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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주의 영화로 보는 세상


[제5공화국]에서 '전두환'이 멋있다?
김영주 2005/05/27 13:40    

오월은 푸르다. 그러나 오월광주는 무겁다. 오월 핏자국이 뇌리에 선연하게 맺혀있던 시절엔, 오월 신록의 싱그러운 잎사귀 사이로 서려든 핏빛이 섬뜩 샛붉게 도드라져, 가슴에 바늘로 돋아 올랐다. 소주잔에 잠겨들어 꺼이꺼이 울고 울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 선연함이 희미해져갔다. 아니, 어느 한 구석에선 오월광주에서 도망치고 싶은 충동도 느꼈다. 그래서 [블러디 썬데이]를 이야기하면서, “왜 그럴까? 생활의 달콤한 안락함을 향한 도피에 깊히 젖어든 걸까? 오월광주에 담긴 비장한 슬픔에서 벗어나고픈 자기 합리화가 자리를 잡은 걸까? 오월광주를 이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에 이런저런 실망이 겹쳐 그들에게 가졌던 ‘양심의 가책’이 닳고 닳아져버린 걸까? 세상사에 이리저리 시달리다 ‘도사연’하는 초탈로 오월광주가 ‘진흙탕 인간사’의 한 장면으로 무심해질 수 있게 된 걸까? 누구나 그러하고 무엇이나 그러하듯이, ‘세월이 약’이라는 망각의 강을 흘러 희미해져 가는 걸까?”라고 했다.

오월광주는 무겁다. 지난 번에 쓴 [댄서의 순정]의 ‘문근영’이야기가 문득 속알머리 없어 보였다. 인터넷 화면에서 [댄서의 순정]을 내리고, 예전에 쓴 아일랜드의 오월광주 이야기 [블러디 썬데이]로 바꾸어 달라고 부탁했다.
종교를 비롯한 가부장제 사회윤리로 우리의 생활 속에 깊숙이 묻힌 섹스이야기를 드러내어 보여준 [킨제이 보고서]가, 교육방송에서 특집 다큐 2부작으로 방송되었고 영화로도 만들어져 상영되었다. 내용이 상당히 충격적이다. 이걸 소재로 요즘 우리 사회에 펼쳐지는 섹스의 절제와 억압 그리고 분방함과 문란함 사이를 줄타기하며 뒤틀린 ‘섹스의 풍속도’에 한 마디 하고 싶었다. 그 방대한 이야길 이 좁은 마당에서 감당하기엔 많이 버겁기도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주절대기엔 오월광주가 너무 무거웠다.

*****

요즘 [제5공화국]을 빠짐없이 보고 있다. 이미 [그 때 그 사람들]에서 말했듯이, “뭔가 참신한 접근과 새로운 연출기법을 조금 기대해 보았지만, 흔히 보는 TV드라마 스타일을 그리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대충은 알지만 자세하게는 잘 몰랐던 걸 확인해 가는 재미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는 그 시절의 역사적 장면에 바짝 긴장되었다.” 더구나 미국의 문서공개와 새로운 증언으로 점점 밝혀지는 그 당시 미국의 역할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숨겨진 비화와 터지는 고백들을 여기저기에서 만나게 되면서, 이 드라마는 더욱 긴장을 돋우고 호기심을 부채질한다. 장태완 수경사 사령관이 전두환 세력과 맞짱 뜨며 으르렁거리는 장면은 가슴 터지도록 두근거렸다. 노재현 국방장관은 ‘잔머리 서생원’으로, 전두환은 ‘한국판 히틀러’로 역사에 길이 남겠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어떤 놈들이 열린 주둥이로, [제5공화국]에서 전두환이 멋있단다. 이덕화의 전두환 역할이 눈길을 잡아끄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그의 역적질이 멋져 보이다니! 설마이겠지만, ‘전사모’가 생겼다고 한다. 열이 화끈 받쳐 올랐다. 그러나 열을 내리고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내가 들어서만 알고 있는 일제시대 육이오 사일구. 오일팔에 비하면, 그 분노와 슬픔은 껍데기이다. 실은 학교에서 배운 수많은 역사적 사건들이 모두 껍데기이다. 게다가 사람이라는 게, 내 손톱에 박힌 가시는 맵고 쓰리지만 다른 사람 몽둥이찜질은 흘려 넘기는 법이다. 그 때 그 시절에 ‘광주의 처참한 살육’을 까맣게 모르고 광주를 욕하고 전두환을 편들었을 수는 있겠지만, 그걸 얼마쯤 알게 된 뒤에도 전두환을 편들지는 못할 것이다.

이 드라마를 본 학생들에게 그 감상을 “나를 의식하지 말고 말해 보라”고 했다.(그들은 모두 80년 이후에 태어났고 거주지역도 다양하다.) 전두환을 잘 알고 있는 학생은 없었다. 풍문으로 들어서 대충 “전두환이 나쁘다”고 막연하게 알고 있단다. 박정희는 물론이고, 전두환과 오월광주 그리고 제5공화국을 그들은 몰랐고 관심도 없었다. 우연히 드라마로 보게 된 것이다. 내 눈에 전두환의 무모함과 악바리가, 그들에겐 강단지고 결단력 넘치는 카리스마로 보였다. 곁들여 “전두환 패거리가 단단했다. 전두환이 억세게 운이 좋았다. 연출자가 은근하게 전두환을 편들어 준 것 같다.”고 했다.

세상은 참 많이 변했다.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많이 변해 버렸다. 그 옳고 그름을 따지기에 앞서서, 이렇게 변해버린 세상을 인정하고 들어가야 한다. 그들에게 “이 배부른 똥돼지들아!”라고 악다구니를 질러대며 머리통에 가득 찬 똥덩어리를 확 걷어차 버리고 싶지만, 그렇게 윽박지르고 꾸짖으며 훈계하고 계몽시킨다고 될 일이 아니다. 지나치게 비장하고 무겁고 진지하고 심각해선 안 된다. 지금 우리 삶의 구석구석을 찾아들어가 상징적인 은유로 예술적 승화를 이루어서, 그들이 알아먹을 수 있도록 눈높이를 맞추고 차분하게 다가가야 한다. 더구나 ‘지역감정’에 기생한 독버섯이 아직도 이 땅에 넘쳐 번성하고 있으니, ‘오월광주의 올바른 자리매김’은 아직도 멀고 험하다.

그 드라마 연출자가 말했다. “전두환을 편든 게 결코 아니다. 앞으로도 많은 걸 보여줄 것이다. 에둘러 돌아가지 않고 정면으로 돌파하겠다. 특히 오월광주를 이야기하게 되면 세상이 떠들썩해질 꺼다. 지켜봐 달라!”

기대된다. 단단히 지켜보겠다. 토요일 일요일 밤, MBC 9:40.

독자 의견 목록
1 . 오월과 전두환 도토리 2005-06-01 / 05:59
2 . 음미해 보았습니다. 김영주 2005-06-01 / 12:33
3 . 오일팔을 너무 미화 하지 말라 오일팔귀족 2005-06-01 / 19:21
4 . 오일팔귀족님! 오월광주와 오일팔사람들을 구별해서 보아주십시오. 김영주 2005-06-05 /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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