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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주의 영화로 보는 세상


[주홍글씨], 똥폼잡다 주저앉다.
김영주 2004/11/01 10:58    

질펀한 섹스에 젖은 불륜에다가, 하드보일드한 자극을 주고 추리물의 긴장도 폼나게 담고 싶었던 모양이다. [원초적 본능] 비슷하게. 재료와 양념이 좋아야 하고, 무엇보다 요리솜씨가 좋아야 한다.

재료 : 시나리오 C급, 한석규 A급, 여배우 B급과 C급, 조연 C급.
양념 : 스텝 무대 소품 : B급과 C급.

그런데 요리솜씨가 어정쩡하다.
"좋다(B)고 하자니 떨떠름하고, 비난(C나 D)을 하자니 야박하고 ..." 그 어정쩡한 저울질을 하다가, [바람난 가족] [실미도] [태극기...]가 떠올랐다. 그런 정도의 영화가 대체로 그렇다.

나는 이런 어정쩡한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 나름대로 괜찮은 점이 있는 영화이기도 하면서, 감독이나 배우가 재능을 보여주기는 하는데, 그게 어중간해서 죽도 밥도 아니다. 그 영화가 끌어내는 감흥의 뒷 여운을 제대로 풀어내지 못하고 남은 찌꺼기에 신경질도 난다.
[바람난 가족]은 그 신경질을 참기 어려웠고, [실미도]와 [태극기]는 좀 딱하지만 그 정도는 이해하고 넘어가자고 생각했다.

이 영화는 신경질까지 나진 않았다. 그래서 "눈에 힘 빼고 보면, 중간이 추욱 늘어지긴 하지만, 보아줄 만하다. 눈에 힘 주고 보면, 어중간한 재능에 헛욕심이 끼여들어, 오바하고 똥폼 잡는다.
이해하고 넘어가자. 일부러 시간 내서 볼 영화는 아니다.(우리 관객이 대체로 어중간하기 때문에, 이런 영화가 인기를 탈 가능성이 크다. 그러기엔 10% 부족해서 불안하지만.)

이런 영화의 공통점은 홍보가 유별나다. 돈 냄새가 물씬 난다. 포스터가 상당히 폼난다.(근데 선전팜플렛 뒷면의 선동글귀는 싼티난다.) 극장을 쓸어버리고, 벽보판을 도배해 버린다.
극장이 멀티플렉스로 산뜻하게 변신하는 모습에 나는 순진하게도 다양한 영화를 볼 수 있을 걸로 생각했다. 이렇게 도배할 줄 몰랐다. 문제는 이렇게 어중간한 사람이나 작품이 돈과 권력에 궁합이 잘 맞아간다는 것이다.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이런 '잘못된 만남'이 우리의 삶을 뒤흔들어댄다. 그 위력에 나도 쫄대로 쫄아 있다. 우리의 삶이 이래도 되는 건지 너무 염려스럽다.

*****

아이러니칼하게도 이렇게 '잘못된 만남'으로 이루어져 있는 영화가 그 '잘못된 만남'을 소재로 비장하게 비극적 결말을 맺는다. 그걸 어정쩡한 시나리오에 어정쩡한 연기로 어정쩡하게 연출한다. 무엇보다 거슬린 게, 한석규의 이기적인 비장미를 살려보려다가 캐릭터 설정을 지나치게 오바해서 몰아갔다. 한석규를 너무 의식해서 본래 시나리오의 캐릭터를 강하게 손질한 게 아닐까? 그러다가 시나리오 전체까지 많이 손질하지 않았나 하는 짐작을 해 본다. 어깨에 힘이 너무 들어가 어깨가 뒤틀리는 "빠악"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마침내는 한석규도 자기 이미지의 멍에에 갇혀버렸다. A급이 B급으로 내려앉았다.

여배우는 이은주가 돋보인다.
[태극기]에서 순박한 역할에 평범한 연기로 눈여겨보지 않았다. 여기에서는 강렬하다. 까페에서 노래가 매우 좋다.(진짜 자기노래일까? 설마! 그렇다면 가수로도 크게 성공하겠다.) 정사장면은 진한 듯 하다가, 갈 때까지 가지 못하고 몸을 사린다.(감독이 그리 한 걸까? 빈약한 몸매에 자신이 없었을까? 부끄러움이나 이미지 관리일까?)
성현아는 끼를 펼칠 듯하다가 정색을 하고 멈추어 버린다. 답답했다. "도대체 무얼 어쩌겠다는거야!" 재능이 어중간한데, 맘까지 연약한 모양이다. 배우들을 자기 페이스로 휘어잡지 못한다.

우리의 현실에서 형사는 그렇게 폼나게 생활하지 못한다.
형사들의 어색한 패션모드는 웃어넘기자. 요즘 취향으로 쿠~울한 애인과 첼로연주에 열중하는 아내, 클래식 음악과 퓨전 음악의 어우러짐을 즐기는 멋진 카-드라이버, 두 층을 위아래로 트고 퓨전 디자인으로 앗싸하게 차려입은 팬션과 우아한 아파트 실내장식, 멋진 지성과 격한 야성에 얄밉도록 이기적인 방황의 고뇌. 관객의 간지러운 심리를 잡아, 진하게 유혹해보려고 겉멋을 한껏 부린 제비족 같다. 그래서 그 쎄련을 뻐기려는 자만이 오히려 가엾기도 하고 유치하기도 하다.
A급을 잔뜩 의식하다가 C급으로 뚝 떨어져 버린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 넘쳐흐르는 거품을 보는 것 같아서, 지겨움과 연민과 안타까움이 범벅이다. 폼잡지 말고 자기 자신에게 솔직해지기를 바란다. 자기에게 솔직했더라면 자기 페이스의 얼큰한 재미라도 살려냈을 것이다. 혹시나 이 영화를 [살인의 추억]이나 [범죄의 재구성]에 빗대어 말하는 것은 그 영화에게 실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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