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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주의 영화로 보는 세상


[에비에이터]의 화려한 비상에 가려진 짙은 그림자
김영주 2005/03/04 10:58    

공부는 추상적 이론과 현실적 실천 사이를 머리 속에서 주고 받고 오고 가지만, 생생한 삶의 현장에선 어쩔 수 없이 구체적인 어느 노선을 선택해서 스텝을 밟아야 한다.

나의 현실적 노선은 온건한 진보성향이다. 노무현과 강준만의 노선과 스텝에 아주 비슷하고 조금 다르다. 음식을 가리지는 않지만 좋아하는 음식이 따로 있듯이, 영화나 감독도 웬만하면 가리지 않지만 좋아하는 영화나 감독은 주로 ‘진보적 리얼리즘’ 쪽이다. 그래서 미야자끼 하야오 · 라스폰 트리에 · 올리버 스톤 · 마틴 스콜세지 · 앨런 파커 그리고 우리나라 감독 임순례 · 이창동 · 장준환을 매우 좋아한다.

아무리 좋아하는 감독의 작품이라도 세월따라 작품따라 그 맛이 달라진다. 사회문제의식이 깊고 진지할수록, 작품성이 좀 떨어지는 걸 감수하더라도 대중의 눈높이에 맞추려는 노력은 더욱 필요하다. 우리나라 영화에서 가장 맘에 든 영화를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이라고 생각했는데, 세월이 묵어지면서 [박하사탕]보다는 [초록 물고기]가 더 좋아지고, 임순례 감독의 [와이키키 부라더즈]가 더욱 더 좋아지는 이유도 그렇다.

미야자끼 하야오의 [하울의 움직이는 성]보다도 [이웃집 토토로]를 훨씬 더 좋게 여기는 이유도, 라스폰 트리에의 [도그빌]보다도 [어둠 속의 댄서]를 더 좋은 작품으로 여기는 이유도, 올리버 스톤을 [킬러] [닉슨] [알렉산더]에서 실망하는 이유도 마찬가지이다. 진보적인 예술이 대중의 눈높이를 맞추려는 노력은 아주 필요하고 좋은 일이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갱스 오브 뉴욕]과 [에비에이터]는 스토리 내용과 캐릭터의 연기를 통해서 강렬하게 밀어붙이는 파워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그러나 그 강력한 파워가 사라져 버린 건 아니다. 어느 구석 구석에 순간 순간 아직 살아 있다. 일반 대중들은 그를 만나기가 많이 편해졌겠다. 그렇다면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작품이 점점 더 좋게 여겨져야 할텐데, 오히려 그 앞의 작품들보다 덜 좋게 느껴졌다. 뭔가 허전했다.

△ 마틴 스콜세지의 택시 드라이버. 누구도 로버트 드 니로를 흉내낼 수 없었다.

김기덕 감독의 잔혹한 엽기물처럼 막무가내로 충격적인 무지막지함도 싫으며, 박찬욱 감독의 [복수는 나의 것]처럼 차갑게 처절하거나 [올드 보이]처럼 뜨겁게 처절해서 심장을 자근자근 난도질하는 ‘섬뜩한 잔혹함’도 싫다. 내 몸이 도통 감당할 수 없다. 그러나 마틴 스콜세지의 작품은 김기덕의 엽기물보다는 훨씬 덜 무지막지하고 박찬욱 작품보다는 덜 섬뜩해서, 내 심장용량이 견딜만 했고 그 강렬하게 매운 맛을 즐길 만 했다.

[에비에이터]는, 그의 매운 맛을 모르는 사람들에겐 매콤했겠지만 내겐 싱거웠다. 일반관객의 눈으로 보아 여러 가지로 괜찮은 영화이다. 그가 재산을 모아가는 과정이나 유명한 여배우과 벌이는 스캔들, 그리고 팬암과의 갈등 뒤에 깔린 정치적 음모의 소용돌이로 긴장감을 팽팽하게 끌고 간다.

△ 디카프리오가 출연한 에비에이터의 한 장면.
올리버 스톤의 [닉슨]처럼 미국 보수사회의 하이라이트에 숨은 어두운 그림자를 보이지 않게 비판하고 있다. 그런데 그게 강한 메시지를 새겨 넣으려는 충격적 반전으로 휘몰아치는 매운 맛이라기보다는, 어느 개인의 인생기록을 논픽션처럼 나열해가는 스토리 전개이어서 밋밋하고 허전했다. 게다가 그 동안의 로버트 드니로와는 달리, 새로 손잡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캐릭터의 카리스마를 제대로 살려주지 못한 것도 여기에 제법 한 몫 한 것 같다.

디카프리오의 얼굴이 아직 앳되어선지, 아일랜드 이민 1세대가 밀어닥친 뉴욕의 험한 뒷골목이나 하워드 휴즈의 기이한 인생과 카리스마를 감당할 만큼 아직 삶의 깊이가 몸에 농익어 들지 못했다. 매서운 눈매에 지나치게 기댄다. 그 역할을 소화해내려는 도전과 의지는 가상하다. 그러나 역부족으로 보였다.

사람마다 얼굴 다르듯이 성격이 다르고, 그래서 어떤 작품을 보는 관점과 느낌이 사람마다 다르다. 같은 영화라도 세월이 흐르면서 느낌이 달라지고, 같은 감독이라도 작품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그 옳고 그름을 가려내는 것이 결코 쉽지 않지만, 좀더 옳은 관점과 느낌을 잡아보려는 노력은 쉬엄없이 이어진다. 그건 어느 한 두 가지 재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생활의 마디 마디에 박힌 애환을 깊고 길게 호흡하여 통찰해내는 내공으로 이루어진다.


독자 의견 목록
1 . 얼굴을 뵈야지요 코스모스 2005-03-04 / 20:40
2 . 드니로와 디카프리오 qjqj 2005-03-09 /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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