만 보이는 건 아니다. 유괴범과 학원강사, 거룩한 말씀 뒤에 숨은 비열하고 추한 종교, 가르침을 잃어버린 폐교와 악마를 징벌하는 교실, 아이를 잃은 부모를 뒤틀리게 하는 현실, 영화 내내 매섭게 추운 겨울과 순결하고 예쁘게 내리는 하얀 눈발, ... . 그리고는 아직도 “착하게 살아야 한다”고 굳건히 믿고 사는 ‘착한 관객들’과 “착하게 살지 말고, 미친개는 몽둥이로 두들겨 패야 한다”고 힘주어 강조하는 [친절한 금자씨]까지, 모두가 대단하게 극렬한 대비를 보여준다.

그러나 형사반장은 너무나 어울리지 않았고, 스토리 전개가 산만하게 흩어져서 영화에 몰입을 방해했고, 끝마무리가 축 늘어져 뒷부분에서 반전하는 강렬한 포인트를 잃어버리고 지지부진해져 버렸다. A급 스타가 까메오로 잠깐씩 출연하는 걸 깜짝 재미로 삼은 듯하지만 오히려 영화 흐름을 방해했다. 더구나 박찬욱감독이 영화판의 권력자가 되어 그들에게 횡포부리며 관객에게 뻐기는 걸로 보였다. 아주 싫었다. 박찬욱 정도의 사람이 왜 저런 어설픈 짓을 하는지 ... . 유명해지면 이렇게 빵구나기 시작하는 게, 인간의 당연한 업보일까?

지금 우리 생활을 일구어낸 문명이 지나치게 극단적이기에, 박찬욱 작품처럼 극렬한 미감을 낳을 수밖에 없다는 걸 인정하면서도, 그래도 나는 극단적으로 보수적인 ‘거룩한 엄숙’에 숨은 ‘위선적 억압’도 싫거니와, 극단적으로 진보적인 ‘이유있는 반항’에 깔린 ‘막무가내 깽판’도 싫다. 그의 ‘이유있는 반항’에 음미할만 한 점이 있긴 하지만, 그 뒤에 깔린 ‘막무가내 깽판’에서 느껴지는 정신병적인 섬뜩함이 너무 심해서, 이 영화를 보지 말라고 말리고 싶다. 그래봤자 박찬욱 감독의 유명세가 하늘 높아 먹혀들지도 않겠지만.

****************

* 다음 글은 작년에 [올드 보이]가 칸 그랑프리를 받았을 즈음에 쓴 '[올드 보이]의 칸 그랑프리에 시비걸다'라는 글입니다. 박찬욱 작품이 보여주는 극렬한 미감에 대한 염려를 강조한 글입니다.

*****

작년 11월. [올드 보이]를 이야기하였다.

“... ... 박찬욱 감독의 [공동경비구역]에 반해서, 뭔가 껄끄러운 예감이 들면서도 [복수는 나의 것]을 굳이 보았다. [공동경비구역]이 좀 아쉬운 점이 있긴 하지만 잘 만든 영화라는 건 더 말할 것도 없고, [복수는 나의 것]이나 이번 [올드 보이]도 '기능적 기술'로 보자면 '잘 만든 영화'이다. 그는 상당한 문제의식과 작품 실력을 갖춘 감독이다. 그러나 그가 이런 잔혹한 엽기영화로 인공조미료를 잔뜩 뿌려 솜씨 자랑하는 모습이 안타깝다. 이 땅의 어두운 그늘을 여실하게 드러내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는데, 그가 왜 이렇게 그런 잘못된 잔혹함에 집착하는 걸까? 그래도 [복수는 나의 것]에서는 밑바탕에 깔린 깊은 설움과 분노를 보여주었지만, 이번 [올드 보이]에서는 일본사회의 그늘에 숨은 사디즘과 마조히즘을 흉내내면서, 기발한 역습이나 반전으로 관객에게 ‘공포의 깜짝쇼’를 펼치는 재주밖에 남지 않았다. 이런 영화를 만들어서 무얼 어찌하겠다는 건가! 돈 좀 벌어 보겠다? 그건 아닌 것 같고. 우리 사회에 깔린 잔악한 폭력을 고발해 보겠다? 그건 관객의 눈높이를 무시한 처사이고. 이런 표현양식을 개척해서 우리 영화에 새로운 지평을 열겠다? 그건 남의 손 빌려 코 닦으며 자기 멋에 빠진 자아도취이다.”라며 그의 작품실력을 인정하지만, 바람직한 영화가 결코 아니라고 비판하였다.

