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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주의 영화로 보는 세상


[쉘 위 댄스?]로 쓸쓸한 가을사랑을 위로받다.
김영주 2004/11/26 11:53    

올 가을엔 사랑할꺼야! 가을이 무르익어갈 때면, 자주 불러보는 노래이다.

바람나고 싶다. 내 맘대로만 할 수 있다면야 열 번인들 마다할까마는, 일부일처제라는 오랜 윤리적 이념이 '양심의 가책'으로 짓누르고, 직업이 요구하는 덕목이 이런 말조차 꺼내지 못하도록 할 뿐 아니라, 그 여인들 사이를 재주 피우고 애 태우며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할 자신도 없으며, 그 여인들에게 보대낄 바가지나 원성을 귓등으로 흘려 넘길 정도로 뻔뻔하지도 못하다. 할 일도 꼬리를 물어 밀려 있고, 하고픈 일도 태산 같이 쌓여 있는 터에, 몽상으로 아련하게 '상상그림'이나 그려보고 말 일이다.

내가 영화를 즐기는 이유 너댓 가지에서 하나가, 바로 이 상상그림에 실감나게 빨려들어가는 재미 때문이다. 양심의 가책을 느낄 필요도 없고, 부도덕하다는 손가락질도 없을 뿐 아니라, 애태우며 눈치 볼 일도 없으며, 바가지나 원성에 속 썩을 일도 없다.


어린 시절 [빨간 마후라]의 김지미부터 지금 [쉘 위 댄스]의 제니퍼 로페즈에 이르기까지, 때론 달콤하게 때론 향기롭게 때론 애 타도록 때론 쌉쌀하게 때론 질펀하게 때론 격렬하게 때론 소름 돋도록 그 미묘한 감성의 터치를 주고 받으면서, 나는 그토록 수많은 여인들과 아무런 부담도 없이 바람피웠다. 겉으론 얌전해도 속으론 응큼스레 어린 날을 숨 죽였고 청춘을 달구었고 장년을 불태웠다.

그 중에서 나에게 가장 손꼽히는 사랑은, 장자크 아노 감독이 만든 마르기르뜨 뒤라스의 [the Lovers]이다. 앳된 소년처럼 천진스레 두근거리는 기다림과 숨막히도록 탱탱하게 당기며 감쳐오는 끈끈함이 엇갈리며 함께 적셔드는 야릇한 욕정의 소용돌이에서, 내가 가장 갈망하는 바로 그 사랑코드를 맛보았다.

그렇게 상상그림만으로 사랑을 그려오다가, 세월의 굽이굽이마다 박혀든 현실의 메마른 삶이, 저 머언 발치에서 바라만 보고 견디어내는 짝사랑에 익숙해져 버렸다.
이젠 설사 그 어떤 사랑이 찾아온다고 하더라도, 어느 누구나 모두 다 이해해 줄 수 있는 정도의 그런 '쓸쓸한 사랑' 밖에 남지 않은 것 같다.
청춘은 담장 너머로 달아나 버린 지 이미 오래 이고, 장년도 산마루 너머 내리막길로 들어섰다. 이젠 쉬엄쉬엄 머물면서 되돌아보는 추억만 남았으니, 이 가을이 더욱 쓸쓸하다.

[쉘 위 댄스]는 중년이 깊어가는 리차드 기어에게 바로 그런 사랑을 담아냈다.
모든 게 다 갖추어진 평범하고 안정된 다람쥐 쳇바퀴 인생. 그 만큼이라도 살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그나마 다행이요, 그 틈새에서 조금씩 묻어나는 잔재미를 행복이라고 위로하고 싶은 무료함. 그런 안정과 다행과 무료함을 살짝 깨뜨리는 파문이 일었다.
만약 [브레스레스]나 [미스터 굳바]의 격렬한 리차드 기어였다면, 맵고 찐한 섹스로 폭발하며 인생 전체를 짓이겨버렸을지도 모를, 제니퍼 로페즈의 탱탱하게 뇌쇄적으로 아찔한 몸매를 그대로 곱게 놓아두고, 잠시 흐트러진 스텝을 추슬러 제자리로 아무 탈 없이 모범적인 가장으로 되돌아온다. 그 이어질 듯 말 듯한 사랑이야 안타깝기 그지없지만, 오히려 우리는 그 반듯한 모범가정에 더욱 감동하고 다행스러워 한다.

이 영화는 몇 해 전에 상당한 인기를 모은 일본판 [쉘 위 댄스]을 그대로 미국판으로 다시 만들었다. 그 살짝 출렁이는 파문이, 일본판에선 우아하고 잔잔하지만 미국판에선 도발적이고 강렬하다.

일본판은 조연들이 아주 돋보이지만, 미국판은 주인공이 아주 돋보인다. 제니퍼 로페즈의 강렬하게 매혹하는 육감적인 몸매와 리차드 기어의 완숙하게 익어가는 중년의 중후함이, 고혹적인 뜨거움으로 휘감아드는 '탱고가락'이나 우아하고 아련하게 흘러드는 'Moon River' 그리고 새콤하고 달콤하게 적셔드는 '쉘 위 댄스'에 실려가는 춤결따라 몸도 맘도 녹아흐른다.

패트릭 스위지가 파릇한 젊음을 피워낸 [더티 댄싱]에 탄성을 다시 되살려주었다. 똑 같은 줄거리에, 슬픈 눈망울에 가녀린 목과 어깨를 타고 흘러내린 단정하고 우아한 몸맵시 그리고 강렬하고 육감적인 정열로 달구어진 뇌쇄적인 몸매라는 전혀 다른 두 여주인공을 중심 삼아 흐트러짐 없이 탄탄하게 엮어낸 두 감독에게 큰 박수를 보낸다.

독자 의견 목록
1 . 음~ 쉴위댄스 배움쟁이 2004-11-30 / 09:47
2 . 셀 위 댄스? 율전 2004-12-01 / 02:35
3 . 우리의 송구영신모임에 참석해야겠습니다. 김영주 2004-12-01 /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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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쉘 위 댄스?]로 쓸쓸한 가을사랑을 위로받다.[3] 2004.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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