큰 상 받은 영화나 인기를 끈 영화를, 나도 함께 환호작약하며 만장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나도 상을 준 사람들이 갖는 권위에 기대고 싶고 수많은 사람이 즐기는 걸 함께 즐기고 싶다. 남들이 다 좋다는데, 나만 홀로 삐딱하게 비틀어지고 싶지 않다. 더구나 [올드 보이]처럼 세계적 권위를 갖는 일에, 나만 비틀어지면 내가 ‘웃기는 놈’이 될 위험에 처하게 된다. 기존의 학문이나 종교의 권위에 도전하고, 비엔날레의 현대미술에 시비를 걸고, 락음악이나 클래식음악에 삿대질 하며, 새로운 사색틀과 새로운 문화운동을 주장하는 내 모습에, 내 스스로 어찌 불안하고 긴장되지 않겠는가? 내 스스로는 확고하지만, 그렇다고 남의 코웃음을 귓등으로 흘려넘길 정도로 강하지도 못하다.

[실미도]와 [태극기 ]가 1000만명을 넘어서고, 이번엔 [올드 보이]가 칸느에서 그랑프리를 받은 것이, 결코 즐겁지 않다. 스스로 돌이켜 보았으나, 이건 ‘잘 나가는 짜식들’을 끌어내리는 ‘시기 질투’가 아니며, ‘잘 난 놈들’을 씹어대며 내 자신의 레벨을 높여보려는 ‘자기 기만’도 아니다. 이미 말했듯이, 박찬욱 감독은 사회문제에 상당히 깊이 있는 안목을 갖고 있으며, 기술적 작업능력도 매우 높다. 우리나라에서 예술성과 대중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진짜 능력을 갖춘 아주 드문 감독이다. 이창동 감독에 비해, 예술성은 거의 버금가고 대중성은 훨씬 낫다. [취하선]의 임권택 감독이나 [스캔들]의 이재용 감독하고는 차원이 훌쩍 다르고 방향이 아예 다르고 미감이 사뭇 다르다. 잔혹 엽기물만 가지고 말하더라도, 일본이나 서양의 어떤 엽기물보다도 내공이 깊다. 김기덕 감독의 엽기물하고는 차원도 다르고 내공도 다르다. 타란티노의 [킬빌] 정도 엽기물은 유치하다.( 내 눈에 [킬빌]은 C급영화이다. 그 정도 밖에 안 되는 영화감독이 어떻게 칸느 영화제의 심사위원장인지 이해가 안 된다. 서양의 현대예술계가 상당히 뒤틀려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그 정도 밖에 안 되는 그가 [올드 보이]를 보고 시기 질투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가 시기 질투하면서도 [올드 보이]에 그랑프리를 안겨준 주도자였다는 건, 그가 인격적으로 수준 낮은 사람은 아닌 모양이다. 그가 [올드 보이]에 반한 건, 그의 [킬빌]의 엽기성 미감하고 매우 일치하기 때문일 것이다. ) 엽기성의 미감을 인정하고 보자면, [복수는 나의 것]이 훨씬 낫다. 대중의 눈으로 감당키 어려울 정도로 오바 페이스해서 실패하였지만.

그런 점에서 그는 이미 어떤 큰 상을 받고도 남을 그릇이었다. 내 가늠자로 보아, 임순례 이창동 장준환과 함께 세계 최고의 감독이다. 칸 영화제가 아무리 까다롭더라도, 얼마든지 큰 상을 받을 수 있는 감독이다. 그럴 만한 감독이 그랑프리를 받았으니 우리 영화의 크나큰 경사임에도, 내가 결코 즐겁지 않은 것은 현대예술의 뒤틀린 풍조와 거기에 한 줄기를 잡은 잔혹엽기물의 ‘병적인 섬뜩함’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숨쉬고 살아가는 기계문명과 도시문명은 ‘잿빛 어둠의 나쁜 병’에 깊이 걸려있다. 보수적 예술 쪽은 그 나쁜 병을 화사함과 풍요로움을 앞세워 꽃단장으로 덮어버리거나 가족이기주의의 달콤함 안으로 숨어서 눈 감아 버리거나 세상사를 초연한 듯한 자기 위선으로 도피하고 있으며, 진보적 예술 쪽은 그 나쁜 병을 비탄하고 분노함이 뒤틀려 정신분열적 자학증으로 극렬한 오기를 부리거나 퇴폐적 데카당스의 자폐적 쾌락에 빠져 자포자기의 난장판을 부른다. 결국 보수적 예술은 ‘자아도취 뺑끼칠’로 넘치고, 진보적 예술은 ‘막무가내 깽판’으로 치닫는다. 이런 자기 패거리 집착은 기계문명과 도시문명이 낳은 잿빛 어둠의 나쁜 병을 고치는 데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인류문명에 더 깊은 상처를 주고 골을 깊게 패이게 한다. 그래서 현대예술은 그게 보수적인 쪽이든 진보적인 쪽이든 ‘아주 잘못’ 가고 있는 것이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다른 기회에 하겠다. ‘현대예술과 포스트모더니즘의 수렁’을 준비하여, 푸코 데리다 들뢰즈를 비판하려고 한다. )

그 중에 하나가 잔혹엽기물이다. 그 어느 무엇에든 매니아는 있다. 그 매니아들이 즐기는 개인적인 취향 자체에 시비를 걸고자 하는 뜻은 없다. 설사 그게 내 개인적인 관점에서 “나쁘다”하더라도, 다른 사람 모두에게 나쁘다고 강요하고 싶지 않다. 또 설사 그게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나쁘다고 인정받는다고 하더라도, 그 나쁜 것도 그 나쁜 대로 ‘존재의 의미’는 있다. 모시옷과 털옷에 궁극적으로 ‘선악 시비 우열’은 없지만, 우리가 사는 지금 삶의 현장이 7월 여름이면 “모시옷은 좋고 털옷은 나쁘다” 그리고 1월 겨울이면 “모시옷은 나쁘고 털옷은 좋다”를 말해야 한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잔혹엽기는 우리 삶에 생생한 어느 한 영역임에 틀림없다. 실은 따지고 보면, 우리가 먹는 음식은 모두 기본적으로 잔혹엽기를 깔고 있다. 그러니 세상 모든 생명의 삶과 죽음에는 잔혹엽기가 밑바탕에 깔려있다. 그러나 문제는 다른 생명체와 다른 인간만이 갖는 독특한 패턴이다. 그 독특한 패턴이 지금 이 시대에 와서, 우리 인간의 삶을 황폐하게 유린하고 있고 지구 생명체를 잔혹하게 짓밟고 있다. 심각할 정도로 지나치다. 그 지나침의 오바페이스 중에 하나가 잔혹엽기물을 정신적 퇴폐성으로 즐기고 음미하는 것이다. 그런 미감을 변태적으로 즐기고 음미하면서, 우리 인간이 무얼 어쩌자는 것인가! 더구나 사회문화풍토가 이리도 막무가내이고 자기 여과장치가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채 철없이 말초적 감각에 취해서 흥청대는 새파란 젊은애들에게 그게 어떻게 작용하겠는가!( 이런 관점을 잘못 보면 보수적 관점이라고 할 수 있다. 길게 차분하게 말할 마당이 아니어서 요지만 말하자니, 더 짜임새 있고 더 자세하게 말하지 못한 점이 있다. 내가 비록 포스트모더니즘이나 해체주의에 비난어린 비판을 준비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보수적 관점에서 그러는 게 아니다. 이 시대 학문 예술 종교의 보수 쪽이든 진보 쪽이든 서양 쪽이든 동양 쪽이든, 총체적으로 그 뿌리와 줄기에 심각한 튀틀림이 있다고 본다. 미안하다. 이렇게 거창하게 선언적으로만 말해서. )

현대 기계문명과 도시문명은 ‘잿빛 어둠의 나쁜 병’에 깊이 빠져있다. 그게 너무 지나쳐서인지, 보수적 예술 쪽이든 진보적 예술 쪽이든, 잘못된 길로 아주 잘못 가고 있다. 박찬욱 감독의 세계적으로 A급이라 할 만한 솜씨 좋은 재능이 그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 그는 진보적 예술가이다. 진보적 예술이 이 잿빛 문명을 향해 던져야 할 메시지와 작업이 얼마나 많고 많은데, 그 좋은 재능을 그런 잔혹엽기물로 몰고가는 게 너무 안타깝다. 아니 안타깝다기보다는, 좋은 재능이 잘못된 길을 밟아가며 저지를 죄악이 너무 무섭다. 그래서 나는 그가 [공동경비구역] 같은 영화가 아닌 [올드 보이] 같은 영화로 큰 상을 받고 즐거워하는 모습이 너무 싫고 너무 염려스럽다.

혹시 제 의견에 동조하는 사람들은, 지금 우리가 만나는 현대예술의 잘못된 길에 침묵해선 안 됩니다. ‘잘못된 현대예술’이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개 폼 잡거나 군림하며 끽소리 말라고 주눅 주는 일에 항의하고 분노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진보적인 사람들은 수구세력의 부패정치 ` 탄핵정국 ` 지겨운 지역감정에만 분노하지 말고, 자기 울타리 안에 ‘숨은 파시즘과 잘못된 뒤틀림’이 비비꼬여들지 않도록 스스로 반성하고 바꾸어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 그 동안의 병든 현대문명과 잘못된 현실에 깃든 학문 예술 종교의 잘못은 부분적이 아니라 총체적입니다. 잘못된 학문 예술 종교가 함께 어우러져 소용돌이치며 지금 우리의 현실생활을 수렁에 빠뜨리고 있습니다. 그게 너무 지나칩니다. 저항하고 반성합시다. 수구 쪽만 말고, 진보 쪽도. 서양 쪽만 말고, 동양 쪽도. 잘 몰라도 뭔가 아니다 싶으면, “너흰 아니야”라고 말합시다. 잿빛으로 깊이 병든 문명에서 유명한 사람, 높다란 학벌, 단단한 패거리의 죄악은 구조적이고 총체적입니다. 그들에게 주눅들지 맙시다. 실명이 껄끄러우면 가명으로. 물론 막무가내 욕설이나 무턱댄 마타도어는 안 되겠지요?

독자 의견 목록
1 . 오... 이정훈 2005-08-08 /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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